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137화 (137/505)

00137  까치살무사  =========================================================================

137.

“뭐라고 하셔?”

“서쪽 방어벽 3km 지점에서 청진 수비대가 레드몬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길어야 30분 내로 방어벽을 넘을 것 같다고 했어요.”

“레드몬의 종류는 알아냈어?”

“까치살무사 같다고 했어요. 등급은 최소 B급 엘리트 이상이고요.”

“알았어!”

“지홍씨! 정말... 고마워요.”

“이게 남 일이야?”

“아니요. 그래도...”

“가족끼리 고마운 거 없어.”

“알았어요.”

“갔다 올게.”

“저도 같이 갈래요.”

정말 따라오고 싶은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헬기에 탑승한 채 공중에 떠 있으면 위험할 것 같진 않았다.

“대신 헬기 안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해.”

“네!”

“아영아! 정화수 준비했어?”

“스무 병 준비했어요.”

“가자!”

집에서 300m 떨어진 헬기 이착륙장에 도착하자 준비를 마친 AS365 돌핀 2대가 힘차게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었다.

청진까진 대략 65km 정도라 최대속도로 날아가면 늦어도 1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헬기가 날아올랐다. 밑에서 손을 흔드는 저택 경비대원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나진시가 손바닥만 해졌다.

“소연아! 알아봤어?”

“강릉은 8시 3분에 발견됐고, 청진은 8시 10분이야. 원칙은 발견된 지 10분 안에 경보가 발령돼야 하는데, 벌써 9시 30분이니까 한참 지연된 상태야.”

“문책을 피하려고 시간도 조작했네?”

“응!”

호그질라를 최초 발견한 남성이 112에 신고한 시간이 8시 3분이었다. 이 내용이 책임부서인 국토안전부에 접수된 건 무려 30분이 지난 8시 33분이었다.

국토안전부도 다른 부서들과 마찬가지로 27분을 소비한 다음에야 주민 대피령을 발령했다.

긴급 브리핑도 25분이 지난 9시 25분에 레드몬이 접근 중이라는 짤막한 소식만 전달한 게 전부였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얼마나 부실하게 관리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강릉은 C급 호그질라일 가능성이 크고, 청진은 최악의 경우 A급 엘리트 레드몬이 될 수도 있어.”

“대응은 어떻게 하고 있어?”

“도로를 따라 강릉시로 접근 중인 호그질라는 군부대에서 출동한 AH-1G 코브라 공격헬기와 500MD 공격헬기의 벌컨과 토우 대전차 미사일을 사용해 방향을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야.”

“청진 쪽은?”

“공중 전력이 없어 수비대가 차량에 부착한 중기관총과 유탄발사기를 사용해 시간을 끌고 있어.”

“피해 규모는?”

“1,000명 넘게 죽었어.”

총과 수류탄 등 기본적인 무장밖에 없는 수비대가 엘리트 레드몬을 막는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까치살무사의 방향을 틀어 청진시를 지키겠다는 고육지책이겠지만, 작전 자체가 너무 터무니없는 짓으로 아까운 목숨만 날린 꼴이었다.

“레드몬 사냥팀은 도착했어?”

“전진기지에 있는 사냥팀을 부르긴 했는데, 시간 내에 도착하기도 어렵고, 도착해봐야 인명피해만 늘어날 뿐 도움이 안 돼. 그리고 계약 관계라 오지 안을 수도 있어.”

청진에 활동 중인 레드몬 사냥팀은 세 팀으로 하급 능력자로 구성된 두 개 팀과 신궁 장정원이 이끄는 화랑 공대가 있었다.

중급 피지컬리스트인 장정원은 활을 귀신같이 다뤄 신궁이란 별명을 얻은 능력자로 턱걸이긴 해도 C급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A급 엘리트 레드몬을 상대론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실력으로 계약관계인 만큼 청진 안 올 가능성이 컸다.

“강릉은 오성 그룹에서 맡을 것 같아. 조금 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오성에 도움을 요청했어. 언제나 최고라고 떠들고 다녔으니 거절하긴 어려울 거야.”

“잘됐네.”

“강승원 국장이 청진은 우리가 맡겠다고 국토안전부에 통보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는데. 뭐라고 할까?”

“그렇게 하라고 해.”

“알았어.”

조만간 공개적으로 활동할 계획이라 하루 이틀 앞당겨지는 건 문젯거리가 될 것도 없었고, 커다란 이슈가 된 만큼 한방에 이름을 알릴 기회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독 안개도 뿜어내고 있어. 사망자 대부분이 독 안개인 줄 모르고 접근했다가 목숨을 잃었어.”

