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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01화 (1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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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첩자를 잡은 만큼 배후를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론 생체 실험용 도구가 생겼다는 게 더 기뻤다.

스킬은 레드몬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 것으로 상대에 따라 작용하는 강도와 형태를 알아두면 큰 도움이 됐다.

레드몬보다 더 위협적인 게 나와 같은 능력자였다. 지금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있지 않아 그 위험성을 모를 뿐, 내일이라도 전쟁 시작되면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스킬을 날려야 했다.

그때를 대비해 잔인하지만 실험체가 필요했다. 어차피 첩자는 잡히는 순간 살아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는 걸 몽땅 털어놓고 죽는 것밖엔 다른 길이 없었다. 또한, 내 실체를 안 이상 절대 살려 보낼 순 없는 일이었다.

세 놈 중 한 놈은 우동 방어벽 근처에서 잡았고, 다른 한 놈은 대담하게 우리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하급 피지컬리스트보다 살기를 절반으로 줄였지만, 최하급 피지컬리스트라 그런지 사지를 마구 떨며 게거품을 물어댔다.

“죽여도 상관없으니 정보를 확실하게 빼내세요. 그리고 목숨이 남아 있으면 죽이지 말고 내게 인계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상태로는 심문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걸 조금씩 먹이면 상태가 호전될 겁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이면 능력을 찾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조금씩 사용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첩자와 정화수를 강승원 국장에게 넘기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선시를 한 바퀴 휙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중심가인 좌동과 우동은 부서진 폐가와 잡목들을 정리하느라 여전히 너저분한 상태였고, 초동과 좌이동은 아직 손도 못된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화물 운송을 위해 가장 먼저 공사를 시작한 항동은 항구 주변은 제법 건물이 올라가고 있어 항구도시다운 풍경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다.

「한 5년 지나면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까? 5년으론 어림도 없겠지? 10년이면 되려나?」

“나 버리고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나선시가 얼마나 변했는지 보고 싶어 한 바퀴 돌아보고 왔어.”

“나 몰래 다른 여자 만나러 가는 거 아니었어?”

“여자는 모두 내 집에 있는데 다른 여자면 누구를 말하는 거야?”

“밥 해주는 아줌마! 아줌마도 여자잖아.”

“크크크크크~”

집에 돌아오자 은비가 쪼르르 달려와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아줌마 얘기가 너무 웃겨 볼을 쭉 잡아 늘이고 입을 맞춰주자 그제야 배부른 고양이처럼 나긋나긋해졌다.

“오빠 나간 사이에 할아버지 전화 왔었어.”

“무슨 일 있어?”

“내일 대한당 창당 발표한다고 미리 알려주려고 전화하셨어.”

“벌써 준비가 끝난 거야?”

“어제 야당에서 3명이 넘어와서 10명 채웠대. 그래서 내일 신당 창당 기자회견 한다고 전화한 거야.”

“일도 많은데 창당까지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야?”

“말려도 안 돼! 노인네가 이팔청춘도 아니고 좀 쉬엄쉬엄 살지 하루도 안 쉬고 뛰어다녀. 속상해 죽겠어!”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손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싫어하던 정치판에 발을 담갔다.

본인이 당하는 고통은 웃으면 넘길 수 있었지만, 하나 남은 손녀가 불행하게 되는 건 도저히 볼 수 없어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

할아버지는 인권변호사와 사회운동가, 독립군 유가족 등 20명이 넘는 참신한 인재를 지원해 무소속으로 무려 7명이나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믿을 수 있는 야당 인사 3명을 영입하고 학계와 재야인사들을 끌어들여 대한당을 창당하게 됐다.

당 대표는 48살의 인권변호사 변병석이 맡게 됐다. 나이는 젊지만 20년 넘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독재정권에 싸운 인물로 소신과 덕망까지 두루 갖춰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아 중책을 맡기게 되었다.

“내년 초쯤에 대한당 당원들 모두 데리고 한번 온다고 하던데.”

“왜?”

“오빠가 대한당 후원회 회장이라 인사시키러 온대.”

“내가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후원회 회장을 해?“

“나도 몰라! 내일 오빠가 전화해서 물어봐. 아까 뭐라고 얘기했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알았어.”

슬픈 현실이지만, 정치와 돈은 떼려야 땔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합법적이고 깨끗한 정치를 해도 돈은 꼭 필요했다.

돈이 있어야 사람도 모으고, 정책도 펴고, 각종 자선사업과 홍보 사업도 펼칠 수 있었다.

대한당을 창당한 주인공이자 명예 총재를 맡은 할아버지는 나를 후원회 회장으로 앉혀 암중에서 대한당을 지배하게 할 생각이었다.

정치를 농단하자는 게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하지 말자는 의미였지만, 국민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정당을 개인이 이용하는 것이라 사회악이 될 가능성이 컸다.

정권을 잡고 있는 친일파들도 수백만 가지 이유로 자신들을 합리화했다. 일제의 조선합병이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다는 헛소리부터 지금도 일본이 끊임없이 우리를 돕고 있다는 말까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잘도 뱉어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에 무척 뛰어났다. 합리화는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어 무기로 진실과 정의를 왜곡시키는 무서운 무기였다.

