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155화 (155/505)

00155  탐욕스러운 돼지들   =========================================================================

155. 탐욕스러운 돼지들

“내무부 장관이 나진시에 온다고?”

“응,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오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이유는?”

“자세하게 밝히지 않아 정확하진 않았지만, 내 생각엔 내일 있을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공개 때문인 것 같아.”

“인제 와서 만나겠다고?”

“우리 정부의 늦장 대응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잖아.”

느려터진 행정력으로 국민 속을 박박 긁어대는 대한민국 정부는 우주 최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뒷북의 최고봉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뭐라고 하는지 들어는 봐야지.”

“꼭 만나야 하는 거야?”

“이유도 알아야겠지만, 만남 자체를 거부하면 모양새가 안 좋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오라고 해.”

“알았어.”

발표가 있기 전날 내무부 왕교언 장관이 면담을 요청해왔다. 구체적인 면담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물어보지 않아도 A급 엘리트 레드몬 공개에 따른 부담 때문인 것 같았다.

국내에서도 입소문이 나며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솔솔 풍겨오는 마당에 미국과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면 미국 눈치 보기에 바쁜 대통령에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는다고 집권 초기 민심이 흔들리는 걸 막고, 대기업 편 좀 들어주려다가 옴팡 쓰게 생기자 부랴부랴 내무부 장관을 파견해 중재안을 내려는 게 분명했다.

1993년 4월 20일 저녁 10시

헬기를 타고 나타난 내무부 장관 왕교언을 맞이한 건 내가 아닌 김관웅 미래 레드몬 사장과 서정재 변호사였다.

미래 레드포스 5층 회의실에 기다리고 있자 김관웅 사장과 서정재 변호사를 따라 몸이 비대한 돼지상의 왕교언 장관이 수행원 3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내가 직접 마중하지 않은 것에 불만이 많은지 돼지 같은 얼굴이 더욱 구겨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돼지에게 와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고, 자기가 오고 싶다고 사정해 방문을 허락한 것이었다.

그런데 도리어 돼지가 불쾌한 빛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괜히 허락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분위기가 점점 냉랭해지자 김관웅 사장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 나와 왕교언 장관을 인사시켰다.

“장관님! 이분이 저희 미래 레드몬 박지홍 회장님이십니다. 회장님! 내무부 왕교언 장관님이십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지홍입니다.”

“에헴! 반갑습니다. 내무부 장관 왕교언입니다.”

악수를 끝내자 왕교언 장관이 의자에 털썩 소리가 나게 앉았다. 기분이 나쁘다는 표현을 나대신 의자에 하는 것으로 명색이 국가 내정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의 수장이 할 짓은 아니었다.

「오겠다고 사정사정할 땐 언제고... 하긴 밑에 직원들 시켰으니 자기가 오겠다고 한 적은 없네. 아쉬운 소리는 아랫사람들 시키고 자기는 목에 힘이나 주는 게 일인 줄 아는 놈한테 뭘 바라겠어.」

정권이 교체되자 이번에도 역시 장관이 줄줄이 교체됐다.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자기 생각에 맞게 장관을 교체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로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적어도 업무적 능력이나 친화력을 생각하고 뽑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어떻게 뽑아도 비리가 많고 손금이 적은 놈들만 귀신같이 가려 뽑는지 여기저기서 삐거덕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 내 앞에 앉은 왕교언도 행정 능력이 전혀 없는 검사장 출신으로 공권력 남용과 막말로 연일 도마 위에 오르는 작자였다.

강승원 국장이 전해준 왕교언 장관의 이력은 화려하다 못해 지근지근 밟고 싶을 만큼 열을 뻗게 했다.

검사장으로 근무하며 받아 처먹은 뇌물이 강남 아파트 10채 값이 넘었고, 직책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 연예인 성접대, 골프 관광, 사건 은폐 등 굵직굵직한 사건만 10여 개가 넘었다.

이런 놈을 장관이라고 앉혀 놓고 내무부가 잘 돌아가길 바란다면 그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 회의는 미래 전략 연구소 홍은하 소장이 맡고, 나는 자리만 차지한 채 조용히 있을 예정이었다. 상아는 언제나처럼 내 옆에 붙어 왕교언의 말이 거짓인지 사실이진 알려주었다.

“나진시는 함경북도 북부를 개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회장님이 직접 레드몬을 박멸하고 개발하신 항구도시입니다. 회장님은 나진시를 세계적인 항구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계십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십여 개가 넘는 공장과 연구소, 항구, 수천 채가 넘는 전원주택이 이미 완공되었고, 공항과 관광단지 등이 조성되고 있어 공사가 모두 끝나면 세계적인 미항으로 모습을 갖출게 될 것입니다. 또한, 회장님은 세계 최초의 상급 피지컬리스트로 얼마 전 A급 엘리트 레드몬 까치살무사도 아무런 피해 없이 사냥하셨습니다.”

김관웅 사장이 분위기 띄우고자 나진시와 나에 관해 설명했다. 틀린 말은 없었지만, 바로 앞에서 얼굴에 금칠을 하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이야기는 몇 번 들었습니다. 시골치곤 제법 괜찮군요. 하지만 세계적인 항구라...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리고 박 회장이 청진에서 잡은 까치살무사가 A급 엘리트 레드몬이 확실한지는 정부조사가 끝나봐야 아는 일이라 아직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발언하는 게 맞을 것 같군요.”

