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0 조건(條件) =========================================================================
150. 조건(條件)
“1년 만에 이토록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만들 수 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더구나 수많은 레드몬을 섬멸하고 도시를 재건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땐 놀랍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회장님과 미래 레드몬 사냥팀의 노력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박지홍 회장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론이죠.”
시작이라 그런지 데이비드 액설로드 대표와 한숙은 서로를 칭찬하며 낯간지러운 대화를 이어갔다.
“어제 드린 제안서는 읽어보셨습니까?”
“그에 대한 답변 이전에 빌 클린턴 대통령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보잘것없는 저희를 친우로 생각해 주시고 돈독한 우의를 다지고 싶다는 말씀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세요.”
“정한숙 여사님의 진심어린 말씀 대통령께 반드시 전달하겠습니다.”
“합작 연구소 건립과 레드몬 관련 산업 육성계획 등 알찬 제안서 잘 읽어봤습니다. 다른 나라처럼 대충 나열한 게 아니라 꼼꼼히 따져 계획을 세웠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좋은 제안이지만 나진시는 아직 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감사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저희가 도우면 나진시 발전에 도움이 될지언정 피해는 되지 않을 겁니다.”
“회장님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하고 싶어 하십니다.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진시와 함경북도 북부를 개발하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흰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그 뜻을 망치려는 게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의 뜻이 확고해 바꿀 수 없습니다.”
“흐음...”
“오해하실 것 같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내용은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미국에만 불이익을 드리는 것이 아니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한숙이 확실하게 선을 긋자 데이비드 액설로드 대표가 잠시 양해를 구하고 동석한 자문들과 귓속말을 나눴다.
능력자를 앞에 두고 귓속말을 한다는 건 들으라는 뜻으로 우리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됐다.
하지만 영어의 영자도 모르는 난 수군거리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지만,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에 반해 소연과 상아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남의 나라말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럴 땐 정말 답답하네. 근데 상아는 언제 영어까지 배운 거야? 난 영어 단어 하나 제대로 못 외우는데... 천재가 다르긴 다르네.」
“미국은 인재를 사랑합니다. 박지홍 회장님과 사모님들이 원하신다면 시민권을 즉시 발부해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과 미국의 이중국적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게 조처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대한민국을 떠날 생각이 없어요. 더구나 이곳은 외교권을 뺀 모든 권한이 우리에게 있는 고향이자 집이에요. 말씀은 고맙지만, 그 문제는 다시는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한숙이 완강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자 데이비드 액설로드 대표는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고향을 떠나시기가 쉽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진시에 투자한 비용이 천문학적이라 것도 알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박지홍 회장님께서 지금까지 나진시에 투자한 비용과 시간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물론 그에 상응하는 토지까지 모두 생각해 놓았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이양받은 땅보다 두 배 더 넓고 기름진 땅을 제공할 계획이며, 회장님이 앞으로 10년간 벌어들일 돈도 선물로 준비해뒀습니다. 이외에도 커다란 저택과 자가용 비행기, 최신형 요트, 헬기 등 많은 선물을 준비해주었습니다.”
“묻고 싶은 게 있네요.”
“말씀하십시오.”
“미국에서 평가하는 회장님은 어느 정도인가요?”
“상급 능력자 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래지 않아 최초의 최상급 능력자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액설로드 대표님께선 회장님이 레드바이퍼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셨나요?”
“그렇습니다.”
미국이 대한민국 상공에 멋대로 올려놓은 인공위성 숫자를 생각하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대표도 사실을 숨겨 신뢰에 금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인정했다.
싸움이 일어난 곳이 나무가 많지 않은 지역이라 모습이 드러나긴 했지만,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독 안개도 넓게 퍼져 전투장면을 선명하게 보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대략적인 움직임과 누가 전투에 참가했고, 승패의 향방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첩보위성을 빼고도 미국 CIA와 NSA가 우리나라에 심어 놓은 정보조직은 실로 엄청나 정치인과 공무원, 검찰, 경찰, 군대, 일반인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강릉과 청진에 나타난 레드몬도 미국이 먼저 알았을 것이고, 피해규모도 우리보다 더 상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웃기는 건 이런 현실을 당연시하는 매국노들은 걸핏하면 미국에 정보를 구걸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고도 내 나라 내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는 게 창피하다 못해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심히 불쾌하군요.”
