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6 탐욕스러운 돼지들 =========================================================================
156.
“평소 웃음이 거의 없는 회장님이 큰 소리를 웃을 만큼 장관님의 제안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네요.”
“박 회장에겐 전혀 손해날 게 없는 제안입니다. 당장은 피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놓는 것의 최소 두 배, 많게는 열 배가 다시 돌아오는 게 이 동네 생리에요. 그건 내가 책임질 수 있습니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지금보다 수백 배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갑자기 말투가 사근사근 바뀌더니 우리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했다. 포커페이스에 능한 홍은하 소장과 김관웅 사장, 서정재 변호사까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됐다.
왕교언 장관의 말을 종합하면 레드몬도 뺏고, 개발이 한창인 나진시도 뺏고, 우리를 이용해 돈도 벌겠다는 속셈이었다.
이런 뻔뻔한 말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지껄여 댈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돼지 새끼와 놈의 추종자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장관님 말씀을 따르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나요?”
“나로 말씀드리면 각하의 오른팔이자 분신이나 다름없는 실세 중의 실세로, 정부의 모든 일이 나를 통하지 않고는 처리가 안 될 지경이죠. 그런 권력을 가진 내가 나서면 이번 일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은 무조건 나만 믿고 맡겨 놓으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왕교언 장관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무조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사기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 손에 든 사탕을 뺏는 일도 살살 구슬리고 달래야 하는데, 이건 전임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던 ‘이 사람, 보통 사람, 믿어 주세요.’을 반복하는 생떼쓰기에 지나지 않았다.
“왕교언 장관님!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다 알아서 해준다니까... 그것참! 그래 뭐가 궁금합니까?”
“우리 회장님의 어떤 행동가 월권적인 행위라는 거죠? 그리고 그 행위가 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정확하게 말해주세요.”
“아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일개 개인이 타국 특사와 회담하는 건 월권이자 외교적인 문제로 비하할 수 있는 중차대한 실수라고. 그런 황당한 짓을 하는데, 대통령님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투자단이 외교적인 문제로 나진시를 방문했나요? 우리가 투자단과 국가 간의 협정을 맺었나요? 우리가 그들에게 친서를 달라고 했나요? 그렇다고 친서가 국가 간의 문제를 논하고 있나요? 외교적인 일이 없는데 계약을 위반했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요?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를 달라는 이유가 뭔가요? 이는 사유재산을 뺐겠다는 심보가 아니면 뭐라 말할 수 있나요? 권력이 있으니 알아서 해결해준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요? 이에 관한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합니다.”
“세상을 잘 모르는 것 같아 특별히 알려드리죠. 귀를 잘 씻고 들으세요. 원래 특사라는 것은 대통령님에게나 오는 일이지 박 회장 같은 평범한 일반인에게 오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각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요? 아니 그렇습니까?”
“그 말씀은 대통령께 오지 않는 특사가 우리 회장님께 와서 기분이 나빴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군요.”
“에헴~ 꼭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어찌 됐든 주재를 알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특사들과 회담을 한 일은 명백한 박 회장의 잘못입니다.”
“우리가 언제 회담을 진행했나요? 그들이 회장님께 바라는 것이 있어 찾아와 면담한 것이지 회담은 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특사가 아니라 투자단으로 나진시를 찾아온 겁니다. 모르고 계셨나요?”
“이름이 어떻게 됐든 친서를 전달한 건 사실 아닙니까? 친서가 무엇입니까? 친서는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다른 나라의 국가 원수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서한입니다. 그걸 받아놓고 회담이 아니라고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정 그렇게 못 믿겠으면 미국과 러시아가 전달한 친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특사님들도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군요. 나를 만나러 온 사람들도 아닌데...”
“잠깐 만나 무슨 말이 오갔는지 물어만 보는 건데, 뭘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워서 하세요?”
“나는 다만 박 회장이 그들의 말도 안 돼는 감언이설에 속아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겁니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감언이설에 속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들은 노회한 정치인입니다. 세 치 혀로 박 회장과 홍 소장을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어요.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박 회장과 홍 소장은 나이가 아직 어려 그들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내가 대신해주고자 이 자리에 온 겁니다.”
“장관님은 검사 출신이지 외교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검사가 하는 일이 뭡니까? 죄인이 잡아다가 자백 받는 일입니다. 평생 그런 일만 했으니 나만큼 사람을 잘 꿰뚫어 보고 심리파악도 능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 같은 사람이 나서야 회담에서 손해 보는 일이 없는 겁니다. 하하하~”
자백과 회의를 같은 형태로 보는 공안 검사 출신 왕교언 장관의 말에 홍은하 소장도 말문이 막히는지 황당한 눈으로 돼지를 바라봤다.
공안(公安)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란 뜻으로 공안검사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1948년 8월 검찰청법 제정에 따라 검찰청 안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취지에 무색하게 국가의 안위나 공공의 안녕보단 정권 수호의 앞잡이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정치·학원·노동·재야·선거·대공·외사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이와 연관된 사람 중 일부는 사상범으로 몰려 자백이란 이름으로 갖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공안 조작사건으로 1967년 7월 200여 명을 무더기로 검거해 6명에게 사형, 4명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가 모두 석방한 동베를린공작단사건과 1971년의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이 있다.
