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9 풍산개2 =========================================================================
89.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매일 안아주고 예뻐하다가 녀석들이 본성을 드러내면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 거야?”
“.......”
“나도 잔인하게 어린 새끼들을 상대로 살기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하지만 어쩌겠어. 그것만이 녀석들을 살릴 유일한 방법인데.”
“.......”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어! 싫은 소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할 때가 있고, 때리고 싶지 않아도 때려야 할 때가 있어! 지금이 바로 그때야! 녀석들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은 매를 들어야 할 때야!!!”
은비 말에 기분이 언짢아 화를 내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싫은 티를 팍팍 내도 사랑하는 소연과 은비에겐 화를 내거나 인상을 쓴 적이 거의 없었다.
첫사랑이라 그런지 보고만 있어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더구나 평생 사랑하며 살기에도 한참 모자란 인생인데, 화내며 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화가 날 때가 있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좋아 죽을 것 같다가도 화가 나면 상대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먹이를 먹던 새끼들이 겁에 질려 바닥에 웅크린 채 벌벌 떨어댔다. 똑똑하고 예민한 녀석들이라 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는 건가? 사람보다 개가 더 영리하네!」
“오빠! 미안해! 생각 없이 말을 하고 말았어.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만 용서해줘!”
그 말 한마디에 마음속에 찼던 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 마음은 간사하면서도 오묘했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희열과 분노를 가슴 하나에 모두 담아두고 말 한마디에 웃고 울고 기뻐하고 화내는 등 온갖 지랄을 다 했다.
“내가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하아~ 차마 말을 못했어.”
“아니야! 레드독을 길들일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투정을 부린 내 잘못이 커! 용서해줘!!!”
“우리 사이에 용서란 말은 가당치도 않아.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그땐 정말 화낼 거야.”
“응! 안 그럴게.”
“레드몬에게 투사하는 것처럼 심하게 사용하진 않아. 최대한 약하게 사용하고 있어. 그러니 안심해도 돼!”
“앞으로 오빠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다신 뭐라 하지 않을 거야. 오빠가 하는 일은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이해해줘서 고마워!”
“오빠! 미안한데... 아기들 꼭 살려줘! 부탁이야!”
“알았어.”
말하는 내내 녀석들은 고개를 조아린 채 가만히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녀석들을 길들였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사람이나 개나 어렸을 적이 기억이 가장 오래갔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대부분이 어렸을 적 기억에 기인했다.
성견이 대봐야 실패와 성공을 알 수 있지만, 이 상태만 잘 유지하면 길들이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녀석들이 성견이 돼도 확실한 힘의 차이를 알고 있어 덤빌 수도 없고, 성장할수록 살기의 양을 올려 순종적인 놈들로 만들 계획이라 변수만 없다면 은비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먹어!”
“왈왈~ 왈왈~”
“녀석들 이름 지었다면서?”
“짓긴 했는데 아직 어떻게 될지 몰라 부르진 않기로 했어. 완벽히 길들면 그때 부르려고.”
“뭐라고 지었어?”
“풍연·풍비·풍영·풍인·풍숙 이렇게 지었어.”
“이름 뒤에 글자를 따서 지은 거야?”
“응! 예쁘지?”
“예쁘긴 한데... 풍인, 풍숙은 뭐야?”
“서인이 언니하고 한숙이 언니 이름이잖아. 알면서 왜 물어봐?”
“그 사람들 이름을 따서 지은 게 이해가 안 돼서 물어봤지. 우리완 상관없는 사람들이잖아. 왜 개 이름에 그 사람들 이름을 붙여?”
“오빠! 서인이 언니하고 한숙이 언니는 이제 가족이 마찬가지잖아. 다섯 마리니까 당연히 이름을 붙여줘야지.”
“글쎄다. 그건 아직 결정된 거 없으니까 할 말 없고, 이름을 부르고 싶으면 다른 거로 바꿔서 불러. 안 그러면 지금처럼 그냥 강아지나 개로 부르던지.”
