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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69화 (169/505)

00169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

169.

“CNN의 조지 마이클 기자입니다. 오늘 기자회견이 레드몬 사냥 계약국가 발표에서 갑작스럽게 내용이 변경된 것은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냥 계약은 원칙부터 조건까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언제 계약이 체결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것과는 무관합니다.”

“그럼 언제쯤 계약이 체결될 것 같습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늦어도 올해 안에 체결을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올해 안에 레드몬 사냥 계약을 마무리한다는 한숙의 발표에 기자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이들은 한반도 내에서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하는 것엔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B급 엘리트 레드몬을 잡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A급 엘리트 레드몬을 2마리나 잡은 상태라 B급은 상대적으로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자신의 국가가 계약에 포함되느냐가 가장 큰 관심으로 오늘 이렇게 많은 기자가 모인 이유도 계약에 관련된 내용을 얻기 위해서였다.

“만약 미국과 러시아, 영국 등에서 B급 엘리트 레드몬이 출현해 도움을 요청한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십니까?”

“상당히 곤란한 질문이군요.”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한 겁니다.”

“어떤 상황을 곤란하다고 말씀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십시오.”

“위험도와 조건이겠죠. 또한, 우리 쪽 내부 문제도 있고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가 미래 레드몬의 친구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숙은 친구라는 말에 강한 힘을 실었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뜻하는 친구는 같은 동네 같은 학교를 나온 아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지만, 의리로 똘똘 뭉친 피보다 진한 의형제를 뜻할 수도 있었다.

한숙의 의도는 당연히 후자로 우리와 혈맹이 된 나라에 위험이 닥치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는 뜻이었다.

그건 곧 너희가 우리의 친구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단군 일보 조진우 기자입니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은 보조사냥꾼을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엔 단 한 명의 보조사냥꾼도 없습니다. 공대원 일곱 명과 풍산개 다섯 마리가 전부입니다.”

“다른 레드몬 사냥팀은 보조사냥꾼을 이용해 레드몬을 찾고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은 왜 보조사냥꾼을 운영하지 않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조진우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박지홍 회장님은 1년 가까이 보조사냥꾼으로 일하신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동료들의 죽음을 수차례 목격한 이후 덧없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 미래 레드몬 사냥팀엔 보조사냥꾼을 두지 않았습니다.”

보조사냥꾼은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쟁점이 됐던 이슈로 사체 운반과 각종 잡일에 쓰이기도 하지만, 실제 운영 목적은 레드몬 탐지였다.

이 때문에 매년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폐지를 요구가 잇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위정자들의 담합 속에 세계인권위원회조차 등을 돌리며 인권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다.

개인적으로 보조사냥꾼은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직업으로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드몬을 찾을 방법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목숨을 내놓고 레드몬을 사냥하라고 강요할 수 없어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해결 방안은 디텍터의 수가 충분해지거나 고성능의 레드몬 탐지기가 개발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암담해 적외선을 이용한 열상감시장비와 육안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열상감시장비는 동물과 물체가 온도에 따라 적외선 복사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을 잡아내는 매우 뛰어난 장비였지만, M1 에이브람스 전차에 달린 최신형 장비인 TIS로로도 날씨가 아주 좋아야 1km, 날씨가 흐리면 3분의 1로 감시 거리가 줄어들었고, 부피와 무게로 인해 운용에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래도 미국과 유럽은 열상감시장비와 헬리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는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탓인지 보조사냥꾼의 숫자가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어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인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은 사람의 생명과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작년 6월부터 개발을 시작한 나진시가 수많은 레드몬의 습격에도 단 한의 사망자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입니다. 회장님은 방어벽 공사 기간 중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기술자들과 인부들을 지켜내셨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들었을 땐 거짓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자들과 인부들을 직접 만나 물어보고 사망자와 부상자가 없다는 소리에 KM 그룹과 인력업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 문의한 결과 사실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미래 레드몬은 없는 사실을 말하거나 사건을 은폐·조작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자료를 원하시는 분은 미래 레드몬에 문의하시면 자료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한숙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말한 내용은 뉴욕타임스와 로이터 통신에 이미 발표한 사실로 미래 레드몬과 나의 이미지를 끌어 올리는 아주 좋은 기삿거리였다.

“사체는 누가 운반하는 겁니까?”

“사체를 모으는 일부터 차량이나 배에 싣는 일까지 회장님이 직접 하십니다.”

“그런 일을 상급 능력자인 박지홍 회장님께서 직접 하신단 말씀입니까?”

“가죽 벗기기부터 사체해부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직접 하십니다. 평소 지론이 솔선수범이라 아랫사람에게 심부름이나 힘든 일을 시키는 걸 싫어하십니다.”

이번 말은 완벽한 거짓말로 솔선수범이 아니라 시킬 사람이 아내들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것이었다.

