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9 손상아 =========================================================================
109. 손상아
“체육관은 오늘 중으로 마무리 공사 끝날 거야. 내일부터 이용하면 돼.”
“다들 추운 날씨에 밖에서 훈련하느라 고생했는데, 다행이네.”
“30m면 아파트 10층 높인데, 왜 그렇게 높게 지으라고 한 거야?”
“도약과 낙하훈련도 같이 하려고.”
“아아~”
서킷 트레이닝과 승무도 수련까지 동시에 할 수 있는 농구 경기장만 한 큰 체육관을 지었다.
관중석이 없어 내부 넓이가 경기장보다 세 배나 큰 체육관으로 암벽등반, 스턴트 등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체육관이었다.
“한숙이도 내일 아침부터 훈련에 참가해.”
“제가요?”
“처음엔 가벼운 달리기만 할 거니까 겁먹지 않아도 돼. 보약하고 보양식 버리지 말고 잘 먹고. 그거 먹어야 몸이 튼튼해지는 거야.”
“알았어요!”
“밥 먹었으면 일하러 가자. 너무 늦었다.”
“네~”
풍산개들을 끌고 우동 북문을 빠져나가 관곡동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최근 사냥을 나서면 공사장 인부들은 물론 경비를 서고 있는 레드포스 대원들도 녀석들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크기 2.1~2.3m, 무게 90~100kg, 전투력 650~700으로 한 달 보름 만에 두 배로 껑충 뛰어오른 녀석들은 이젠 누구 봐도 평범한 개로 보이지 않았다.
힘도 천하장사라 무거운 짐도 곧잘 싣고 다녔고, 은비와 아영도 자주 태우고 다녀 울프 라이더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어미만큼 자라면 등에 멋진 안장을 달아야겠어? 이렇게 그냥 올라타면 중심 잡기가 너무 어려워.”
“말 탈 때 쓰는 안장 말하는 거야?
“응! 영화 보면 나오는 거.”
“이제 본격적으로 타고 다니게?”
“그럼! 말보다 빠르고 튼튼하잖아. 거기다 타고 다니면 폼도 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거 안보여? 히히히~”
“그러다 동물 학대로 걸려 감방 가는 수가 있다.”
“레드몬도 동물에 들어가?”
“그럼 레드독이 동물이지 식물이냐? 네 발로 뛰어다니는 식물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안장이나 만들어줘! 풍비 타고 신나게 달릴 수 있게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야해.”
“오빠! 만드는 김에 제 것도 만들어주세요. 저도 실력이 없어서 그냥은 타기 힘들어요.”
아영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아 은비와 같은 안장을 주문했다. 소연도, 서인도 표정을 보니 말만 못할 뿐 안장을 바라는 눈치였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귀여워 죽겠다고 할 땐 언제고 짐을 하나씩 태우더니 이젠 말처럼 타고 다니고 싶어 했다.
「사랑은 잠깐이고 평생 소나 말처럼 부림을 당하겠구나. 불쌍한 것들! 어째 처지가 비슷한 것 같다. 아휴~」
문스톤을 찾느라 며칠 시간을 낭비하기 했지만, 일주일 전 관곡동과 주변을 모두 정리한 상태라 오늘은 북쪽에 있는 길이 1.5km, 폭 600m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레드몬을 사냥하기로 했다.
“아깝다. 화산재로 저수지가 크게 줄어든 데다 수질오염도 있어 식수로 사용하긴 어렵겠어.”
“저수용량을 키우고 정화시설을 설치하면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건 가능할 거야.”
“아영아! 오염된 물도 정화할 수 있어?”
“한 번 해볼게요.”
소연의 정화시설이란 말에 화산재로 오염된 물도 정화할 수 있는지 아영에게 물어봤다.
아영의 손이 초록색으로 물들자 병에 담긴 냄새나는 물이 향긋한 풀 냄새를 풍기는 맑은 물로 변했다.
