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윤아영2 =========================================================================
87.
“앞으로도 난 달라지지 않을 거야. 지금 모습 그대로 살아갈 거야.”
“달라지라는 말이 아니야. 이들의 마음을 더욱 단단히 잡을 수 있도록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라는 뜻이야.”
“난 남을 기만하고 싶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속이고 싶지도 않아.”
“속일 필요 없어. 내 마음을 좀 더 표현하면 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더 이상은 안 돼! 그리고 대원들이 정말로 날 좋아한다면 그건 내가 솔직했기 때문이지 그들에게 특별히 잘해줘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봐. 내가 가식적이었다면 그들은 날 믿지 않았을 거야.”
사람이 사람을 따르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사람이 가진 배경과 돈, 단순한 호의, 맹목적인 충성심, 교육에 의한 세뇌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과 구속 등 사소한 이유를 모두 된다면 수백 가지도 넘었다.
이중 가장 이상적인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발적 충성심이었다. 하지만 그건 돈으로 살 수 없고, 입으로도 설득할 수 없는 오직 마음으로밖에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선물이었다.
“진실한 마음만이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급해 잠시 혼란스러웠나봐. 미안해!”
“아니야! 나도 네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 단지 모난 성격을 바꿀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한 것뿐이야.”
“그게 왜 모난 성격이야? 남을 속이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건 모난 게 아니라 바르고 올바른 행동이야.”
“너무 좋게만 말하는 거 아니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거야.”
“근데 은비는 왜 내 성격 안 좋다고 매일 핀잔주는 거야.”
“그거야 한숙 언니 때문이지. 나도 그 부분은 은비와 생각이 같아.”
“하아~ 또 그 소리야. 인제 그만 좀 하자. 지겹다.”
“우리도 지겨워! 매일 같은 소리 하는데도 바뀌지 않는 네 모습이 정말 지겨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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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퉁퉁퉁퉁퉁~”
“비 엄청나게 많이 오네. 이러다 홍수 나겠다.”
이틀째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쏟아 붓는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장대비가 내리퍼붓고 있었다.
이 비가 본격적인 장마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기상청은 8월 중순까지 장마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차를 때리는 빗소리 악기 같지 않아? 통통거리는 소리 정말 좋지?”
“소리보단 이틀 연속 쉬어서 좋은 거 아니야?”
“그것도 좋지만, 이렇게 오빠 품에 안겨 비 구경하는 게 더 좋아. 히히히~”
은비의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창문을 두드리는 비를 바라봤다. 캠핑카라 그러진 빗소리가 요란했지만, 넓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비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이런 호사도 오늘까지만이야. 내일부턴 비가와도 일을 시작해야 해.”
“앞도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이야? 위험해서 안 돼!”
“일정이 잡혀 있어서 어쩔 수 없어. 8월 중순까지 장만데 그때까지 계속 쉬고 있을 순 없잖아.”
“비 오는 날 사고가 얼마나 자주 나는지 알잖아.”
“그거야 눈으로 레드몬을 찾으니까 그렇지. 우린 상관없어. 레드몬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잖아.”
“옷 다 졌으면 감기 걸릴 수도 있어. 그럼 약값도 안 나와!”
“감기 같은 소리하고 있네. 능력자가 감기 걸리는 거 봤어? 그리고 네가 입은 방어복은 완전 방수야. 감기 걸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우씨~ 며칠만 더 쉬자. 오빠랑 이렇게 누워있고 싶단 말이야. 딱 삼일만 더 누워있자. 제발!!”
“하하하~”
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 레드몬을 잡겠다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빗소리에 청력이 무뎌지고 가시거리마저 짧아 레드몬을 찾기도 어렵고, 찾는다고 해도 미끄러워 싸우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인간뿐만 아니라 레드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후각과 청각이 발달한 레드몬은 비가 많이 오면 장님이나 마찬가지라 기감으로 놈들을 찾을 수 있는 내겐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언니하고 아영이는 어디 갔어?”
“오늘부터 부두 공사 시작이잖아. 그 일로 정한숙 사장 만나러 갔어. 협의할 일이 많은가봐.”
“아영이도 같이 갔어?”
“아영이는 동생들 밥 챙겨주러 갔어. 금방 올 거야.”
“김관웅 사장을 빨리 불려 올려야지 언니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사냥해야지, 공사 일정 짜야지, 감독해야지, 잘 시간도 부족하겠어.”
“그쪽도 일이 많아서 안 돼. 직원 다섯 명으로 나선시와 관련된 일을 모두 맡고 있어. 지금도 쌍코피 터지는데 책임자를 빼오면 쓰러질지도 몰라.”
“나도 내일부터 시장 직무 교육받아야 해서 언니 도와줄 시간이 없어. 서인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할까?”
“그것도 괜찮네. 네가 한 번 물어봐.”
“알았어.”
