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94화 (94/505)

00094  호그질라(Hogzilla)  =========================================================================

94.

1992년 10월 1일

좌이동을 둘러싸는 방어벽 공사가 서쪽과 북쪽, 서북쪽 세 곳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가장 어려운 공사이자 나선시의 형태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공사였다.

우동 방어벽 공사가 끝난 9월 15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공사가 진행될 산 주위를 돌며 레드몬을 사냥했다.

15일 동안 방어벽에서 최대 3km까지 전진해 기감에 걸린 중급 레드몬 59마리, 하급 158마리, 최하급 1,351마리를 잡아내며 레드몬 씨를 말렸다.

최하급 레드몬은 대부분 레드래빗·레드마우스·레드칩이었고, 하급은 레드디어·레드무스텔라·레드오터 등이었다.

중급 레드몬은 레드와피티 수놈, 레드링스, 레드폭스, 레드보어 등으로 걱정했던 레드바이퍼와 레드울프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방지와 빠른 공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워낙 수풀이 우거지고 굽이굽이 골짜기가 뻗어있어 모든 레드몬을 잡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또한, 레드보어와 레드폭스 등 활동반경이 넓은 레드몬이 많아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몰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문스톤만 있으면 한결 수월할 텐데.”

“워낙 귀한 거라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

“뉴스에서 보면 흔하기만 하던데.”

“그래?”

“응! 뉴욕, 런던, 파리, 모스크바, 도쿄, 싱가포르, 홍콩,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들은 모두 문스톤으로 방어하고 있잖아.”

“거긴 세계 10대 도시잖아.”

“어쨌든 문스톤으로 방어하는 거 맞잖아.”

“그렇긴 해도 도시 전체를 방어하는 곳은 극히 드물잖아. 대도시를 방어할 만큼 큰 문스톤은 몇 개 없으니까.”

6월의 탄생석 문스톤(월장석)은 원래 장석의 일종으로 유백색 또는 푸른빛, 무지개 빛깔이 도는 보석을 말했다.

자비로운 영혼이 담겨있어 착용하면 좋은 미래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신성한 보석으로, 현재의 문스톤은 월장석이 아닌 거대운석 고스트의 파편이었다.

문스톤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투명한 수정에 푸른빛이 돌아 월장석과 닮아 붙여진 별명이 이름이 되어 불리게 된 것이었다.

레드문이 뜬지 30년이 넘었지만, 문스톤만큼 효과적으로 레드몬을 방어할 체계가 아직도 개발되지 않고 있었다.

A급 엘리트 레드몬까지 방어할 수 있는 문스톤은 5cm 크기면 반경 600m를 보호할 수 있었다.

6cm짜리는 반경 1,200m, 10cm는 9,200m로 크기가 1cm가 커질 때마다 안전 반경도 2배씩 늘어났다.

현재 가장 큰 문스톤은 뉴욕에 있는 11cm로 반경 38,400m를 레드몬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문스톤은 감마선을 쪼이는 것만으로 레드몬을 방어할 수 있어 비용 대 효율 면에서 가장 우수한 레드몬 방어체계였다.

이 때문에 1985년 300억 원이던 가격이 7년 만에 무려 3.33배 오른 1,000억 원까지 치솟았다.

또한, 앞으로도 꾸준히 오를 것으로 기대해 레드스톤과 함께 최고의 재테크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15cm짜리 하나만 주우면 벼락부자가 될 텐데, 난 왜 그런 게 안 보이지?”

“그렇게 큰 운석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15cm면 반경 614,400m를 안전지대로 만들 수 있어. 614km면 한반도 전체를 감싸고도 한참~ 남아 일본 규슈까지 안전지대로 만들 수 있는 크기야. 이런 게 있다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수백 조 원으로도 살 수가 없을 거다.”

“그러니까 가지고 싶다는 거지. 그런 거 하나만 있으면 매일 레드몬 잡는다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잖아.”

“꿈같은 소리 그만하고 운동하게 빨리 옷이나 갈아입어. 엉덩이 맞기 싫으면.”

“우이씨~ 열열히 사랑할 땐 언제고 이제 끝났으니 필요 없다는 거지? 그런 거야?”