아영의 정화 스킬은 레드몬의 이상 상태 공격, 독, 몸속 피로물질 등 의약품으로 고치기 어려운 사특한 기운을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화산재로 오염된 물쯤은 손쉽게 정화했다.
“양이 좀 많은 게 문제지만, 꾸준히 정화하면 될 것 같아요.”
“토양도 정화할 수 있지?”
“네! 가능해요.”
“그럼 저수지 공사할 때 물을 다 빼내고 화산재를 긁어낸 다음에 남는 부분만 정화하면 되겠다.”
“그럼 훨씬 쉽겠네요.”
“소연아! 공사할 때 잊지 마. 최대한 물을 많이 담을 수 있게 크게 만들고.”
“알았어!”
소연에게 저수지 확장 공사를 주문하며 빠르게 주변을 기감했다. 물이 오염된 탓이진 저수지 주변엔 동물과 레드몬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 이게 뭐지?”
“또 문스톤 이야? 이번에도 큰 거야?”
“문스톤 아니야!”
“그럼 뭐야? 엘리트 레드몬?”
“토굴 속에 사람이 있어.”
“사람?”
천천히 저수지를 돌아 사람이 느껴진 토굴로 다가갔다. 저수지 북쪽 언덕 아래에 넝쿨이 어지럽게 늘어진 작은 토굴이 있었다.
깊이가 10m 정도의 매우 협소한 토굴 끝에 가녀린 소녀가 작은 문스톤 한 개를 품에 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1992. 12. 26 : 힘-30 민첩-32 체력-68 총합-130 멘탈포스-420
겁에 질린 소녀는 멘탈리스트로 피지컬포스가 은비보다 월등했다. 나이는 아영이 또래로 못 먹어서 그런지 심하게 말라 있었다.
토굴을 지나다닌 흔적도 달랑 하나였고, 느껴지는 사람도 없어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영이 또래 여자아이야! 지금 봐선 혼자인 것 같고, 5cm 문스톤을 가지고 있어.”
“문스톤이 있어 살아남았나보네?”
“그것도 있고 멘탈리스트라서 버틴 것 같아.”
숲에선 레드몬만 위험한 게 아니었다. 동물들도 크기가 커지며 더욱 사나워졌고, 뱀이나 독충도 독성이 강해져 물릴 경우 목숨이 위험했다.
“소연아! 네가 들어가서 데리고 나와야겠다.”
“알았어!”
“조심해!
토굴이 비좁아 내가 들어갈 수가 없어 믿고 맡길 수 있는 소연을 들여보냈다. 어둡고 좁은 토굴에 들어가자 침착한 소연도 긴장했는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둠만큼 사람을 두렵게 하는 건 없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능력자도 피와 살로 된 사람이라 어둠을 두려워하는 건 똑같았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토굴은 점점 좁아져 소녀가 있는 끝 부분은 무릎을 꿇고 기어야만 도달할 수 있었다.
토굴 끝에 도달하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소녀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소녀가 갑자기 덮쳐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마음을 침착하게 먹고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얘! 괜찮니? 어디 아픈 곳은 없어?”
“.......”
“해치려는 거 아니야!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
“.......”
“어른들은 없어? 혹시... 우리말 못 해? 내가 말하는 거 알아들을 수 있어?”
“.......”
「너무 상투적인 말툰가? 인신매매범도 나랑 똑같이 얘기하겠지? 그렇다고 달리 할 말도 없잖아! 먹을 걸 줘볼까?」
“이거 먹을래? 초코바야! 달콤하고 맛있어. 먹어봐! 괜찮아!”
먹을 것을 내밀자 소녀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소연을 바라봤다. 반응을 보이자 재빨리 껍질을 까서 바로 입 앞에 디밀었다.
