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0 계약(契約) =========================================================================
160.
“지홍씨!”
“응.”
“중국과 일본은 왜 빼놓으셨어요?”
“안달 좀 나라고.”
“정말요?”
“어, 몸이 달아야 얻어낼 게 많아질 거 아니야.”
“중국, 일본과는 계약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계약은 안 해도 공짜 선물은 받아야지.”
“선물도 주나요?”
“어제 중동에서 왕자들 들어온 거 봤지?”
“네.”
“쿠웨이트에선 계약과 상관없이 람보르기니 디아블로(Lamborghini Diablo)를 한 대 주겠다고 했어. 다음 달에 도착할 거야.”
“람보르기니는 고성능의 슈퍼카와 스포츠카를 만드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업체에요. 더구나 디아블로는 람보르기니 최초로 사륜구동에, 최초로 최고속도가 320km/h(200 mph)에 도달한 자동차에요.”
“차에 대해서 잘 아네.”
“자동차를 좋아해서 잡지에서 많이 봤어요.”
“그런 것도 몰랐네. 미안!”
“아니에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동생들도 몰라요.”
“미안함에 대한 선물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는 서인이가 가져.”
“지.진짜요?”
“그럼. 어차피 난 운전면허도 없어 있어 봐야 타지도 않아.”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쪽~”
람보르기니 디아블로가 일반인에게 엄청나게 비싼 차일지 몰라도 수백조 원을 가진 우리에겐 껌값이나 다름없었다.
서인이 사달라고 하면 1대가 100대도 사줄 수 있었다. 그런데 고작 선물로 들어온 걸 준다는 말에 뽀뽀까지 하며 좋아하는 서인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엔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을 줄게.”
“전 이것만 해도 만족해야. 하지만 지홍씨가 준다면 굳이 사양하진 않겠어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반지 하나 선물한 적이 없네. 결혼식 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네. 아이고~ 내가 나를 생각해도 참 답이 없다. 이런 무심한 남자를 좋아해 주는 여자가 여섯 명이나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더 늦기 전에 작은 반지라도 하나씩 해줘야겠네. 후유~」
방송이 나가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나진시를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이 하루에 1,000통 넘게 걸려오며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나진시를 이미 방문한 국가를 뺀 180개국과 다국적 기업, 레드몬 사냥팀까지 다양한 곳에서 방문을 요청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숙박과 치안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정확한 방문 목적을 제출한 30개국만 방문을 허락하고, 나머지 국가와 기업, 사냥팀은 다음을 기약해 달라면 정중히 거절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 왕가, 이란 등도 방송을 보고 달려온 국가로 OPEC 회원국답게 씀씀이가 아주 컸다.
쿠웨이트 왕가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선물하자 사우디 왕가는 에어버스 A320을 주겠다고 했고, 이란에선 유전을 통째로 주겠다며 우리를 유혹했다.
엘리트 레드몬 사냥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이미 소문이 돌며 귀화에 실패해도 사냥 계약은 무조건 체결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하지만 계약 국가가 최대 10개국을 넘지 못할 거란 소문이 돌자 계약을 확신하는 강대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은 우리와 좋은 관계라도 맺어둬 차후 도움을 받는 쪽으로 급선회하며 선물로 환심을 사려 했다.
약소국들이 방향을 선회해 선물 폭탄을 투하하자 여유만만하게 뒷짐 지고 있던 강대국들도 계약에 실패하면 큰 낭패란 생각에 무슨 선물로 환심을 사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밑천 단단히 잡을 기회가 생겼는데 멍청하게 도덕 운운하며 사양할 이유가 없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선물을 뜯어낼까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선물이 남들 보기엔 뇌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공무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사회봉사자도 아닌 일개 개인이자 이익을 추구하는 미래 레드몬 회장으로 이득을 취하려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빠, 이렇게 애들 끌고 다녀도 괜찮은 거예요? 투자단이 보면 난리가 날 텐데요.”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돌아다닌 거야.”
“왜요?”
“겁먹으라고.”
“진짜요?”
“농담이야. 흐흐흐~”
행진하듯 서인과 상아, 아영을 말처럼 풍산개에 태워 나진시를 한 바퀴 돈 다음 공사가 한창인 선봉군으로 넘어갔다.
집에서부터 녀석들을 타고 나와 우동과 좌동 시내를 관통해 항동으로 이동하자 자연스럽게 투자단의 눈에 띄었다.
몸길이 3.2m, 꼬리 길이 1.1m, 무게 170kg의 엄청난 크기와 눈처럼 하얀 털 그리고 레드몬 특유의 강인함은 누가 봐도 레드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의 존재를 모르던 투자단은 물론 이중첩자들의 보고로 레드독의 존재를 알고 있던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투자단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풍씨 자매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류는 돼지와 소, 닭, 거위, 염소, 양 등을 가축화하여 고기와 우유, 가죽, 깃털 등을 얻었고, 개와 말, 낙타 등을 길들여 집을 지키고 물건을 나르고 전투에 활용한 등 다양 곳에 사용했다.
