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3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
173.
하의리를 빠져나와 상의리로 올라가는 소로에 접어들자 조일 일보와 대동 일보 기자 2명과 하급 피지컬리스트 6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일 일보 박재순 기자입니다. 동행 취재해도 되겠습니까?”
“대동 일보 이병모 기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취재에 응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취재를 거부하는 것은 알권리가 있는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공인으로써 국가와 국민을 위해 취재에 응하십시오.”
“위험해서 안 됩니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조일 일보 박재순과 대동 일보 이병모가 막무가내로 동행 취재를 요구했다. 그것도 국민을 팔아 취재를 강요하는 몰상식한 태도를 보였다.
기자가 레드몬 사냥팀과 동행해 사냥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흔하진 않지만, 전혀 없는 일도 아니라서 취재를 요청하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사전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로 조일과 대동 일보 기자처럼 막무가내로 취재를 요청하는 일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더구나 우리 같은 정상급 사냥팀은 취재에 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이유는 사냥 모습이 대중에 공개될 경우 자신의 고유스킬과 실력, 사냥 노하우 등 매우 중요한 정보가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공대원도 아닌 기자에게 그것도 영상 기록물을 남기게 되면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나 최악의 경우 원수나, 적성국가의 표적이 될 경우 약점이 노출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떠들기 좋아하는 미국과 유럽 능력자들도 스킬 종류는 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특성과 실력까지 정확히 공개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건 매우 기본적인 내용으로 기자인 박재순과 이병모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동행 취재를 요구하는 건 우리를 엿 먹이겠다는 의도밖에 없었다.
분명 위험해서 안 된다고 거절했음에도 박재순과 이병모는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하는 행동을 보면 다리를 몽땅 부러뜨려 다시는 못 걷게 하고 싶었지만, 공중에서 쳐다보는 눈이 너무 많아 그럴 수도 없었다.
“모두 풍산개에 올라타. 은영씨는 조용히 먼저 올라가세요. 5분 뒤에 따라가겠습니다.”
“네!”
아내들이 풍산개에 올라타자 박재순과 이병모가 피지컬리스의 등에 매달렸다. 놈들의 행동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삵이 있는 곳까지 따라와 우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뜻이었다.
아내들이 레드독을 타고 움직여도 하급 피지컬리스트 6명이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놈들의 생각과 달리 중급 레드몬인 풍산개는 아내들을 등에 업고도 험난한 계곡을 평지처럼 달려 10분 만에 거리를 한참 벌려놨다.
“레드몬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네.”
“우리가 버려두고 그냥 가진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조일과 대동에서 보낸 헬기를 믿고.”
“짜증나는 놈들이네.”
“원래 못된 놈들이 잔머리가 잘 돌아가잖아.”
“흔적을 따라 오면 어쩌지? 그럼 사냥 중에 들이닥칠 수도 있잖아.”
“으슥한 곳에서 한 놈씩 떨궈내야겠다.”
먼저 박재순과 이병모를 업지 않은 놈들부터 하나씩 처리했다. 두 놈은 소연의 컨퓨전을 걸어 발을 헛디디게 해 계곡 아래로 떨어뜨렸고, 두 놈은 살기투사의 고통에 개처럼 바닥을 박박 기게 만들었다.
4명이 차례로 실족과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자 박재순과 이병모, 놈들을 업은 능력자 2명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따라가는 것을 멈추려했다.
하지만 너무 느린 판단으로 뾰족한 암석지대에 들어온 순간 심장을 망치로 내려치는 충격에 피를 토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다 죽은 거야?”
“아니! 한 명도 안 죽었어.”
“왜 살려뒀어?”
“살아남을지는 레드몬에게 잡혀 먹을 지는 두고 봐야 알지. ”
“오~ 우리 오빠 은근히 잔인한데. 키키키~”
“나 원래 소심하고 음흉한 사람이야. 알면서 왜 그래. 흐흐흐~”
국민이 어쩌고, 공인이 어쩌고 그런 소리만 안했어도 이렇듯 잔인하게 손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놈들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만 골라하며 속을 박박 긁어댔다. 그리고 몇 시간 전 나진시에서 우리를 열 받게 한 이병두와 한패거리란 사실이 활활 타오르는 가슴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소연의 컨퓨전에 당한 놈들은 계곡 아래로 떨어졌지만, 깊이가 20m 정도라 죽을 염려도 없었고, 20~30분 후 혼란 스킬이 끝나면 살아날 확률이 높았다.
두 번째로 당한 놈들도 살기 양이 적어 1~2시간이면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재수 없게 그사이 레드몬만 나타나지 않으면 놈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네 놈은 하급 레드몬에게 사용하는 살기를 투사한 것이라 살아날 확률이 거의 없었다.
특히, 박재순과 이병모는 이미 사경을 헤매는 수준으로 천운으로 살아난다 해도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긴 어려웠다.
「누가 가만있는 사람 건드리래.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야. 그동안 나쁜 짓 많이 했으니 죽으면 지옥에나 떨어져라. 쓰레기들!」
“상아야! 삵까지 얼마나 남았어?”
“지금 상의리 지나서 1km 가량 동쪽으로 들어왔어요. 산 하나 넘고 계곡 하나 지나면 보금자리가 나올 거예요.”
“주변에 위험한 레드몬들은 없어?”
“여기서 북쪽으로 3km 지점에 레드바이퍼인 불독사가 한 마리 있어요. 그 외에 레드디어, 레드라쿤독, 레드마틴, 레드무스텔라 등도 여럿 있고요.”
“레드보어는 없어?”