“그냥 부르면 안 돼?”
“안 돼! 내 허락 없이 멋대로 이름 지어 부르면 절대 안 태워준다. 명심해!”
“오빠 그거 알아? 가끔 이상한 거에 집착하는 거!”
“몰라!”
“지금도 봐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착해서 여러 사람 곤란하게 하잖아. 이름을 우리끼리 붙였겠어? 딱 봐도 같이 붙인 거잖아. 근데 지금 와서 이름을 바꾸면 언니들 입장이 뭐가 돼?”
“난 그런 거 몰라! 분명히 말하지만, 얘들은 내 말만 들어. 타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 농담 아니야.”
“이씨~ 나보고 어쩌라고...”
「예쁜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 풍인, 풍숙이 뭐야? 풍인까지야 그렇다고 해도 풍숙은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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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북쪽은 추울 줄 알았는데, 너무 더운 거 아니야?”
“만주와 연해주도 여름엔 엄청나게 더워. 겨울이 길어서 그렇지. 나선시는 바닷가라 1월에도 크게 안 춥고, 여름에도 크게 안 더운 곳이라 생활하기에 적당한 곳이야. 근데 이상 고온이라 그런지 올해는 유난히 덥네.”
“오늘도 38도. 이러다가 사람들 더위 먹고 쓰러지겠다. 얼음 동동 띄운 수박화채라도 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알았어. 주방에 말할게.”
중장비와 건설노동자들이 늘어나며 나선항의 모습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부서진 부두가 새것처럼 수리됐고, 접안 시설과 캔트리 크레인이 설치됐다.
크레인 설치로 하역작업이 원활해지자 미리 준비해 놓은 콘크리트 블록들이 청진에서 들어와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선시에 들어설 건물은 모두 콘크리트 블록 조립방식으로 토목 공사가 끝내면 수일 만에 멋들어진 건물로 재탄생했다.
나선시는 계획도시로 시청과 관공서, 항만지구 주택지구, 상업지구, 공업지구, 연구단지, 학교, 도서관, 미래 레드포스 주둔지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설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작은 어촌으로 시작해 천천히 단계를 밟아나갈 생각이 없어 벌어들이는 돈을 모두 투자에 단기간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쾌적한 도시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짐바브웨 동쪽 로즈 인얀가 국립공원 안에서 상급 레드몬으로 추정되는 레드엘리펀트 ‘매머드’가 발견됐습니다. 매머드로 명명된 상급 레드몬은 몸길이 35m로 지금까지 발견된 레드몬 중 가장 큰 크기입니다. 상아 길이만 20m에 무게는 40~60ton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매머드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엘리트 레드몬과 중급 레드몬이 50여 마리가 넘는다는 소식입니다.]
“은비 언니! 몸길이가 35m에 상아길이 20m면 대체 얼마나 큰 거예요?”
“우리 캠핑카 길이가 14m니까 캠핑카 4개를 일렬로 세워놓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엄청나게 크네요.”
“은비야! 매머드면 상아가 둥그렇게 휘지 않았을까?”
“그런가? 그럼 좀 짧겠네.”
매머드(mammoth)는 크게 휜 엄니와 긴 털이 특징으로 플라이스토세인 약 480만 년 전부터 약 4천 년 전까지 존재했다.
온몸이 긴 털로 덮여있어 빙하기의 혹심한 추위에도 살아남은 매머드는 어깨높이가 4.5~5.0m, 무게 6~8ton에 이를 만큼 몸집이 매우 크고 육중했다.
엄니(상아)는 대략 4m 정도로 위턱에서 아래로 나와 위로 둥글게 말려 있었다. 예외적으로 큰 수컷의 경우 12톤 이상 나가는 놈들도 있었다.
에오히푸스 이후 두 번째로 발견된 상급 레드몬 매머드의 소식에 세계는 펄펄 끓는 주전자처럼 시끄러웠다.
