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4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
174.
“수송용 헬기 10분 내로 도착할 거야.”
“불독사 넘겨주고 1시간 쉬었다가 능선 타고 넘어가서 레드보어 잡자.”
“엘리트 레드몬 삵 잡으러 와서 뱀 잡고, 멧돼지 잡아 보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겠다.”
“위험한 레드몬을 미리 잡아주는데, 고마워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방송사와 신문에서 레드바이퍼와 레드보어을 잡은 걸 두고 우리가 삵을 두려워 엉뚱한 놈들만 잡는다고 할 거야.”
“늦어도 내일 아침 대면 삵 잡은 거 다 알게 될 텐데, 뭐 어때.”
“그거야 그렇지. 문제는 자신들은 그런 방송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방송을 내보낸다는 거지.”
“흐흐흐~ 그러고 보면 유언비어와 허위 사실 유포는 정치인과 언론사가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도 거짓말은 해본 적도 없고, 언제나 양심적으로 행동하며 맡은바 사명을 다 한다고 하겠지?”
“가만있으면 중간이나 간다고 입이나 닫고 있으면 밉지나 않지. 소설이라 소설은 다 써놓고 그런 적 없다는 듯 오리발을 내미는 거 보면 정말 얄미워.”
“이참에 방송사나 만들어볼까? 정권의 나팔수 노릇이나 하는 그런 방송사 말고,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그런 방송사. 어때?”
“생각은 좋은데, 허가가 나겠어?”
“청와대부터 여당까지 줄줄이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을 이용하면 되지.”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거 알잖아.”
“알지. 그래도 어쩌겠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집안 단속부터 해야지. 이 꼴로는 겁이나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다.”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중국 고전 사서(四書)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자신을 먼저 수양하고, 이후 집안을 잘 다스리며, 이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이후에 천하를 평정한다는 말이었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과 그 주위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천하를 평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거짓과 위선, 식민주의 사관에 빠진 이 나라 정치인을 그냥 두고는 뒤통수가 불안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말은 하고 싶지도 않아. 그럴 생각도 없고. 내가 바라는 건 제발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거야. 그거 하나면 난 만족해.”
“알았어. 돌아가는 즉시 데이비드 액설로드 특사를 만나볼게.”
“그런 얘길 왜 액설로드 특사하고 해?”
“그럼 누구랑 해?”
“클린턴 대통령하고 직접 해야지. 그래야 아랫놈들이 알아서 설설 기지. 언제까지 힘도 없는 특사 나부랭이를 상대할 거야?”
“하하하~ 알았어. 앞으로 그렇게 할게.”
시원한 계곡에 자리 잡고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과 산에서 캔 약초, 버섯, 나물 등으로 새참을 먹었다.
신선한 산나물에 밥과 고추장을 듬뿍 얹어 입이 터질 듯 쑤셔 넣고 씹자 콧속까지 향긋한 나물향이 가득 돌았다.
산과 숲은 위험한 대신 나물과 약초 등 풍성한 먹거리를 가득 품고 있었다. 값어치로 따지면 산삼, 영지, 하수오, 복령, 석청 등은 금은보화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좋은 약초와 나물이 숲에 가득하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모르진 않을 거야. 다만 숲에 들어갈 수 없어 관심을 안 가지는 거겠지.”
“신선 공대에서 일하는 동안 나물이나 약초를 캐는 능력자를 본 적이 없어요. 숲에 들어가는 능력자들도 관심이 없는데, 일반인들은 더 모를 것 같아요.”
“신선 공대 능력자들이 그런다고 다른 능력자들 다 그런다는 보장은 없잖아.”
“제 생각엔 알고 있다고 해도 겁이 나 약초를 캘 엄두를 못 내거나, 약초를 구분하지 못해 손도 못 되는 것 같아요. 지홍씨도 처음엔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레드문 이후 대도시 안에 있는 숲과 공원이 아니면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어 일반인이 약초를 구별하긴 쉽지 않을 거예요. 능력자들은 큰돈이 되는 레드몬이 있어 약초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요.”
서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약초와 나물은 도감만 봐선 쉽게 구별할 수 없었다. 평생 도심에만 산 사람에게 싸리나무를 보여주며 꺾어오라고 하면 구별을 못해 아무 나무나 되는대로 꺾어왔다.
약초를 구별하는 건 오랜 경험이 필요했다. 모양이 비슷한 약초와 나물이 많았고, 개중엔 독초도 많았다.
나 역시 식물도감과 동의보감을 달달 외웠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숲에선 구분을 못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건 모조리 뽑아와 먹어도 보면서 지금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다.
워낙 튼튼한 몸이라 독초도 무난히 소화해서 그렇지 일반인에겐 절대 권할 수 없는 방법으로 레드문 이후 독초도 독성이 강해져 하나만 잘못 먹어도 목숨을 잃었다.
“골치 아프게 레드몬 잡으러 다니지 말고 이참에 때려치우고 심마니로 나가 볼까?”
“저희 먹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팔 게 있을까요?”
“하하하~ 정말 그러네.”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그래야 지홍씨 혼자 고생하지 않죠.”
“힘들게 배운 거라 그냥은 안 되는데... 나 비싼 남자야.”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지홍씨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정말이지? 후회하기 없기야.”
“그럼요. 제 마음 알잖아요.”
“흐흐흐~ 그럼 여기서 화끈하게 한 번...”
“잘들 논다. 이부자리라도 깔아줄까?”
“오~ 그럼 우린 좋지. 푹신푹신 한데서 제대로 한 번...”
“하여간 배만 부르면 고추를 세우고 지랄이야. 확 잘라 버릴까?”