초코바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지 소녀가 침을 꼴깍 삼켰다. 소녀는 광대뼈가 보일 만큼 앙상하게 말라 누가 봐도 굶주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험한 거 아니야. 내가 먼저 한 입 먹을 테니까 너도 먹어!”
“.......”
“아~ 맛있다. 먹어봐! 정말 맛있어.”
소연이 한입 베어 물고 맛있게 먹자 입안에 침이 고이는지 침삼키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다시 한 번 입 앞에 초코바를 디밀자 소녀가 입을 벌려 초코바를 살짝 깨물었다. 달콤한 초코바가 입안에 들어가자 소녀의 눈이 동그라졌다.
“맛있지? 먹어! 여기 또 있어.”
소연이 내민 초코바 세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소녀는 아직도 아쉬운지 소연을 빤히 쳐다봤다.
“나랑 같이 나가자. 밖에 초코바 많이 있어. 내가 원하는 만큼 줄게.”
“.......”
“밖에 친구들이 있어. 하지만 절대 해치거나 그러지 않아. 하늘에 맹세할 수 있어!”
소연이 손을 내밀자 소녀가 어떻게 해야 하니 고민하는 빛이 역력했다. 넘어왔다는 걸 알아챈 소연이 부드럽게 소녀의 손을 잡아 천천히 토굴을 빠져나왔다.
지저분한 소녀는 어두운 토굴에 있다 밝은 곳에 나오자 눈을 뜨기 힘든지 한참 동안 얼굴을 가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이름이 뭐야?”
“......”
“말해봐! 그럼 원하는 만큼 초코바 줄게.”
“크흠... 초.초.초.코.코.바 주.주.세요!”
소녀는 오랫동안 말을 안 했는지 띄엄띄엄 말하며 간신히 초코바를 달라고 했다. 오랜 기간 혼자 산다면 말을 잊거나 못하는 게 당연했다.
영화에서 보면 혼자서 말하거나 특정 사물을 사람처럼 만들어 놓고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입을 닿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이름이 뭐야?”
“손.상.아!”
“이름 참 예쁘다. 난 민소연이야. 여긴 박지홍! 최은비! 윤아영! 그리고 저쪽에 있는 언니들은 이서인! 조은영이고, 옆에 있는 개들은 우리가 키우는 풍연·풍비·풍영·풍인·풍아야! 레드독이지만 길들여서 사람을 물거나 그러진 않아. 안심해도 돼!”
풍산개들은 소녀가 문스톤을 가지고 나오자 오줌을 지리며 잽싸게 30m 밖으로 달아났다.
“.......”
다 해어진 옷으로 치부만 간신히 가린 소녀는 온몸에 흙과 검댕이가 잔뜩 묻어 영화에 나오는 원시인 같은 모습이었다.
“상아야! 이거 입어.”
소연이 여벌로 챙겨온 옷을 내밀자 빤히 쳐다보던 소녀가 고개를 꾸벅하더니 옷을 받아 들었다.
말을 알고 감사를 표한다는 것은 문명사회에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으로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점퍼와 바지를 입히고 담요를 두르자 추위가 가시는지 떨리던 몸이 진정됐다. 소연이 초코바를 내밀자 황급히 뜯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이 배가 많이 고픈 것 같았다.
“점심이나 먹자!”
“오빠! 저기서 먹자! 바람도 안 불고 바닥도 평평해 돗자리 깔기 좋겠다.”
“그래!”
눈치 빠른 은비가 잽싸게 달려가 자리를 펴자 아영이 풍영 등에 매달린 도시락을 가져와 깔기 시작했다.
“많이 배고프지? 이리 와 먹어!
“감.감.감사합.합니다.”
소연이 음식을 권하자 우리 눈치를 보던 소녀가 입안에 음식을 마구 쑤셔 넣기 시작했다.
배가 얼마나 고팠으면 이럴까 하는 측은한 마음에 물을 권하자 소녀는 맑은 눈을 깜박이며,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