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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90화 (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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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

공사가 한창인 산 넘어 레드폭스 네 마리가 기감에 걸렸다. 붉은 털과 까만 발, 까만 귀를 가진 붉은여우(Vulpes vulpes)로 세계에서 가장 흔한 여우였다.

수놈은 몸길이 2.3m, 꼬리 길이 1.5m, 암놈은 몸길이 2.0m, 꼬리 길이 1.2m로 무게는 각각 50kg, 45kg이었다.

새끼 두 마리는 암놈보다 살짝 작은 크기로 조만간 부모를 떠나 독립할 것으로 보였다.

네 마리 모두 중급 레드몬으로 레드독보다 전투력은 떨어지지만, 지능이 높은 놈들로 얕잡아보고 달려들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자 예민한 청각과 후각으로 우릴 발견했는지 나무와 풀 속에 몸을 숨긴 채 주위를 빙빙 돌며 우리를 관찰했다.

영리한 놈들이라 그런지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상대인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제법 끈기도 있어 30분 넘게 기회를 노리며 나무와 덤불 사이를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이놈들 지금 우리 현혹하려고 뛰어다니는 거지?”

“그런 것 같네.”

“이래서 옛날 사람들이 여우에게 홀린다고 했던 거구나. 정말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어지럽게 뛰어다니네.”

“흐흐흐~ 어지럽긴 하네.”

“아영아! 여우가 움직이는 게 느껴져?”

“기감 거리가 얼마 안 되고 녀석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찾질 못하겠어요.”

“터득해도 실전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수준은 고정된 물체 정도밖에 느낄 수가 없어요.”

“하아~ 어느 세월에 배우고 어느 세월에 업그레이드 하냐? 정말 갑갑하다.”

아영은 물체의 상태를 간신히 읽어내는 수준으로 기감 거리도 30m에 불과해 빠르게 움직이는 레드폭스를 잡아낼 능력이 안 됐다.

최소 100m 이상 기감하고 물체도 10개 이상 동시에 확인할 수 있어야 실전에 사용할 수 있었다.

30분 넘게 열심히 뛰어다니던 놈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당황하지 않고 놈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자 어려운 상대라고 판단하고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영악한 놈들이라 이대로 살려 보내면 수시로 공사장 주변을 기웃거리며 인부들을 노릴 수 있었다.

놈들이 꼬리를 말고 돌아서자 소연이 재빨리 홀드 스킬로 암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를 한번 잡아냈다.

1992년 8월 25일

민소연 :  힘-36  민첩-37  체력-72  총합-145   멘탈포스-535

며칠 전 중급 멘탈리스트로 승급한 소연은 홀드 스킬이 더욱 진화해 한 번에 세 발의 홀드 스킬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상대를 움직일 수 없게 묶고만 있던 단순한 홀드 스킬이 아니라 내부의 혈액순환까지 차단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명 데스 홀드(death hold)로 스킬이 진화했다.

최대 500m 거리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고, 속도가 초고속유도탄만큼 빠르게 상대를 쫓을 수 있어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현재 멘탈포스양이 작아 27발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중급 레드몬을 1분 안에 죽일 수 있고, 하급과 최하급 레드몬은 각각 30초, 15초 안에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데스 홀드와 별개로 컨퓨전(confusion)이란 스킬도 새로 생겨났다. 컨퓨전은 혼란, 혼돈을 뜻하는 말로 상대의 의식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어 자유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스킬이었다.

컨퓨전 스킬을 사용하면 상대는 혼돈에 빠져 우왕좌왕하거나 심할 경우 동료를 공격하기도 했다.

영구적인 상태가 아닌 짧은 일시적인 상태지만, 뭉쳐있는 적에게 사용하면 적 전체에 혼란을 줄 수 있어 전투를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스킬이었다.

그동안 상대를 공격할 스킬이 없던 소연은 보조자 역할밖에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막강한 공격력과 상대를 혼란에 빠뜨릴 스킬을 가지며 미래 공대 공격의 핵으로 떠올랐다.

암놈과 새끼가 당하자 화가 난 수놈이 조은영의 향해 뛰어오르며 얼굴을 물어뜯기 위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재빨리 바닥을 구른 조은영이 가까스로 이빨을 피해내자 공중에서 몸을 돌린 수놈이 꼬리를 휘둘렀다.

긴 꼬리가 바람 소리와 함께 쭉 늘어나며 조은영의 머리를 노리고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왔다.

“이얍!”

활을 양손에 쥔 조은영이 기합과 함께 몽둥이를 휘두르듯 활을 있는 힘껏 휘둘러 꼬리를 쳐냈다.

“콰앙~”

합금으로 만든 활과 부드러운 꼬리가 부딪치자 철판을 두드리는 커다란 소리가 났다.

꼬리를 쳐낸 조은영이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물러나며 재빨리 화살을 걸어 놈에게 쏘아냈다.

“피웅~”

바닥을 가볍게 차고 올라 화살을 피한 수놈이 조은영의 다리를 노리고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조은영과 레드폭스 둘 다 순발력이 뛰어난 유형으로 기민하게 움직이며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다.

급히 다리를 오므리며 뒤로 물러나자 땅을 박차는 탄력을 이용한 수놈이 총알처럼 돌진해 조은영의 머리를 박으려 했다.

