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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52화 (152/505)

00152  조건(條件)  =========================================================================

152.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지금 말한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면 러시아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손을 잡지 않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제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일은 없어요.”

“그럼 특사님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늦어도 내일 중으로 확답을 해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작고 뚱뚱한 소트니코바 특사가 뒤뚱거리며 황급히 회의장을 떠났다. 그 모습을 바라볼수록 내 마누라들이 예뻐서 미칠 것 같았다.

서양 여성들은 어릴 땐 날씬하고 얼굴도 인형처럼 예뻐 천사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만 들어도 땅을 덮을 듯 체중이 늘어나며 얼굴도 왕창 늙어 천사 같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이런 모습이라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디든 예외가 있는지 강승원 국장에 보여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특사는 어렸을 적부터 유달리 키가 작고 통통했다.

10살 때 스케이트장에서 찍은 사진이 단연 압권으로 허리를 손을 척 걸친 모습에서 주위를 압도하는 포스가 느껴졌다.

“소트니코바 특사가 마음에 들어? 엉덩이에서 눈을 못 떼네. 원래 후덕한 타입을 좋아했나?”

“오빠! 소연 언니 말이 사실이에요? 살찐 스타일 좋아하세요?”

“그런 거 아니야.”

“우리도 밤마다 기름기 많은 음식만 먹어야 하나?”

“언니, 그런다고 살이 찌겠어요? 소기름을 물 대신 먹어야죠.”

“그거로도 쉽지 않을 거야. 아무래도 소트니코바 특사를 언니로 모셔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운명이면 받아들여야죠. 이제 오빠에게 버림받는 건가요?”

“아마도 그렇겠지?.”

“왜들 이러셔? 나는 날씬한 여자를 좋아하지 엉덩이가 산만한 여자는 딱 질색이란 말이야.”

“그렇게 싫은데 엉덩이에서 눈을 못 떼?”

“그건 내가 복 받은 남자구나 생각하면서 쳐다본 것뿐이야. 다른 뜻은 없었어.”

“정말?”

“그래!”

“복 받은 거 알면 앞으로 더 잘해야겠네. 그렇지 우린 남편?”

“.......”

“하하하~”

소연과 상아가 꿍짝이 맞아 신나게 놀려대자 한숙도 재밌는지 큰소리로 웃어댔다. 아내들이 재미있다면 이 정도 놀림은 언제든 받아줄 수 있었다.

업고 다녀도 모자랄 미녀를 6명이나 데리고 살면서 이런 장난도 받아주지 못하면 그건 속이 좁은 게 아니라 양심이 없는 것이었다.

“상아야! 어땠어?”

“한숙 언니와 나눈 대화에선 절반 넘게 거짓이었지만, 오빠와 나눈 대화에서 영혼 없는 추임새를 빼면 모두 진실이었어요.”

“영혼 없는 추임새? 그런 것도 있어?”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말은 모두 무조건 반사처럼 나오는 추임새라고 보시면 돼요. 어떻게 그렇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맞장구를 칠 수 있는지 참 신기한 분인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영국, 독일, 프랑스 특사를 차례로 만난 다음 6번째로 브라질 룰라 다 실바(Lula da Silva) 특사와 회의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엉덩이에 땀띠 나겠다.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해?

“오늘은 중국까지만 하면 끝나요.”

“앵무새도 아니고 비슷비슷한 말을 계속 듣는 것도 지겹다. 어떻게 하나같이 똑같은 조건을 들고 나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발상의 전환도 모르나?”

“정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긴 하네요.”

영국, 독일, 프랑스 3개국은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미국과 러시아의 축소판 수준의 제안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제시했다.

자기들 딴에는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커다란 맥락은 다를 게 없어 우리가 보기엔 약효가 다 빠진 한약을 재탕·삼탕한 기분이었다.

“내일이면 끝나는 거지?”

“아니요. 모레까지 해야 끝나요.”

“아이고~ 죽겠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3일 후 레드몬 관람이 끝나면 또다시 개별 접촉이 있을 거예요.”

“전부다?”

“네!”

“그땐 난 안 나가. 소연이하고 둘이 알아서 해.”

“알았어요. 대신 어디하고 계약할지 미리 알려주셔야 해요.”

“알았어.”

온종일 계속된 회의에 지쳐 한숙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자 룰라 다 실바 특사를 선두로 브라질 대표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브라질은 능력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 특이하게 제안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목적이 순수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중국과 일본처럼 속내가 시커멓진 않았다.

남미에서 가장 큰 국가이자 아마존 강과 열대밀림으로 유명한 브라질은 레드몬의 피해가 가장 극심한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 담수의 약 20%를 공급하는 아마존 강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서 시작해 적도를 따라 동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강으로 길이는 약 6,276km이고, 유역 면적은 약 705만㎢에 이른다.

아마존 강과 함께 발달한 아마존 분지는 세계 최대의 밀림으로 한때 지구의 허파라 불렸지만, 레드문과 함께 레드몬이 창궐하며 이젠 허파 대신 재앙이라 불리고 있었다.

아마존 밀림은 적도의 뜨거운 태양과 아마존 강의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정글과 함께 레드몬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까치살무사의 독 안개보다 더 지독한 맹독을 지닌 레드몬이 득실대는 복마전 같은 곳이었다.

덩치도 유라시아와 북미 대륙에서 발견되는 레드몬보다 훨씬 크고, 독성도 더 지독해 처리하기도 매우 까다로웠다.

