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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70화 (170/505)

00170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

170.

“청진은 정한숙 사장님의 오빠인 KM 그룹에서 관할하는 도시라 어쩔 수 없이 도와준 것이고, 미래 아이 사랑재단은 아직 시작도 안한 일이라 거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병두 기자님! 기자님은 처가에 A급 엘리트 레드몬이 나타나면 어쩌시겠습니까? 박지홍 회장님처럼 아무 사심이 없이 곧장 달려가 레드몬을 싸울 수 있습니까?”

“그건 박지홍 회장이 상급 능력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과 비교한다는 건 억지입니다.”

“상급 능력자는 목숨이 두 개인가요? A급 엘리트 레드몬은 상급 능력자가 나타나면 죽여 달라고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나요? 상급 능력자는 무적이라 엘리트 레드몬쯤은 아이 손목 비틀듯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정말 그렇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건...”

“상급 능력자도 피와 살로 된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 목숨을 걸고 레드몬과 싸우는 겁니다. 상급 능력자라고 두려움이 없는 줄 아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건 박지홍 회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오빠인 KM 그룹 정근욱 회장이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요구했습니다. 독 안개로 인해 경비대가 몰살당하며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레드몬이니 그만 돌아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지홍씨는 듣지 않았습니다. 괜찮다고, 갔다 와서 소주나 한잔 하자며 전화를 끊고 까치살무사에게 달려갔습니다. 당시 청진엔 10만 명에 달하는 주민이 항구에 발이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홍씨는 KM을 구한 게 아니라 목숨을 걸고 10만 명을 구한 겁니다.”

이병두로 인해 극도로 흥분한 한숙이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무도 알지 못하던 숨겨진 이야기가 한숙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자 기자들이 손이 바빠졌다.

같은 사건도 재미있는 스토리가 더해지면 빛을 발하듯 청진에 나타난 까치살무사를 잡았다는 단순한 이야기보단 정근욱과 정한숙 그리고 청진 주민들의 이야기가 더해지자 한편의 휴머니즘 드라마로 각색됐다.

“박지홍 회장님은 신의와 인간의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신의가 무엇입니까? 믿음과 의리입니다. 믿음, 의리, 생명 이것만 생각하고 사심 없이 청진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매년 수천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전 세계에 약속까지 했습니다. 또한, 오늘은 매국노라는 욕을 먹고 있으면서도 청송에 있는 삵을 잡으러 가는 겁니다.”

“.........”

“이병두 기자님! 돼지 눈으로 회장님을 판단하지 마세요. 부처의 눈은 없다고 해도 최소한 기자의 사명은 갖추고 일하기 바랍니다.”

“지금 하신 말은 분명한 인격모독입니다. 당신의 발언은 평생 기자의 본분을 다한 나를 모욕하는 말이자 이 나라 국민을 욕보인 짓입니다. 정식으로 고소하겠습니다.”

“스스로 돼지라고 생각하시면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뭡니까?”

“제가 알기엔 조일 일보 기자를 초청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병두 기자님도 초청한 적이 없습니다. 이곳은 엄연한 사유지로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그건... 국민에게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들어온 겁니다. 우리 조일 일보 기자들은 악이 판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잘못된 일을 비판하고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악이 판치는 곳? 공신력이 가장 높은 신문사와 방송사가 이곳에 다 모였는데, 악이 판치는 곳이라... 대체 이곳에 무슨 악이 판치고 있습니까? 정확히 말해보세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작은 능력을 휘둘러 국민을 우롱하고 망신주고 있다는 걸 온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유언비어는 뭐고? 작은 능력을 휘두른 건 또 뭔가요?”

“까치살무사가 A급 엘리트 레드몬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상급 능력자라 속여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 능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면 뭐라 말입니까?”

“까치살무사가 A급 엘리트 레드몬인 건 이 자리에 계신 기자들과 각국 투자단 대표들이 이미 확인한 사실입니다. 원하시면 자료를 넘겨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박지홍 회장님이 상급 능력자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현명한 대한민국 국민은 속일 수 없습니다.”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궁지에 몰리면 딴소리를 하거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병두도 한숙이 꼬치꼬치 따져 묻자 대한민국 국민을 물고 늘어지며 헛소리를 늘어놨다.

“후유~ 허가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신분을 도용해 무단 침입한 게 맞습니까?”

“기자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진시에 온 것도 그런 이유라 문젯거리가 될 것이 없습니다.”

기자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이병두는 자기 행동이 옳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병두 기자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더는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사냥에 방해되는 행동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상을 내려오는 한숙의 표정은 싸늘하다 못해 서리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찬기가 어찌나 강한지 한숙이 사라질 때까지 입을 열어 질문하는 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한숙이 기자회견장을 떠나자 모든 시선이 조일 일보 이병두에게 집중됐다. 그들의 눈엔 혐오와 비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철면피 이병두는 자신의 행동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운지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얼굴 표정만 봐도 이번 기자회견으로 자신의 주가가 한껏 치솟았다는 만족감을 읽을 수 있었다.

헬기가 이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들이 초동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날아가는 헬기를 가까이에서 찍기 위해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이병두를 에워쌌다.

“조일 일보 이병두 기자 맞습니까?”

“누.누구세요?”

“당신을 나진시 무단침입 및 신분 도용으로 체포합니다.”

“나.나.나는 조.조.조일 일보 기.기.기자입니다.”

“알고 있으니 조용히 따라오십시오. 소란 피워봐야 당신만 피곤해집니다. 연행해!”

“네!”

“외.외.왜 이러십니까?”

