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풍산개2 =========================================================================
88. 풍산개2
조은영의 화살에 새끼가 죽자 흥분한 레드와피티 암놈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새끼를 잃은 슬픔에 제정신이 아닌 듯 암놈은 조은영을 향해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소연이 발사한 홀드 스킬에 맞자 통나무처럼 몸이 굳어 거칠게 바닥을 구르곤 널브러져 일어나질 못했다.
“서걱!”
재빨리 다가가 쓰러진 레드와피티의 목을 잘랐다.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단번에 목을 자르자 1초 만에 숨이 끊어졌다.
그러나 빨갛게 충혈된 눈엔 슬픔과 분노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죽은 레드와피티 암놈의 눈을 감겨주었다.
놈과 개인적인 원한 따윈 없었다. 놈이 이곳에 있었고, 우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놈을 살려둘 수 없었다. 그게 우리가 레드와피티 모녀를 죽인 이유였다.
동물애호가와 평화주의자 중엔 레드몬과 공존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높은 지능을 가진 레드몬을 인간과 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급 레드몬은 최소 8~9세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고, 중급 레드몬은 성인과 같은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 종류에 따라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레드몬도 있었다.
이들은 이런 결과를 근거로 레드몬과 대화를 통해 같은 공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인간이 레드몬을 두려워하는 건 뛰어난 신체 능력에 기인하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건 인간과 같은 높은 지능에 있었다.
지능이 높다는 건 인간처럼 무리를 짓고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군족, 부족, 수장국, 국가로 이어지는 인간과 같은 사회구조가 진행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레드몬이 국가를 형성하면 인간은 설 자리가 없었다. 전차에 필적할 힘을 가진 하급 레드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최소 중대 병력 이상이 동원돼야 했다.
이런 힘을 가진 레드몬 수백만 마리가 모여 국가를 형성한다면 과연 인간과 평화적인 공존을 생각할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였다.
인간은 같은 종족임에도 서로를 원숭이라 비방하고, 싸우고, 빼앗고, 학대하고, 죽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동물 역시 다를 게 없어 사자는 자신의 가족이 아니면 수컷은 모두 물어 죽이고 암컷을 차지했고, 원숭이는 다른 부족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인 후 먹기까지 했다.
인간과 동물 모두 같은 무리가 아니면 적으로 인식하고 상대를 죽였다. 그렇게 같은 종족끼리도 피를 뿌리는데 전혀 다른 종족과 평화적인 공존을 꿈꾼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나 역시 레드몬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믿지도 않았다. 인간도 믿을 수 없는데 매일 서로를 죽이기 위해 노력하는 레드몬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레드독을 거느리려 하는 건 인간이 개를 길들여 이용했던 것처럼 레드독을 길들여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친구가 되려는 의도는 없었다.
녀석들과는 오랜 기간 서로 부대끼며 신뢰할 수 있는 유대감이 쌓인다면 그땐 생각이 변할지 몰라도 지금 내 앞에 나타난 레드몬은 모두 적이었다.
“불쌍하다.”
“놈들은 레드몬이야. 불쌍할 거 없어.”
“알고 있어. 그냥 불쌍하다는 거지 살려둔다는 뜻은 아니야.”
“사냥할 땐 마음에 문을 닫아. 그래야 마음이 약해지지 않아.”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있어. 그걸 제어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죽을 수도 있어. 절대 잊지 마!”
“알았어!”
죽은 레드와피티 모녀를 가여워하는 은비를 크게 나무랐다. 하지만 소연과 아영, 이서인, 조은영 심지어 수많은 모녀를 살해한 나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기견 처리를 맡은 어느 수의사의 슬픈 눈물처럼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면 죽인 사람도 영혼에 상처를 받았다.
희대의 살인마는 대부분 사이코패스로 이들은 감정에 관여하는 전두엽이 일반인보다 15%에 안 돼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인과 같은 감정을 가진 능력자는 레드몬을 죽일 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람보다 동물이나 레드몬을 죽이는 게 죄책감은 조금 덜할지 몰라도 영혼에 상처가 남는 건 같았다.
「다들 마음이 약해가지고.... 정신과 전문의를 초빙해 심리치료를 받던지 해야지 그대로 놔뒀다간 사고 날 수도 있겠네.」
“이 속도면 9월 말까진 우동과 초동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
“계획보다 속도가 빠르네.”
“다 우리 남편 덕분이지.”
“네가 뭘?”
“밤낮으로 쉬지 않고 애써준 덕분!”
“흐흐흐~”
한 달 만에 좌동을 방어벽으로 모두 감싸고 지금은 우동과 초동을 확보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반도 지형이라 우동만 막으면 집터와 소초도까지 뻗은 초동은 방어벽 안에 자동으로 들어와 한 번에 큰 땅을 얻을 수 있었다.
“언니! 우리 집은 언제부터 공사하는 거야?”
“북쪽 방어벽이 완성되면 바로 시작해야지.”
“얼마나 걸리는데?”
“조립식이라 집터만 다지면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을 거야. 도로와 주변 건물까지 모두 지으려면 시간이 몇 달 더 거리겠지만 집은 얼마 안 걸려.”
“집터 공사하려면 나무부터 뽑아야겠네?”
“그래야지.”
“오빠! 오늘부터 밤일 그만하고 나무 좀 뽑아.”
