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9 정화(淨化) =========================================================================
79.
오랜만에 일찍 일어난 은비가 목욕까지 하고 화장대에 앉아 얼굴에 베이비로션을 바르고 있었다.
하루 푹 쉬고 아영의 정화 스킬까지 받자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모두 풀렸는지 표정이 밝았다.
재생력이 뛰어나 아기 피부보다 더 매끄럽고 뽀송뽀송한 소연과 은비는 화장품을 쓸 필요가 없어 베이비로션만 발랐다.
그런데도 화장품은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었다. 스킨·토너, 에센스·세럼, 크림,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컨실러, 파우더·팩트, 아이새도, 립글로스, 틴트,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폼클렌징, 마스크팩 등 없는 게 없었다.
종류만 이 정도지 가짓수를 모두 합치면 50여 개가 넘었다. 여자에게 화장품은 사치품이 아니라 기본 생활품인지 쓰지도 않을 걸 바리바리 챙겼다.
“베이비로션만 쓰면서 화장품은 왜 그렇게 많이 사? 쓰지도 않으면서.”
“무슨 소리야? 다 쓰는 거야.”
“뚜껑도 안 열었으면서 뭘 써? 화장대 위에 있는 것 중에 쓰는 건 두세 가지잖아.”
“아껴 쓸려고 그러는 거야.”
“유통기한 없어? 오래 놔두면 상한다고 하던데.”
“이씨~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아니 그게 아니라 책에서 보니까 개봉 후 6개월부터 보통 1년이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쓰여 있기에...”
“흥! 내 몸에 바를 화장품 사는 게 그렇게 아까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됐어.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정말, 다음부터 할아버지에게 사달라고 하면 되잖아.”
“.......”
괜한 소리를 했다가 아침부터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난 안 발라도 예쁜데 화장품이 왜 필요하냐는 뜻으로 말한 거였다.
그리고 화장품도 오래되면 상한다는 말을 들어서 버리고 새로 사야 한다고 알려주려 한 죄밖에 없었다.
그 마음을 몰라주... 말주변이 없어 예쁘다는 말을, 걱정한다는 말을 조금 서툴게 했기로서니... 감히 하늘 같은 남편에게... 으드득~
“최은비! 뛰는 거야? 걷는 거야? 지금 장난해?”
“하아~ 하아~ 열심히 뛰고 있잖아.”
“철썩! 철썩!”
“아얏~ 아파!”
“더 빨리 뛰어! 훈련이 장난이야?”
마음 같아선 발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뒷감당을 할 수 없어 손바닥으로 착착 달라붙게 밀착하며 때렸다.
「오우~ 감촉이 죽이는데.」
처음엔 아침 일로 감정을 섞어 때렸는데, 때리다 보니 손바닥에 전해오는 탄력적인 엉덩이의 감촉이 너무나 짜릿해 10분이 지난 후 부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은비의 볼기짝을 쳤다.
“이씨~ 아침에 한마디 했다고 이런 식으로 복수하기야?”
“어험!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열심히 운동하자는 의미에서 다독여준 거지 다른 뜻은 없었어.”
“엉덩이가 빨갛게 부었는데 다독여준 거야? 이것 봐! 이게 감정이 없는 거냐고?”
은비가 뒤로 돌아 허리를 숙이고 팬티를 내리자 빨갛다 못해 퉁퉁 부은 볼기짝이 나타났다.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작은 엉덩이에 가득했다. 평소처럼 톡톡 쳤으면 이렇게까지는 안됐는데... 그만 이성을 잃고 차지게 손바닥을 올려붙인 결과였다.
“크흠... 음... 사실은 음...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미안해!”
“이씨! 오빠 사디즘이야?”
“아니야. 내가 언제 막 때리고 괴롭히는 그러는 거 봤어? 그런 적 없잖아.”
“그럼 이거 뭐야?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잖아.”
“처음엔 살짝 화가 나서 장난으로 그랬는데 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서 참을 수가 없어서 그런 거야. 오해하지 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잖아. 이렇게 붓도록 때리면 어떻게 해?”
“흐흐흐~ 미안!”
“난 아파 죽겠는데, 웃음이 나와?”
“그렇다고 울 순 없잖아.”
“이씨! 오빠도 엉덩이 돼. 내가 때려줄 테니까.”
“에이 왜 그래. 장난인데.”
“이거 안 놔! 가만두지 않을 거야.”
상대를 학대해 만족을 얻는 사디즘(Sadism)은 아니었지만, 빨갛게 부은 은비의 엉덩이 사이로 분홍색 꽃잎이 보이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돌려 요염하게 포즈를 취해 더욱 욕망을 부채질했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고추를 세우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었다.
“아~ 아파! 쓰라리단 말이야.”
“윽~ 기분 좋다.”
“뭐하는 거야? 아프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막 넣어도 되는 거야?”
“예쁜 엉덩이를 보니까 참을 수가 없었어!”
“이씨~ 오빠! 사디즘 맞네. 정말 못 됐다.”
은비의 허리를 잡고 뒤에서 마음껏 욕망을 채운 다음 아영을 불러 퉁퉁 부은 엉덩이에 정화 스킬을 걸어 주었다.
