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나선항 =========================================================================
83.
레드마우스 무리에 제리와 포베로미스가 끼면 전투력이 급상승해 살짝 까다롭긴 했지만, 그래봐야 최약체라 숫자만 적당히 조절하면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는 레드몬이었다.
그러나 산과 숲엔 하급·중급 레드몬이 많아 위험도를 비교하면 1대 100이라고 할 만큼 절대적으로 위험했다.
특히 만주·연해주와 붙은 이곳은 대한민국 전체가 등을 돌릴 만큼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레드타이거, 레드레오파트, 레드베어, 레드울프 등 최상위 포식자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었다.
중부지방인 회양은 레드보어, 레드링스, 레드마틴이 최상위 포식자지만, 이곳엔 그런 놈들을 먹이로 삼는 진정한 포식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소연이 걱정하는 건 이놈들을 상대하다 내가 다치는 거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과 동생들을 보호하다 내가 다칠까봐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공대는 매우 특이한 구조로 근접 공격수는 나 하나밖에 없고, 민첩형 피지컬리스트 한 명에 나머지 네 명은 모두 멘탈리스트였다.
이런 구조는 공격력이 강할진 몰라도 방어가 매우 취약해 레드몬 사냥팀에선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이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병법에서 상대를 기습하거나 압도적인 힘으로 공격할 때 사용하는 전술이지, 우리처럼 매일 레드몬을 사냥하는 사냥팀엔 어울리지 않는 전술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최강으로 통하는 청사자 공대는 팀원 25명 중 18명이 피지컬리스트였고, 이중 절반인 9명이 방어형 피지컬리스트였다.
최강이라 인정받는 청사자 공대도 방어에 가장 큰 비중을 둘만큼 안전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우리도 고질적인 문제인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팀원을 보강해야하지만, 우리와 함께할 능력자가 없어 레드독을 길들여 이를 보완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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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륵~ 드르르륵~”
“쿵쾅~ 쿵쾅~ 쿵쾅~”
“너무 시끄러워서 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네.”
“이정도 소음이면 아주 멀리까지 들리겠는데요?”
“이건 레드몬을 끌어들이는 거나 다름없는 미친 짓이야. 들어와! 들어와! 이렇게 말이야!”
“정말 그러고도 남네요.”
굴착기 수십 대가 땅을 파고 불도저가 길을 내자 귀가 먹먹할 만큼 커다란 소음이 났다.
은비와 아영의 말처럼 커다란 소음은 레드몬을 끌어들이는 미끼와 같은 역할을 하며 놈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펑~ 펑~”
“오빠! 몇 마리째 잡은 거야?”
“아침 먹고 28마리 잡았어!”
“세 시간 만에 28마리면 오늘도 무진장 몰려오겠네. 정말 더럽게 많네.”
“어쩌다가 레드무스텔라가 한 마리씩 끼어 있어서 그렇지, 대부분이 레드마우스라 위험하진 않아.”
“그게 아니라 오빠가 흡기로 사용하는 레드마우스 사체가 아까워서 그래. 어제 서른일곱 마리나 못쓰게 하더니 오늘은 벌써 아홉 마리나 못쓰게 만들었잖아.”
“가죽은 벗겼잖아.”
“가죽을 벗겨도 한 마리당 150만 원이 날아가니까 그렇지. 어제 오늘 날린 돈만 무려 6,900만 원이야. 6,900만 원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가뜩이나 돈 들어갈 일이 태산인데, 대체 뭐하자는 거야?”
“그럼 나무를 이용할까?”
“조경도 생각해야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만들고 싶다면서 나무를 몽땅 못쓰게 하면 어쩌라는 거야. 나무 옮겨 심는데 시간과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알고서 하는 소리야?”
“알았어. 총알로 잡으면 되잖아.”
“낮엔 총알로 잡고, 밤에만 혈기탄으로 잡아. 특별히 봐주는 거야. 알았어?”
“응!”