동물의 가축화는 안정적인 음식재료와 옷감의 공급, 빠른 이동 수단과 대량 운송 능력 확보, 노동력의 감소와 전투력 상승 등 인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런 동물보다 쓰임새가 수백 배 높은 레드몬을 사육한다면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져와 지급보다 최소 2배 이상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과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레드몬 사육에 성공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고기와 가죽, 본스틸을 얻는 사육을 넘어 수족으로 부리며 전투에도 활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A급 엘리트 레드몬 공개 때보다 더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시내 행진 이후 사실을 확인하려는 문의전화가 빗발쳤고, 언론사 취재문의도 쇄도하며 나진시는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정말 집에서 키우는 개처럼 완벽하게 길들었군요. 대단합니다.”
“액설로드 특사님! 풍산개는 우리 가족이에요. 단순한 개가 아니니 발언 수위를 조절해주세요.”
“제가 모르고 그만.. .죄송합니다.”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사람 말도 잘 알아들어요. 외국어까지 알아듣는지 알 순 없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말은 못 알아들어도 말 속에 담긴 느낌은 금방 알아차리니까요.”
상아의 말에 호기심이 더욱 동하는지 미국, 러시아, 영국, 브라질, 터키, 중국, 일본 대표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녀석들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투자단 대표들의 간곡한 부탁에 7개국 대표만 따로 초대해 풍씨 자매를 만져도 보고 사진도 찍을 기회를 주었다.
“회장님! 레드독을 길들인 비결을 조금만 알려주실 순 없나요? 많이도 말고 조금이면 되요.”
일본의 스기모토 유미 대표가 몸을 살살 비꼬며 한껏 애교를 부리며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사랑과 정성을 쏟으면 됩니다.”
“아이~ 원론적인 거 말고 핵심적인 거로 조금만 알려주세요.”
살살 엉덩이를 흔들며 품에 안겨 아양이라도 떨 태세로 다가오자 소연과 한숙, 상아의 눈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스키모토 대표님! 제가 이 녀석들을 길들인 비결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애정입니다. 남녀 사이도 애정을 쏟으면 넘어오는 것처럼 레드독도 깊은 애정만 있으면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럼 회장님에게 제가 애정을 쏟으면 저도 특별한 여우가 될 수 있나요?”
“여우보단 꽃이 낫겠죠?”
“아이~ 부끄럽게. 호호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 이야기를 꺼내 은근히 유혹하기에 나도 화답으로 장미꽃으로 기분을 마춰주었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를 보면 여우가 길들여진다는 것에 관해 어린 왕자에게 말해주는 대목이 있다.
"지금 내가 보기에 당신은 아직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어린 소년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없어도 괜찮아요. 당신 또한 내가 없어도 괜찮고요. 당신이 보기에 나는 수많은 여우와 다른 게 없으니까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돼요. 당신은 나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이고, 당신에게 있어 나 역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될 겁니다."
스기모토 유미는 이 대목을 이용해 나를 유혹하려 했다. 나도 목표가 공짜로 능력자 7명을 얻는 것이라 장단에 맞춰 바람둥이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저도 질문 있어요.”
“말씀하세요.”
중국 슝다이린 대표가 옆으로 바짝 다가와 한창 수작 중인 스기모토를 째려보며 말을 걸어왔다.
일본과 중국 투자단의 특징은 외모와 몸매도 아름답지만 모두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7명 모두 철저하게 나를 유혹하기 위해 발탁한 능력자들로 덕분에 외국어 울렁증이 심한 나로선 마음 놓고 유혹을 받아줄 수 있었다.
“풍산개를 가족이라 칭할 만큼 길들인 것으로 보아 다른 레드독도 얼마든지 길들일 수 있겠네요?”
“글쎄요? 그건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유가 뭐죠?”
“가령 보더 콜리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시츄나 비글도 키운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생김새와 성격이 다른 만큼 같은 방법이 통한다고 장담할 순 없죠.”
“상성이 안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대충 그렇습니다.”
“그럼 보더 콜리처럼 똑똑한 푸들이나 저먼 셰퍼드는 어떨까요? 회장님이 언급하신 시츄와 비글은 보더 콜리와 비교하면 머리가 몹시 나쁜 편이잖아요.”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레드독으로 변이한 개는 지능이 모두 높아 지능 차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네요.”
“품종이 다른 레드독을 길들여보신 적은 있으세요?”
“아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공도 실패도 단정 지을 순 없겠네요. 아직 해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혹시... 종류가 다른 레드몬을 길들여 보신 적은 없으세요?”
“레드몬을 길들이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 아직 시도해본 적도 없습니다.”
“시간이 나면 시도하겠다는 뜻이네요?”
“그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입니다. 도전이 있어야 발전도 있으니까요.”
“성공하면 레드몬으로 구성된 레드몬 사냥팀을 볼 수도 있겠네요?”
“그건 저도 간절히 바라는 일이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풍산개를 길들이는 일도 무척 어려웠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충직한 개도 길들이기 어려운데 다른 레드몬을 길들일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 그날이 꼭 올 거로 생각해요.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아니면 더 오랜 기간이 걸릴지 그건 알 순 없지만, 언젠가 그날은 받듯이 올 거예요. 그날이 오면 회장님은 수백? 수천? 어쩌면 더 많은 레드몬을 수족처럼 부리게 되겠죠. 그러면 누구도 회장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할 거예요. 회장님은 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음...”
============================ 작품 후기 ============================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걸리면... 큰일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