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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21화 (121/505)

00121  주목(注目)  =========================================================================

121.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첩자가 12명, 변절자가 32명, 공금과 물건을 빼돌린 놈이 33명. 합쳐서 77명이 걸렸는데, 이게 적은 거야?”

“미래 레드포스와 안전보장국 직원이 1,950명이고, 미래 레드몬 직원이 176명이야. 2,126명 중 77명이면 3.62%밖에 안 되는 거야. 우리나라 부패지수를 생각하면 없는 거나 다름없어.”

“이건 도덕적·정신적 타락지수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야. 정보를 빼돌리고 팔아먹었단 말이야. 이게 얼마나 심각하진 이해가 안 돼?”

“믿을 수 있는 사람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지?”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알지.”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야. 그런데 우리는 77명을 뺀 2,049명이 우리를 믿고 따르고 있잖아. 이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어?”

“오빠!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했어. 원래 이런 성격 아니잖아. 원래 성격대로면 화내고 그래야 맞는 거 아니야?”

“빼간 정보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빼돌린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뭘 흥분까지 그래. 웃어넘겨야지. 안 그래?”

“완전 맛이 갔어. 제정신 아니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어쩌면 안뜰지도 모르겠네.”

“그런가? 하하하~”

먼저 상아가 자필로 써낸 글을 검사해 의심스러운 직원들을 추려냈다. 그런 다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한 명씩 불러내 상아의 입회하에 면담을 진행했다.

여기서도 계속 거짓을 말하는 직원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만나 살기의 짜릿함을 맛봐야 했다.

그렇게 찾아낸 첩자와 변절자, 기생충이 무려 77명이었다. 은비에게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사실 충격이 큰 상태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괜찮은 척 쇼를 한 것뿐이었다.

나와 소연이 면접을 통해 결격 사유자와 첩자를 걸러낸 만큼 변절자가 아무리 많아도 5명 내외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생각보다 10배나 많은 77명이 걸려들었다. 첩자와 변절자 몇 명만 있어도 조직이 와해될 수 있었고, 돈과 물건을 빼돌리는 쥐새끼 한두 마리만 있어도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린 10명도 아니고 무려 77명이 걸려들었다. 방위와 안보를 맡은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국장이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내게 있었다. 나와 소연의 능력이 떨어져 필터링이 제대로 안 돼 첩자가 12명이나 끼어있었다.

대다수 변절자는 이들에게 포섭된 동료들로 내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또한, 변절자가 많다는 것은 대원들의 어려운 사정을 살피지 못한 결과로 모든 권한을 가진 내 책임이었다.

군주는 무치(無恥)라는 말이 있다. 군주는 어떤 일을 해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로 세상에서 가장 뻔뻔하고 부끄러운 후안무치(厚?無恥)한 말이었다.

주로 쓰레기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말로 공약을 남발해 놓고 지키지도 않고, 자신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봐도 책임지지 않는 개잡놈들이 좋아하는 말이었다.

난 이 말을 가장 싫어했다. 책임자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책임져야 했다. 그게 책임자이자 대표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었다.

혜택은 자신이 받고, 책임은 남에게 전가하고 싶다면 그건 책임자가 아니라 그냥 양아치일 뿐이었다.

“미래 레드포스 대원과 안전보장국 요원들의 가족을 모두 나진시로 이주해야 합니다. 이들은 나진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추세력으로 직계가족이 외부에 있는 한 끊임없이 회유와 협박을 당해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들은 나진시의 보안과 방위 업무를 맡은 대원들로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나진시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나도 김도형 대장님과 같은 생각이야! 변절자 20명 중 절반이 정부와 기업의 협박에 넘어가 우릴 배신했어. 이건 대원들 전체가 위험에 노출됐다는 뜻이야. 최대한 빨리 가족들을 나진시로 이주시켜야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거야.”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국장, 소연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대원들의 직계가족 모두를 나진시로 불러들이자고 입을 모았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큰일을 도모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과 그 주위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직원들의 가족을 돌보는 일이 곧 제가(齊家)였다.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일하라고 해야지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내게 충성하라고 하는 게 진정한 후안무치였다.

“어디가 좋겠어?”

“초동이 바닷가라 경관이 가장 좋아. 이곳에 대원들과 가족들이 거주할 예쁜 단독 주택으로 지으면 괜찮을 것 같아.”

“공항 바로 위라 시끄러울 텐데!”

“그럼 공항을 항동 아래 명호동으로 옮기고, 초동 전체를 직원들 주택과 보육시설, 교육시설로 바꾸면 돼.”

“활주로 공사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이제 겨우 주변 정리만 끝난 상태라 옮겨도 문젯거리가 될 건 없어. 명호동이 터도 훨씬 넓어 공항 건설도 수월하고, 그쪽으로 옮기면 소음도 적을 거야.”

“얼마나 걸려?”

“우리 집처럼 블록 조립식으로 만들면 얼마 걸리지 않아. 늦어도 4~5월이면 모두 입주할 수 있어. 학교와 도서관, 마트 등이 문젠데, 이 부분도 인력을 최대한 투입해 빨리 완성할게.”

