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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16화 (116/505)

00116  문정수  =========================================================================

116.

“진짜 아픈 거야?”

“밤새 가위에 눌려 땀을 한 말도 더 쏟아냈어. 일어서는 것은 고사하고 앉아있지도 못해.”

“낄낄낄~ 아주 쌤통이다.”

“그것보다 더 재밌는 건 놈이 데리고 온 여성 능력자가 오줌을 얼마나 많이 싸는지 오줌으로 샤워했어. 몸이 아파 씻지도 못할 텐데 지린내까지 진동해서 죽을 맛일 거야. 흐흐흐~”

문정수가 오줌으로 샤워한 걸 말해주면 모두 통쾌해 깔깔대고 웃을 줄 알았는데, 웃는 사람이 달랑 나 하나였다.

다들 미간을 좁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난 너무 웃겨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줌?”

“응! 악몽을 꾸면서 계속 오줌을 쌌어. 참 이상한 여자야!”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심하다니?”

“여자에게 수치심을 줬잖아.”

“여성 능력자가 오줌을 쌀 줄 몰랐어. 그것도 그렇게 엄청나게 많이 쌀 줄은 생각도 못했지. 다른 사람들은 땀을 흘리는데, 그 여자는 땀 대신 오줌을 싸...”

“그만해~”

문정수가 데려온 여성 능력자는 능력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창부(娼婦)로 이름은 정나려였다.

보통 경호원이란 이름으로 고용돼 짧게는 2~3일, 길게는 한 달 이상 붙어 다니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입질만 하는 고급 창부였다.

대전 포스 학교를 다니다 나이 18살에 중퇴하고 몸을 팔기 시작해 10년간 거쳐 간 남자가 족히 1개 사단은 넘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1개 사단이 안 된다고 해도 거쳐 간 남자가 엄청나게 많은 노류장화(路柳墻花)라는 뜻으로 화대가 쌀 것 같지만, 화사한 미모와 늘씬한 몸매, 언제나 처녀 같은 싱싱한 피부로 찾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정치인과 판·검사, 문정후 같은 재벌 2·3세 등이 주요 고객으로 하룻밤 화대가 1,000만 원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오빠! 그 여자는 이제 내버려둬.”

“매일 나쁜 놈들하고 붙어 다니는데, 이 기회에 정신 좀 차리게 해야지.”

“몸 팔고 싶은 여자는 세상에 없어. 보조사냥꾼이 되고 싶은 사람이 없듯이.”

“하지만 그 여자는 경우가 틀리잖아. 하룻밤 화대가 1,000만 원이야. 어떻게 보조사냥꾼하고 비교해.”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할 수 없이 하는 거야. 정나려도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그걸 우리가 알려 하지 않듯이 우리도 그녀의 사생활과 직업을 손가락질할 이유는 없어.”

“알았어.”

은비 말을 듣고 순간 내가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몸 파는 창부란 이유만으로 난 그녀를 깔보고 무시했다.

그리고 은비의 말처럼 왜 몸을 파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문정수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같은 무리로 싸잡아 욕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은 기득권층이 하층민의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속셈으로 퍼트렸을 공산이 크지만, 본질은 맞는 말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어떤 일을 해도 똑같이 대우받아야 마땅했다. 남에 집에서 청소를 하던, 오물을 치우던 노동의 대가는 같은 것으로 양복을 입고 펜대를 굴린다고 특별한 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매춘은 남성들의 성욕 해소를 통한 사회의 안정에 꼭 필요한 직업으로 인정받았다.

로마 가톨릭교회 등 서방 기독교에서 교부(敎父)로 존경받는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부부간의 성교를 제외한 모든 성행위는 그 자체로 죄악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남성들의 성욕은 끝이 없고 여성은 남성을 끊임없이 유혹하기에, 만약 적절한 배출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세상은 온통 동성애, 수간, 간통, 강간 등의 더 큰 악으로 가득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창녀는 그녀의 직업을 버리지 않는 한 교회로부터 추방되어야 마땅하지만, 매춘 그 자체는 사회의 성적 안정을 위한 필요악으로 간주하여 매춘부를 '불완전한 세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규정했다.

