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9 허세(虛勢) =========================================================================
149.
“가족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15살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전에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럼 아버님은 살아 계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얼마 전 아버지도 몇 해 전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알게 된 건 지난해 말로 국정원과 국토안전부의 조사를 강승원 국장이 역으로 캐내며 알게 됐다.
국정원과 국토안전부는 포스협회에 등록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이용해 서울에 살던 어린 시절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부모가 누군지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찾아내는 건 매우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게 전부로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어 도움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래도 정보력은 있는지 집 나간 아버지를 찾아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지 3년 만에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차디찬 시체로 발견됐다.
집을 나간 후 계속 도박판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시비에 휘말려 등과 허리에 칼침 20방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신원을 알 수 없어 한동안 시체안치소에 방치되다 1년 후 화장해 벽제 봉안당에 모셔진 걸 국정원이 용케 찾아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프다는 생각도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죽은 아버지 소식을 들었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했다.
돈이 부족하고 삶이 고단해도 아버지가 좀 더 노력했다면 가족 모두가 불행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린 채 그 원망을 힘없는 어머니와 내게 쏟아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버지를 욕할 생각도 없었다.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었고, 그것이 정당하지 못해도 어차피 본인은 깨닫지 못했다.
“오늘도 계속 선글라스를 쓰고 계시는데, 다른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보여드릴 만한 얼굴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회장님의 얼굴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보여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못난 얼굴로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쉽지 않습니다.”
“사모님은 모두 몇 분이십니까?”
“여섯 명입니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부로 결혼을 늦추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법이 아직 바뀌지 않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이 바뀌는 대로 합동결혼식을 올릴 생각입니다.”
“만약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한 10년 기다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우리끼리 조촐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럼 그때 불러주십시오. 사진은 제가 찍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허락하자 김상호 기자와 조진우 기자는 처음의 얌전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맹수같이 돌변해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특히 대답하기 곤란한 가족과 관련된 질문들이 많아 사람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래도 인터뷰에 응한 만큼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에 임했다.
어차피 국정원에서 모두 알고 있는 내용으로 스킬과 능력 그리고 시커먼 속마음만 잘 숨겨두면 나머지는 공개해도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대한당 의원들과 기자들이 나진시를 다년간 다음 날 아침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는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 그리고 나에 대한 기사를 특집으로 다뤘다.
지면 전체를 특집으로 다룬 두 신문은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목숨을 잃은 강릉 피해자들을 상세히 보도하며, 정부가 고의적으로 피해를 축소하고 감추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한, 최고의 상급 피지컬리스트인 나를 영입하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이 친서를 전달한 사실과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20여 개국이 나진시를 방문해 우리에게 미끼를 던지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보도했다.
대한당도 아침 9시 기자회견을 열어 청진에 나타난 A급 엘리트 레드몬의 처리와 강릉 피해 규모를 은폐하기 위해 정부와 언론이 특정 기업과 능력자를 영웅화한다면 비난을 퍼부었다.
이와 함께 상급 피지컬리스트인 나와 미래 레드몬을 불법으로 사찰하는 등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칠 인재를 뒤흔들어 쫓아내려 한다면 핏대를 올렸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찾잔 속의 회오리로 대한당이 주최한 기자회견장엔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 기자 3~4명을 빼면 언론사와 방송국은 물론 힘을 보태기로 한 교수와 법조인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이 기자회견장 주변을 둘러싸고 출입을 통제해 대한당 국회의원들만 간신히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신문 역시 보수언론에 밀려 점유율이 5% 미만으로 국민에게 정확한 소식을 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무료로 배포한 신문마저 경찰과 국정원이 모두 회수해가는 등 정부는 자신들의 실책을 덮기 위해 공권력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래도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까치살무사와 강릉에 대한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주로 젊은 학생들과 지식인 위주로 사진에서 스크랩한 사진과 함께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무조건 믿고 따르는 국민이 전체의 절반 이상이라 소수의 의견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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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가벼운 달리기로 아침훈련을 대신하고 6시가 되기도 전에 선봉군 일대를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투자단 방문으로 며칠 째 사냥을 나서지 못하자 공사장 근처까지 레드몬이 내려와 인부들을 위협했다.
문스톤 탑재차량이 인부들을 보고하고 있지만, 그대로 둘 경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레드몬을 사냥해야 했다.
레드래빗이나 레드마우스, 레드칩처럼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레드몬은 먼 거리에서 물체를 던져 상대를 공격하기도 했고, 레드몰처럼 땅 밑에서 튀어나와 사람들 잡아먹는 놈들도 있어 문스톤으로 보호받는다고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감마선을 쪼일 경우 전파가 땅속 10m까지 전달되지만, 바위의 경우 2~3m도 파고들지 못해 아주 드물긴 해도 그 밑을 파고든 땅속 레드몬에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6시부터 9시까지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니자 3시간 만에 80여 마리가 넘는 레드몬을 사냥할 수 있었다.