손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비린내 나는 가죽을 벗기고 심장을 도려내는 짓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 내에 디텍터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회장님이라는 소문도 있고, 사모님 중에 한 분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매우 중요한 기밀 사항이라 대답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답을 피한다는 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군요?”

“그건 조진우 기자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 내에 디텍터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누가 얼마만큼의 능력을 발휘하는지 모를 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나진시를 레드몬으로부터 단기간에 탈환하고 개발한 것부터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호그질라 등 엘리트 레드몬과의 전투에서 부상자 하나 없이 잡아냈다는 건 놈들이 어디 있는지 미리 알고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100% 기습을 허용해 부상자와 사망자가 여럿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건 미래 레드몬 사냥팀의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는 멘탈리스트 5명이나 있어 기습을 허용하면 인명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일부에선 상급 피지컬리스트가 있어 그럴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대단히 어리석은 판단으로 도둑 하나를 열 장정이 못 지킨다고 기습을 허용하면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조일 일보 이병두 기자입니다. 그동안 남쪽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갑자기 청송까지 내려가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하는 이유가 뭡니까?”

“나진시를 안정화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미래 레드몬이 나진에 들어온 건 지난 6월로 아직 1년도 안 됐습니다. 그동안 나진시를 점령한 레드몬을 박멸하고 방어벽을 세우느라 딴 곳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상급 피지컬리스트가 레드마우스 몇 마리를 정리하는데 11개월이나 걸렸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10,000마리가 넘어갑니다. 이병두 기자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몇 마리가 아닙니다.”

“우와~ 10,000마리?”

“엄청나네.”

10,000마리가 넘어간다는 소리에 기자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말이 좋아 10,000마리지 이놈들이 한 번에 들이닥치면 중소도시는 몇 시간 안에 황폐화하고, 서울 같은 대도시도 2~3일 안에 초토화하는 숫자였다.

물론 그렇게 많은 수가 모여 도시를 공격한 적도 없었고, 나 또한 한 번에 잡은 숫자는 아니라서 기자들의 경악은 실상과는 맞지 않았다.

“레드몬 사냥은 그렇다 쳐도 미래 레드포스라는 사설 경비부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들에게 도시 방어를 맡기고 미리 움직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병두 기자님은 레드몬에 관한 상식이 많이 부족하신 것 같군요. 방어벽과 방어부대는 레드몬의 침입을 격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레드몬 사냥팀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 목표입니다.”

“방어부대가 레드몬을 잡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최하급 레드몬을 잡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하급 레드몬 1~2마리만 달려들어도 방어벽은 순식간에 뚫립니다. 방어탑에 대전차 로켓포를 수백 발씩 구비한다면 모를까 벌컨포로도 잡아내기가 쉽지 않은 놈들이니까요. 그리고 이곳은 30년간 사람의 손길이 끊긴 오지라서 그런지 레드보어, 레드마틴, 레드와피티 등 중급 레드몬이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이병두 기자님은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로 중급 레드몬을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숙이 살살 약을 올리자 이병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번 기자회견은 시간이 별로 없어 엘리트 레드몬 사냥에 나서게 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호의적인 기자 3~4명에게 질문 기회를 주고 답변하는 것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사전에 미리 질문과 답변 내용을 서로 맞히는 양아치 짓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 질문을 던질지는 내부적으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여기에 조일 일보 이병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조일 일보는 기사가 아닌 소설을 쓰는 신문으로 진실보단 권력에 편승해 이득을 취하는 대표적인 친일 언론이었다.

이병두는 한숙이 자신의 뒤에 있던 뉴욕타임스 기자를 지목하자 마치 자기가 지목당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며 핏대를 세웠다.

매우 예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생방송 중이라 지목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병두의 질문을 받게 됐다.

“며칠 전 귀화 발언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원성이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가가 그동안 베푼 은혜를 저버리고 타국으로 도망가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으셨죠?”

“.......”

“그 일을 만회하고자 청송에 있는 엘리트 레드몬 사냥에 나서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박지홍 회장님은 고아십니다. 15살에 어머니가 괴한의 손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몇 해 전 길에서 객사하셨습니다. 정부에 묻겠습니다. 두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라도 잡았습니까? 잡으려는 노력이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15살 소년이 갈 곳이 없어 강릉 산속에 홀로 지내는 동안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나 가져봤습니까? 대체 이날 이때까지 국가와 정부가 회장님께 뭘 해줬다고 은혜 운운합니까?”

화가 난 한숙이 이병두를 강하게 쏘아본 후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도 회장님은 청진에 나타난 A급 엘리트 레드몬 까치살무사를 잡아 청진 시민들을 구하고, 이젠 국내에 있는 엘리트 레드몬을 모두 잡아 국민을 평안하게 하려 합니다. 그뿐입니까? 매년 수천억을 기부해 아이들을 가르치며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하려 하는데 뭘 만회를 한단 말인가요?”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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