“크기는 어느 정도야?”

“길이가 12~13m 정도에 뿔이 1m나 길게 자라나 있어.”

“뿔?”

“응!”

소연은 위성전화기로 강승원 국장과 계속 통화하며 속속 들어오는 정보는 내게 알려줬다.

까치살무사에 관한 정보를 안전보장국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고성능 단망경으로 관측한 사실이었다.

“지홍씨! 오빠 전화에요.”

한숙이 내민 전화는 KM 정근욱 회장의 전화였다. 전에 한번 통성명을 위해 잠시 통화한 개 전부라 전화를 건네받는 손이 어색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KM 정근욱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기수를 돌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진에 나타난 레드바이퍼가 A급 엘리트 레드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박지홍씨가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엔 상대가 너무 강합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 해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평생 잊지 않겠다는 말은 내가 사심 없이 나서준 것에 고마움의 표현이지만, 나를 걱정해 돌아가라는 것은 아니었다.

남겨질 여동생을 걱정해 돌아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져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KM 그룹이 굴지의 재벌이라도 청진을 포기하면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 레드몬처럼 100% 자기 자본이면 금전적 손실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지만, 주식회사인 KM은 은행과 주주들에게 사업 실패에 대한 문책을 받게 된다.

워낙 튼튼한 회사라 망하지는 않겠지만, 그 여파가 자못 심각해 정근욱 회장 일가가 경영에서 물러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돌아가라는 건 돈보다 동생의 행복이 먼저라는 뜻이었다. 따뜻한 오빠의 마음을 알게 되자 정근욱 회장이 살짝 마음에 들었다.

[도착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홍씨!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만 나진시로 돌아가세요.]

[일이 잘 마무리되면 술이나 한 잔 사십시오. 그럼 끊겠습니다.]

[지홍씨! 지홍씨! 지홍...]

일반적으로 전화를 끊고 한숙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프로펠러와 요란한 엔진음으로 정근욱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눈치가 100단인 한숙은 무슨 말이 오갔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금방이라 눈물을 쏟을 기세라 머리를 품에 안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죽은 수비대의 옷이 부식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신경독일 가능성이 커. 지홍아! 버텨낼 수 있겠어?”

“정화수가 큰 도움이 될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걱정 가득한 소연의 볼을 살살 토닥였다. 까치살무사의 독 안개는 호흡을 멈춘 채 싸우면 돼 중독은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유일한 약점인 눈은 기감으로 대체할 수 있어 뜰 필요도 없었고, 혹시 모공을 통해 중독된다고 해도 저항력이 높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다.

또한, 아영의 정화수도 중독 증상을 완화해줘 수비대처럼 독 안개에 목숨을 잃을 일은 없었다.

“도착 1분 전입니다.”

“서쪽 방어벽 근처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북쪽에서 진입한 헬기가 시내를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텅 빈 거리엔 잡동사니만 너저분할 뿐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허겁지겁 도망쳤는지 벗겨진 신발부터 보따리까지 살림살이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배를 타기 위해 부두로 몰려간 게 분명했다. 배가 아니면 청진을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산길로 도망치면 길어야 일주일 안에 산짐승과 레드몬의 밥이 될 게 뻔했다. 바다를 통해 나진이나 김책으로 이동해야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15만 명이 넘는 주민을 태울 배가 부족했다. 7만 명이 콩나물시루처럼 간신히 배에 올라 김책으로 이동 중이었고, 나머지는 8만 명은 배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헬기가 도로 위에 내려앉았다. 장비를 챙겨 헬기에서 내리자 한숙이 옷을 꼭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다녀올게.”

“조심하세요.”

걱정이 가득한 한숙을 다시 헬기에 태워 보내고 서문으로 다가갔다. 모두 도망갔을 거란 예상을 깨고 수비대가 몇 명 남았었다.

“정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나진시에서 온 미래 공대 공대장 박지홍입니다.”

“충성!”

대한민국 군대와 같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젊은 소대장이 절도 있게 경례를 붙였다. 우리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안내하기 위해 남은 최후의 병력이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상황을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20분 전까지 청진 수비대와 전투를 벌인 레드바이퍼는 현재 3km 떨어진 숲에서 10분째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더 많은 걸 알려드리고 싶지만, 이곳에서 관측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라... 죄송합니다.”

“놈을 상대하던 수비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수비대 2,754명 전원 사망했습니다.”

============================ 작품 후기 ============================

항상 변하지 않는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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