상급 레드몬의 출현은 인류에게 있어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에오히푸스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일류강대국인 미국이 치른 대가는 실로 엄청났다.
12,708명의 군인과 384명 능력자가 목숨을 잃었고, 수백 대의 전차와 장갑차, 헬기, 차량 등 천문학적인 무기를 쏟아 붓고서야 간신히 잡아낼 수 있었다.
에오히푸스에게 잃은 군인과 무기만 해도 중소국가 국방력 전체와 맞먹었고, 384명의 능력자면 작은 나라쯤은 순식간에 찜 쪄 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이런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잡은 상급 레드몬이 또다시 출현했다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상급 레드몬이 출현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인류의 존속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짐바브웨 정부가 매머드를 잡을 수 있을까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이 나서면 모를까 아프리카 국가 중엔 매머드를 잡을 나라가 없을 거야. 300~400명 동원해서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니까.”
“그럼 미국과 러시아가 매머드를 잡겠네요?”
“글쎄?”
“에오히푸스도 잡았잖아요.”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희생을 무릎 쓰고 잡은 거고, 아프리카는 굳이 잡지 않아도 미국과 러시아가 피해를 볼 일이 없잖아.”
“레드주얼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수만 명의 목숨만큼 레드주얼의 값어치가 있다고 해도 명분이 없잖아. 명분이 없어서 갈 수가 없어.”
“명분요?”
“레드주얼 하나를 얻자고 그 많은 목숨을 희생한다면 국민이 가만히 있겠어? 그리고 미국 안에선 안보문제로 능력자들을 동원할 수 있지만, 국외는 그게 불가능하잖아. 목숨이 걸린 일인데 돈 몇 푼에 따라갈 능력자도 별로 없을 거고.”
“국가가 안 나서면 세계 10대 공대가 갈 수도 있잖아요.”
“그들이 레드주얼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쉽게 움직이진 못할 거야. 구미가 당기지만, 에오히푸스처럼 한 마리도 아니고 가족이 떼로 몰려 있잖아. 그걸 잡으려면 미국이 다시 나서도 될까 말까 할 텐데 누가 가려 하겠어.”
“그럼 매머드를 처리할 나라도 단체도 없다고 봐야겠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잡을 곳이 없으면 우리가 잡으면 되겠네요?”
“우리가?”
“네! 정확히 말하면 오빠가 잡아야죠.”
“상급 레드몬을 내가 어떻게 잡아?”
“엘리트 레드몬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오빠가 잡아야죠.”
“아영아! 오빠를 높이 봐주는 건 고마운데 상급 레드몬은 엘리트 레드몬하곤 체급이 달라. 어른과 갓난아기라고 봐야 해. 그리고 나 말고도 엘리트 레드몬을 잡을 사람은 많아.”
“엘리트 레드몬을 잡을 사람이 많다고요? 누가 있어요?”
“아폴로 공대의 공대장 아폴로 윌리엄스도 잡을 수 있을 거고, 링컨 공대와 페가수스 공대장도 잡을 수 있겠지.”
“그 사람들 모두 중급 능력자예요. 오빠처럼 상급 능력자는 힐러인 마샤 타이엘나 밖에 없어요. 힐러가 사냥도 해요? 제가 어리숙하다고 속이시면 안 돼요.”
“속이다니. 우리가 모르는 상급 능력자도 있다는 뜻으로 말한 거야.”
“어찌 됐든 당장 어려워도 오빠가 매머드를 잡을 수 있게 제가 물심양면으로 도울게요.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정화 스킬을 지금보다 몇 단계 끌어올려 오빠가 매머드를 잡고 상급 레드주얼 가질 수 있게 제가 꼭 도울게요.”
아영이 당찬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꽉 쥐고 흔들었다. 처음부터 내게 상급 레드주얼을 주고 싶은 마음에 다른 곳에서 잡을 수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은 것이다.
「잘 낳은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바로 아영이를 두고 한 말이었네.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굴러 와서 아이고 예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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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