00178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
178.
“불편하신 건 없으십니까?”
“지낼 만합니다.”
“종일 연구실에만 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집에서 쉬는 날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원래 연구원이란 직업이 생활이 불규칙합니다. 이 짓도 이십 년 넘게 하다 보니 지금은 익숙해져 집보다 연구실이 편합니다. 그리고 부회장님이 생명수도 매일 두 병씩 꼬박꼬박 보내주셔 건강엔 이상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금만 더 있어 달라는 정지윤 박사와 연구원들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신소재 연구소를 빠져나온 우리는 차영철 소장을 잠시 만난 후 최정준 박사가 있는 레드몬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4월 16일 나진시에 정착한 최정준 박사는 초동에 마련한 근사한 2층 집엔 가보지도 않은 채 연구실에 딸린 작은방에서 먹고 자며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호그질라 연구에 푹 빠져 있었다.
카이스트에 있을 때 연구벌레로 연구실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건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진시에 온 첫날부터 연구에 푹 빠져 집과는 담을 쌓고 살자 세계적인 석학을 데려다가 중노동으로 죽이는 게 아니지 걱정스러워 1단계 정화수를 매일 2병씩 보내주고 있었다.
“오늘 도착한 삵은 참 흥미롭더군요.”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눈 속에 희한한 게 박혀 있더군요. 회장님은 이미 알고 계셨죠?”
“네.”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호그질라에서 고의적으로 훼손한 부 분이 있어 궁금했는데, 삵을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아주 중요한 물건 같은데... 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삵의 눈알을 뽑지 않고 통째로 최정준 박사에게 넘긴 건 서로 속이는 게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레드몬 연구에 관한 모든 것을 일임해 놓고 정작 가장 중요한 레드주얼을 숨긴다면 그건 기만이자 훼방이었다.
그런 상태에선 신뢰를 구축할 수 없어 서로에게 피해만 있을 뿐이었다. 믿으려면 끝까지 믿고, 믿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상종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득이었다.
“저희는 이걸 레드주얼이라 부릅니다.”
“기사가 따로 없군요.”
냉기주얼이 손바닥을 뚫고 나오자 살짝 놀라는 것 같더니 금세 안정을 찾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냉기주얼을 관찰했다.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냉기주얼을 넘겨주자 조명에 비쳐도 보고, 손에 꼭 쥐어 온기도 점검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주얼을 느껴본 다음 확대경을 사용해 안을 들여다봤다.
작은 구슬 안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 폭풍이 흥미로운지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신기하군요. 이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저와 아내들 역시 그랬습니다.”
“제 생각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아가 없는 생명체라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계 장치쯤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머시너리라...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냉기주얼을 돌려준 최정준 박사가 시료 냉장고에서 삵의 눈알을 꺼내왔다. 노란 안구를 넘겨받아 조심스럽게 뒤쪽을 잘라내 레드주얼을 꺼냈다.
2cm 크기의 레드주얼은 삵의 눈처럼 노란색에 검정 눈동자가 있는 모습으로 효과는 삵과 같은 마비였다.
“엘리트 레드몬에서 레드주얼이 100% 나오는 겁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C급 엘리트 레드몬에선 아직 한 개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걸 포함해 지금까지 B급에서 세 개, A급에서 두 개 그리고 보스 레드몬인 포베로미스에서 두 개를 얻었습니다.”
“최하급이나 하급 레드몬에선 없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볼수록 흥미롭군요. 급하지 않다만 제가 잠시 보관하고 연구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십시오.”
레드주얼은 외부에 절대 알려져선 안 되는 특급 기밀로 실험 재료로 제공하는 건 위험부담이 컸다.
하지만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기능을 찾아낼 수도 있어 흔쾌히 승낙했다.
“뇌 연구가 한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좋은 실험재료가 많아 그동안 미뤄왔던 연구를 마음껏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뇌 연구는 레드몬의 진화를 밝혀줄 열쇠로 인류의 미래가 달린 매우 중요한 연구입니다. 하지만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연구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기필코 이루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걸 밝혀내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없습니다.”
“박사님의 연구 방향에 관여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 실험재료도 계속 공급해드릴 겁니다. 또한, 평생 성과가 없어도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연구에만 매진하시면 됩니다.”
“이곳에 와서 참 많은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단연 압권은 바로 회장님입니다.”
“제가요?”
“네, 이런 오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레드몬 연구소를 조성하고, 연구재료와 연구비로 무한대로 지원하면서 연구 주제도 관여하지 않고, 결과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이유가 대체 뭡니까?”
“이유라? 제가 못 배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못 배웠으니 저 대신 공부하고 연구할 사람을 지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그리고 작은 것을 얻고자 하면 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큰 것을 얻으려면 그에 합당한 투자가 있어야죠. 그래야 제대로 된 걸 얻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하~ 회장님이야말로 진정한 장사꾼입니다.”
“감사합니다.”
대뇌반구의 전방에 있는 전두엽(前頭葉)은 기억력과 사고력 등 고등행동을 관장하며, 다른 연합영역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와 행동을 조정하고, 추리·계획·운동·감정·문제 해결에 관여했다.
판단과 논리, 지능과 의지를 통제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우리의 존재인 자아를 제어하는 기능이 있어 일부 과학자들은 두뇌의 면류관이라 불렀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구분 짓는 요인 중 하나가 전두엽의 크기로 작을수록 학습능력이 떨어져 본능에 따라 행동했고, 클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을 잘 수행했다.
