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최동주 =========================================================================
133.
체육관 절반을 장애물 코스와 맨손 암벽 등반 코스로 만들었다. 레드몬을 상대하기 위해선 강력한 공격력도 중요하지만, 놈들의 공격을 피할 순발력과 대응력이 더 필요했다.
천하무적 로봇 태권V라면 레드몬의 주먹과 날카로운 이빨을 겁낼 이유가 없겠지만, 피와 살로 빚어진 나약한 인간의 몸은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그걸로 게임 끝이었다.
영화에선 칼 맞고, 총 맞고, 몽둥이로 열라 두들겨 맞아도 쓰러지지도 않고,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잘만 싸우지만, 현실에선 한방만 제대로 얻어맞아도 온몸의 근육이 풀려 일어설 수도 없다.
얻어맞는 게 그 정돈데 칼에 베어 가슴이 쩍 벌어지고, 총에 3~4발씩 맞고도 펄펄 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가장 잘 싸우는 방법은 한 대 안 맞고 상대를 이기는 것이고, 다음으로 잘 싸우는 방법은 맞아도 적게 맞고 이기는 방법이었다.
적게 맞고 이기려면 급소를 피하고, 충격을 잘 흡수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상대를 꺾을 수 있다.
잘 피하기 위해선 순발력과 대응력이 뛰어나야 했다. 그 일환으로 맨몸으로 도시나 시골의 건물, 다리, 벽 등 지형과 사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이동하는 파르쿠르(Parkour)를 배우고 있었다.
잘 피한다는 것은 영화에서처럼 날아오는 총알을 몸을 살짝 틀어 피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권투에서 풋워크(FootWork)와 위빙(Weaving)을 사용해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것처럼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상대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거나 정확한 타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잘 피한다는 뜻이었다.
우린 사각의 링이 아닌 숲, 들판, 산, 도시 등 바위와 나무, 각종 조형물이 가득한 곳에서 싸우는 것이라 장애물을 피하고 이용하며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보면 장애물이 내게 도움을 줄 때도 있고, 반대로 길을 갈로 막아 위험에 빠지게 할 때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며 수련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내들의 뒤를 열심히 쫓으며 전후좌우 상하로 빠르게 움직이며 장애물을 넘고 뛰어오르고 구르도록 닦달했다.
“이건 기초야. 이걸 통달해야 이보다 한 단계 높은 프리러닝을 시작할 수 있어.”
“우리가 곡예사야?”
“도움이 되면 곡예사 할아버지라도 돼야지.”
“서커스단에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앞 공중돌기도 못 하는 널 누가 사?”
“에잇~ 난 안 해!”
“엉덩이 백 대 맞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보자. 철썩~”
“쿠엑!”
프리러닝(FreeRunning)은 효율성에 중점을 두기보단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파르쿠르의 경직된 움직임에 비해 훨씬 아름답고 우아했다
그만큼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움직임으로 아크로바틱과 기계체조를 혼합한 것 같은 매우 어려운 동작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능력자가 월등한 신체를 갖춘 만큼 일반인보다 운동을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로 기초체력인 힘과 속도는 월등히 앞서지만, 유연성과 순발력까지 뛰어난 건 아니었다.
은비처럼 몸이 로봇보다 더 경직돼 유연성이 전혀 없는 능력자도 있었고, 순발력이 낮아 날아오는 고무공을 몸으로 막는 서인도 있었다.
“너희 둘은 내일부터 특별훈련이야.”
“오늘 시작했는데 무슨 특별훈련이야?”
“아영이하고 상아 하는 거 보면 창피하지도 않아?”
한숙을 뺀 5명 중 소연은 간신히 따라오는 수준이었고, 아영과 상아는 체육인이라 할 만큼 펄펄 날았다.
그에 반해 은비와 서인은 한숙만도 못해 1분 단위로 바닥을 구르고 장애물을 들이받으며 훈련을 방해했다.
“그거야 애들이 어리니까 우리보다 유연해서 그런 거지.”
“두 살 차이가 그렇게 격차가 커?”
“두 살이면 날짜로 730일이야. 밥그릇으로 숫자로 따지면 2,190그릇 차이고. 그런 엄청난 차이를 달랑 두 살이라니?”
“알았어, 알았어. 그렇다고 하자. 그건 그렇고 내일부터 둘은 훈련 1시간 연장이니까 그렇게 알아.”
“우씌~”
“히잉~”
파르쿠르가 끝나자 바로 승무도 수련에 들어갔다. 형은 이미 모두 배운 상태라 짝을 지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법과 공격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수련 기간이 가장 짧은 상아도 3개월이 넘어가고 있어 자세는 아주 그럴싸했다. 그러나 싸움은 자세만 그럴싸하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실전에서도 자세를 유지하며 공격과 방어가 원활하고, 임기응변까지 능해야 통달한 것이라 할 수 있어 서로 짜고 치는 연습으로 실력을 평가할 순 없었다.
“훈련 강도가 높아진 만큼 봐주는 일은 없어. 아까 말한 것처럼 급소를 피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법을 몸으로 배울 때까지 매우 거친 대련이 될 테니까 단단히 각오들 해.”
“우우우우우~”
“야유를 보낸 은비부터 올라와. 보호대 단단히 차고.”
“장난이었어.”
“흐흐흐~ 난 장난 아니거든. 보호대 차고 빨리 올라와. 아영아! 준비하고 있어.”