“밤에 레드몬 잡는 게 밤일이야?”
“그럼 그게 낮일이야? 밤일이지.”
“알았어. 네가 밤일 그만하라고 했으니까 앞으로 밤일은 소연이하고만 할게. 불만 없지?”
“그럼 나하곤 낮일만 하면 되잖아. 언니랑은 밤에 놀고 나랑은 낮에 놀아! 내가 화끈하게 서비스해 줄게. 키키키~”
“와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어린 새끼들이 집에 온 지 50일이 넘었다. 풍산개는 생후 12개월이면 성견과 비슷한 크기로 자랐고, 생후 18개월이면 성장을 멈췄다.
태어난 지 5일 만에 부모를 잃고 우리에게 온 풍산개 새끼들은 레드독이라 그런지 열흘 만에 물체를 정확히 인식하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2주 만에 유치가 나왔고, 3주 만에 청각과 후각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움직이는 물체에 관심이 많아 온종일 뛰어다니며 자매들끼리 장난치고 싸우느라 하루해가 갔다.
3주가 되자 정확히 사람을 인식하고 각자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4주가 되자 28개의 유치가 모두 나왔다.
5주차에 접어들자 서로 쫓고 쫓기면서 장난치는 모습이 일반적인 개완 사뭇 달라 녀석들이 레드독이란 걸 실감하게 했다.
6주부턴 젖을 완전히 떼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발육을 위해 레드몬 고기를 먹이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7주차에 접어든 녀석들은 작은 강아지가 아니라 발바리만큼 커 일반적인 풍산개 4개월에 해당하는 덩치로 자라있었다.
“오빠! 애들 교육은 잘 돼가?”
“잘 되고 있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지?”
“그렇다고 봐야지. 지능도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고, 젖을 떼고 고기를 먹기 시작해 성장 속도도 빨라졌으니까.”
“정들었는데 잘되면 좋겠다.”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레드독이라 그런지 성장 속도가 일반적인 풍산개와 비교해 두 배 빠르고 지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4주차부터 놈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살기를 투사했다. 최대한 살기를 줄여 짧은 시간 투사했지만, 워낙 어린 녀석들이라 겁에 질려 똥오줌을 싸댔다.
그렇게 매일 길들이자 이젠 내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달려와 발밑에 엎드려 머리를 처박고 꼬리를 흔들었다.
일반적으로 개가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고 누울 때 사람들은 '복종'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개 주인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방법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복종이 아닌 원활한 방어와 효율적인 공격을 위한 자세로 캐나다 레스브리지 대학교 커리 노맨 박사의 연구결과 드러났다.
연구팀은 중간 사이즈의 암컷이 종과 사이즈가 다른 33마리의 개와 노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 결과 암컷 개가 배를 보이고 눕는 경우 복종의 의미보다는 '방어'를 위한 기술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손을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꼬리를 흔들며 빨고 핥느라 정신이 없었다.
준비해간 레드무스텔라 고기를 손에 들고 녀석들을 바라봤다. 레드몬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 탓이진 아니면 동물적 습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인지 침을 뚝뚝 흘리며 먹고 싶은 티를 팍팍 냈다.
살며시 고기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길들지 않은 개라면 고기를 물고 정신없이 먹을 것이고, 제대로 훈련된 개라면 먹이에 대한 식욕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인의 명령을 기다렸을 것이다.
7주밖에 안 된 어린 새끼들도 제대로 훈련된 성견처럼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했다. 그리고 고기가 아닌 내 눈을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먹어!”
“왈왈~ 왈왈~”
명령을 내리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섯 마리가 일제히 짖어대곤 고기를 물고 뜯어먹기 시작했다.
“와! 대체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다 자란 개보다 말을 더 잘 들어? 이건 완전히 훈련받은 군견 수준이잖아.”
“특별한 건 없어. 이렇게 먹이 주고 쓰다듬고 명령어 몇 개 가르친 게 전부야.”
“말도 안 돼! 이제 겨우 50일 넘은 아기들이 몇 달 훈련 받은 어미 개처럼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데,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레드독이라 똑똑해서 그런가 보지.”
강아지를 끔찍이 좋아하는 은비에게 차마 살기투사를 사용해 교육했다고 말할 수 없어 똑똑하단 말로 뭉뚱그려 대답했다.
“우리 없을 때 애들 때리고 못살게 굴고 구박하는 거 아니야?”
“조막만 한 애들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때려.”
“때리지도 않고 쓰다듬어서 이렇게 만든다는 게 말이나 돼? 솔직히 말해. 어떻게 한 거야?”
은비는 강아지들을 한가족으로 생각할 만큼 예뻐하고 사랑했다. 틈만 나면 안아주고, 씻기고, 빗질하고, 놀아주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은비뿐만 아니라 나선시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녀석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오죽하면 자기들 멋대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 등 녀석들은 나선시의 명물이자 마스코트가 되어 있었다.
“살기투사!”
“헉! 때리는 것보다 더 잔인하잖아!!! 다 자란 하급 레드몬도 살기투사에 걸리면 벌벌 기는데 어떻게 아기들한테 그걸 사용해? 너무 한 거 아니야!”
새끼들에게 살기투사를 사용했다는 말에 정말 화가 났는지 은비가 언성을 높였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