미래 안정보장국 1팀장이자 나진시 보안책임자 이정학 팀장의 명령에 안전보장국 요원 4명이 이병두의 손에 수갑을 채워 차에 태웠다.

조금 전까지 입에 거품을 물고 조일 일보 기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떠들던 이병두는 안정보장국 요원들이 수갑을 채우자 벌벌 떨며 당장이라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잘못을 빌었다.

“자.자.잘못했습니다. 사.살려주십시오. 저.저.전 우.우.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겁니다. 저.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겁먹지 않아도 됩니다. 우린 누구처럼 매달아 놓고 때리거나 물고문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신사적으로 대화로 사건을 풀어갑니다.”

“저.저.정말입니까?”

“그럼요. 우린 언제나 신사적으로 하지 양아치처럼 폭력을 사용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우리 소관도 아니라서 나진시 경찰에 넘겨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딱 한 달만 있다가 보내드릴 테니 그동안 우리와 밥도 함께 먹고, 농담도 좀 하면서, 즐겁게 지내면 됩니다. 아셨죠?”

“지.지.지금 보내주는 아.아니었습니까?”

“우리랑 조금 놀다가는 게 그렇게 싫습니까?”

“아.아.아닙니다.”

“겁먹지 마라니까. 우린 사람 괴롭히고 그러지 않아. 누구 신분을 도용했는지? 누가 보냈는지? 무슨 이유로 왔는지? 같이 온 사람은 누군지? 신분을 속이고 잠입한 사람은 또 누가 있는지? 싹 다 불면 순순히 보내줄 수도 있어. 단, 거짓을 말하거나 장난치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흐흐흐흐흐흐~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씩 자른 다음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목숨 걸고 들어왔다는 놈이 농담 몇 마디에 바지에 오줌을 쏴? 카메라 앞에선 투사인 척 개지랄을 떨더니 카메라가 사라지니까 계집애보다 더 겁이 많네. 이러고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헛소리를 지껄였어? 에라 병신아! 나가 죽어라~”

이정학 팀장이 살짝 겁을 주자 이병두는 바지에 오줌을 질질 싸며 눈물까지 질질 짜댔다.

이병두가 한 짓을 생각하면 정말 손발을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나진시도 법과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 첩자가 아닌 이상 누굴 고문하는 일은 없었다.

이병두 사건은 치안을 책임진 경찰이 처리할 일로 외곽 혼잡 경비로 바쁜 경찰을 대신해 이정학 팀장이 경찰서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괘씸죄를 물어 살짝 겁을 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병두는 그 말을 진실로 믿고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싸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

카메라와 사람이 많은 곳에선 그들을 믿고 막말을 내뱉다가도 사람이 몇 명 없는 곳에선 찍소리도 못하는 이병두는 월드 스타로 거듭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안고 나진시에 몰래 잠입했다.

결국, 이병두는 원하는대로 불과 몇 분 만에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악명만큼 돌아올 타격도 엄청나게 커 앞으로 오랜 기간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감방에 외로움과 두려움에 벌벌 떨며 죗값을 치워야했다.

“아주 개판이네.”

“오히려 잘 된 일이야. 저런 식으로 분탕질을 쳐주면 우리에겐 이익이야.”

“난 저런 쓰레기 덕분에 동정심을 얻고 싶진 않아.”

“어머니 이야기 때문에 기분 많이 상했어?”

“.......”

“한숙 언니가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잖아. 이병두 때문에 화가 나서 정부에 따지다가 나온 거야. 너도 알잖아. 한숙 언니가 너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화낼 생각 없으니까 그만해.”

“조금만 이해해줘. 지금 언니도 속이 많이 상해있을 거야.”

“하아~ 알았어.”

집에서 TV로 기자회견을 지켜보다 한숙이 자리를 뜨자 풍산개를 끌고 MI-26 헤일로에 탑승한 채 한숙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번 사냥엔 경호부대와 한숙의 지원팀도 함께 했다. 2시간 앞서 출발한 MI-26 헤일로 3대엔 경호팀 200명과 총괄 지원팀 30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청송에 미리 도착해 헬기이착륙장을 보호하고 사냥에 방해되지 않게 주변을 통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크기는 대략 5m 정도에 꼬리 길이가 2m가 넘는다고 진술했어.”

“스킬은 전혀 몰라?”

“12명 중 9명이 살아남았는데, 겁을 먹고 달아나느라 못 본 건진 대략적인 크기 빼곤 아는 것이 없어.”

“9명이나 살아남았어?”

“응, 진술 내용을 종합해보면 흩어져 도망간 것도 아니고 한 방향으로 몰려 도망갔어. 그런데도 모두 살아남았다는 건 삵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뜻이지.”

“보조사냥꾼은?”

“정찰대로 선두에 섰던 능력자 세 명만 죽고, 보조사냥꾼들도 모두 무사히 마을로 돌아왔어.”

“살려준 거네?”

“그렇지. 수준이 낮은 레드몬 사냥팀이라 죽이려고 했다면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상황으로 봐선 사람과 다투고 싶은 생각이 없는 녀석인 것 같아.”

“사냥팀이 먼저 놈을 건드렸나 보네. 그러니까 잠깐 동안 화가 나서 정찰대만 죽였겠지.”

“내 생각도 그래.”

“그렇다고 살려둘 순 없잖아?”

“그렇지. 안됐지만 어쩔 수가 없지.”

행동을 봐선 사람과 다툼을 피하려는 부류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새끼들도 녀석과 같다는 보장은 없었고, 사람을 죽인 이상 언제 또 사고를 칠지 몰라 살려둘 순 없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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