“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은비가 체육관 중앙에 마련된 대련장으로 들어왔다. 머리와 몸통, 국부와 허벅지까지 가린 보호대는 레드몬 가죽에 충격 흡수용 발포제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하지만 상급 능력자의 힘을 완벽하게 흡수할 만한 재질은 아니라서 맞는 순간 눈앞에 별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나무로 만든 목검을 들어 올리자 은비가 자신의 푸지오를 꽉 움켜잡고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친절하게 한 번 웃어준 다음 정면으로 확 들어갔다. 10m나 떨어져 있던 내가 갑자기 코앞에 나타나자 깜짝 놀라 은비가 푸지오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퍽!”
“으아악~”
“지금 장난해? 레드몬이 다가왔는데 단검으로 얼굴을 가려?”
“하아~ 하아~ 하아~”
목검에 배를 찔려 쓰러진 은비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 거친 숨만 토해냈다. 헉헉 숨만 몰아쉬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품에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훈련시간이었다. 마음이 약해져 은비를 안아주는 순간 실전과 같은 훈련은 영원히 끝이었다. 당장은 괴롭고 힘들어도 버티고 이겨내야 강해질 수 있었다.
아영에게 눈짓을 보내자 화들짝 놀란 아영이 부리나케 뛰어와 정화 스킬로 은비를 치료했다.
사실 포스를 사용하지 않고 힘과 속도만 이용해 배를 찌른 것이라 정화 스킬은 효과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플라시보 효과가 있어 정신적인 안정은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어서 일어나.”
누워있는 은비에게 다가가 보호구 위에 손을 대고 포스를 흘려보내며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충격을 받은 근육이 금세 풀어지며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누구든 겁먹고 얼굴을 가리거나 눈을 감으면 지금처럼 호되게 맞을 줄 알아. 알았어?”
“네에~”
“대련의 목적은 나를 이기라는 뜻이 아니야. 내 공격을 최대한 막고 피하고 충격을 줄이라는 거야. 그럼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게 목적이야.”
은비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다른 아내들 몰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미안한 마음과 괜찮냐는 뜻이 담긴 행동으로 지금은 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 눈을 정확히 바라봐. 그럼 움직임이 보일 거야.”
“알았어.”
“똑같이 할 테니까 막아봐.”
거리를 10m를 벌린 다음 아까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한 대 맞은 게 효험이 있는지 이번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옆으로 살짝 움직이며 푸지오를 휘둘렀다.
푸지오가 다가오기도 전에 방향을 살짝 틀어 어깨로 은비의 가슴을 툭 밀었다. 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피지컬수치가 워낙 차이가 커 살짝 부딪쳤는데도 1m나 붕 떠올라 바닥에 떨어졌다.
“쿵~”
“피하는 건 잘했지만, 방어자세가 완전히 풀렸잖아. 자세를 낮게 잡고 왼팔로 얼굴과 가슴을 보호해야지 그렇게 칼만 휘두르면 다야?”
“윽~”
“다음은 소연!”
옆에서 정면 공격을 두 번이나 본 소연은 비교적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들어가자 단번에 자세가 무너지며 허벅지를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이후에도 3번이나 더 바닥을 구른 다음에야 서인에게 바통을 넘겨줄 수 있었다. 소연보다 체력도 낮고 겁도 많은 서인은 2번 만에 업혀 나갔고, 상아는 소연과 같은 3번을 쓰러진 다음에야 아영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눈보다 기감을 사용해.”
“네!“
아영을 가운데 두고 한 바퀴 천천히 돌다가 다리를 노리고 잽싸게 다가갔다. 목검으로 다리를 후려치자 뒤로 재빨리 물러나며 푸지오로 내 팔을 노렸다.
팔을 움츠려 단검을 흘리며 왼손 정권으로 가슴을 찔러갔다. 그러자 왼손으로 정권을 막으며 몸을 뒤로 날려 충격을 해소했다.
“잘했어.”
칭찬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아영을 따라붙었다. 주먹을 팔을 가볍게 튕기자 양팔을 엑스자로 교차해 충격을 완화했다.
주먹을 펴 수도로 바뀐 다음 교차한 팔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가슴을 손끝으로 살짝 찔렀다.
“팍!”
“윽!”
짧은 비명과 함께 아영이 뒤로 붕 떠올라 바닥에 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역시 기감력을 터득한 아영이 내 움직임을 정확히 잡아내며 연속적으로 공격을 피하고 막아냈다.
쓰러진 아영의 가슴을 포스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상처를 풀어준 다음 손을 잡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선 잘했다고 엉덩이를 토닥이고 싶었지만, 모두 상태가 엉망이라 아영만 칭찬할 수 없어 급히 언니들 곁으로 돌려보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오늘 훈련에 대해 생각하며 명상을 시작해.”
“휴우~”
악몽 같은 대련 시간이 끝나자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대련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이 시간을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매일 레드몬과 싸워야 하는 걸 생각하면 대련 시간이 더 많아야겠지만, 너무 과도하면 뒷감당이 안 돼 한 번으로 끝내야 했다.
“오늘도 아영이 덕분에 피로가 확 풀리네. 고마워!”
“아니에요.”
훈련이 끝나면 언제나 아내들과 함께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가 피로를 풀었다. 오늘도 아영이 목욕물을 정화수로 바꿔놓아 피로가 순식간에 풀렸다.
목욕물을 모두 정화수로 바꿀 능력도 없고 마시는 것보다 효과도 떨어지지만, 희석된 물이라도 일반 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효능이 있어 피로를 풀기엔 과분할 지경이었다.
파르쿠르와 프리러닝은 2000년 이후에 나온 운동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 작품 후기 ============================
항상 변하지 않는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