이 또한 순결과 절제를 사회적 규범으로 설정하며 매춘부를 사회악으로 규정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없어서 안 될 직업으로 인정한 것이다.

「나도 그새 배가 불렀어. 거지가 돈 좀 만졌다고 창녀를 우습게 보다니... 이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또는 굵은 밧줄)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했나 보네. 참으로 한심하다!」

악몽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몸살감기약을 먹이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죽을 먹이는 등 다양한 처방을 내렸지만, 전혀 차도가 없자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사나 구토, 복통 등 식중독이나 독과 관련된 증상이 없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절반 이하라 음식에 장난을 쳤다고 우길 수도 없어 속으로만 의심할 뿐 대놓고 항의하진 못했다.

다시 밤이 되자 어제보다 살짝 살기를 높여 장세룡과 조득렬, 문정수를 괴롭혔다.

전날 식은땀을 너무 많이 흘려 나올 땀이 없는지 땀이 줄어든 대신 공포에 질려 눈이 살짝 돌아가고 입에 거품까지 물었다.

악질 3인방을 손본 후 전날 무탈했던 놈들 중 절반인 15명과 하급 피지컬리스트 2명에게 살기를 투사했다.

15명은 전날 30명 수준으로 살기를 살짝 투사했고, 하급 피지컬리스 2명은 살기의 양을 대폭 늘려 반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조용히 누워있게 해줬다.

어제 오후부터 대원들에게 시비를 걸고 심기를 긁어대며 분란을 조장해 그냥 둘 경우 사고가 날 수도 있어 확실하게 손을 썼다.

“오늘은 증상이 더 심해져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음식도 못 넘기고,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네.”

“의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의사 말로는 공포신경증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네.”

“네? 몸살감기에서 갑자기 공포신경증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잘 모르겠네. 헛것이 보이는지 사람이고 사물이고 보이는 건 모두 무서워해 공포신경증이라고 말하는 것 같네.”

공포신경증(恐怖神經症)은 위험이 없는 줄 알면서도 특수한 대상, 상황 등에 대해 심한 공포를 느끼는 증상으로 심리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이상 증세를 말했다.

“장세룡과 조득렬도 같은 증상입니까?”

“문정수보다는 상태가 덜해 사람을 보고 기함을 할 정도는 아니네. 하지만 이들도 기운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네.”

“추가로 발생한 환자들은 상태가 어떻습니까?”

“전날 심한 몸살감기에 걸린 사람들하고 증상이 비슷하네.”

“30명은 차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이제 괜찮은 겁니까?”

“많이 좋아졌네.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씩 돌아다니고 음식도 잘 섭취하고 있네.”

“다행이군요.”

“이해할 수 없는 건 문정수가 데려온 능력자 세 명도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는 것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능력자가 감기에 걸리거나 아파 몸져눕는 일은 매우 드문 일 아닌가.”

“셋 다 심한 오한이 들었습니까?”

“그건 아닐세. 첫날 아팠던 여성 능력자는 하루 만에 멀쩡해졌네. 멀쩡하던 남성 능력자가 아침부터 문정수처럼 공포신경증을 앓고 있네.”

“하아~ 정말 특이한 일이군요. 의료진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하루만 더 있게 해주게. 의사 말로는 지금 움직이면 몸에 무리가 가 큰 탈이 날수도 있다고 했네.”

“증세가 심하면 헬기로 이송하면 되잖습니까?”

“내일 아침까지 호전될 기미가 없으면 그러려고 하네.”

“알겠습니다.”

어깨가 축 처진 김갑수가 돌아가자 강승원 국장이 서재로 들어왔다. 놈들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사냥부터 공사까지 모든 일이 엉망이 됐다.