이런 레드몬이 정글에 숨어 있다가 밤마다 가까운 마을과 도시를 급습해 가축과 사람들을 잡아먹고 건물을 파괴하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었다.

“브라질을 도와주십시오. 올해만 벌써 500명이 넘는 아마조네스와 전사들이 죽었습니다.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브라질은 아마존 강과 근접한 북부에서 밀려나 남부와 해안으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레드몬의 수는 더욱 빨리 늘어나 주변국을 잠식하고 결국엔 남미 전체가 레드몬의 땅이 될 것입니다.”

“룰라 특사님! 브라질엔 세계적인 레드몬 사냥팀 아마조네스 공대도 있고, 그 안엔 세계 9위에 랭크된 스텔라, 셀레나, 루나님도 있어 피해가 그리 크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정한숙님 말씀대로 브라질엔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유명한 레드몬 사냥팀과 아마조네스 세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전사 수와 비교해 국토는 한 없이 넓고, 접근이 어려운 열대우림이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무도 많은 레드몬이 그 안에 숨어 있어 7,000명으론 감당이 안 됩니다. 그리고 비밀 아닌 비밀로 스텔라, 셀레나, 루나님 세분 모두 민첩형 피지컬리스트라 엘리트 레드몬을 완벽히 처리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제가 무지해서 그런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나쁜 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전사를 보유한 나라입니다. 또한, 세계 10대 공대에 든 사냥팀을 보유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지컬리스트도 세 분이나 계셔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합니다. 외형적인 숫자만 놓고 보면 저라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면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레드몬의 크기가 큰 것도 문제지만, 절반 이상이 독을 품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최하급 레드몬 중에도 치명적인 독을 품은 레드몬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급, 중급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고, 독성도 더욱 지독해집니다. 목숨을 읽은 전사 대부분이 레드몬의 독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 겁니다.”

“참으로 안타깝네요. 그렇다고 회장님과 미래 공대를 위험한 아마존 밀림에 들어가라고 할 순 없어요. 이해하시죠?”

“물론입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밀림을 벗어나 도시와 마을을 공격하는 엘리트 레드몬들을 처리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희도 염치가 있지 위험한 밀림에 들어가 레드몬을 잡아달라는 몰상식한 부탁은 하지 않습니다.”

한숙이 부정적으로 말하자 애가 타는지 얼음물 한잔을 모두 들이킨 룰라 특사가 나를 쳐다보며 급히 말을 이어갔다.

한숙이 테이블 중앙에 앉아 회의를 이끌고 있지만, 결정권자가 나라는 걸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회장님께 제시한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누굴 비방할 생각은 없지만, 브라질은 귀화 같은 터무니없는 요구는 애초부터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는 순수하게 브라질을 도와달라는 뜻을 전달하고자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보다 돈을 더 많이 지급할 능력도 없습니다. 제가 회장님과 사모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브라질 모든 국민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란 약속입니다.”

“.......”

“한 달 전 아마조나스 주에 있는 인구 오만 명이 넘는 소도시가 사라졌습니다. B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추정하는 레드재규어가 밤에 나타나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어 죽여 20,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도시를 탈출했습니다. 재규어를 잡기 위해 아마조네스 공대와 스텔라, 셀레나, 루나님이 급히 출동했지만, 전사 37명이 목숨을 희생해 간신히 숲으로 쫓아내는데 그쳤습니다. 이 사건은 철저히 은폐된 내용으로 회장님과 사모님들께 치부를 공개할 만큼 절박한 상황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 답변을 드리진 못하지만, 깊이 숙고하겠습니다.”

“측은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룰라 특사의 말을 듣고 나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대한민국은 레드몬이 많은 나라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숫자가 많다고 느끼는 건 레드마우스 때문이었다. 레드마우스를 잡아먹을 야서구제형 레드몬이 상대적으로 적어 레드몬이 많다고 느끼는 것으로 정글이 많은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만큼 숫자가 적었다.

특히 독충과 독사가 거의 없고, 레드몬의 크기와 종류도 매우 적어 세계포스협회에서 안전한 지역에 분류할 만큼 한반도는 레드몬의 피해가 작았다.

“지금 실력으로 아마존에 가서 창피나 당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

“흙으로 된 클레이 코트에서 테니스를 잘 한다고 콘크리트와 고무로 된 하드 코트나 잔디 코트, 카펫 코트에서도 테니스를 잘 한다는 보장은 없어. 사냥도 마찬가지야. 레드몬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얼마나 많이 준비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와 위험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멍멍이도 자기 동네에선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하잖아.”

“상대적인 요인과 환경만 따질 순 없잖아. 더구나 사냥할 놈과 링에서 일대일로 붙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한 둘이 아닐 텐데.”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둘 다 처음 만난 레드몬이었잖아. 사전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놈들이 널 봐준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도 넌 훌륭하게 사냥을 끝냈어. 뭐가 문제야?”

“그런가?”

“그럼. 네 남편 박지홍은 지금까지 아주 잘해 왔어. 아마존이라고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해.”

소연의 말에 움츠러들던 자신감이 다시 살아났다.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으면 몸이 굳어져 아무것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게 된다.

아마존의 열대밀림, 시베리아의 매서운 벌판, 플로리다의 음산한 늪지대, 사하라의 끝없는 사막, 남극의 차가운 얼음 땅이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용감하게 과감하게 놈들을 상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겁먹지 않고, 움츠러들지만 않으면 상급 레드몬이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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