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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86화 (86/505)

00086  윤아영2  =========================================================================

86.

아영과 함께한 첫날 밤 우린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밤에도 공사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낮보단 소음이 작은 작업 위주로 공사를 진행했지만, 밤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렸고, 공사장을 밝히는 환한 불빛까지 있어 레드몬이 수시로 나타났다.

이날도 역시 밤새 혈기탄을 쏘고 생명력을 흡수하고 사체를 옮기는 등 쉬지 않고 숲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만들 자!”

“아~함! 전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

“자고 일어나서 도와줘. 그게 정말 도와주는 거야.”

“전 정말 괜찮은데...”

괜찮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영은 언제 잠든 지도 모른 채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은비는 세 번 연속된 섹스에 지쳐 침대에 곯아떨어졌다.

옆에 앉은 소연도 삼일 밤을 꼬박 새우자 감기는 눈을 참지 못해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6일 밤, 6일 낮이 지나고 다시 레드포스 대원들이 방어탑에 무기를 장착하는 것까지 모두 도와준 오후가 돼서야 간신히 침대에 몸을 눕힐 수 있었다.

「와! 정말 못할 짓이네. 피곤한 건 참겠는데, 잠을 못 자서 그러진 머리가 아파 미치겠네. 이래서 밥보다 잠이 먼저라고 했나 보네. 배고픈 것보다 졸린 거 참기가 더 힘들어.」

154시간 만에 침대에 누워 시체처럼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치였는지 두 시간 만에 눈을 떴다.

“탕~ 탕~ 탕~”

“파라라라람~ 파라라라팜~”

“쾅~”

레드마우스가 방벽에 접근하자 가장 가까운 방어탑에서 저격총과 기관총, 클레이모어가 불을 뿜었다.

주변 방어탑과 비상대기 중이던 대원들이 가세해 놈들을 공격하는 사이 소연과 은비, 조은영이 달려가 쥐새끼들을 끝장냈다.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기감을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지만, 수백 명의 안전을 책임진 만큼 졸음과 두통을 이유로 임무를 소홀히 할 순 없었다.

“다 처리했어. 걱정하지 말고 어서 자!”

“재워줘.”

“응!”

레드마우스를 처리하고 돌아온 소연이 침대로 다가와 잠 못 드는 날 안심시켰다. 총소리에 내가 깰 줄 알고 서둘러 돌아왔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소연을 품에 안기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역시 소연만큼 날 편하게 해주고 여자는 없었다.

은비를 깊이 사랑하지만, 소연만큼 내 마음을 차지할 순 없었다. 내게 소연은 첫사랑이자 조강지처로 생명 같은 존재였다.

옷 속에 손을 넣어 부드럽고 탄력적인 엉덩이를 어루만지자 모든 시름이 사라지며 눈이 감겼다.

“푹 자! 자고 일어나면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응!”

「간이라도 맞추면 좋겠는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커다란 석쇠에 레드보어 고기를 굽자 기름이 지글지글 떨어지며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에 퍼지자 사람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고기가 익기만을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고기 냄새를 맡고 레드마우스가 몰려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지만, 부두 끝이라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사고 없이 방벽 공사가 끝난 걸 축하하는 자리이자, 신입 미래 레드포스 대원들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소연과 정한숙의 지휘 아래 6일 만에 3km 달하는 기다란 방벽이 완성됐다. 초단기간에 일을 끝낸 것도 대단했지만, 부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게 더욱 대단한 일이었다.

이런 공사는 많은 인명피해가 따르는 공사로 심한 경우 인부와 안전요원 전체가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위험 공사를 피해 없이 끝냈다는 건 안전을 책임진 우리뿐만 아니라 공사를 감독한 정한숙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 기쁜 일은 할아버지와 미래 레드포스 대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애초 예상을 크게 웃돌며 무려 123명이 미래 레드포스의 새로운 가족이 된 일이었다.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부대장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올 거라고 미리 언질을 줬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식구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다.

면접자 157명 중 100명도 응사하지 않을 거란 예상을 깨고 무려 148명이 나선시를 찾았다.

이 중 성격장애로 면접에서 탈락한 7명과 열악한 환경에 기겁하고 돌아간 18명을 뺀 123명이 레드포스 대원이 되며 인원이 154명으로 늘었다.

인원 증가로 2인 1조에서 3인 1조로, 2교대에서 3교대 근무형태가 바뀌며 보다 효율적으로 레드몬을 방어할 수 있게 됐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보여주신 신뢰가 있었기에 저희도 믿을 수 있는 지인들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한 것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손수 구워주신 레드보어 고기만 해도 평생 누려보지 못한 감동이었습니다. 저희를 아껴주시는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고자 목숨 바쳐 회장님과 나선시를 지키겠습니다.”

김도형 대장과 대원들은 내가 자신들을 위해 사냥하고 손수 고기를 손질해 구워주자 고마움을 넘어 진심으로 감동했다.

