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135화 (135/505)

00135  최동주  =========================================================================

135.

“오빠!”

“왜?”

“저도 내일부터 오빠랑 같이 훈련하면 안 돼요?”

“아침부터 상아랑 붙어있고 싶어서 그래?”

“그런 거 아니요. 저도 열심히 수련해 오빠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래요.”

“아침 수련은 5시부터 7시까지고, 저녁엔 7시부터 10시까지야. 일어날 수는 있겠어?”

“네, 할 수 있어요.”

“힘들고 많이 고달플 텐데.”

“괜찮아요.”

“난 외인은 절대 받지 않아. 우리 훈련방법이 특별하지 않지만, 그 안엔 타인에게 알려줄 수 없는 비기도 포함돼있어.”

“상아 언니에게 얘기 들었어요. 절대 발설하지 않을 테니 받아주세요.”

“넌 평생 미래 공대원으로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특별히 받아줄 순 있어. 단, 시작해놓고 중간에 그만두겠다거나 힘들다고 징징대고 울고불고 난리 치면 그땐 죽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요. 오빠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도 할게요.”

“약속한 거다. 뒤에 가서 딴말하면 국물도 없어.”

“네에~”

“내일 아침 4시 50분까지 현관 앞으로 와.”

소희는 결심이 대단해 짐을 풀자 곧바로 나를 찾아와 훈련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스킬이 워낙 탐이나 소희가 싫다고 해도 강제로 훈련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발적으로 나서주자 강제로 훈련하게 할 핑계를 찾을 필요도 없고, 확 휘어잡을 수 있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속내를 드러낼 순 없어 특별히 받아준다는 점을 강조하며, 뒤에 가서 딴말 못하게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오빠!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뭔데?”

“저도 한숙 언니에게 배우고 싶어요.”

“한숙이가 동네 친구냐? KM 그룹 회장 동생이자 실질적인 주인이야. 국회의원들도 벌벌 기는 재벌 총수라고. 나에게 살살 기고 동생들에게 잘해준다고 너까지 우습게 보면 안 돼.”

“상아랑, 아영이 공부할 때 옆에서 같이해도 되잖아요. 크게 방해하지 않을게요.”

“말은 해보겠지만, 안될 수도 있으니까 날 원망하지 마.”

“한숙 언니는 괜찮다고 했어요.”

“그럼 됐잖아. 왜 물어봐?”

“한숙 언니가 오빠에게 허락 맡아 오라고 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알았어. 이제 다 된 거지?”

“네!”

“나 바빠. 그만 가봐.”

“까칠하기는...”

소희를 내보내자 소연과 강승원 국장이 서재로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소희 때문에 밖에서 30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7년 전 자살한 차영철 박사의 첫째 딸 차소은양은 1970년 4월 26일생으로 10살 때 잠능자로 발탁되어 대전 포스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민첩형 피지컬리스트인 차소은양은 1986년 11월 7일 당시 17살의 나이로 서울 돈암동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살한 연유가 뭡니까?”

“경찰은 학업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사결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잠능자 수십 명에게 수백 차례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원치 않은 임신까지 하며 극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휴우~”

“성폭행 가해자는 최동주와 불량서클 아스모데우스 일당으로 차소은양을 비롯해 학교에서만 피해 학생이 최소 십여 명이 넘습니다. 이 중 차소은양을 포함해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최동주... 그렇게 많은 학생이 몹쓸 짓을 당하고 죽기까지 했는데, 경찰도 모르고 학교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검찰과 경찰, 학교 모두 최주욱의 돈과 권력에 눈과 입을 닫았습니다.”

“어디나 똑같군요.”

“최동주와 관련된 사항이라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동주의 할아버지는 최주욱, 아버지는 최동성, 어머니는 김숙자, 동생 최옥자, 남동생 최동수로 가족은 총 6명입니다. 첫째 아들인 최동주만 원산에 있고, 나머지는 강남의 최주욱의 집에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최동주의 할아버지 최주욱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의 고혈을 쥐어짜 번 돈을 땅 투기와 사재기로 불려 현재 한국에서 1,000위권 안에 드는 떵떵거리는 부자였다.

최동주와 문정수와의 친분을 이용해 대전과 대구에 있는 대유 백화점의 세 곳을 직접 운영했고,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고가의 명품을 수입해 판매할 만큼 사업수완도 매우 뛰어나 재계에선 알아주는 장사치였다.

인맥관리도 충실해 정치권과 법조계에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정계에 진출만 안 했을 뿐이지 가지고 있는 권력이 작지 않았다.

“최동주는 어머니 김숙자가 학교 육성회장으로 활동하던 XX국민학교를 다니던 4학년 여름 잠능자로 각성 서울 포스 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최동주와 함께 다녔던 국민학교 이름이 나오자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가장 기억하기 싫은 기억은 놈과 함께한 국민학교였다.

돌이켜보면 최동주보다 놈의 똘마니들과 선생들 그리고 놈과 함께 나를 비웃던 같은 반 친구들이 더 미웠다.

최동주의 눈빛 하나로 알아서 나를 괴롭히던 놈의 똘마니들과 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끝없이 트집을 잡던 선생들 그리고 놈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내게 침을 뱉던 학생들이 최동주보다 더 미웠다.