우린 의사결정 과정이 매우 단순해 1분 만에 수만 명이 살 집과 각종 편의시설을 어디에 지을지 결정했다.

일반 기업이나 정부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로 최소 몇 년은 걸러야 집터를 정하고 어떤 시설물을 지을지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린 여러 사람 모아놓고 입 아프게 떠들 필요 없이 나와 소연만 상의하면 끝이었다.

나의 무책임하고 단순무식한 결정으로 엉망이 되버린 KM 건설 설계담당자는 온종일 씨발~ 씨발~ 거리며 화를 내겠지만, 없는 곳에선 임금도 욕도 하는데 나를 욕하는 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혼란스럽지 않게 대원들에게 잘 설명하세요. 당장은 좀 불편하겠지만, 1~2년만 지나면 괜찮을 겁니다.”

“회장님! 사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전원주택은 부자가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일로 가난한 서민인 대원들에겐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이 자기 집을 갖는 게 소원으로 누구나 상상 속에선 멋진 집을 그리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 코딱지만 한 집도 사는 게 너무 어려웠다.

꿈에 그리던 집을 무료로 지어준다고 하자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국장이 아이처럼 기뻐하며 배꼽 인사로 감사를 표했다.

“물질적인 건 내가 채워줄 수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국장이 채워줘야 합니다. 두 가지 모두 만족해야 대원들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습니다. 이점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이번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니 두 분은 자책하지 마시고, 부하 직원들 사기 떨어지지 않게 잘 다독이세요. 그리고 조만간 나에 대한 처분은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시련은 있기 마련이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시련을 이겨내고 도약하면 시련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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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야! 고생 많았어!”

“한 일도 없는데 고생이라니요? 창피하게 그러지 마세요.”

“첩보원 심문도 네 덕분에 시간을 대폭 줄였고, 첩자와 변절자 색출도 너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어. 네 덕분에 큰 우환을 제거했는데, 한 일이 없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남 일도 아니고 오빠 일을 조금 도운 거예요. 고생했다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져서 싫어요.”

“미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오빠! 부담 갖지 마시고 아무 일이나 막 시켜주세요. 오빠가 시키는 일은 뭐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요. 단, 고맙다는 말을 하면 안 돼요! 그건 남에게 하는 말이지 사랑하는 가족에게 하는 말 아니에요. 아셨죠?”

“알았어.”

상아의 손을 잡고 붉게 물든 산책로를 걸었다. 첩자와 변절자를 처리하고, 미국, 중국 등이 침투시킨 첩보원들을 세뇌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상아에겐 미안한 마음이 컸다. 토굴을 벗어난 지 이제 한 달로 한창 적응할 시기에 세상의 더러움과 잔인한 면만 잔뜩 보여주고 있었다.

돌봐준다고 해놓곤 실컷 이용만 한 것 같아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상아의 어깨를 팔로 감싸 품에 바짝 끌어당겼다.

“불편하거나 힘든 일 없어?”

“없어요. 다들 자매처럼 잘해주잖아요. 그리고 오빠도 옆에 있고요. 전 너무 행복해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헤헤헤~”

“그럼 다행이고.”

“오빠! 전 오빠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요?”

“그래?”

“네! 이번 일로 제가 마음이 상했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잖아요. 그렇죠?”

“난 네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요. 그렇지 못했다면 4년이나 혼자 토굴에서 버티지 못했어요.”

“그것과 이것은 달라.”

“다르지 않아요.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거 다를 것이 없어요.”

“흠~”

“토굴 속에 있던 시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말할 사람도 없고, 아파도 간호해줄 사람도 없고, 죽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는 어두운 토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건 두려움과 외로움의 연속이었어요. 오빠도 혼자 지내봐서 알잖아요. 사람이 얼마나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지는지.”

“알지!”

나 역시 혼자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상아만큼 잘 알고 있었다. 6년간 강릉에서 혼자 살며 미친 듯이 뛰어다닌 건 외로움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전 지금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요. 언니들과 친구, 동생들 그리고 오빠까지 제가 토굴에서 그리던 모든 걸 한꺼번에 다 얻었어요.”

“후유~ 그렇다 해도 고문하는 걸 보여주고, 거짓이 가득한 글을 읽게 하고... 돌봐준다고 해놓고 널 괴롭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야.”

“오빠 아니었으면 전 아직도 토굴 속에 혼자 웅크리고 있었어요. 오빤 제 생명의 은인이자 절 세상 밖으로 인도해준 구원자예요.”

“너무 과분한 표현이야.”

“사실이에요! 오빤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전 오빠 없었으면 이미 죽었어요.”

“.......”

“오빠! 저를 괴롭히는 건 오빠가 괴로워하고 절 멀리하는 거예요. 그럼 전 살아갈 희망이 없어요. 절 사랑하고 아낀다면 미안해하지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일이든 시키세요. 그것이 절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항상 웃음 띤 상아의 초롱초롱한 눈이 오늘따라 더욱 푸르게 빛났다. 마음을 송두리째 잡아끄는 푸른 눈의 마력에 빠져 상아를 품에 안고 정신없이 입술 빨아댔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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