「나도 권력을 잡으면 최동주처럼 행동하겠지? 사람을 업신여기고, 괴롭히고, 그걸 통해 우월함과 만족감을 얻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소연, 은비, 아영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어.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야! 권력 같은 건 관심도 없어. 그러니 날 내버려둬! 조용히 나선시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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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께서 잡은 세 명 외에도 스파이가 더 있었습니다.”

“훈련받은 일반인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능력자는 일반인과 확연히 구분돼 기감으로 잡아낼 수 있지만, 일반인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기감으론 찾아낼 수 없었다.

“몇 명이나 잡았습니까?”

“열두 명입니다.”

“생각보다 많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안전보장국이 활동한 지 얼마 안 됐고, 인원도 몇 명 없는데, 이렇게 찾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소속은 알아냈습니까?”

“예! 피지컬리스트 세 명 중 두 명은 국토안전부 소속이었고, 한 명은 국정원 소속입니다. 열두 명 중 세 명은 국토안전부, 두 명은 국정원, 두 명은 국군기무사령부, 두 명은 대한포스협회, 나머지 세 명은 대유 그룹, 광명 그룹, 오성 그룹에서 각각 한 명씩 보낸 스파이였습니다.”

스파이를 잠입시킨 네 곳은 정부기관이고, 세 곳은 기업들로 일곱 곳 모두 할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곳이었다.

침투목적은 나선시의 현재 상태를 정확한 파악하는 것, 나와 미래 공대원 전원에 대한 정보수집 그리고 조력자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스파이 더 있을 수도 있겠군요?”

“사로잡은 스파이들을 심문한 결과 이들과 연관된 스파이는 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과 별개로 움직이거나 다른 곳에서 보낸 스파이가 있을 수 있어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는 어떻습니까? 미래 레드몬 직원, 레드포스 대원, 안전보장국 요원 중엔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우리 내부도 조사하세요.”

“알겠습니다.”

미래 레드포스와 안전보장국은 소연과 내가 면접을 통해 걸러낸 인원들로 첩자가 섞여 있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취업 후 돈이나 집안 사정으로 변절했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특수교육을 받은 스파이가 나와 소연을 속였을 수도 있어 내부에 첩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당신들도 국가와 기업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도 내 것을 지켜야 하는 처지라 어쩔 수가 없군요.”

“난 국토안전부 소속 공무원이야. 내가 죽으면 정부가 가만있을 것 같아? 날 죽이면 너뿐만 아니라 나선시도 끝장이야.”

“난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야. 군인을 죽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나 하는 짓이야? 그건 국가 반역죄에 해당하는 짓이야.”

“전 일 하러 온 사람입니다. 전에 대유 건설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이제 세 살 된 아기가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시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입 다물고 쥐 죽은 듯이 살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어떤 이는 자신의 지위와 배경으로 날 협박했고, 어떤 이는 자신의 무고를 또 어떤 이는 가족 내세워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난 18명 전부를 살기투사의 제물로 삼아 잔인하게 죽인 다음 레드마우스의 먹이로 던져줬다.

시신이라도 온전하게 남겨주는 것이 같은 인간으로서 마지막 배려지만, 땅에 묻을 경우 차후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또한, 나를 위협하는 적대 세력에게 베풀 자비 따위는 없어 시신까지 남김없이 없애버렸다.

스파이가 된 순간 이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신분이 밝혀질 경우 침투시킨 기관과 기업이 곤란을 겪게 돼 침투와 동시에 이들은 유령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졌다.

보낸 사람과 죽인 사람은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지만, 보낸 사람도 보냈다고 말할 수 없고, 죽인 사람도 죽였다고 말할 수 없어 누구도 이들의 죽음을 알 수 없었다.

“지홍아!”

“응!”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아니! 없어.”

“사소한 일이라도 있으면 말해 봐! 난 네가 어떤 일을 해도 다 이해해. 알잖아!”

“정말 아무 일도 없어!”

“어젯밤 이후로 밥도 제대로 안 먹고, 훈련도 대충 대충하고, 온종일 서재에만 틀어박혀 있었잖아! 지금까지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어.”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젯밤 내 몸에서 사람 피 냄새도 났어.”

“흐음...”

살기투사로 사람을 죽이면 심장마비와 비슷한 증상을 보여 외상이 없다. 하지만 살기를 조절하면 고통에 몸부림치다 손이 까지고 피를 토하기도 했다.

시체를 옮기며 이들의 피가 옷에 묻었고, 그걸 소연이 찾아내 독심술로 상황을 유추한 게 분명했다.

“이번에 잡은 스파이와 관련된 일이지? 나도 강승원 국장에게 얘기 들었어.”

“별거 아니야.”

“난 네가 스파이들을 죽였다고 책망하는 게 아니야. 그런 일이 있으면 혼자 담아두지 말고 내게 말하라는 거야!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사람을 죽여서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절망을 기감을 통해 느끼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

「내가 무슨 마키아벨리도 아니고... 스파이란 말에 이성을 잃고 말았어. 그냥 깨끗이 죽이고 끝냈어야 했어. 하아~ 소연에겐 뭐라고 하지? 둘러대면 금방 들통 날 텐데.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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