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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96화 (96/505)

00096  레드타이거  =========================================================================

96.

놈의 몸에서 붉은 기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불이라도 난 것처럼 강력한 염화(炎火)가 온몸을 뒤덮었다.

“티잉~”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암기를 던졌다. 하지만 쇠뭉치를 때린 것처럼 튕기며 멀리 날아갔다.

염화에 휩싸인 놈이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피처럼 붉은 눈에서 살기가 뻗쳐 나오자 온몸을 쇠사슬로 묶는 것 같았다.

놈의 눈을 피해 옆으로 재빨리 움직이자 몸을 묶던 무형의 살기가 사라졌다. 스킬 저항력이 낮으면 놈의 눈빛에 걸리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놈이 움직였다고 느낀 순간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땅바닥을 구르며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발톱을 피했다.

머리 위를 스치는 놈의 발톱을 피해 스무 바퀴를 구른 후 발끝으로 땅을 박차자 몸이 쭉 늘어나며 옆으로 이동했다.

지금도 눈으로 놈을 쫓았다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기감으로 놈을 느끼고 블링크로 바람처럼 움직여 간신히 놈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우당탕 탕탕~”

맹렬히 쫓아오던 놈이 돌과 나무를 들이받으며 바닥을 굴렀다. 꼬리가 잘리자 균형 감각이 무너져 똑바로 달려가질 못했다.

「꼬리를 잘랐기에 망정이지 다리 자르려고 했다면 너무 두꺼워 자르지도 못하고 낭패만 볼 뻔했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어!」

놈을 향해 냉기탄을 발사했다. 꼬리가 없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직선으로 날아온 냉기탄을 피하지 못했다.

냉기탄을 맞은 어깨 부위부터 얼음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냉기탄은 물체를 영하 150도 초저온 상태로 만들어 급속 냉동시키는 스킬이었다.

한 뼘도 넘을 것 같은 투명한 얼음이 발끝부터 머리까지 온몸을 감쌌다. 이런 상태에서 살아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놈의 심장은 폭주기관차처럼 뛰고 있었고, 눈동자에선 살기가 줄줄이 뻗어 나왔다.

“쩌쩌쩌쩌정~”

얼어붙은 지 10초도 안 돼 또다시 얼음이 깨지고 있었다. 놈의 눈을 향해 전류가 뒤엉킨 암기를 있는 힘껏 던졌다.

“쑤우웅~”

“크아앙~”

포효와 함께 얼음이 깨져나가며 거대한 육체가 하늘을 날아왔다. 암기를 던지자마자 전력으로 다해 땅을 박찼다.

몸에서 피어오른 염화와 함께 놈의 스피드가 두 배로 빨라져 블링크를 사용하는 나보다 속도가 더 빨랐다.

놈이 움직였다고 느낀 순간 몸을 날리지 않으면 3.5ton짜리 거구에 받쳐 온몸이 으스러질 수도 있었다.

볼썽사납게 쓰러진 놈의 왼쪽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든 암기를 피해내지 못해 왼눈을 잃고 만 것이다.

안타깝게 뇌까지 파고들진 못했지만, 한쪽 눈을 잃고 암기에 스며든 포스의 침탈까지 받아 반쯤 맛이 간 상태였다.

맹수는 상처를 입을수록 난폭해졌다. 이제부턴 놈의 주위를 돌며 힘이 빠질 때까지 계속 괴롭혀야지 섣불리 달려들었다간 한순간에 처지가 바뀔 수도 있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정화수를 들이켰다. 전투가 길진 않았지만, 포스 소모가 심하고 정신적 피로도 엄청나 벌써 몸이 지쳤다.

정화수로 피로를 일부 해소하고 흡기로 생명력을 갈취해 냉기탄을 만들어 냈다. 처음 흡기가 생겼을 땐 ‘뭐 이런 황당한 스킬이 다 있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가장 고마운 스킬이었다.

생명력과 포스가 100% 똑같다고 할 순 없지만, 따지고 보면 그놈이 그놈이라 흡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다.

