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110화 (110/505)

00110  손상아  =========================================================================

110.

배가 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다이어트로 한두 끼 굶고 배고픔을 안다고 떠드는 년·놈은 옥수수를 다 털어내야 한다.

사람이 굶어서 죽는 걸 아사(餓死)라고 한다. 영양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신체기능이 정지해 사망하는 것으로 보통은 이 단계까지 가기도 전에 간·폐·위 등 주요 장기가 손상돼 사망하거나 면역력 저하로 병에 걸려 죽게 된다.

배고픔은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 가장 끔찍한 고통으로 아사는 그 어떤 죽음보다 참혹했다.

우리 몸은 의도적으로 고통을 줘도 신체적으로 한계가 있어 오래가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아사는 음식을 먹지 않고 3주~4주까지 버틸 수 있어, 그 동안 몸의 지방과 근육, 내장이 분해되며 끔찍한 고통을 안고 죽어간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초근목피(草根木皮) 기본이었고, 진흙과 흙, 벌레, 쥐, 사람까지 못 먹는 게 없었다.

과거 대흉년이나 오랑캐 침입 등이 겹치면 차마 자기 자식은 못 잡아먹어 이웃 자식과 바꿔 잡아먹기도 했다.

배고픔은 이렇듯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었다. 다른 죽음과 달리 고통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극한을 볼 수 있는 것이 아사였다.

오죽하면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지경으로 강한 신념과 대의를 가진 사람도 며칠 굶으면 고작 밥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고 싶어졌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 그리고 한 번에 너무 많으면 배탈 날 수도 있어. 음식 많으니까 적당히 먹고 좀 이따가 또 먹어.”

“감.감사.합니다.”

말문이 트이는지 점점 매끄럽게 말을 이어갔다. 단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을 잘 알아듣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든 후 혼자가 된 것 같았다.

“토굴에서 쭉 혼자서 지내 온 거야?”

“네!”

“언제부터?”

“이번 겨.겨울이 네 번째예요.”

“4년이 혼자 지낸 거야?”

“네!”

“상아야!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 우리 사람 괴롭히는 그런 사람들 아니야. 안심해도 돼!”

소연이 같이 가자고 말하자 소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소녀의 눈도 소연 눈처럼 내 속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우리랑 같이 가자! 내가 널 돌봐줄게!”

“정말요?”

“응! 내가 싫지 않다면 끝까지 돌봐줄게!”

“알았어요!”

내게 답을 구하는 것 같아 돌봐준다고 하자 소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따라오겠다고 했다.

“잘됐다. 지홍아! 오늘은 일찍 돌아가자. 새로운 식구가 생겼는데 축하해야지.”

“그래!”

상아는 5년 전까지 은덕군에 있던 작은 산촌 마을에서 가족은 물론 백두산 폭발에도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마을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청년이 세 명이나 있어 괴물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해 500명이 넘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 명의 청년 중엔 15살 많은 상아의 오빠도 있어 상아는 항상 공주대접을 받으며 나름 행복을 삶을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레드몬이 점점 불어나며 이들의 삶도 힘겨워졌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숲과 마을은 동물들의 천국이 됐고, 그 속에서 레드몬들이 태어나 빠른 속도로 증식했다.

결국, 상아의 마을도 레드마우스 200마리가 몰려들며 사람 대부분은 그 자리에 죽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상아의 든든한 오빠와 자상한 아빠도 레드마우스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상아는 엄마와 두 언니의 손에 이끌려 정처 없이 도망쳐 이곳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한 달 만에 죽었고, 엄마도 아빠와 오빠, 두 딸의 죽음에 정신적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1년 만에 돌아가셨다.

상아는 그렇게 세상에 혼자 남겨졌고, 운명의 장난처럼 한 달 만에 능력자로 각성했다.

상아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능력자로 각성한 것도 있지만, 아빠가 주워 온 푸른 돌 문스톤 때문이었다.

10년 전 손상아의 아빠는 마을 주변에서 약초를 캐다 시냇가에 떠밀려온 작은 푸른 돌을 주워 집에 가져왔다.

상아는 그 돌을 본 순간 한 눈에 반해 마스코트처럼 한시도 손에 놓지 않고 꼭 쥐고 다녔다.

나이가 들자 그물처럼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고, 덕분에 일주일 동안 산길을 도망쳐 오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스톤의 효과를 안건 멘탈리스트로 각성한 1년 후였다. 상아는 디텍터(Detector)로 레드몬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이때서야 레드몬이 30m 주위에 다가오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가족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항상 마을 안에 있던 상아가 문스톤의 효과를 알 순 없었다.

아빠 덕분에 상아는 목숨을 구했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4년간 홀로 토굴에서 지내며 인간이 버티기 힘든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가 상아를 만났을 땐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멘탈리스트라고 해도 디텍터인 상아는 동물을 잡을 힘도 부족했고, 겨울엔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 풀뿌리로 간신히 연명했다.

더구나 외로움과 가족을 잃은 슬픔이 극에 달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언제 죽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한 달 늦게 우리가 도착했다면 토굴 속엔 이름 없는 가여운 소녀의 시신만 발견할 수도 있었다.