나도 모르게 살기가 치솟자 소연이 살며시 손을 잡아왔다. 손을 통해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와 사랑이 느껴지자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계속하세요.”

“차소은양이 최동주를 처음 만나건 1986년 4월경입니다. 그전까지 대전 포스 학교에 다니던 차소은양은 서울로 이사 오며 최동주를 만나게 됐습니다. 6월 25일 차소은양을 납치한 최동주는 학교 옥상으로 끌고 가 차소은양을 겁탈했습니다. 이후 20여 차례 차소은양을 겁탈한 최동주는 함께 어울리던 불법서클 아스모데우스에 차소은양을 넘겼습니다.”

“개 같은 새끼!”

강승원 국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들을수록 화가 치밀었다. 어릴 적부터 사람 괴롭히는 걸 취미로 삼던 놈이라 개과천선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게 있는 건데, 이건 사람 새끼가 아니라 개만도 못한 악마 새끼였다.

“이후 아스모데우스 회원 21명에게 매일 성폭행과 사진촬영 등 고문보다 더욱 심한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러다 8월경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왜 돌아가셨습니까?”

“차소은양의 어머니 조미숙 여사는 딸의 성폭행과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딸이 죽자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을 자살했습니다.”

“차영철 소장도 알고 있습니까?”

“짐작만 할 뿐 범인이 누군지, 왜 죽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소희는 뭔가 알고 있는 눈치 같던데...”

“차소은양이 죽었을 당시 차소희님은 10살로 잠능자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려 많은 것을 알진 못해도 자매라 언니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됐을 것입니다. 또한, 최동주와 아스모데우스의 이름도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많이 힘들었겠군요.”

“차소희님은 언니와 엄마의 죽음으로 차영철 소장님조다 더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13살이 돼서야 간신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강해 학교생활이 그리 원만하진 못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고통도 작지 않았을 텐데, 엄마와 언니를 동시에 잃었으니 그 고통이 오죽 크겠어요.”

소연도 일찍 어머니를 여였고, 나도 15살 나이에 어머니를 잃어 가족을 잃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1989년 학교를 졸업한 최동주는 그동안 8개 공대를 전전하며 독선적인 성격과 술, 여자 문제로 공대원들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신선 공대는 지난 달 오 일 문정수의 둘째 형 문정동의 소개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최동주와 문정수는 어떻게 되는 사이입니까?”

“문정수는 최동주의 삼 년 선배로 불법서클인 아스모데우스에서 같이 활동하며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개가 개를 알아봤군요.”

“문정수의 오른팔이라 불리만큼 신임이 두터워 문정수가 학교를 떠난 일 년 후 서클 회장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선배들이 세운 전통인 폭력과 강간 외에 강도와 협박 등 조직폭력배에 버금가는 잔인함으로 학교 밖에서도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도 전과 기록이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잠능자라는 혜택과 할아버지의 돈, 배경 등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했습니다.”

“아무리 법이 있는 자에게 관용을 베풀고, 없는 자에게 가혹한 고무줄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는 것 같네요.”

참다못한 소연이 한마디 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988년 교도소 이감 중 도망쳐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을 벌인 탈주범 지강헌(池康憲)과 안광술, 강영일, 한의철이 한 말이었다.

TV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되며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말로 사회의 불평등을 처절하게 외친 절규였다.

모르는 사람들은 지강헌 일당이 엄청난 흉악범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500만 원을 훔친 잡범이었다.

이들은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70억 원 횡령을 한 전X환(전 뭐씨 형)의 형기가 자신들보다 더 짧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탈출했다.

경찰진입과정에서 지강헌은 총 2발을 맞고 같은 날 세브란스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지강헌이 죄를 지은 건 사실로 당연히 벌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70억 원을 횡령한 누구보다 500만 원 훔친 잡범의 형량이 많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법원은 재벌과 정치인 등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에겐 유독 관대했다.

형기가 짧은 것도 문제였지만, 형기의 반도 안 채우고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고, 그것마저 면회실과 독실에서 편하게 지내다 온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최동주처럼 범죄사실을 완벽히 은폐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재판도 받지 않는 놈에게 법을 논해봐야 입만 아픈 일이었다.

“최동주가 건드린 여자가 몇 명이나 됩니까?”

“지금까지 조사된 바론 학교 내에서 13명, 인근 학교와 학교 주변에서 36명입니다. 이외에도 최소 30명 이상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진출한 이후엔 별다른 사고가 없었습니까?”

“아직 그 부분까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고드릴 내용이 없습니다.”

“기대되는 게 아니라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았을지 걱정이 앞서는군요.”

“저도 정보계통에 오래 있었지만, 죄질이 이렇게까지 나쁜 놈은 본적이 없습니다.”

“최동주와 함께 차소은양을 괴롭힌 아스모데우스 회원들의 명단을 확보하세요. 그리고 최주욱의 재산도 빠짐없이 찾아 놓으세요. 써먹을 날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나와 소희는 며칠 전까지 서로를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고, 한국사람·능력자라는 것을 빼면 공통분모를 찾을 수도 없는 남남이었다.

하지만 이제 최동주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자 강한 동질감이 생기며 친근한 동료처럼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항상 변하지 않는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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