주로 레드마우스와 레드래빗, 레드무스텔라로 우리가 보기엔 그리 위협적이지 않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무서운 놈들이었다.
“까치살무사와 레드타이거를 투자단에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홍보용으로?”
“응, 실력이 알려진 만큼 좀 더 확신을 심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하긴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에도 게재된 마당에 숨길 이유가 없지.”
“하는 김에 미국 NBC, ABC, CNN 같은 방송국도 몇 곳 부르자. 파급효과는 그쪽이 훨씬 클 테니까.”
“여러 번 나누면 보안 문제도 있으니까 방송국 기자들이 도착하면 한꺼번에 하자.”
“알았어. 돌아가는 즉시 방송사에 연락할게.”
“그래.”
소연의 의견에 따라 나진시를 방문한 투자단 전체와 영향력 있는 해외 방송국 몇 곳을 선정해 레드몬의 사체와 레드스톤을 공개하기로 했다.
까치살무사를 사진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느끼는 강도가 달랐다.
최강의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를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과 같은 차이로 놈들의 사체를 본 투자단과 기자들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충격이 클수록 우리에겐 유리했다.
또한, 그 모습이 전 세계 뉴스에 방영되면 우리 인지도는 한방에 아폴로 윌리엄스만큼 뛰어오를게 분명했다.
“오빠! 5km 전방에 사향노루가 있어요.”
“레드무스크디어?”
“네.”
“오~ 잡으러 가자.”
사향노루는 몸길이 1m, 어깨높이 50cm가량으로 암수 모두 뿔이 없고 수컷은 어금니가 길고 커서 상아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단독 또는 한 쌍이 같이 살며 지의류나 풀, 키 작은 나무와 나무의 어린싹과 잎을 먹었다.
사향노루에서 변이한 레드무스크디어는 몸길이가 2.5m에 무게가 250kg 정도로 하급 레드몬이긴 했지만, 전투력이 650으로 레드몬 치곤 매우 약한 개체에 속했다.
배에는 달걀만 한 향낭이 있어 이곳에서 사향을 생산·저장했다. 사향은 귀한 약재로 쇼크나 중풍에 사용하면 효과가 있었다.
재빨리 다가가 심장에 칼을 찔러넣었다. 레드몬을 죽일 때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은 단번에 뇌와 심장을 파괴하는 것으로 약한 레드몬을 잡을 땐 이렇게 심장을 찔러 깔끔하게 끝을 냈다.
천연사향은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약재로 특히 레드몬으로 변이한 사향노루는 쉽게 발견되지 않아 가격이 30억 원을 호가했다.
“옛말에 사향당상(麝香堂上)이란 말이 있어. 사향을 권력자에게 바치면 당상의 벼슬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야.”
“왜?”
“사향이 아주 희귀한 사랑의 묘약인 최음제(催淫)라서 그래. 이걸 대감의 첩에게 은밀히 바쳐 당상 벼슬을 얻었다고 생겨난 말이야.”
“난 사향 없어도 충분하잖아.”
“하루 열두 번해도 끄떡없는 오빠는 필요 없지. 다른 사람 줄까?”
“아니.”
“크크크~”
예전엔 사향을 뇌물로 사용했는데, 먹에 사향을 섞은 사향먹이나 그 사향먹으로 그린 사군자도 뇌물로 선호했다.
기생집에서 얼굴이 예쁘지도 않고 몸매가 빼어나지도 않지만, 유달리 손님을 끄는 기생을 사향년(麝香女)이라 할 만큼 사향은 남자를 끄는 강력한 마력이 있었다.
조선 성종 5년 유구국(琉球國) 사신이 선물로 사향을 바치자 베와 비단 각 200필을 반례(反例)로 내릴 만큼 대단한 귀물이었다.
이 때문에 약재보다 향수로 만들자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높아 김일섭 연구원에게 보내 아주 특별한 사향 향수를 만들기로 했다.
“지내는데 불편한 건 없으신가요?”
“아주 좋습니다. 바다도 아름답고 공기도 맑고 음식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준비가 부족해 많이 불편할 텐데,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솔직히 요기 전까진 잠자리부터 먹는 것까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을까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와서 보니 최고급 휴양지에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맑은 공기와 탁 트인 바다, 입맛을 자극하는 해산물과 각종 신선한 채소, 레드몬 고기까지 모든 게 만족스럽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가족들과 함께 눌러앉고 싶은 마음입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2층 전원주택이 마음에 드는지 데이비드 액설로드 대표는 시종일관 웃음 띤 얼굴로 한숙과 대화를 이어갔다.
회의는 나와 소연, 한숙, 상아, 서정재 변호사, 김관웅 사장 이렇게 6명이 참석했고, 미국은 대표인 데이비드 액설로드와 남성 2명, 여성 1명으로 4명이 나섰다.
이와는 별도로 동시통역사가 각각 한 명씩 붙어 영어와 한국어를 통역해주었다. 재미있는 건 헤드셋을 낀 사람이 우리 쪽에선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나만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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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