“상아야! 앞으로 엄마, 아빠, 오빠, 언니들이 보고 싶으면 나를 아빠이자 오빠로 생각하고, 소연과 한숙을 엄마라고 생각해. 그리고 은비와 서인을 친언니로 생각하고, 아영은 친구로 아정·아솔·아림이는 동생으로 생각해. 이제부터 우리가 너의 가족이야. 알았지?”

“네! 그럴게요.”

깨끗이 씻고 나온 상아는 깡마른 소녀지만, 본바탕을 감출 순 없어 인형보다 더 깜찍하고 예뻤다.

상아는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에 초롱초롱한 반달눈, 작지만 오뚝한 코, 촉촉한 선홍빛 입술이 조화를 이뤄 소연만큼 예쁘고 아름다웠다.

소연과 상아는 눈이 정말 비슷했다. 사람을 마음을 꿰뚫어 볼 것 같은 깊은 눈은 별이 가득 담긴 것처럼 맑고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앞으로 이 방이 네가 쓸 방이야. 입을 옷도 준비됐으니까 불편하진 않을 거야. 모자라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오빠는 어.어디서 주무시는데요?”

“내방은 3층이야.”

“저도 3.3층에서 같이 잘래요.”

“혼자 있기 싫어?”

“네!”

상아는 혼자 있는 게 두렵고 겁이 나는지 방을 혼자 쓰란 말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4년간 어둡고 좁은 토굴에서 생활한 상아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환경은 좋아졌지만,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도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난 혼자 자는 게 아니야. 소연, 은비, 아영과 함께 자.”

“괜찮아요! 오빠 옆.옆에 있으면 마.마음이 안.안정될 것 같아요.”

“알았어! 3층으로 올라가자.”

내게 상아를 맡긴 소연과 은비, 아영은 새로운 식구를 위해 파티를 준비 중이었다. 상아가 말을 할 때마다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하자 소연은 상아가 날 의지하려는 걸 알고 둘만 있게 자리를 비워줬다.

“이게 뭐죠?”

내손을 꼭 잡은 상아는 처음 보는 TV와 오디오, 전화기, 냉장고, 냉온수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내손을 잡은 상아는 이때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치 친오빠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 되어 아이처럼 손으로 물건을 가리키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상아도 아영과 처제들처럼 TV를 틀어주자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신기함에 매료돼 넋을 놓고 지켜봤다.

북쪽주민들이 TV와 자동차 등 전자제품을 신기해하는 건 30년 넘게 고립되며 문명의 이기(利器)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였다.

화산재로 인해 산업시설이 대부분 파괴되고 원자재를 수급할 수 없어 공장들이 문을 닫으며 북한지역은 차차 원시시대로 퇴화해 갔다.

더구나 가혹한 환경으로 나이든 사람들이 일찍 죽고, 책은 불쏘시개로 사라지며 조선 시대만큼이나 지식이 짧았다.

그나마 상아는 마을 전체가 살아남아 한글과 기초지식을 배울 수 있었지, 대다수는 글자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었다.

“음식 준비하고 있으니까 이거 먹고 배고파도 조금만 참아!”

“네!”

익수영진고를 내밀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입어 쏙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내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상아는 TV를 보는 동안에도 내 옆에 꼭 달라붙어 손을 놓지 않았다. 사람이 얼마나 그립고 아빠와 오빠가 보고 싶으면 이럴까하는 마음이 들어 더욱 마음이 아팠다.

“오빠! 식사하세요. 상아야! 고기 먹자!”

아영의 고기 먹자는 소리에 상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토굴은 좁고 환기가 안 돼 불을 피울 수도 없고, 불을 붙일 성냥도 없어 고기를 구해도 날 것으로 먹어야 했다.

더구나 고기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주식은 풀과 열매였다. 밥도 없이 양념도 안 된 푸성귀를 배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심한 고역일지 난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강릉에 도착한 지 세 달 만에 돈이 떨어져 매일 풀과 열매만 먹었다. 소금도 살 돈이 없어 간도 안 된 고기를 불에 구워 먹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칼과 불이 있어 고기 다듬고 씻어 구워나 먹었지, 칼도 없고 물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상아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생으로 먹어야 했다.

생각할수록 가엽고 불쌍해 마음이 아팠다. 상아는 내가 자신을 걱정하는 걸 아는지 마음이 울컥할 때마다 조용히 내 눈을 바라봤다.

수영장 옆 바비큐 파티장으로 가자 숯불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레드와피티 고기가 맛깔나게 구워지고 있었다.

“아!”

상아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자 상아의 영혼이 저 멀리 하늘로 달아나고 있었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우적우적~”

말할 시간도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접시에 올려놓기 무섭게 입으로 집어넣었다.

소연은 그런 상아의 모습이 짠한지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은비는 입에 묻은 기름을 휴지로 닦아주며 음료수를 챙겨줬다.

상아는 멘탈리스트임에도 워낙 먹지 못해 아영이보다도 키가 작았다. 살이 없어 가슴도 젖꼭지밖에 없었고, 엉덩이도 아프리카 난민처럼 바짝 말라 바비인형보다 더 날씬한 상태였다.

그래도 멘탈리스트라 장기를 다치거나 뼈가 상한 곳이 없어 보약과 보양식,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잘 먹이면 아영과 처제들처럼 쑥쑥 자라나 예쁜 몸매를 가질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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