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6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
176.
“아침부터 워싱턴, 모스크바, 베를린, 앙카라, 파리, 런던, 브라질리아 등 마흔 곳도 넘는 곳에서 전화가 왔어요.”
“무슨 일로?”
“어제 삵 잡은 거 축하한다는 메시지에요. 내용은 앞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을 이어가자는 아부성 발언이 대부분이었고요.”
“누가 전화했는데?”
“대부분 대통령과 수상이 전화했어요.”
“정말이야?”
“그럼요. 다들 초대한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바쁘며 자신들이 찾아온다는 말까지 남겼는걸요.”
“얼마 전까지 사람 취급도 못 받았는데, 격세지감이 따로 없네.”
“어제 하루 우리 소식을 접한 사람이 적어도 10억 명은 넘을 거예요. 그 사람들 대부분이 지홍씨를 자국으로 영입하든 레드몬 사냥 계약 따내든 둘 중의 하나는 꼭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지홍씨를 괄시한다는 건 정권을 놓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지요. 그러니 최대한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요.”
고금을 막론하고 아첨과 아부를 싫어할 사람은 없는지 한숙의 말에 저절로 입이 헤 벌어졌다.
“깨우지 그랬어?”
“피곤해서 잔다고 했더니, 모두 괜찮다고 했어요.”
헬기에서 너무 무리했는지 실로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작고 예쁜 엉덩이가 일렬로 늘어선 모습에 미친놈처럼 발광하다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져 잠이 들고 말았다.
아내들의 예쁜 엉덩이를 수도 없이 봤지만, 일렬로 정렬시켜놓고 보자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분출하며 이성을 잃고 말았다.
“배려심이 남다르네.”
“알아서 기는 거죠.”
어차피 내가 받아봐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결국엔 한숙이 나 대신 통화할 수밖에 없어 굳이 내가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고맙다. 감사하다. 정도의 인사말은 직접 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청와대에서도 전화 왔어요.”
“거긴 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만나고 싶대요.”
“대통령이 직접 전화했어?”
“아니요. 이승구 대통령 비서실장이요.”
“미국과 러시아도 대통령이 직접 전화하는 마당에 우리나라 대통령은 손가락이 없어? 왜 직접 못해?”
“권위주의의 상징이잖아. 기대하지 마세요.”
“자기 밥그릇도 못 챙기면서 무슨 권위는... 웃기고 있네.”
“어떻게 할까요?”
“홍은하 소장한테 지금 만나는 게 좋은지 아니면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을지 물어봐. 우리보다 홍 소장이 더 잘 알 테니까.”
“알았어요.”
그동안 소 닭 보듯 하던 대통령이 우리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엄청난 변화였지만, 그렇다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구체적으로 논의할 내용을 밝힌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원했던 사과 방송도 아직 없었다.
아무 내용도 없이 청와대로 오라는 건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청와대로 불러 친한 척 사진 몇 방 찍고 국수 쪼가리나 먹인 다음 관계가 개선했다고 방송에 떠들게 분명했다.
위정자들이 하는 행동 중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하나 열까지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족속들로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조차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병두는 어떻게 할까요?”
“어제 아침에 헛소리 지껄이던 조일 일보 그 놈?”
“네.”
“아직 말 나온 곳 없지?”
“네,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아직 조일 일보도 조용해요.”
“배후부터 침입 목적까지 완벽하게 조사한 다음 미칠 때까지 같은 질문을 계속하라고 해. 하루에 4~5시간만 재우고 나머지 시간은 계속 같은 걸 물어보는 거야. 돌아버릴 때까지.”
“당하는 사람은 엄청 고역이겠네요.”
“아직 안 끝났어. 최대한 불편한 방에 가둬놓고, 밥도 보리밥에 멀건 된장국과 단무지만 하나 줘. 겨우 허기만 면하게. 이 기회에 놈이 개과천선이 되는지 아니면 죽는지 한 번 보자.”
“호호호~ 알았어요.”
“아참! 어제 산에서 쓰러진 놈들은 어떻게 됐어?”
“안타깝게 모두 살아서 하의리로 내려왔어요.”
“억세게 운 좋은 놈들이네.”
“소연의 혼란 스킬에 당한 두 놈이 나머지 여섯 놈을 보호하는 바람에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심하게 당한 네 놈은 상태가 나빠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살기투사에 약하게 당한 놈들은 심한 감기몸살을 앓는 수준으로 길어야 한 달이면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한 살기에 노출된 피지컬리스트 두 놈은 공포에 질려 바닥을 박박 기었고, 조일 일보 박재순과 대동 일보 이병모는 침을 질질 흘리며 정신 줄을 반쯤 놓은 채 오줌을 질질 쌓다.
더구나 업고 달리던 놈들이 암석 지대를 구르며, 팔다리와 늑골이 부러지고 얼굴이 처참하게 찢겨 살아난다고 해도 인간구실을 하긴 어려울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곳은 없어?”
“의심하는 곳은 많겠죠. 하지만 증거도 없고 함부로 입을 놀리기도 힘든 상황이라 눈치만 보고 있어요.”