냉기탄을 발사해 놈을 얼리고 나머지 오른쪽 눈을 향해 암기를 발사했다. 이번엔 운이 없었는지 눈이 아닌 어깨에 틀어박혔다.

상처가 늘어나자 붉은 염화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힘이 빠진다는 증거로 싸움의 끝이 서서히 보였다.

“크아앙~ 크아앙~”

크게 포효한 놈이 나를 버려둔 채 뒤로 돌아 소연과 은비가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500m를 움직이곤 균형을 잃어 옆으로 쓰러졌다. 재빨리 냉기탄으로 놈을 얼려놓고 소연과 은비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아영이 준비한 정화수를 먹고 정신을 차렸는지 풀밭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정신만 차렸지 정화수의 효력이 낮아 완전히 회복한 상태는 아니었다.

“모두 일어나! 마을을 향해 달려!”

“무슨 일...”

“잔말 말고 빨리 뛰어~ 빨리!”

크게 소리친 후 놈을 향해 냉기탄과 암기를 연속으로 쏘아냈다. 말하는 사이 500m 앞까지 달려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빨리~~~”

목이 터져라 외치자 그제야 심각성을 인식한 소연이 은비와 아영, 이서인과 조은영을 부축해 달리기 시작했다.

글라디우스를 뽑아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지만 엉금엉금 기어가는 공대원들의 속도를 보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래서 지능 높은 것들이 무서운 거야. 원한도 잊지 않고 혼자 죽지 않겠다고 발악하는 것도 그렇고. 젠장!」

쓰러진 놈의 뒷다리를 한 번 베어내자 얼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뒤로 훌쩍 뛰어오르며 냉기탄을 발사했다.

냉기탄은 번개주얼과 달라 범위 안에 들어가면 적과 아군 심지어 주인도 몰라보고 피해를 줬다.

냉기탄을 연속으로 쏘아내자 포스가 쭉 빠져나가며 몸이 무겁고 머리까지 아팠다. 흡기를 너무 많이 사용한 탓으로 후유증이 상당할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놈의 뒷다리에 달라붙어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마구 휘두르고 얼음이 깨지려 하면 근처 나무로 이동해 생명력을 빨아들여 다시 냉기탄을 사용했다.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통증을 억지로 참고 뒷다리만 죽어라 베었다. 그러자 기둥같이 커다란 다리가 뚝 하고 잘려나갔다.

염화를 사용하면 속도와 힘, 방어력까지 급상승하는지 한방에 잘리던 꼬리와는 다르게 칼이 먹히지도 않았다.

“후우우~”

긴 한숨을 토해내며 놈을 바라봤다. 이번 상처가 결정적이었는지 1분이 지나도록 얼음이 깨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자 소연이 사람들을 부축해 간신히 산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부터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내 자만심이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할 뻔했다. 엘리트 레드몬을 C급, B급, A급으로 나눈 건 그만큼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B급 엘리트 레드몬 호그질라를 손쉽게 잡아내자 A급도 같은 엘리트 레드몬으로 생각하는 황당한 짓을 하고 말았다.

「이래서 결정권자가 판단을 잘해야 하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멍청하게 판단하면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전체를 다 죽일 수도 있어. 멍청한 지휘관은 적보다 더 위험해. 하아~」

3분쯤 지나자 얼음이 깨지며 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소연과 은비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왼쪽 뒷다리가 무릎부터 잘려나가 디딤발이 사라져 앞으로 달려나가지 못하고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뒹굴었다.

얼음이 녹자 잘려나간 다리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꼬리와 눈에서 흐르는 피가 작은 시냇물이라면 잘린 다리에서 흐르는 피는 폭포수와 같았다.

피가 쏟아지자 기름이 다해 꺼지는 불꽃처럼 염화가 급격히 사그라졌다. 염화가 사라지자 일어설 기운도 없는지 모로 누운 채 숨을 헐떡거렸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한 시간쯤 지나자 태산 같던 놈이 숨을 거뒀다.