놈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건물을 올리고 도로 닦을 순 없어 공사는 전면 중단됐고, 우리가 자리를 비운 틈에 사고가 날 수도 있어 사냥도 3일째 휴업상태였다.

그렇다고 놈들이 돌아갈 때까지 계속 놀 순 없어 미뤄두었던 변절자 색출 작업을 시작했다.

“근무하며 느낀 점과 개선할 점, 건의 사항 등을 자필로 적어내도록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상아야! 내가 검토해 보고 의심 가는 직원이 있으면 강 국장에게 바로 알려줘!”

“네!”

“아영이도 상아 도와주고.”

“네. 오빠!”

상아와 아영이 서류 더미를 들고 서재를 나가자 강승원 국장이 최근 정세에 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청와대는 장세룡이 나진시에 들어온 걸 모르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알고 있지만, 보고하진 않을 겁니다. 장세룡의 행위는 치외법권 지역을 침탈한 명백한 불법행위로 이를 알면서 보고하지 않은 게 밝혀지면 문책을 당할 수 있어 끝가지 모르쇠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유 그룹 문일권 회자도 모르고 있습니까?”

“평소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 아직 본사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째 자리를 비웠는데 보고를 하지 않아요?”

“무단이탈로 몇 번 혼이 난 이후엔 직원들도 입을 닫고 있어 문일권 회장이 직접 챙기기 전엔 알 수 없을 겁니다.”

“아버지 후광만 없으면 굶어 죽기 딱 알맞은 놈이군요.”

“어느 기업, 어느 국가든 이삼 대만 넘어가면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라를 세우고 기업을 일군 시조와 창업주가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해도 자식까지 영명하다는 보장은 없다.

똑똑할 가능성은 있지만 똑똑한 것과 현명한 것은 천양지차였고, 부모의 후광 때문에 아이를 망치는 경우도 많아 부모만 한 자식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2~3대 만에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많았고, 부실 경영으로 빚더미에 앉아 공중 분해되는 회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일로 부모의 현명함과 뛰어난 자질을 후손이 모두 물려받으면 우리 같은 하층민은 평생 종노릇만 하고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라마르크가 제안한 용불용설(用不用說)이 현실화하면 상위 1%는 뛰어난 자질을 계속 합쳐 신이 되고, 99%는 점점 뒤처져 노예로 살게 될 것이었다.

“오늘 밤 문정수와 장세룡, 조득렬을 확실하게 손볼 계획입니다. 그럼 내일 아침 헬기를 이용해 원산이나 서울로 놈들을 이송할 공산이 큽니다.”

“놈들의 상태가 알려지면 회장님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겁니다.”

“의심은 하겠지만, 물증이 없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정부는 그렇다 해도 문일권 회장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 봐야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놈이 할 수 있는 일은 경제적인 부분인데, 놈과 우리가 섞인 것도 없고 KM 그룹을 압박할 수준도 안 되고, 기껏해야 암살이나 계획하면 다행이겠지요.”

“대유 그룹에 감시 인원을 늘리겠습니다.”

암살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강승원 국장의 미간이 깊이 팼다. 내가 칼 맞아 죽을 염려가 없다 해도 암살자가 나선시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정보와 보안, 범죄 수사 권한을 가진 강승원 국장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비디오는 준비됐습니까?”

“짜깁기가 끝나 넘겨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오늘 중으로 대한당 변병석 대표에게 비디오를 넘기세요. 비디오가 대중에 공개되면 나보단 놈들이 더 큰 곤욕을 치를 겁니다.”

“알겠습니다.”

적을 도발할 꼴이지만, 어차피 적은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날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가 싸울 마음이 없다고 빌고 머리를 숙이면 그들이 날 용서하고 받아줄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으로 세상은 머리를 숙일수록 더 밟고 괴롭히고 빼앗는 곳이었다. 스스로 지킬 힘을 갖춰야 상대도 나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동정 따윈 없었다. 잡아먹히느냐? 잡아먹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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