이들은 모두 믿음과 의리인 신의(信義)를 중요시하는 사람들로 내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마음으로 감동하고 있었다.

“고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평생 구워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번 한 번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솔직히 평생 고기를 구워주겠다는 약속은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도형 대장이야 언제든 가능하지만, 대원들이 수천, 수만으로 늘어나면 그 많은 인원을 언제 다 구워주겠습니다. 대신 직접 구워주지는 못해도 맛있는 레드몬 고기는 평생 끊이지 않게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월급을 올려준다는 약속보다 훨씬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요. 한잔합시다.”

“예!”

유리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잔을 높이 들자 회식에 참석한 레드포스 대원들과 KM 기술자들이 다 함께 술잔을 들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해주십시오. 나선시는 할 일이 많은 도시입니다. 또한, 앞으로 계속 발전할 도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만큼 절대 배신하지 않고 그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지홍 회장님과 나선시를 위해 건배!”

“건배!”

정한숙이 기다렸다는 듯이 건배를 외치자 500명이 넘는 인원이 큰 소리로 건배를 제창했다.

기분 좋은 마음에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대원들과 공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잔을 따라주고 또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1시간 만에 큰 유리컵으로 소주 300잔을 마시자 회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단하단 박수 대신 괴물을 보는 듯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강성원 부대장과 대한민국 출신 대원들에게 물어보니 능력은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사회로 복귀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 고생하는 동료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이들을 받아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더 많은 대원이 필요합니다. 나선시를 지키기 위해선 최소 1,000명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이 땅 전체를 지키려면 10,000명, 20,000명으로도 모자랍니다. 김도형 대장과 대원들이 믿고 같이할 수 있는 대원들을 더 많이 추천해주세요.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한 수용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군인들의 열악한 처우도 문제지만, 불안한 고용이 더 큰 문제였다. 부사관 출신은 능력이 있어도 진급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고, 장교는 진급을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더구나 군에 있어선 안 될 사조직인 하나회와 같은 파벌과 연줄이 도처에 널려 유능한 군인보다 아부와 아첨에 능한 군인들을 득세하고 있었다.

ROTC(학군단) 출신이 별을 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고, 육사 출신이 아니면 인간대접도 못 받았다.

유능한 군인들이 쓰레기 정치군인들에 밀려 한직에서 고생하는 건 다반사였고, 상급자에게 찍혀 진급이 안 돼 옷을 벗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난 이런 인재들을 받아들여 대한민국보다 더욱 막강한 부대를 양성할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이 버린 뛰어난 인재들을 스카우트해 뛰어난 무기로 무장해 내 땅을 지킬 간성(干城)으로 키울 계획이었다.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네.”

“맛있는 고기와 술이 있어서 그렇지.”

“그것도 한몫했겠지. 좋은 음식과 술만큼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없으니까.”

“맞아.”

“내 생각엔 고기와 술도 좋지만 그걸 손수 준비하고 만들어준 네 정성이 있어 기쁨과 감동이 배가 된 것 같아.”

“아까 김도형 대장도 그 말 하던데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내일 해준 사람에게 고기와 술을 대접하는 건 주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잖아.”

“그게 우리나라 전통사상이니까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대기업 회장과 사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보통 이렇게 생각하지. 일 시켜준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건 재벌 이야기지 우리 같은 서민 이야기는 아니잖아.”

“누가 널 서민으로 봐? 능력자를 서민으로 보는 사람은 없어. 더구나 네 능력을 눈으로 확인한 레드포스 대원들이 널 서민으로 생각하겠어? 그들은 널 우상이자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어.”

“말도 안 돼! 내가 그들에게 뭘 해줬다고 우상이고 영웅이야? 월급 주고 고기 구워주면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거야?”

“넌 그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잖아.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해? 단순히 네 힘만 보고 우상이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자신들을 걱정하고 돌봐준 내 행동에 감동해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지 그들을 위해 일한 게 아니야.”

“나도 알아. 하지만 그들을 보호하려 한 건 사실이잖아.”

“그게 내 일이니까. 내 일이니까 당연히 한 것뿐이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보조사냥꾼으로 있어봐서 알잖아. 작은 일도 남에게 미루고 조그만 위험도 힘없는 사람에게 떠넘기는 걸 직접 봤잖아.”

김도형 대장과 대원들이 어떤 눈으로 날 바라보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일 뿐 진실은 아니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는 죽는 것처럼 난 내가 할 일에 충실했고, 그게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것뿐이지 내가 그들을 위해 일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부담스러우면 더는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도. 레드포스 대원들의 충성을 끌어내면 이 땅을 개발하고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소연은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어, 닦달하기보단 실리적인 측면을 일깨워 스스로 움직이게 하려 했다.

하지만 23년에 걸쳐 생성된 자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다른 이의 말 한마디에 관념이 바뀐다면 그건 자아가 없는 인간이라 불러도 될 만큼 소신도 선악에 대한 개념도 없는 무뇌아였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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