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2 복혼제(Polygamy) =========================================================================
122. 복혼제(Polygamy)
“하아~ 하아~ 오빠 아직 대답 안 하셨어요.”
“키스가 답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으음~”
다시 내 입술이 닿자 기분 좋은지 상아는 야릇한 비음을 토해내며 눈을 꼭 감고 목에 매달렸다.
상아의 부드러운 혀가 입안에 들어오자 달콤한 사과향이 온몸에 퍼지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내들의 향기는 마약과도 같아 틈만 나면 입술을 찾고 혀를 빨게 했다. 소연은 박하향이 났고, 은비는 초콜릿 맛이 났다.
아영은 오렌지 맛이 났고, 서인은 레몬향, 한숙은 포도향이 났다. 6명 모두 맛이 달라 키스할 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 때문에 가끔은 세상 모든 여자의 입술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으로 모든 여성이 향기를 풍겨내는 건 아니었다.
절반 이상은 심한 구취를 풍겼고, 그 중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사람도 있었다.
달걀 썩은 냄새부터 암모니아 냄새, 썩은 고기 냄새, 고기 상한 비린내, 방귀 냄새, 시궁창 냄새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취를 풍겼다.
2,000년 된 탈무드에 ‘남편의 입 냄새를 참고 살라는 것은 여인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이다. 이혼을 찬성한다.’라는 문구가 등장할 만큼 구취는 심각했다.
향기를 풍기는 여성도 많지만, 치약이나 가글 제품에서 나는 인위적인 향기라 내가 느끼는 감미로운 맛은 찾을 수 없다.
아내들처럼 향기가 나는 건 능력자가 가진 뛰어난 신체 탓으로 입안이 항상 청결하고, 치주염 등 구강 내 질환이 없고,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없어 박테리아가 증식하지 못해 냄새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각기 향기와 맛이 다른 것으로 이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능력자만의 신비 중 하나였다.
“나중에 일 많이 시켰다고 투덜대기 없기야!”
“그럼요! 대신 하루에 키스 열 번 해주세요.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죠?”
“열 번이 아니라 백 번도 해줄게. 원하면 천 번도 해줄 수 있어.”
“헤헤헤~ 저야 온종일 오빠와 입 맞추고 싶지만, 그건 안 돼요. 언니들에게도 혼나고, 아영이에게도 혼날 거예요.”
“알게 뭐야! 나만 좋으면 되지.”
“정말이죠? 은비 언니에게 일러도 되는 거죠?”
“흐흐흐~ 상아야! 오빠 사랑한다고 했잖아. 오빠 죽이려고 그러는 거야? 은비 알면 온몸에 멍들 때까지 꼬집는 거 알잖아.”
“꼬투리 잡혔으니까 앞으로 더 잘하세요. 아셨죠? 헤헤헤~”
「역시 여자는 다 여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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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1일 미국 뉴욕주 지방연방법원이 캐리 피셔의 손을 들어줬다.
1991년 3월 17일 미국 뉴욕 주에 거주하는 여성 능력자 캐리 피셔(Carrie Fisher)는 5명의 일반 남성과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캐리 피셔의 결혼식은 생방송으로 미국 전역에 방송될 만큼 세계적 관심을 끌며 각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남성 능력자 중 2명 이상의 여성과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일은 많이 있던 일로 그동안 논쟁거리가 된 적은 없었다.
캐리 피셔가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된 건 여성 능력자 중 최초로 공개석상에서 그것도 무려 5명의 남성과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결혼식 후 곧바로 혼인신고를 했고 뉴욕주는 복혼(Polygamy)이란 이유로 캐리 피서와 5명의 남자가 신청한 혼인신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캐리 피셔는 자신의 결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뉴욕주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일로 조심스럽게 논의하던 일처다부제와 일부다처제가 수면으로 급부상하며,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2년간의 긴 공방 끝에 뉴욕주 연방지방법원은 이들의 결혼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캐리 피셔가 승소하자 미국 내 50개 주와 1수도 구에서 복혼 소송이 잇따랐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송을 제기한 사람 중 능력자는 거의 없었고 대다수가 일반인이었다.
일반인 중에서도 그동안 부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숨죽여 살던 여성들이 자신과 아이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에 뛰어든 경우가 가장 많았다.
또한, 배우자를 둔 남성들도 숨겨둔 젊은 부인을 자신의 처로 인정해 달라며 소송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동거금지령으로 수세에 몰렸던 근본주의 모르몬교도들이 한꺼번에 소송에 뛰어들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근거지로 하는 모르몬교(Mormonism)는 대표적인 일부다처제 종교로 교도가 400만 명이 넘었다.
이들의 성경인 모르몬경엔 여성이 복혼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이 그녀를 멸하실 것이다.’라고 되어있어 초장기 모르몬교도들은 대부분 일부다처제로 살았다.
하지만 주류계 모르몬교(LDS)가 법률 문제로 복혼을 포기하며, 복혼을 따르던 근본주의 모르몬교(FLDS)들은 심한 박해를 당했다.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는 33명의 부인을 가졌고, 2대 총회장인 브리감 영은 55명, 3대 총회장인 죤 테일러는 15명, 4대 총회장 윌포드 우드럽은 10명, 5대 총회장인 조셉 에프 스미스는 5명의 부인을 거느렸다.
미국은 연방법이 우선이라 유타주가 근본주의 모르몬교의 손을 들어줄 경우 모르몬교는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었다.