“조일과 대동 일보는 조만간 떠들겠지?”
“그렇죠. 가만있지는 않을 거예요. 언제나 자기 잘못은 없는 신문이니까요.”
“국내 주식은 얼마나 샀어?”
“주식에 10조 원 투자했고, 건물에 5조 원 투자했어요. 전자, 통신,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등 핵심 산업을 위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어요.”
1993년 대한민국 주식 시가 총액은 112조 6,650억 원으로 한숙이 10조 원을 투자해 무려 8.9%를 소유한 상태였다.
이외에도 강남과 명동, 종로, 압구정 등 노른자위에 위치한 고층 건물을 계속 사 모으며 대한민국 경제를 틀어쥐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조일 일보와 대동 일보 주식도 샀어?”
“80% 이상을 가족이 가지고 있는 폐쇄구조라 시장에 나온 주식이 거의 없어 살 수가 없었어요.”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는?”
“그쪽은 30% 이상 수집했어요. 조만간 사주와 만나 인수협상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인수 확정되면 먼저 노조에 경영 이외엔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혀. 괜한 오해사지 않게. 그리고 협조를 얻어 쓰레기 기자 모두 잘라버려. 나머지 인원은 모두 고용 승계해 임금도 수준에 맞게 올리고, 사옥도 더 나은 곳으로 이전해. 건물 보니까 너무 오래됐더라.”
“알았어요.”
한숙이 홍은하 소장을 만나러 별관으로 가자 나도 아점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아영과 상아가 쪼르르 달려와 양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둘은 1975년생 동갑내기로 처지도 비슷하고 성격도 잘 맞아 내가 없으면 자매처럼 항상 붙어 다니며 재잘거렸다.
“오빠, 이제 좀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사냥 다음엔 무리하지 마세요. 평소에는 얼마든지 괜찮지만,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한 다음에 항상 몸이 안 좋았잖아요.”
“알았어. 다음부터 조심할게.”
걱정하는 아영의 볼에 입을 맞춰주며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었다. 걱정이 컸는지 커다란 눈에 근심이 가득했다.
“정화수 용기 개선은 어떻게 됐어?”
“30일간 보관할 수 있는 용기를 개발했어요.”
“30일이나?”
“네, 연구원들 말론 석영을 이용하면 최대 30일까진 보관할 수 있대요.”
“둘 다 오후에 약속 없지?”
“네.”
“연구실에 전화해. 1시간 내로 간다고.”
“네!”
서둘러 아점을 때우고 상아와 아영 그리고 풍아와 풍영을 앞세워 미래 연구소로 이동했다.
집에서 연구소까진 대략 2km 정도로 걸어가면 20~30분이면 도착할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소화도 시킬 겸, 따뜻한 날씨도 즐길 겸, 상아와 아영을 옆에 끼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천천히 걸어갔다.
어디를 가든 선글라스는 받듯이 끼고 다녔다. 열상감시장비로도 투과가 안 되는 특수용 선글라스로 노출을 방지하는 것이 선글라스를 끼는 첫 번째 목적이었다.
그 다음은 사람들에게 못난 얼굴 보여 불쾌감을 방지하는 것이었고, 마지막은 내 얼굴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선글라스로 쓴다고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본다고 할 순 없었다. 그래도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면 웬만한 눈썰미론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혼자 다녀야 그렇다는 뜻이고 이렇게 양옆에서 절세미녀를 끼고 다니면 복면을 쓰고 다녀도 알아볼 수 있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별말씀을요. 회장님 덕분에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어 행복해 미칠 지경입니다.”
“일이 너무 많아 고달프다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눈치 채셨습니까?”
“기본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신소재 연구소 소장을 맡은 김일섭 연구원은 미래 레드몬 원년 구성원으로 나와 농담을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실력도 뛰어나고 재치와 유머도 겸비한 사람으로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가끔 마주치면 이렇게 농담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행복합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자기가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연구소는 이곳 밖에 없을 겁니다. 모두 회장님 덕분입니다.”
“소장님이 좋은 결과를 내야 제가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원하는 것이니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김일섭 소장의 소개로 만난 정화수 담당 연구원은 총 다섯 명으로 세 명은 여자 연구원이었고, 두 명은 남자 연구원이었다.
“반갑습니다. 박지홍입니다.”
“선임 연구원 정지윤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니에요. 보잘것없는 연구실에 찾아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드려요. 회장님! 제가 회장님 열렬한 팬인데, 사인 한 장만 부탁해도 될까요?”
“사인요?”
카이스트 출신인 정지윤 박사는 올해 30살의 미혼 여성으로 정화수와 관련된 연구를 책임진 선임 연구원이었다.
차영철 박사가 영입한 재원으로 혼혈이라 생각할 만큼 이국적인 외모로 연구소 내에 인기가 상당했다.
정지윤 박사가 사인을 요구하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 연구원도 종이와 매직을 양손에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평생 사인이라곤 해본 적이 없어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연구원 두 놈이 상아와 아영에게 슬금슬금 접근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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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