“흐흐흐~”

“이씨! 내려와!”

아침 운동이 끝난 후 감자와 양파, 당근, 레드보어 고기를 기름에 볶고 춘장을 넣어 자장을 만들었다.

면 대신 고들고들한 밥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자장을 올리자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넘어갔다.

“오빠! 짜지도 않고 아주 맛있어요.”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천천히 많이 먹어!”

“네! 감사합니다.”

아림과 아솔이 자장면이 먹고 싶다는 말에 아침부터 없는 솜씨를 총동원해 짜장밥을 만들었다.

아이들이라 먹고 싶은 게 한창 많을 나이였다. 하지만 여긴 오지라 과자도 구하기 힘들어 TV 속 요리는 먼 우주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오빠! 저녁엔 탕수육 만들어 주세요.”

“전 피자요!”

“헉...”

「빨리 요리사를 구해야지 이러다 식순이 되겠네. 젠장!」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고대하던 집이 완성됐다. 본관과 별관, 수영장 그리고 진입로가 전부라 담을 둘러치고 부속 건물까지 모두 만들려면 적어도 5~6개월은 더 걸렸다.

“이제야 노숙자 신세를 면하고 제대로 된 집에서 살게 됐네.”

“언니! 세상에서 가장 멋진 궁전 같아요.”

“이게 무슨 궁전이야? 네가 유럽을 못 가봐서 그러는데, 이 집은 프랑스의 샹보르 성이나 독일 모리츠부르크 궁전, 츠빙거 궁전, 노이슈반스타인 성, 엘쯔 성과 비교하면 평범하고 초라한 거야.”

“제가 보기에 이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이에요. 천장 높이 보세요. 원산 호텔보다 훨씬 높고 바닥도 대리석이잖아요. 그리고 오빠와 소연 언니, 은비 언니 그리고 제가 함께 살 곳인데 이보다 더 근사한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쓰러질 것 같은 초가집도 함께하면 왕궁이 안 부러운데, 이 정도면 궁전 그 이상이지.”

은비와 아영은 집이 마음에 드는지 아정과 아솔, 아림을 데리고 본관과 별실을 들락거리며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쉴 수 있게 2층 방을 하나씩 배정했어.”

“왜? 혼자 따로 자고 싶어?”

“아니! 나 이제 너 없으면 못 자. 알면서 그래!”

“흐흐흐~”

“언니들과 동생들은 당분간 별채를 사용할 거야. 방어벽 공사가 끝나면 은영이 언니는 좌동에 따로 집을 마련해줄 거고, 서인이 언니와 언니 동생들, 아정·아솔·아림이는 우리 집 옆에 예쁜 집을 지어줄 계획이야.”

“번거롭게 집은 왜 지어? 별채에서 살면 되잖아.”

“지금은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편할 거야. 따로 집을 지어주는 게 언니와 아이들에겐 더 편해.”

“알아서 해.”

“요리사와 하우스키퍼는 한숙 언니가 구해주기로 했어.”

“가정부?”

“응! 집이 워낙 넓고 우리가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서 청소며 빨래를 감당하기 힘들어. 미안해!”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 아니야. 내 마누라 손에 물 묻히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고용해. 다만... 조금 불편할까봐 그게 걱정이네.”

“일반 가정부가 아니라 전문직 여성을 고용하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가운만 입고 돌아다닐 건데... 에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보면 보는 거지. 난 몰라!」

“다음 주 주말은 하루 쉬자. 해야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급한 일이야?”

“집들이해야 해. 한숙 언니하고 은영이 언니가 집들이하라고 난리야. 공사 시작하자마자 노래를 불렀어. 집들이하라고.”

“오늘 입주했는데 벌써 집들이를 해? 짐 정리 좀 하고 하지?”

“원래 집들이란 게 입주하고 얼마 안 있다가 하는 거잖아.”

“술 마실 새끼줄 꼬는 거지?”

“그렇지 뭐!”

“술을 또 얼마나 드시려고 그러는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술만 먹으면 개 되는데. 에휴~”

“내가 잘 단속할게. 넌 얼굴만 좀 비추다가 슬쩍 빠져.”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났다고 어차피 해야 할 일 빨리 끝내는 게 좋지. 근데 음식은 누가 준비해? 설마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거야?”