지친 몸을 이끌고 놈에게 다가가 가슴을 갈랐다. 심장에서 11cm나 되는 커다란 레드스톤을 꺼내고, 위장에선 아직 소화되지 않은 레드베어의 9cm짜리 작은(?) 레드스톤을 꺼냈다.

그리곤 등뼈에 박힌 레드주얼도 빼냈다. 지름 3cm의 구슬 안에 붉은 안개 같은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효과를 알아볼 힘도 없어 레드스톤과 레드주얼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싸움은 1시간 남짓했는데, 일주일간 쉬지 않고 싸운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상급 능력자가 된 후 몸이 아프거나 쑤시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30분쯤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자 소연과 은비, 아영이 천천히 다가왔다. 눈물범벅인 게 내가 크게 다치거나 죽은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 괜찮아! 울지 마!”

“흑흑~”

“오빠! 으아앙~”

아기처럼 우는 은비와 아영이을 안고 눈물을 훔치는 소연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무슨 레드몬을 사냥하겠다고... 쯔쯔쯔~」

호랑이는 버릴 게 없는 동물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선 뼈는 풍병(風病) 치료제로 쓰고, 눈은 마음이 산란한 환자에게 썼다.

옛날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광을 발하는 호랑이의 눈에 사귀(邪鬼)도 놀라 달아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코는 어린이 경풍에 사용했고, 이빨은 매독이나 종기의 부스럼, 수염은 치통에 사용했다.

호랑이의 뼈는 강한 신체를 지니게 하는 명약으로 알려져 관절염이나 무릎이 시릴 때 가루를 내어 먹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호랑이의 정기가 정강이뼈에 함축되어 관절이 붓고 아픈 증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고기는 구토와 학질을 치료하며, 발톱은 가위눌리는 증상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정말 버릴 게 없네. 근데 이거 믿어도 되는 거야? 사이비 아니야?”

“나도 몰라! 먹고 탈 안 나면 장땡이지. 언제 우리가 그런 거 따졌어?”

“하긴 독만 없으면 뭘 못 먹겠어. 매일 심장도 먹는데.”

“너 그러다 몸에 좋다면 굼벵이도 먹겠다?”

“몸에 좋으면 먹어야지. 오빠 오래오래 살려면 뭐든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으으으~ 야만인!”

“우씨!”

“지홍아! 정말 뼈도 먹을 거야?”

“우린 몸이 재산인데 몸에 좋다면 먹어야지.”

“가루를 어떻게 내려고?”

“걱정하지 마! 내가 칼로 곱게 갈아줄 테니까.”

“고기는 어떻게 먹는 거야?”

“나도 모르지. 끓여 먹고, 구워 먹고, 볶아 먹고, 이래저래 해먹다 보면 조리법이 나오겠지. 양도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

레드타이거에서 나온 레드스톤은 58,748몬으로 264억 5,660만 원이었고, 레드베어에서 나온 레드스톤은 8,991몬으로 40억 4,595만 원이었다.

사체는 레드타이거가 300억 원이 넘었고, 레드베어는 100억 원 안짝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웅담이 없고, 사체도 3분의 1이나 뜯어먹어 50억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번에 잡은 레드타이거는 팔지 말고 우리가 사용할 방어구와 무기로 제작하자. A급이라 지금 입고 있는 것보다 방어력과 절삭력이 뛰어나 도움이 될 거야. 포효 같은 이상 상태 공격도 좀 더 잘 막아줄 거고.”

“언니들은 어떻게 하지?”

“같이해줘야지!”

“고마워!

“뭐가 고마워? 같은 동료인데 당연한 거지.”

“나 때문에 힘들었지? 내가 우겨서 같이 가는 바람에...”

“괜찮아!”

“다음부턴 절대 토 달지 않을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할게.”

“네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야. 내가 건방졌어. 그러니 이번 일은 더는 말하지 말자. 나도 느끼게 많아.”

“알았어. 그리고... 다치지 않아서 정말 고마워!”

“이렇게 예쁜 마누라가 있는데 다치면 안 되지? 평생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다쳐서야 쓰나. 안 그래?”

“응! 맞아! 히히~”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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