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158화 (158/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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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계약(契約)

“한숙아! 내일 레드몬 공개 후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있었던 일을 테이프와 함께 모두 공개해. 그리고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한민국을 떠나겠다고 발표해. 아주 강력하게.”

“알았어요.”

“너무 성급한 게 아닐까?”

“이번에 확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제2, 제3의 왕교언이 나타날 수 있어. 강경한 모습을 보여줘야 더는 파리가 꼬이지 않지.”

“소연 언니! 그건 오빠 말이 맞아. 질질 끌려 다니면 안 돼.”

“은비야! 그런 뜻이 아니라 내 말은 배후를 밝힌 다음 발표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야.”

“배후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아? 분명 꼬리 자르기에 들어갈 거야. 그럼 시간만 질질 끌다가 타이밍만 놓쳐.”

“나도 은비와 같은 생각이야. 배후를 캐낸다고 해도 발뺌하면 그만이야. 그럴 바엔 세계의 이목이 집중했을 때 강력한 경고를 날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평소 소연의 의견을 따랐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대한민국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조국에 해를 끼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묵묵히 노력해 도시도 키우고,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집 없는 아이들도 돌보고, 비인기 종목 운동선수도 지원하는 등 표나지 않게 이 나라를 위해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왕교언 한 명으로 대한민국을 미워하고 싶진 않았다. 매국노가 수만 수만이라고 해도 전체에 비하면 1%도 안 되는 숫자였다.

물론 일제의 식민지교육과 정권의 못된 교육에 동화된 사람들이 이보다 수십 배는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절반 이상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진짜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지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낌새를 알아차린 소연과 은비가 좌우에 달라붙어 술도 따라주고 안주도 먹여주며 몸을 살갑게 비벼댔고, 상아와 아영도 나름 재미있는 농담으로 내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

서인과 한숙도 평소보다 더욱 활달한 모습으로 힘을 보탰지만, 씁쓸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가 자기들을 죽이려고 달려든 적도 없고 피해를 준적도 없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생각이 달라도 때론 국익을 위해 서로 인정하고 협력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하는데, 이놈들은 자신과 반대는 모조리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정말 이런 나라에서 애 낳고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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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잠시만요. 오빠! 강 국장님 전화요.”

“고마워.”

“아니에요. 헤헤헤~”

아침 9시, 상아가 건네준 수화기를 귀에 대는 순간 강승원 국장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교언이 죽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늘 아침 자택 서재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흐음...]

[오늘 새벽 2시경 자택에 도착한 왕교언은 청와대 박완용 비서실장, 김덕일 국가안전기회부 부장과 연달아 통화한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30분가량 통화했습니다. 이후 아침 7시경 청소하던 가정부가 서재에 쓰러져 있는 왕교언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뭐라고 합니까?]

[평소 협심증을 앓고 있던 점을 부각해 심장발작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인을 발표했습니다.]

[후유~]

[왕교언뿐만 아니라 함께 온 수행원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부하들까지... 완벽한 꼬리 자르기군요.]

[그렇습니다.]

정도운 국장은 집 앞 도로에서 덤프트럭과 충돌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김주열 국장은 과음 후 아파트 베란다에서 실족사한 걸 경비가 경찰에 신고했다.

김지운 국장은 뒷산 약수터에 목을 매 죽은 것을 물 뜨러 온 동네 할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해 알게 됐다.

[이들이 나진시에 온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안기부에서 흘러나온 정보에 의하면 이들을 태우고 나선시에 온 안기부 소속 헬기 기장과 부기장을 빼면 행선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몰래 방문한 것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 소행입니까?]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이 연루됐을 가능성도 있고, 마지막으로 통화한 제삼자의 소행일 수도 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정말 제대로 꼬리를 잘랐네.”

“그러게 말이야.”

녹화한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면 대통령이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장관직을 몰수하고 검찰에 넘기는 선에서 끝날 것으로 예상했지 일행과 함께 모두 죽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런 낌새를 알았다면 밤에 돌려보내지 않고 하룻밤 재운 후 기자회견이 끝나면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돼지 새끼와 똘마니들은 삶이 팍팍해지긴 하겠지만, 적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숙에게 전화해서 기자회견 취소하라고 해.”

“그냥 발표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봐야 죽은 사람 명예만 훼손한다고 욕만 먹어. 그리고 남은 증인도 없어 배후조사도 어렵고. 그럴 바엔 덮는 게 나아.”

“누군지 몰라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됐네.”

“그럴 순 없지. 기자회견을 취소한 대신 귀화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방송사와 인터뷰하라고 해. 이유를 물으면 최근 청진과 강릉사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뜻도 내비치고.”

“우리 입으로 귀화를 거론하면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좋은 방법이 있어?”

“남쪽에 엘리트 레드몬 있는 곳을 알아봐. 몇 마리 잡아주면 반응이 달라지겠지.”

“알았어.”