“한숙 언니가 그 전에 요리사하고 하우스키퍼 구해주기로 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네. 이왕 구하는 최대한 빨리 구해달라고 해. 애들 먹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요리사가 와야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지. 난 할 줄 아는 게 몇 개 없잖아.”

“알았어. 빨리 구해달라고 할게.”

3층 침실은 넓기도 넓지만 웬만한 집 안방보다 더 큰 침대가 떡하니 놓여 있어 얼굴을 붉히게 했다.

3인용 아니고, 5인용도 아닌 10인용도 넘어 보이는 큰 침대는 편안함보단 많은 사람을 수용할 목적이 분명했다.

소연과 은비, 아영은 잘 때 좌우에 꼭 달라붙어 팔베개를 한 채 밤새 고추를 만지작거리며 잤다.

크지 않은 캠핑카 침대도 절반밖에 쓰지 않을 만큼 꼭 달라붙어 잤는데, 이렇게 큰 침대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침대가 너무 큰 거 아니야? 레슬링 해도 되겠다.”

“좀 커야 뒹굴어도 안 떨어지지.”

“뒹굴어? 밤새 꼭 붙어 자는데 뒹굴긴 뭘 뒹굴어? 셋 다 잠버릇도 없이 조용히 자면서.”

“그래도 좁은 것보다 넓은 게 좋잖아. 안정감도 있고.”

“다른 뜻은 없는 거지?”

“그럼! 편하게 자자는 거지 다른 뜻은 절대~ 없어. 안심해!!”

소연이 입가에 한껏 미소를 짓고 날 바라봤다. 언제나 포근하고 자애로웠던 미소가 오늘은 왠지 음흉하게 느껴졌다.

「자기들이 씨받이의 강수연쯤 되는 줄 아는 거 아니야? 완전 씨내리가 된 기분인데.」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자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절벽에 지은 집이라 투명한 유리벽을 빼면 눈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하나도 없었다.

“유리벽 때문에 바람이 통하지 않는 것만 빼면 아쉬울 게 없네. 근사하다.”

“옆에 콘솔 보이지. 그래 그거.”

“이게 뭐야?”

“그걸로 조정하면 유리벽이 열려. 파란색 단추 눌러 봐!”

“위이이이잉~”

콘솔을 조작하자 유리벽이 자동문처럼 좌우로 열렸다. 그러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한가득 불어왔다.

“야~ 시원하다. 근데 이러면 도청되는 거 아니야?”

“누가 우리 집을 도청하면 사이렌이 울려. 그리고 유리벽이 열린 상태에서 도청하면 콘솔 옆 화면에 빨간불이 깜빡이며 경보음이 울려. 그럼 자동으로 문이 닫혀.”

“우와! 멋진데~”

“히히~ 최첨단 장비야. 돈 좀 들였어.”

“잘했어.”

“옥상으로 올라가자. 보여줄 게 있어.”

옥상은 식물원을 옮겨 놓은 듯 다양한 꽃과 나무가 심겨 있고, 바닥은 온통 푸른 잔디밭이 깔려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아도 될 만큼 푹신했다.

또한, 기다란 의자와 파라솔, 테이블 등이 놓여 있어 티타임이나 바비큐 파티를 해도 재밌을 것 같았다.

“침실에서 본 것처럼 천장 유리벽을 열 수 있어 신선한 공기도 마실 수 있어 명상하기엔 괜찮을 거야. 이렇게 맨발로 돌아다닐 수도 있고. 괜찮지?”

“아주 좋아. 정말에 쏙 들어. 가끔 잔디밭에서 잠도 자도 되겠는걸?”

“여긴 우리 집이야. 어디서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면 돼!”

“오! 아주 좋은데. 그럼 사랑을 나눠도 되겠네?”

“아이~ 창피하게 밖에서 왜 그래!”

“뭐가 창피해? 우릴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아잉~”

말은 싫다고 하면서 몸은 빼지도 않고 키스는 열정적이었다. 이래서 여자가 싫어요! 싫어요! 하면 좋아요! 좋아요! 라고 받아들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