상처를 치료하진 못해도 얻어맞은 장독(杖毒)엔 효과가 있는지 빠르게 부기가 가라앉았다.
“병 주고 약 주고 가지가지 한다.”
“기분 좋았잖아.”
“하나도 안 좋아. 아프기만 했어.”
토라진 은비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화를 내면서도 걱정이 되는지 쪼르르 따라 나왔다.
“방벽은 모레부터 도착한다고 했지?”
“응! 장비도 그때 같이 들어올 거야. 먼저 1부두를 막을 1km 구간이 3일 안에 도착하고 방벽이 설치되면 그때부터 부두공사를 시작할 거야.”
“공사 시작하면 당분간 쉬지도 못할 테니까 오늘 내일이라도 푹 쉬고 있어.”
“도심 정리는 방어막 공사 끝나고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어?”
“공사 전에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놓는 게 안전해. 소음 때문에 몰려들 수 있어.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 시간을 끌 이유도 없고.”
“오빠! 나 화 안 났어. 기분도 좋았고. 내 마음 알지?”
“그럼! 착한 은비가 화낼 리가 있나? 안 그래?”
“응!”
은비는 내가 기분이 상한 채로 사냥에 나섰다가 사고라고 발생할까봐 화도 나지 않았고 기분도 좋았다며 내 마음을 풀어줬다.
항상 날 걱정하는 은비의 마음이 매우 예쁘고 사랑스러워 살포시 안아주자 팔을 둘러 가슴을 꼭 끌어안았다.
“금방 갔다 올게. 푹 쉬고 있어. 알았지?”
“응! 조심해 갔다 와.”
“오빠! 이거 가지고 가세요.”
“이게 뭐야?”
“도움이 될까 해서 만들어 봤어요.”
아영이 건네준 건 군용 알루미늄 수통이었다. 뚜껑을 열자 초록색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떻게 하면 오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정화 스킬을 물이나 음료수에 접목해 봤어요.”
“기발하네.”
“정화 스킬을 사용한 물을 투명 물병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으면 30분 이내에 효과가 사라졌어요. 혹시 몰라 김도형 대장님께 부탁해 알루미늄 수통에 담아봤어요. 8시간은 효과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어요.”
“밤새 잠도 안자고 만든 거야?”
“네! 헤헤헤~”
내게 도움이 되고자 아영은 밤새 잠도 안자고 십여 가지 병과 각종 음료수를 가져다 놓고 정화수를 담을 방법을 모색했다.
노력도 가상했지만, 그 마음이 더 고마웠다. 또한, 자기 능력을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게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고마워! 잘 쓸게.”
“아니에요. 별것도 아닌 걸 오빠가 써주시는 것만 해도 전 너무 행복해요.”
아영을 품에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난 줄게 도시락밖에 없네. 미안!”
“이거면 충분해. 고마워!”
“난 좀 전에 몸 줬으니까 됐지?”
“하하하~”
유쾌한 기분으로 소연과 은비, 아영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보트에 올랐다. 물살을 가르며 달려나간 보트가 우동에서 500m 아래 해안가에 나를 내려주었다.
소연이 싸준 정성스러운 도시락과 탄알이 가득 든 묵직한 배낭을 메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기감을 사용해 주변을 쭉 훑자 다 쓰러진 학교와 주변 주택가에 레드마우스 500여 마리가 모여 있는 게 느껴졌다.
배낭을 내려놓고 조끼 주머니에 탄환을 가득 채운 후 놈들에게 다가갔다. 화산재가 많이 쌓여 있지만, 학교는 개방형 건물이라 그런지 제리가 기감에 걸렸다.
손바닥을 빠져나간 혈기탄이 번개같이 날아가 한참 암컷과 재미를 보던 제리의 등에 스며들었다.
“펑~”
“끼익~”
피를 뒤집어쓴 암컷이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한 달 만에 성체가 되어 첫날밤을 치르던 암컷에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 남의 첫날밤을 망쳐 놓은 줄도 모른 채 손쉽게 제리를 잡았다며 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합!”
짧은 기합에 레드마우스들이 찍찍거리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손을 흔들어주자 환영회라도 하려는지 맹렬히 뛰어왔다.
사체를 거둬들이기 편하게 해안가로 놈들을 유인해 사냥했다. 주머니에 든 탄환을 모두 던져내고 글라디우스를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칼을 휘둘렀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의 목을 찌르고, 우측에서 달려드는 놈의 가슴을 베었다.
뒤에서 이빨을 내미는 놈을 팔꿈치로 안면을 부숴놓고 주저앉으며 팽이처럼 돌며 다가서는 놈들의 자리를 잘라냈다.
재빨리 블링크를 사용해 우측으로 이동해 나를 놓친 채 어리둥절해 하는 놈의 옆구리에 칼을 깊숙이 쑤셔 넣었다.
정신없이 칼춤을 추자 쥐새끼들의 잘린 팔다리가 하늘을 날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대지를 붉게 물들었다.
10분간 열심을 칼을 휘두르자 레드마우스의 사체가 수북이 쌓였다. 겁에 질려 도망가는 놈들까지 혈기탄으로 깡그리 잡아 죽이고 우동 입구를 말끔히 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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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