“조사 중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말 그대로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며칠 전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 대한당에서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레드스톤까지 조사해 보도까지 했는데, 아직 못 보신 모양이네요?”

“일개 신문사와 군소정당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공신력도 없는데.”

“내일 22개국 특사들과 CNN, NBC, BBC, CCTV, 로이터 등 세계적인 방송사가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를 취재하기 위해 나진시를 방문한 건 알고 계시죠?”

“대충 들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초청해놓고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시는 건가요?”

“에헴~”

정은하 소장의 말에 왕교언 장관이 헛기침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누가 봐도 왕교언의 말은 억지로 사기를 치는 것도 정도가 있는 일로 한 곳도 아니고 10여 곳이나 넘는 세계적 방송사를 불러 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랫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직 정확히 규명이 안 된 일을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하지 말자는 뜻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어찌됐든 사람들이 많이 온 만큼 빨리 진실이 밝혀지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쓸모없는 말로 심력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 홍은하 소장이 왕교언 장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방문 목적을 물어봤다.

“장관님께서 직접 나진시를 방문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 뭔지 이제 말해주실 때가 된 것 같네요. 이유를 밝혀달라고 내무부에 수차례 요구했지만, 장관님이 회장님께 직접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이보게 정 국장. 누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 건가? 난 분명 박 회장과 만나 이야기나 나누자는 취지로 나진시에 간다고 했지 내가 언제 중요한 내용을 전달한다고 했나?”

“죄송합니다. 전달 과정에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이러니 나랏일을 하는 우리를 국민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앞으로 일 똑바로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왕교언 장관은 옆에 앉은 애꿎은 부하 직원을 닦달하며 언성을 높였다. 책임은 언제나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 전형적인 미꾸라지 전술로 생긴 건 돼지에 하는 짓은 양아치였다.

“장관님! 저희는 할 일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노닥거리며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어요.”

“중요한 이야기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겁니다. 억지로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대화의 품격이 떨어져요.”

“장관님은 평소 시간이 남아돌아 그런 식으로 회의하는지 몰라도 저희는 내일 큰 행사가 있어 잡설을 나눌 시간이 없네요.”

“에헴!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지나친 게 아니라 사실을 알려드린 거예요. 하실 말씀이 없다면 그만 일어나는 것이 좋겠네요. 회장님! 더 나올 얘기도 없는 것 같으니 그만 면담을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꽝~ 이게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왕교언 장관님은 이 나라 치안과 행정을 맡고 계신 내무부의 수장으로 대통령님 다음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예의를 갖추세요.”

돼지 옆에 앉아있던 정 국장이 테이블을 내려치며 큰 소리로 홍은하 소장을 질타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왕교언 장관의 입가에 처음으로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하는 짓거리만 봐도 정 국장이 평소 왕교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충성스러운 부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관이 낙하산인데 측근 중에 낙하산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정권이 바뀌자 지난 정권 야심 차게 발족한 국토안전부를 효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대신 레드몬안전청이 새로 생겼다.

권한이 없는 부서로 장세룡 전 장관의 수많은 실책까지 겹치며 전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해 폐지는 정해진 순서였다.

문제는 레드몬안전청이 내무부 산하 기관으로 레드몬의 위협이 점점 가중되는 상황에서 부를 청으로 격하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직속기관이나 완벽한 독립기관으로 신설해 레드몬을 상대할 강력한 무력과 실권을 실어줘도 부족할 판에 내무부의 일개 부서나 다름없는 청으로 격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야당과 학계에선 이번 정권이 레드몬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무지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며 연일 비판의 수위를 높였지만, 소통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은 언론과 방송을 동원해 레드몬안전청이 국토안전부보다 더욱 권한이 큰 부서라는 얼토당토않은 말도 되풀이하고 있었다.

“왕교언 장관님! 그만하시고 이제 이곳에 오신 진짜 목적을 말씀해주세요? 시간 끌어봐야 서로에게 이득 되는 일이 없습니다.”

“여자 분이라 그런지 참을성이 부족하시군요.”

“칭찬으로 들겠습니다.”

“좋습니다. 시간이 없다니 그렇게 하지요.”

“감사합니다.”

“크흠~ 대통령 각하께서는 미래 레드몬의 월권행위를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일개 개인이 타국의 특사와 무분별하게 회담을 진행하는 건 대통령님의 권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입니다. 또한, 명백한 계약위반 행위로 계약서엔 외교권이 없음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계약을 파기하고 함경북도 북부와 나진시 전체를 몰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원칙대로 하면 당연히 계약을 파기하고 나진시와 함경북도 북부를 몰수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해와 같으신 각하께선 박 회장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고자 합니다. 각하께선 박 회장과 미래 레드몬 사냥팀의 능력이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특혜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기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를 우리에게 이양하고 앞으로 특사를 만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면 이제까지의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고 하셨습니다.”

“프하하하하하하하~”

생각지도 못한 왕교언 장관의 발언에 잠시 황당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배꼽이 빠질 것 같이 웃겨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이건 찰리 채플린의 희극보다 100배는 더 웃긴 최고의 코미디였다.

============================ 작품 후기 ============================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걸리면... 큰일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