처음엔 잡목에서 모자라는 생명력을 보충해 혈기탄을 만들었다. 잡목이 모두 사라지자 멀쩡한 나무는 미관 문제로 손댈 수 없어 레드마우스 사체에서 생명력을 뽑아 썼다.
이마저도 금전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죽을 벗긴 다음 생명력을 흡수했다. 뼈까지 발라내면 혈기탄을 한 발도 만들기 힘들어 뼈는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편하자고 하는 일도 아니고 좌우에서 한꺼번에 놈들이 다가오거나, 나무나 돌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경우 총알론 잡아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혈기탄을 사용하고 있었다.
중장비와 인력을 대거 동원하며 공사비용이 몇 배로 증가해 한 푼도 아끼자는 의미에서 은비가 잔소리를 해댔다.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남자가 쪼잔하게 일일이 화를 낼 수도 없고...
「일하고 욕먹고 가지가지 한다.」
“오빠! 많이 힘드시죠?”
“괜찮아!”
“이거 가지고 계시다가 피곤하면 밤에 틈틈이 드세요.”
“고마워!”
아영이 정화수가 가득 든 수통을 건네줬다. 낮엔 아영이 옆에 붙어 틈틈이 정화 스킬을 걸어주지만, 밤엔 떨어져 있어 이렇게 정화수를 만들어줬다.
정화수는 생명력을 공급하진 못해도 기감력과 혈기탄 사용으로 생긴 피로 물질을 제거해줘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오빠!”
“왜? 할 말 있어?”
“저... 음...”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어둠이 깔린 캠핑카 위에 아영과 단둘이 앉아 있었다. 소연과 은비는 공사문제로 정한숙을 만나러 잠시 자리를 비웠고, 이서인은 동생들을 돌보러 숙소로 들어갔다.
조은영은 바로 옆 건물 옥상에 김도형 대장과 레드포스 대원들을 돕기 위해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동생들이 오지 말래요.”
“오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밤에도 오빠 옆에 있을래요.”
“왜?”
“서인이 언니한테 밀려나면 안 된다고 절대 떨어지지 말래요.”
“하하하~”
“오빠! 웃을 일이 아니에요. 저하고 동생들은 심각하단 말이에요.”
며칠 전 이서인이 내 품에 안겨 우는 모습을 본 다음부터 아솔과 아림은 수시로 이서인을 감시하듯 따라다니며 나와 단둘이 있는 걸 방해했다.
둘째 아정이 시킨 일로 아정은 이서인 때문에 자신의 언니가 밀려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이서인을 바라보는 아정의 눈에 적개심이 가득해 눈치가 있다면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웃긴 건 이서인을 언니의 연적만이 아닌 자신의 연적으로도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한참 짝사랑을 할 나이라 이상할 것도 없지만, 눈빛이 보통이 아니라서 쳐다보고 있으면 섬뜩섬뜩했다.
“아영아! 오빠 어디 안 도망가. 천천히 와도 돼.”
“오빠는 마음이 편할지 몰라도 전 하루하루 피가 말라요. 초조해서 잠도 못 자겠고, 불안해서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네 나이 이제 겨우 18살이야. 급할 거 없어.”
“여자 나이 18살이면 애 낳고 살 나이에요.”
“그건 원산 사람 기준이지. 남쪽에선 보통 20대 중반이나 30대 초반에 결혼해.”
“결혼은 안 해도 같이 살 순 있어요. 언니들도 그러고 있잖아요.”
“언니들은 성인이잖아. 넌 아직 미성년자야.”
“미성년자라도 결혼을 약속하면 같이 살아도 되잖아요.”
아영은 평소 순한 양 같지만 한 번 고집을 부리면 황소로 돌변했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나와 관련된 게 아니면 고집을 세우지도 않아 다른 사람은 아영의 이런 모습을 전혀 몰랐다.
“지금처럼 살다가 20살 되면 그때부터 같이하면 되잖아.”
“20살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잖아요. 전 무조건 오빠하고만 살건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죠.”