미국에서 캐리 피서가 승소하며 일처다부(Polyandry)와 일부다처(Polygyny)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 매우 격렬했다.
여성의 발언권이 강한 유럽을 중심으로 복혼제에 대해 극렬한 비난이 쏟아졌고, 아랍과 남미,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 아시아는 유럽과 반대 찬성하는 분위기 더 팽배했다.
복혼제의 가장 큰 화두는 종교적·관습적 문제가 아니라 능력자의 수를 늘리는 것에 있었다.
부모가 레드몬이면 자식도 레드몬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능력자와 능력자가 결혼해도 100% 능력자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복수혼을 고집하는 이유는 배우자 중 남성이 능력자일 경우 최소 두 배 이상 능력자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이슬람국가와 미국을 비교·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능력자 증가율이 미국보다 이슬람국가가 1.5배나 높았고, 일부 연구소에서 진행한 대리모 실험에선 평균보다 최소 2배, 최대 3배나 많은 아이를 잠능자로 얻었다.
이 때문에 복수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말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말이 좋아 복수혼이지 일처다부제보단 일부다처제가 압도적으로 많을 게 확실해 여성들의 반대가 심해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역시 일본이야! 기다렸다는 듯이 처리하네.”
“판결이 나자마자 법안을 상정하고 통과시켰어. 판결이 어떻게 날지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봐야지.”
“판사가 일본계 미국인이라 미리 알려줬나?”
“그럴 수도 있지. 일본으로선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결과니까.”
캐리 피셔가 승소하자 민주주의 국가 중 일본이 가장 빠르게 일부다처제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고, 단 하루 만에 법이 통과됐다.
우리보다 능력자 수는 많지만, 인구수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한참 적은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사무라이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능력자인 사무라이는 최소 100명에서 최대 500명의 여성을 의무적으로 거느리고 잠능자를 생산했다.
덕분에 최근 2~3년 사이에 신규 잠능자가 2배로 늘어나며 일본 정부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좋아 부인이지 여성을 대리모로 사용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라 전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캐리 피셔의 손을 들어주자 얼씨구나 하고 법을 상정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자신들의 치부를 덮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바뀔까?”
“우리도 조만간 논의하겠지. 세계적 흐름이 있으니까.”
“우리나라 정치인은 시간 끌기와 탁상공론이 뇌에 탑재돼 있어 빨라도 올해 안엔 힘들 거야.”
“좀 늦어지면 어때. 천천히 해도 상관없잖아.”
“늦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이놈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일본은 능력자 수를 늘리겠다고 저 지랄을 떠는데, 이놈들은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것만 신경 쓰지 국익은 신경도 안 쓰잖아.”
일본이 복혼제를 통과시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음이 조급해지자 잘못도 없는 정치인들까지 싸잡아 욕하며 언성을 높였다.
작년 대통령 선거를 치른 대한민국은 2월 25일이 돼야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다. 정권이 출범해도 산적한 일이 많아 3월 안에 논의하긴 사실상 힘들었다.
3월이 아니라 상반기 안에 논의만 해도 다행이었다. 복혼제를 논의한다 해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치권이 대립하고, 지지고 볶으면 정말 다음 정권으로 넘길 수도 있었다.
“지홍아! 나뿐만 아니라 한숙 언니, 서인 언니, 은비, 아영이, 상아 모두 복혼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렇게 아끼며 사랑하며 같이 사는 게 중요하지 호적에 이름 올리는 게 뭐가 중요해? 그건 형식일 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웨딩드레스가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데, 남편이 돼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생각할 순 없어. 웨딩드레스를 입는 시간은 여자에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자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는 시간이야. 그런 의미 있는 시간을 지켜주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우리끼리 해도 되잖아.”
“몰래 숨어서 하고 싶지 않아.”
“그럼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하면 되지.”
“물론 그래도 되지. 하지만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쁘고 성대하게.”
“세상에 초라한 결혼식은 없어. 화려하다고 예쁜 것도 아니고, 성대하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야. 결혼식은 앞으로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이야. 남들에게 보여주려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나는 제대로 해주고 싶어.”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우린 언제나 네 뜻에 따를 거니까.”
“고마워!”
“대신 마음을 조금만 느긋하게 가져. 내년이 안 되면 그다음 해에 하면 되는 거야, 그때도 안 되면 또 기다리면 되는 거고. 앞으로 오랜 시간을 같이할 건데, 조급해할 이유가 없어.”
“알았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해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가족도 없는 전쟁고아에게 결혼식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꿀 수 없는 사치였다.
지금이야 웨딩드레스는 누구나 입는 흔하디흔한 결혼식 예복이지만, 60년대만 해도 전통혼례만 치러도 대단한 일이었다.
대부분 물 한 그릇 떠다 놓고 절 한 번 하고 끝내거나, 형편이 좀 나으면 읍내 사진관에서 사진 한 방 찍는 게 전부였다.
판자촌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부모님은 사진 찍을 돈도 없어 결혼사진도 없었다.
결혼식 사진만 없는 게 아니라, 어머니 사진도 없고, 아버지 사진도 없고, 함께 찍은 가족사진 한 장 없었다.
평생 공원조차 놀러 가보지 못한 우리 가족은 흑백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자상한 남편, 다정다감한 남편, 화내지 않는 남편, 언제나 웃어주는 남편 그리고 근사하고 멋진 결혼식을 선물해주는 남편이 되고 싶었다.
내가 결혼식에 집착하는 이유가 아내들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머니가 못해본 일을 내가 대신해 한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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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