방벽 공사가 마무리되며 안전을 확보하자 부두 재건공사가 시작됐다. 30년 동안 버려진 부두는 형태만 온전할 뿐 남아있는 시설이 하나도 없어 방파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선박 접안을 위한 계류 시설, 화물 하역을 위한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 화물 관리를 위한 건물, 화물을 임시로 적치할 야적장, 화물 운송을 위한 항만 도로, 승객이 승하선하는 여객터미널 등 필요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1·2·3부두는 확장 공사 없이 이 상태로 공사를 진행할 거야. 컨테이너 부두는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1부두 아래에 새로 조성할 계획이야.”
“방벽 공사도 같이 진행하면 인원이 엄청나게 늘어나겠네?”
“3,000명 넘을 거야. 숙소는 당분간 대초도를 쓰기로 했어.”
“부두 공사 때문에 방벽 공사가 차질을 빚는 건 아니지?”
“먼저 1부두부터 공사를 끝낸 후 2부두, 3부두 순으로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어. 당분간 방벽은 3부두를 이용해 내릴 거야.”
소연이 돌아온 건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회의는 점심까지 거르며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한꺼번에 많은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조율할 일이 한둘이 아녔다. 소연은 미래 레드몬 부회장으로 회의에 참석해 나를 대신해 모든 걸 결정했다.
처음 청진에서 회의가 있은 후 레드몬을 핑계로 소연에게 일을 모두 떠넘겼다. 전문 용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앉아있어 봐야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어제도 새벽까지 서류를 뒤적이느라 늦게 잤잖아. 좀 쉬어.”
“나가려고?”
“응! 동네 한 바퀴 돌고 내일 사냥할 숲 좀 둘러보고 올게.”
“멀리 가면 안 돼!”
“알았어!”
“오빠!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왜”
“나도 같이 가야지. 바늘 가는데 실이 안 따라가면 안 되지.”
“저도요! 저도 갈게요.”
“다 가면 여긴 누가 지켜? 설마 비 온다고 레드몬이 누구처럼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시간을 축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은영이 언니 있잖아~”
“한 번에 한 방향에서만 와? 그것도 한 마리씩?”
“그건 아니지만...”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얌전하게 있어.”
“이잉~”
은비의 앙탈을 뒤로한 채 우비를 뒤집어쓰고 캠핑카를 나섰다. 이틀간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물 폭탄을 투하하고도 아직 멀었는지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먼저 초동과 우동을 둘러보고 좌동을 거쳐 좌이동으로 넘어갔다. 작은 무리까지 몽땅 청소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기감에 걸리는 레드마우스가 생각보다 많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돌아다니는 놈들이 없어서 그렇지 다 합치면 1,000마리는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뭉쳐있는 것도 아니었고, 포베로미스와 제리도 없어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놈들을 훈련용으로 버려두고 아름드리나무와 잡목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으로 들어갔다.
전에 왔을 땐 레무스텔라와 레드라쿤독이 기감에 많이 잡혔는데, 지금은 레드래빗과 레드칩 등 비선공형 레드몬 위주로 잡혔다.
소음에 이끌려 공사장에 내려왔던 놈들이 혈기탄에 모두 맞아 죽으며 숲은 평화를 맞은 상태였다.
6일 동안 잠도 못자며 개고생을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보람을 찾게 됐다.
그래봐야 번식력과 성장 속도가 워낙 높아 1년이면 개체수를 다시 회복하고 숲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내 땅이라 방벽을 높이 세워 다시는 놈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계획이었다.
또한, 살아 있는 놈들은 모두 잡아 고기는 먹고 뼈와 가죽은 팔 생각이라 놈들에겐 이제 기회가 없었다.
지난번 레드바이퍼와 레드스네이크를 느꼈던 소나무 숲으로 이동해 놈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땅속 깊숙이 숨었는지 도통 느껴지는 게 없었다. 혹시 몰라 지형을 샅샅이 훑었지만 숨을만한 커다란 땅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먹이를 잡으러 이곳까지 왔다가 기감에 걸렸을 수도 있어 반경 1km를 더 수색했다. 하지만 이곳이 놈들의 영역이 아닌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잡았어야 하는 건데. 괜한 여유를 부렸네.」
이번엔 레드독과 레드스네이크가 싸웠던 집터로 올라갔다. 지난번 잡은 레드스네이크는 암놈으로 놈이 번식에 성공했다면 새끼나 수놈이 있을 수 있었다.
집터에 커다란 뱀이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 의심스러운 곳은 나무와 돌을 파헤치며 꼼꼼하게 살폈다.
구렁이는 하급에서 변이해 성장한 레드몬으로 엘리트 레드몬까지 성장했다면 새끼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수놈을 만나지 못해 번식에 실패했는지 새끼는 물론 수놈도 찾을 수 없었다.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기분이 영 찜찜하네.」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나선시를 내려다봤다. 30년간 버려져 폐허가 된 도시로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보잘것없는 쥐들의 도시지만, 언젠간 시드니, 리우데자네이루, 나폴리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4대 미항으로 불리게 될 도시가 들어설 자리였다.
이제 겨우 부두를 확보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이런 소릴 한다면 비웃음과 함께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었다.
적어도 부산항 정도는 돼야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세계 3대 미항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항구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3대 미항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작은 어촌에서 시작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지하 단칸방에 살다가 이젠 커다란 저택도 모자라 도시를 만들 생각까지 하고 많이 출세했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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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