소연이 한숙에게 내 말을 전달하러 간 사이 TV를 틀고 채널을 돌렸다. 조금 후 진행될 A급 엘리트 레드몬 공개 소식을 전하는 채널이 한 곳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방송하는 줄 알겠네. 이곳이 내 나라가 맞는지 정말 의심된다.」

“이번에 5억 명도 넘게 시청했데.”

“그렇게 많이?”

“국내만 조용했지, 해외에선 난리였어.”

“나야 KBS하고, MBC밖에 모르니 알 수가 있나.”

“오빠도 이 기회에 영어 공부 좀 해.”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

“나도 외국인 만날 일 없는 사람이 영어공부에 돈 들이는 거 반대야. 하지만 오빠는 처지가 다르잖아. 앞으로 허구한 날 노랑머리를 만나야 하는데, 말은 못해도 알아듣긴 해야지.”

“한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데 얼어 죽을 영어는... 싫어.”

“그럼 이제부터 우리에게 통역해달라고 하지 마.”

“치사하게...”

“아니꼬우면 배우던가.”

“에잇~ 아 몰라! 마음대로 해.”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호그질라 공개 행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성황리에 끝이 났다.

CNN, NBC, BBC, CCTV, 로이터 등 세계적인 방송사들이 지구촌 200여 개국에 레드몬과 레드스톤의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며 사냥 영웅담을 조미료로 첨가하자 마샤 타이엘나, 아폴로 윌리엄스, 벤자민 링컨만큼 우리 이름도 사람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됐다.

또한, 단 7명으로 A급 엘리트 레드몬을 2마리나 잡아냈다는 것이 알려지며 미래 공대의 이름도 세계 최고인 아폴로, 링컨, 페가수스, 발키리, 솔로몬 공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와 함께 한숙이 CNN, NBC, BBC 방송사와 한 인터뷰가 화제가 되어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정부의 행태를 은근히 비난하며 혐오감을 드러낸 채 다른 나라로 귀화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상급 피지컬리스트를 자국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여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러자 각국 정부 수반들이 특사들을 닦달했고, 특사들은 소통 창구인 한숙에게 매달려 점수를 얻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진짜 너무들 하네. 외국에선 난리인데, 정작 우리나라는 조용하다 못해 삭막하기까지 하네.”

“그 정도는 아니에요.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를 빼도 몇몇 신문에서 나진시에서 있었던 일을 기사화했어요.”

“이것도 기사냐? 뉴욕 타임스도 1면부터 5면까지 톱기사로 실었는데, 우리나라 언론은 사진도 없이 짤막하게 썼어. 연애 기사도 이것보단 낫겠다.

“앞으로 인터넷이 보급되면 정보교류가 활발해져 지금보단 나아질 거예요.”

“이 땅에 그런 날이 올까?”

“인터넷이 활성화하면 정부도 지금처럼 정보를 차단하긴 어려워질 거예요. 그러면 해외소식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잖아요.”

아영은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컴퓨터 네트워크 통신망이 활성화하면 국가의 정보통제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인터넷은 1960~1970년대 미국 국방성 산하의 고등 연구국(ARPA)의 연구용 네트워크가 시초로, 동서냉전 중 미국 국방성 고등계획국에서 핵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연구하며 개발됐다.

1986년 미국과학재단에서 5곳의 슈퍼컴퓨터 센터를 연결해 NSFnet을 만들고, 1980년대 말 ARPANET를 흡수·통합하며, 대학·연구소·정부기관·기업 등 세계 모든 곳을 연결하는 국제 통신망으로 발전하게 됐다.

1989년 월드와이드웹이 등장하며 네트워크 기술에 한 단계 진일보하며 상업적 목적의 온라인 서비스가 추가되고 이용자층이 다양해지며 양적·질적 팽창을 가져오게 되었다.

대한민국도 1993년부터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시행하곤 있지만, 개인용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망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아직은 연구소 등에서만 일부 사용하고 있었다.

“네 말처럼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야.”

“왜요?”

“모든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지도 않겠지만, 대한민국엔 일제의 식민교육과 친일파의 세뇌교육을 당한 사람이 많아서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은 없을 거야.”

“교육을 통해 바꿔나가면 되잖아요.”

“지금 사학자들과 교육계에 몸담은 친일파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놈과 자식들이 꼭대기에 앉아 있는데 바뀌긴 뭐가 바뀌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기대하지도 마.”

역사 연구 방법 중 실증사학(實證史學)이란 게 있다. 증거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정확한 문헌자료로 통해 역사적 사실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엄청난 사기와 맹점이 있었다. 실증사학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이들은 우리의 찬란한 문화를 말살하고 없애버린 후 우리 문화를 한반도 안으로 축소했고, 그마저도 왜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일에 동참해 민족의 뿌리를 잘라버린 사학자들이 아직도 버젓이 국사를 편찬하고, 그놈들의 자식들이 대학교수, 총장으로 대를 물려 국민에게 식민지 교육을 강요하고 있었다.

은비의 말처럼 이런 개 같은 현실에게 새로운 통신수단이 나와 정보교류가 활성화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신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건 개밥에 도토리나 마찬가지였다.

============================ 작품 후기 ============================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걸리면... 큰일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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