“북동쪽으로 8km 지점에 중급 레드보어 세 마리와 하급으로 보이는 새끼 다섯 마리가 있어요.”
애초 계획은 삵을 최대한 빨리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 작전을 살짝 변경하기로 했다.
이대로 삵을 잡으러 가면 모습이 노출될 수 있어 불독사와 레드보어 잡은 다음 삵은 날이 어두워지면 잡기로 했다.
우리가 삵의 위치를 아는 건 청송으로 오기 전 놈이 있는 곳을 미리 탐색한 것도 있지만, 협회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곧 저 하늘에 떠 우리를 감시하는 놈들도 대략적인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을 따라 2km 정도 올라가자 작은 폭포가 나왔다. 시원한 물에 잠시 손발을 담그자 몸에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저 멀리 하늘 위에 떠 요란한 소리를 내는 헬기마저 없었다면, 기분까지 상쾌할 것 같았다.
“소음 때문에 삵이 달아나면 골치 아파지는데.”
“사냥에 방해된다고 철수해 달라고 할까?”
“십여 대가 넘는데 그걸 어떻게 다 빼려고?”
“그래도 말은 해봐야지.”
“내버려둬. 절반 이상은 말해봐야 듣지도 않는 놈들이고, 저게 저놈들 할 일이잖아. 우린 불독사 잡고, 레드보어 잡으며 시간을 끌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그때 삵을 잡으면 돼. 밤이되면 우리 방어구 때문에 찾을 수도 없어.”
레드몬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는 레드몬이 살아 있을 때와 비교하면 방어력, 전파 흡수율, 온도조절 기능, 항온·항습 기능 등 모든 기능이 크게 떨어졌다.
그래도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소재보다 성능이 탁월해 능력자용 방어구, 방탄복, 항공기와 전투기, 헬기 기체 보강용 소재, 부자들의 멋진 외투 등 다양한 곳에 이용됐다.
최하급 레드몬의 가죽으로 만든 방탄복은 권총 탄알을 막아 낼 수 있었고, 하급은 저격총, 중급은 대전차 로켓포, 엘리트 레드몬은 최대 날개안정분리철갑탄까지 막아낼 수 있었다.
우리가 착용한 검은색 방어구는 A급 엘리트 레드몬 레드타이거의 가죽을 특수 가공해 만든 현존 최고의 방어구로 관통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열화우라늄탄도 막아낼 수 있었다.
또한, 장갑과 모자, 신발, 마스크, 벨트, 가방이 한 세트로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면 위치가 노출되지 않는 한 항공기와 위성으로도 쉽게 찾아낼 수 없었다.
소연의 예쁜 엉덩이를 통통 두드려주고 폭포를 가로질러 불독사가 있는 골짜기로 들어갔다.
나뭇잎과 넝쿨이 울창한 골짜기는 낮 1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어둡고 눅눅했다.
나무들 사이로 풀이 가슴까지 자라나 시야를 방해했고, 바닥마저 매우 습해 벌레와 뱀까지 우글거려 정글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불독사라 불리는 쇠살무사는 머리가 거의 삼각형으로 눈과 콧구멍 사이에 피트기관이 있어 온도로 생물을 감지했다.
한반도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하는 독사로 독성이 강한 출혈독을 품고 있어 물리면 목숨이 위험했다.
하지만 한반도에 있는 뱀은 블랙맘바, 바다뱀, 타이판 독사, 피어스스네이크, 올리블루, 킹코브라, 방울뱀과 비교하면 독성도 매우 낮고, 비단뱀과 아나콘다와는 크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독이라 위험도는 극히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레드몬으로 변이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불독사처럼 길이 7m에 무게가 120kg이나 나가는 괴물로 변했고, 독성도 매우 강해 하급 능력자도 물리면 생명을 보장하기 힘들었다.
중급 레드몬 레드바이퍼 불독사
전투력 : 1956
지능 : 71
스킬 : 알 수 없음
소연이 컨퓨전 스킬을 사용하자 불독사가 혼란에 빠져 자리를 맴돌자 은비가 벼락을 날려 불독사의 머리를 강타했다.
소연과 은비는 중급 멘탈리스트로 성장하며 스킬의 발사 속도와 위력이 크게 향상돼 중급 레드몬은 손쉽게 제압했다.
은비의 벼락이 세 번 연속 떨어지자 엘리트 레드몬을 코앞에 둔 불독사도 견디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으하하하~ 어때? 괜찮았어?”
“아주 잘했어. 멋져!”
“나도 이제 쓸만하지?”
“그럼. 넌 처음부터 죽여줬어.”
“우씌~ 몸매 말고 실력 말이야.”
“실력 좋다고 한 말인데 왜 그래?”
“뉘앙스가 이상하잖아. 눈도 왜 위아래를 훑으면서.”
“둘 다 좋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하나만 좋아야 하는 거야?”
“뭐든지 그걸로 끼워 맞춰. 어우 웬수!”
“흐흐흐~”
실력도 좋고, 몸매도 좋고, 기술도 좋고, 테크닉도 좋고, 성격은... 어쨌든 은비는 기감력을 터득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울 뿐 하루하루 급성장 중이었다.
상아와 아영의 눈부신 성장에 자극받은 은비는 힘든 훈련도 군소리 없이 열심히 따라왔다.
여전히 아침잠이 많아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언니로써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이런 모습은 서인도 마찬가지로 쓰러질듯 힘겨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좀비처럼 다시 살아나 땀을 뻘뻘 흘리면 훈련을 소화했다.
처음 상아와 아영의 천재성에 소연과 은비, 서인이 주눅 들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고민이 무색하게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시너지 효과가 발생해 모두가 빠른 성장이 보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