이는 전두엽이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는 일로 고양이는 3.5%, 개 7%, 침팬지 17%, 인간은 33~38%를 차지해 동물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레드몬의 지능은 뇌의 무게와 체중을 계산한 뇌화지수라 정확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두엽의 크기는 레드몬의 영성과 판단력, 의지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어 연구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의 전두엽은 얼마나 됩니까?”
“까치살무사는 25%, 레드타이거는 35%, 호그질라는 37%를 차지했습니다.”
“전두엽 비중이 높은 레드타이거와 호그질라는 인간만큼 사고력과 판단력이 높겠군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기의 뇌에 차지하는 전두엽의 비중이 어른과 같다고 해도 어른처럼 생각하고 판단하진 못합니다. 또한, 아무리 영특한 사람도 고립된 지역에 갇혀 배울 기회를 잃게 되면 사고능력이 떨어져 어린아이와 비슷한 수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레드몬도 학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말씀은 레드몬이 아직 인간만큼 뇌가 발달하진 않았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순 없습니다. 성장 속도와 개체 증가 속도를 생각하면 길어야 30~40년 안에 인간이 수백만 년간 차근차근 밟아온 진화의 역사를 따라잡게 될 것입니다.”
최초의 인류는 약 500~10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도구를 사용하며 두 발로 걸어 다녔다.
다음은 호모에렉투스로 약 180~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아시아와 유럽까지 삶의 영토를 넓혔고, 그 뒤를 이어받은 똑바로 선 사람이란 뜻의 호모에렉투스는 불과 돌망치를 사용했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이라 부르는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난 건 약 20~3만 년 전으로 동굴에 살며 돌칼과 돌창을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3만 년 전에 나타난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크로마뇽인까지 인간은 무려 500만 년의 긴 시간 동안 무수한 진화를 통해 이 땅에 존재하게 됐다.
그러나 레드몬은 단 30년 만에 인간에 필적하는 높은 지능과 수십 배 뛰어난 신체를 갖췄다.
그리고 이제 엄청난 번식을 이용해 사회를 구성하게 된다면 공룡에 이어 지구의 새로운 주인 될 수도 있었다.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호그질라 중 어미가 발견된 놈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몸에 난 상처로 봤을 때 수많은 전투를 이겨내고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합니다. 어미의 보호를 받고 태어난 엘리트 레드몬이었다면 그렇게 상처가 많진 않았을 겁니다.”
능력자와 레드몬이 재생력과 회복이 아무리 뛰어나도 상처가 남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일반적인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레드몬이나 능력자에게 당한 상처 중 깊은 상처는 포스의 간섭으로 치유가 더뎌 흉터가 남았다.
“최하급에서 시작했든 하급에서 시작했든 삼십 년 만에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인류에게 매우 위협적인 내용입니다. 어쩌면 십 년, 오 년 만에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겠죠. 이렇게 최하급이 하급으로, 하급이 중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하는 것도 엄청난 위협인데, 이런 놈들이 번식해 숫자가 늘어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저도 전부터 그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뾰족한 타결책이 없습니다. 능력자가 늘어나는 숫자보다 레드몬이 늘어나는 숫자가 수백 수천 배나 빠릅니다. 숫자까지 생각하면 수만 배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평균 십 년이란 시간을 투자해야 최하급 레드몬 한 마리를 겨우 잡는 인간과 달리 레드몬은 빠르면 한 달, 늦어도 일이 년 안에 하급 피지컬리스트에 육박하는 전투력을 갖춥니다. 이 상태로 가면 인류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라 봐야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보진 마십시오. 회장님이 엘리트 레드몬이 퍼져나가지 못하게 잡아주는 동안 후발주자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효과적인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엘리트 레드몬의 숫자가 워낙 많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숨어 있는 놈도 많아 박사님 생각처럼 잘 잡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면 상아님의 디텍팅 능력을 무기로 개발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레드몬 탐지용 레이더를 말씀하시는군요?”
“단순하게 레이더만 개발할 게 아니라 그와 연동된 무기를 개발하면 더욱 효과가 뛰어날 겁니다.”
“레이더와 무기도 만들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한국국방연구소에 레이더 개발 연구팀에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삼 년 전까지 록히드마틴 레이던 연구팀에 있던 친구로 레드몬 탐지용 레이더 개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친구를 불러들여 상아님의 디텍팅 능력을 레이더로 개발하고, 이를 무기에 접목하면 엘리트 레드몬은 어쩔 수 없어도 최하급과 하급까진 좀 더 수월하게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다국적 기업이 엠코사도 개발하지 못한 레이더를 기술력이 한참 떨어지는 우리가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도 해보지 않고 실패를 걱정할 필요는 없죠. 이게 원래 회장님 스타일 아닙니까?”
“하하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친구분 영입하면 연락 주십시오.”
“늦어도 이달 안에 시작할 테니 상아님 예쁘다고 옆에 끼고 계시지만 말고 자주 보내주십시오. 그래야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
내가 마누라들을 끔찍이 아껴 밖으로 잘 내둘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박사의 귀에도 들어갔는지 은근히 염장을 질러댔다.
「내가 내 마누라 끼고 있는 게 잘못이야? 왜 남에 마누라를 여기저기서 빌려달라고 지랄이야. 내 마누라가 물건이야?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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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