“계속 회담 회담 하시는데 진실규명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 특사를 이리로 모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제가 회담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홍 소장이 오해하셨군요. 난 다만 특사들의 위신을 생각해 면담을 조금 격상해 회담이라 표현을 쓴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하하하~”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 특사를 만나기는 싫은지 대면 얘기만 나오면 꼬랑지를 내렸다.
“조금 전에는 분명 특사들과 회담으로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회담이든 면담이든 대통령님 몰래 특사를 만났으니 심기가 불편하실 수도 있다는 뜻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왕교언 장관의 말은 점점 꼬여갔다. 그런 뜻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 않겠느냐? 등등 한 것도 아니고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도통 앞뒤가 안 맞는 말만 가득했다.
“우리가 투자단을 만난 걸 정부에서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몰랐다는 게 아니라 특사가 있는지 몰랐다는 뜻입니다.”
“그럼 특사와 친서는 어떻게 아셨나요?”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에서 봤습니다.”
“투자단 일행 모두 서울을 거쳐 나진시로 왔는데, 그때까지 특사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말인가요?”
“그거야 외교부와 국정원 관할이라...”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러 오신 장관님께서 그런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요?”
“에헴~”
왕교언 장관은 말하다가 막히면 헛기침과 모르쇠, 딴청, 딴말로 대답을 회피했다. 이건 회의도 아니고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점점 심해졌다.
“대통령께서 심기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셨다가 조금 전엔 그럴 수도 있다는 말로 바꾸셨는데, 어떤 게 사실인가요?”
“하하하~ 둘 다 사실 아니겠습니까?”
「이 새끼 하는 말마다 중구난방이네.」
“엄연히 개인적인 문제로 투자단을 만나는데, 왜 내무부가 관여하려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레드몬안전청이 내무부 소속이니 당연히 관여할 수 있는 일이죠.”
“레드몬안전청은 레드몬으로부터 도시와 공공시설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지 개인이 사냥한 레드몬의 처리와는 무관한 부서예요. 도통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놈들의 술수에 말려 박 회장이 손해를 볼까 두렵군요. 전 예전부터 박 회장을 참 좋아했습니다. 이번 일도 바쁜 일을 모두 젖혀두고 나진시까지 달려온 건 오직 박 회장의 일을 돕겠다는 취지였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시다니... 서로 조금의 오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같이 노력해서 서로의 이익을 찾도록 합시다.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오빠! 진실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이런 사람은 처음 봐요.]
[네가 봐도 그런 것 같아.]
[대통령이 보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
[자기 유리하게 이름을 파는 것 같아요.]
상아와 필담을 통해 돼지가 대통령의 명령이 아닌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을 가능성을 알게 됐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윗선의 개입 없이 왕교언 혼자서 꿀꺽하기엔 부담스러운 크기였다.
“레드몬 사체를 팔 생각도 없는데 무슨 손해를 본다는 건가요?”
“까치살무사가 품고 있는 신경독은 그 가치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런 귀중한 국부가 유출되면 박 회장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큰 손실을 본다는 뜻입니다.”
“아직 사실 확인이 안 됐다고 해놓고선 까치살무사의 신경독을 거론하는 건 또 뭔가요? 그리고 국부라니요? 엄연히 개인재산을 국부라고 말한다는 게 이치에 맞는 말인가요?”
“신경독은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거고, 국부는 그만큼 귀중하다는 뜻으로 말한 겁니다.”
“그럼 까치살무사, 레드타이거 사체와 레드스톤은 왜 달라고 하셨나요?”
“그건 국민을 위해 희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희사요?”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를 팔아 국민복지에 쓰면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기부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이렇게 강압적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강압이 아니라 그러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아까는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를 내놓으면 지난 일을 덮어준다고 했는데 왜 또 말이 바뀌신 거죠?”
“제가요? 그런 말을... 기억이 잘...”
“진실성이 전혀 없는 장관님과 더 이상 회의를 진행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 돌아주세요.”
“어허~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회장님! 그만 일어나시죠. 계속 있어 봐야 시간만 아깝네요.”
“알겠습니다.”
“쾅~”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열이 받은 왕교언 장관이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치며 일어났다.
“나는 대통령 각하께 나진시를 처리할 권한을 위임받은 내무부 장관이야. 이딴 식으로 나오면 계약 위반으로 나진시를 몰수할 수밖에 없어.”
“.......”
“지금까지 내 뜻을 거스르고 살아남은 기업이 있는 줄 알아. 내 말 한마디면 십 대 재벌도 벌벌 기어 살려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 하물며 이런 촌구석은 당장 내일이라고 없애버릴 수 있어. 감히 내가 누구라고 버릇없는 짓을 해.”
============================ 작품 후기 ============================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걸리면... 큰일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