제자리에서 힘껏 뛰어올라 공격을 피한 조은영이 공중에서 수놈의 등을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피웅~”

바닥을 찍으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수놈이 화살을 앞발로 가볍게 쳐내며 몸을 말며 꼬리로 조은영의 등을 공격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조은영의 실력으론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하급 피지컬리스트가 중급 레드몬으로 상대로 이 정도 싸웠다는 건 실력이 향상할 가능성이 충분하단 뜻으로 실망할 필요가 없었다.

중급 레드몬 레드폭스

전투력 : 1654

지능 : 115

스킬 : 알 수 없음

“펑!”

“깨갱~”

수놈의 꼬리가 조은영의 등을 때리기 직전 살기투사와 함께 발사한 혈기탄이 한발 앞서 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레드폭스 수놈은 개라도 되는 양 깨갱 소리와 함께 혈관이 모두 터져 오공에서 피를 쏟아내며 숨을 거뒀다.

“퍼엉~”

“윽!”

혈기탄이 레드폭스 수놈의 목숨은 빼앗았지만, 마지막 공격의 여력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꼬리에 맞은 조은영이 10m나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자 아영이 달려가 정화 스킬로 등을 치료했다.

수놈의 포스가 등에 남아 있으면 상처 회복을 방해해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릴 수 있었다.

정화 스킬을 사용하자 부어오른 상처가 조금씩 가라앉고 조은영의 혈색도 빠르게 돌아왔다.

찢어진 방어구 사이로 깊게 파인 상처가 보였다. 다행히 근골을 다치지 않아 며칠만 쉬면 금세 회복할 상처였다.

처음부터 조은영을 돕지 않은 건 그녀를 싫어하거나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돕기 위해서였다.

조은영이 발전하기 위해선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 이겨내야 했다. 위험하다고 레드몬을 혼자 다 잡아버리면 조은영은 물론 공대원 전체가 발전할 기회를 잃게 된다.

“잘하셨습니다.”

“공대장님이 계셔서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어요. 정말 짜릿했어요.”

“재미있었다니 다행입니다.”

“다음에도 종종 기회를 주실 거죠?”

“물론입니다.”

나는 악덕 고용주로서 직원들이 최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선 일할 분위기와 성취욕을 심어줘야 했다.

조은영이 바라는 건 더 강해지는 것이었고, 난 그걸 들어줌으로써 그녀가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언니! 나 부럽고 배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아이고 배야~”

“하하하~ 조만간 중급 멘탈리스트가 될 거야. 조급하게 생각할 거 없어.”

“그래도 부러워! 내일 된다고 해도 열라 부러워!”

“넌 나보다 자질이 뛰어나 늦어도 1~2년 안에 날 앞지를 수 있을 거야. 부러워할 거 없어.”

“언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빠가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피가 날 만큼 엉덩이를 때리든, 언니만 몰래 보약을 먹이든, 언니가 뒤처지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없을 거야. 왜냐고? 세상에서 언니를 가장~ 사랑하니까.”

“좋아해야 하는데 왜 겁이 나지? 무섭다!!!”

“언니도 나처럼 엉덩이 맞을까봐 그렇겠지.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팅팅 부어서 아파 죽는지 알았어.”

“보약만 먹이진 않을 것 같고, 사랑의 매도 함께 줄 것 같다. 그렇지?”

“오빠가 어떤 사람인데 기회를 놓치겠어. 기회는 이때다 하고 언니 엉덩이를 밤새 어루만져 주겠지. 퉁퉁 부을 때까지.”

“그만해라! 다 들린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오빠 음심을 마음껏 충족하라고. 키키키~ 고맙지?”

“그런 거야? 아우~ 그럼 나야 고맙지! 소연아! 오늘부터 시작할까? 내가 살살 어루만져 줄게! 흐흐흐흐흐~”

“난 죄 없어. 왜 나 가지고 그래?”

“죄가 왜 없어? 이렇게 예쁜 몸매와 아름다운 엉덩이를 가졌는데 죄가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죄질이 아주~ 흉악해 종신형에 처해야겠어. 이리와! 벌 좀 봤자.”

“철썩!”

“아야~ 아파! 그러지 마!”

“흐흐흐~”

고무줄처럼 늘어나던 수놈의 기다란 꼬리를 잘라냈다. 손으로 잡아당기자 길이가 두 배 정도 늘어났다.

질기고 탄성이 뛰어나 쉽게 잘리지도 않았다. 끝에 뾰족한 추를 달아 유성추(流星槌)처럼 사용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오빠! 그거 저 주시면 안 돼요?”

“다루기가 쉽지 않을 텐데? 할 수 있겠어?”

“연습해야죠.”

유성추 같은 연병기는 투척무기와는 쓰임새가 많이 달랐다. 유성추는 자신의 몸에 줄을 감아 풀어내며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미숙할 경우 부상의 위험이 매우 큰 무기였다.

주로 줄이 몸에 감겨 낭패를 보거나 되돌아온 추에 부상을 입었다. 변칙적인 공격으로 상대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숙달할 수 있는 무기였다.

“전 공격수단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언니들처럼 다가가서 레드몬을 죽이기엔 아직 힘도 부족하고요. 하지만 유성추라면 그런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알았어! 돌아가는 대로 김일섭 연구원에게 말해 무기로 만들어줄게.”

“감사합니다! 헤헤헤~”

레드몬을 상대로 효과가 없어도 다양한 무기를 수련하면 배울 게 있을 거란 생각에 아영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할 수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노력하는 자체가 중요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시작하기도 전에 어렵다, 힘들다, 귀찮다는 이유로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했다.

아영이처럼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는 말처럼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성공도 논할 자격이  없었다.

오직 도전하는 자만이 값진 성과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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