“죄송합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성으로 감시하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까치살무사가 청진으로 접근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청진 근처를 지나가던 인공위성으로 촬영하던 중 운 좋게 박지홍 회장님의 모습을 찍은 것뿐입니다. 의도적으로 촬영한 상황이 아닙니다. 불쾌하셨다면 다시 한 번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대표가 미국인으론 이례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식으로 허리까지 깊숙이 숙여 사과했다.
좀처럼 허리를 숙이지 않는 미국이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런 보여주기식 행동에 감명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프로야구에서 많은 돈을 들여 영입한 외국인 선수가 쓸모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헌신짝처럼 트레이드하거나 버려졌다. 우리도 그와 같이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폐품만도 못한 신세가 될 수 있었다.
“정말로 미국이 우리와 친구가 되길 바란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랄게요.”
“빌 클린턴 대통령께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강력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숙에게 그쯤에서 그만두라는 사인을 보냈다. 계속 화내봐야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가 클린턴 대통령 고문이라 해도 가진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을 전달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더구나 화를 낸다고 미국의 행동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낼 방법도 없었고,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해도 그런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위험분자인 나를 감시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그걸 알고도 막아내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처지가 바뀌면 나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행동했을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상대를 알기 위해선 결국 상대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빨리 정보력을 키우기 위해 인공위성도 띄우고, 첩보위성을 무력화할 무기도 도입해야지 이 상태로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겠네. 젠장!」
“액설로드 특사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미국만이 알고 있는 정보인가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그날 저희 위성이 움직이자 러시아와 중국, 일본 위성도 청진으로 이동한 걸 CIA가 확인했습니다.”
“그들도 우리 회장님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겠군요?”
“이곳에 온 나라들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액설로드 특사님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우리 회장님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 같나요?”
“음...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대한민국 정부는 저희와는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결정권자와 주요 핵심 정치인들은 회장님과 사모님들의 능력을 애써 저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장님의 힘이 세지면 자기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특사는 정부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없는 내용을 만들 수도 있고, 비슷한 내용을 좀 더 부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데이비드 액설로드 특사의 말엔 거짓이 없는지 상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진실임을 알려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쓰디쓴 웃음과 함께 서글픔, 짜증,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차마 미국 특사 앞에서 화를 낼 수 없어 간신히 참았지, 이들이 없었다면 한바탕 욕지거리라도 하고 싶었다.
“회장님과 사모님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한국보단 미국이 났습니다. 미래 정밀 최광석님만 해도 조국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셨지만, 돌아온 건 가족의 죽음뿐이었다. 기회의 나라이자 합리주의의 나라 미국은 한국과 다릅니다. 여러분이 꿈을 펼 수 있도록 모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특사의 말은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격이었고, 똥 묻은 놈이 제 묻는 놈 나무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를 위한다는 말은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바꿀 게 뻔한 소리로 유치원생이나 믿을 헛소리였다.
더구나 이 나라를 분단국가로 만들고 친일파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 나라를 개판으로 만든 미국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욕한다는 건 정말 배꼽 잡고 웃을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크림반도의 얄타에 모여 나치 독일의 패전과 그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이때 소련의 대일참전에 관한 비밀협정도 체결됐다. 소련은 대일전에 참가 대가로 홋카이도와 혼슈의 분할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조선반도를 분할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했다. 한반도 분할은 이렇게 우리의 뜻이 아닌 미국의 뜻에 따라 나눠지게 됐다.
이 때문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게 됐고, 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 또는 부상, 실종되며 한반도는 잿더미로 변했다.
그런데도 이 땅에 아직 미국을 은인으로 알고 칭송하고 떠받드는 골빈 놈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요. 아! 잊을 뻔했네요. 회장님이 까치살무사를 여러분께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그런 좋은 기회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것만 보여드리면 좀 밋밋할 것 같아 B급 엘리트 레드몬 호그질라와 A급 엘리트 레드몬 레드타이거도 같이 보여드릴 계획이에요.”
“헉...”
“투자단만 보여드리면 아쉬울 것 같아 CNN이나 NBC 방송에 취재를 허락할 생각입니다. 날짜는 3일 후 오전 10시입니다. 잊지 마시고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당연히 참석해야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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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