“한 이불을 쓰지 않는다고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니지. 이렇게 매일 붙어 있어도 좋은데, 시간 낭비라니 말도 안 돼!”
“오빠! 제가 싫죠? 언니들보다 못 나서 마음에 안 들죠?”
아영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따지듯 물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아니야! 내가 널 얼마나 예뻐하는데 그래! 알잖아.”
“그냥 동생으로 예뻐하는 거죠. 여자로 안 보이는 거죠? 그렇죠?”
“그렇지 않아! 평생 같이하고 싶어.”
“근데 왜 절 밀어내세요? 전 오빠 없으면 미칠 것 같은데, 안아주지도 않고 구경만 하고 있잖아요.”
“그건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나이가 되면 싫다고 해도 데려올 거야.”
“아니에요. 오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흑~”
“아니라니까. 아영아! 오빠 널 정말 좋아해! 사랑한다고!”
“거짓말 마세요! 제가 우니까 달래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흑흑~”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영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영의 울음에 캠핑카를 지키던 레드포스 여성 대원들이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아우~ 쪽팔려! 미성년자 강간범이 된 기분이네. 뽀뽀라도 했어야 죄책감이라도 들지, 같이 살자는 걸 말리다가 졸지에 이상한 사람이 돼버렸네. 젠장!」
“애를 왜 울려? 혹시... 때린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아영이를 왜 때려?”
“나도 때렸잖아.”
“에이~ 그건 때리게 아니라 장난친 거잖아.”
“장난 두 번만 치면 사람 잡겠다.”
“미안!”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울어? 울 일이 없잖아.”
“은비 언니! 오빠가 절 싫어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싫어하다니? 오빠가 널 얼마나 많이 좋아하는데 그래.”
“아니에요. 절 싫어해 옆에 두고 싶지도 않다고 했어요.”
“설마?”
“정말이에요. 밤에도 오빠하고 같이 있고 싶다고 하자 절대 안 된다고 했단 말이에요.”
“왜 안 된다고 했어?”
“싫으니까 그렇죠. 흑흑~ 언니! 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죠? 오빠 없으면 죽을 것 같은데 오빠는 절 싫다고 하고... 아무래도 살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얘가 못하는 말이 없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언니들이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런 말을 해!”
“죄송해요. 하지만... 흑~”
“오빠! 왜 싫다고 했어?”
“싫은 게 아니라 미성년자라 좀 기다리라고 한 거야.”
“오빠! 사랑하는데 나이가 그렇게 중요해?”
“그런 건 아니지만, 최소한 지킬 건 지켜야지. 사회적 통념이라는 게 있는데.”
“고리타분하긴. 좋아하고 사랑하면 같이 살면 되는 거야 뭘 그렇게 따져?”
“많이도 아니야. 1년 6개월만 기다리면 된다고 했어.”
“정말 답답하다. 오빠! 사랑하고 싶을 때 1분도 못 참겠지?”
“그... 그거야 그렇지.”
“오빠는 1분도 못 참으면서 아영이에겐 1년 6개월을 기다리라고 했어? 너무 한 거 아니야. 언니! 언니 생각은 어때?”
“나도 네 생각과 같아. 사회적 통념을 따지면 우린 이미 선을 한참 넘은 상태야. 한참 벗어난 우리가 통념을 따진다는 게 모순 아니겠어.”
“들었지? 오늘 밤부터 아영이 네 옆에 데리고 잘 거야. 우리랑 같이 있기 싫으면 지붕에서 혼자 자. 다신 옆에 오지 마!”
“내가 언제 싫다고 그랬어? 시간을 달라고 한 거지.”
“어떻게 할 거야. 같이 잘 거야 말 거야?”
“알았어. 같이 자면 될 거 아니야.”
“아영아! 들었지? 오빠가 허락했다.”
“은비 언니! 정말 고마워요. 소연 언니! 너무너무 감사해요.”
“눈물이 사라졌네?”
“제가 언제 울었나요? 헤헤헤~”
「와~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네. 여우네 여우야! 완전히 속았어.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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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