“헉...”
은비의 분탕질에 서인의 허리를 감아가던 팔을 풀어야 했다. 야들야들한 감촉이 손에 남아 있어 아쉬움이 컸지만, 은비가 눈을 부라리고 있어 포기해야만 했다.
“설거지 안 하고 뭐 하고 있어?”
“설거지?”
“밖에 나오면 남자가 하는 거라며. 오빠가 말했잖아.”
“하아~ 알았어.”
은비의 잔소리에 밥풀이 잔뜩 묻은 그릇들을 챙겨 들고 물가로 가자 아영과 상아가 쪼르르 달려와 설거지를 도와줬다.
덕분에 하라는 설거지는 젖혀두고 아영과 상아의 작은 가슴과 예쁜 엉덩이를 연신 주물러댔다.
“여기서 날 샐 거야? 집이라도 지어줘?”
“알았어. 가자.”
덩치가 큰 암놈 한 마리와 그보다 작은 암놈 두 마리, 세끼 일곱 마리가 레드보어 가족이었다. 새끼를 돌보지 않는 수놈은 짝짓기 때만 잠시 암컷을 찾을 뿐 단독으로 생활했다.
“큰놈은 내가 잡고 나머지는 알아서들 잡아.”
“일곱 마리를 우리 보러 잡으라고?”
“다섯 마리는 새끼야. 그것도 말이 좋아 하급 레드몬이지 간신히 레드몬에 이름 올린 녀석들이라 상아와 아영이가 잡아도 돼.”
은비가 포스를 모아 반경 30m짜리 뇌우를 새끼들에게 발사하자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전투가 끝났다.
어미와 다 자란 언니들이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뇌우에 뛰어들며 전투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에이~ 잡고도 찝찝하네.”
“빨리 잊어. 계속 생각해봐야 마음만 안 좋아.”
동물이라면 새끼를 살려주는 게 맞지만, 포식자인 레드몬은 새끼도 무조건 잡아야 했다.
특히 레드보어는 호랑이와 곰, 표범, 늑대가 사라진 한반도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번식력도 엄청났고, 피해도 가장 많은 레드몬이라 절대 살려둘 수 없었다.
헬기를 다시 불러 레드보어 사체를 실어 보낸 후 날이 어두워 때까지 양지바른 곳을 골라 명상에 잠겼다.
명상도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하는 것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하는 것보다 효과도 좋았다.
포스는 대자연의 기운이자 생명의 기운으로 자연과 생명의 기운이 풍부한 숲에서 포스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훈련도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삵도 불독사처럼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골짜기에 둥지를 틀었다면, 힘들게 시선을 따돌리고 밤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삵이 자리 잡은 곳은 비교적 평평한 산비탈로 나무가 거의 없고 바위가 많았다. 이곳은 헬기가 아니더라도 정찰위성에서 촬영해도 100% 노출됐다.
놈을 울창한 숲으로 유인하는 방안도 있었지만, 엘리트 레드몬은 워낙 영리해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놈이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상급 능력자라도 네 발 달린 엘리트 레드몬이 죽자고 도망가면 결국엔 놓칠 수밖에 없었다.
선글라스와 가방을 상아에게 넘기고 글라디우스를 뽑아들고 천천히 놈을 향해 접근했다.
기감을 집중하자 주변 지형지물이 정밀지도처럼 머릿속에 그려지며 동굴 안을 서성거리는 삵의 모습이 보였다.
꼬리는 끝에 뾰족한 침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녀석은 두동장 5.5m, 꼬리 길이 2.5m, 무게 657kg으로 성년이 된 지 적어도 10년은 된 것 같았다.
식육목 고양잇과에 속하는 살쾡이는 대한민국에선 ‘삵’을 표준어로 사용했다. 덩치는 작아도 호랑이만큼 사납고 나무를 타기와 헤엄치기도 능한 동물로 주로 밤에 활동했다.
“냉기탄으로 공격하면 은비는 공격과 동시에 입구에 뇌우를 깔아. 튀어 나오면 벼락과 데스 홀드롤 공격하고.”
“알았어.”
“서인이는 소리 빠져나가지 않게 외곽에 넓게 침묵 걸고.”
“네!”
“상아는 다가오는 레드몬 없는 잘 확인하고, 아영이는 언니들 지치지 않게 정화 스킬로 커버해죠.”
“네, 오빠!”
“은영씨는 후방을 맞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너희들은 나서지 말고 은영씨 도와줘. 알았지?”
“왈왈~ 왈왈~”
“가자!”
B급 엘리트 레드몬 레드레오파드캣 삵
전투력 : 7265
지능 : 136
스킬 : 알 수 없음
“콰앙~”
살기투사와 함께 동굴 속으로 날아간 냉기탄이 벽을 때리자 좁은 동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얼음창고로 변했다.
날벼락을 맞은 삵이 동굴 밖으로 후다닥 튀어나오다 은비가 깔아놓은 뇌우에 걸려들었다.
돌풍처럼 휘몰아치며 멘탈포스 속에 작은 번개가 비처럼 쏟아지며 삵을 때리자 녀석의 몸이 하얗게 빛나며 강한 전류에 휩싸였다.
하지만 전류가 피부를 뚫지 못해 마비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혈기탄이 삵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앙~”
“펑!”
앙칼진 소리로 혈기탄을 퉁겨낸 삵이 추진력을 잃고 뇌우 속에 떨어지자 소연과 은비가 데스 홀드와 벼락을 연속으로 날려 보냈다.
둘 다 빠르고 정확한 스킬로 삵이 공중에서 멈칫하며 바닥에 떨어진 사이 각각 세 방씩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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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