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7 레드독 풍산개 =========================================================================
77.
레드마우스는 지능이 낮고 곧잘 흥분하는 놈들이라 보스인 제리가 있어도 살살 밑을 긁어주면 쉽게 대형이 무너졌다.
코앞까지 다가가 놈들과 눈싸움을 벌이다가 선두에서 깝죽이는 놈의 팔을 잽싸게 잘라내자 피가 확 솟구쳤다.
바로 옆에 있는 놈의 꼬리를 자르고 살살 약을 올리자 흥분한 놈들이 두목인 제리의 명령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합!”
살짝 살기를 담아 놈들의 흥분을 배가시키며 백스텝을 밟으며 파동 속으로 놈들을 유인했다.
멍청한 쥐새끼들이 죽을 자린지도 모르고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놈들을 파동 안으로 끌어들인 후 오른쪽으로 이동해 또다시 살기를 살짝 넣은 기합으로 놈들을 유인했다.
흥분한 쥐새끼들이 동료들이 밟고 지나간 길을 따라 파동 속으로 몸을 날렸다. 선두에 섰던 무리가 명령을 어기고 허망하게 죽자 화가 난 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물어진 창고 밑에 숨어 부하들을 조종하던 놈이 화를 참지 못하고 창고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
“펑~”
기감에 걸리는 순간 소리 없이 날아간 붉은 구슬이 목표물을 제거하자 남은 쥐새끼들이 머리를 잃고 당황해 날뛰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놈들을 처리하고 칼에 묻은 피를 닦기도 전에 소음에 반응한 2부두에서 다른 무리가 접근했다.
“2부두에서 127마리 접근 중! 50m 전진!”
사체가 잔뜩 쌓인 곳을 벗어나 놈들을 기다렸다. 피 냄새가 진동하자 따로 유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여들었다.
“하아~ 하아~ 하아~”
“후우~ 후우~”
놈들을 모으기는 편해서 좋은데 연이은 전투에 공대원들이 지친 기색이 완연한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등을 보일 순 없었다. 도망갈 곳도 없어 이를 악 물로 버텨내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은비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에너지 파동 두 개를 만들고 쓰러지자 소연도 이를 악물고 홀드를 발사했다.
조은영도 흐르는 땀방울을 손으로 훑어내며 쉬지 않고 화살을 쏘아냈고, 아영과 이서인도 화살과 총알을 나르고 쓰러진 은비를 간호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는 거야. 그래야 실력도 늘고 끈끈한 전우애도 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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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아니야. 네가 고생했지. 우린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언제쯤 네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야.”
“맡은바 몫을 다했잖아. 그거면 되는 거야.”
1부두를 모두 정리하고 2부두와 뒤쪽 민가에서 몰려든 레드마우스까지 잡아내며 첫날보다 훨씬 많은 846마리를 사냥했다.
이제 항구에 남은 레드마우스는 400~500마리 정도라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내일 안에 항구를 탈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탈환이라 부를 순 없었다. 방벽으로 틀어막기 전엔 레드마우스들이 계속 몰려들어 한 달만 내버려둬도 터를 잡을 게 확실했다.
놈들이 들어올 수 없게 차단하거나 마지막 한 마리까지 몽땅 죽이기 전까진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다행히 항구 쪽엔 포베로미스가 없어 사냥이 어렵지 않았지만,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도심엔 포베로미스가 있을 확률이 100%라 지금까지와는 전투 양상이 많이 다를 거야.”
“숫자도 많은데 버서커 모드까지 사용하면 위험하겠는데.”
“먼저 나 혼자 치고 빠지기로 숫자를 줄여놓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니면 미리 포베로미스와 제리만 잡고 시작하던지.”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해.”
“다 죽이진 못해도 죽을 염려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설마 상급 능력자인 내가 쥐에게 물려 죽겠어?”
소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쪽수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인해전술을 한방에 부술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모를까 그런 무기가 없다면 결국 숫자에 밀려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워낙 속도 차이가 크고 위험하면 블링크를 사용해 빠져나올 수 있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실수라는 게 있어 방심은 금물이었다.
“다들 지낼 만한지 모르겠네? 집 떠나면 고생인데.”
“당연히 집보단 많이 불편하겠지. 그래도 먹을 것도 잘 나오고, 위성 TV도 설치했고, 씻을 샤워장도 마련해 지낼 만은 할 거야.”
“어른들은 돈 벌러 온 거니까 그렇다 쳐도 서인씨 동생들이 걱정이네. 할 일도 없고 놀아줄 상대도 없을 텐데.”
“낮에 보니까 낚시도 하고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재밌게 지내던데.”
“적응했다니 다행이네.”
“서인 언니 마음도 불편한데 동생들까지 침울하면 더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동생들이 씩씩해서 조금 안심이야.”
“훈련 시작하면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무기력감에 그러는 거니까.”
“네가 잘 돌봐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안됐어.”
“신경은 여자인 네가 써야지 남자인 내가 왜 써?”
“남자에게 받은 상처는 남자로 치료하는 거래. 그래야 완벽한 치유가 된대.”
소연의 말은 결자해지(結者解之)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서인은 손만 내밀면 바로 안길 준비가 돼 있어 내가 결심을 굳히면 마음의 상처를 털어낼 수 있었다.
소연이 한 말은 나보고 이서인을 몸으로 위로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서인이 정말로 날 사랑하는지 확신도 없이 품에 안고 싶진 않았다.
성욕만으로 고추를 휘둘렀다가 나를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돈과 능력을 좋아하면 그땐 많은 사람이 상처받을 수 있었다.
남자는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했다. 말과 주먹 그리고 고추였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잘못 놀려도 패가망신(敗家亡身)할 만큼 위력적인 물건들로 조심 또 조심해 사용해야 했다.
“레드포스 인원이 너무 적은 것 같아. 근접 경호에 시설물 경호까지 할 일이 많잖아. 특히 우릴 경호하는 여성 대원들 2교대로 근무가 돌아가서 보통 힘들어하는 게 아니야.”
“낮엔 지키지 않아도 되잖아. 캠핑카 텅텅 비었는데.”
“말했는데 듣질 않아. 그들도 돈 받고 하는 일이라 무조건 쉬라고 할 수도 없고. 3교대로 바꾸라고 해도 다섯 명은 있어야 경호가 된다고 안 된다고 하네.”
“할아버지가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고 있고, 김도형 대장과 대원들에게도 믿을 만한 사람을 추천하라고 했으니까 조만간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해.”
“알았어.”
항구를 방어할 방벽만 해도 최소 100명 이상은 필요했고, 나선시 전체를 방어하려면 500명은 있어야 했다.
여기에 해안경비대와 정비, 취사, 보급, 행정, 의무, 정보팀까지 생각하면 적어도 1,000명은 필요했다.
이들에게 지급할 월급과 운용비용을 계산하면 일 년에 최소 300억 원에서 최대 600억 원이 필요했고, 경비정과 헬기, 각종 무기 등을 구입하려면 이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투입해야 했다.
올해 대한민국 정부가 책정한 국방비가 8조 4,100억 원임을 생각하면 개인이 유지하기엔 말도 안 되는 부대규모였다.
하지만 도시를 지키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인원들이었고, 당장 자금이 달리긴 하지만 그것 역시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레드포스 대원들 충원하면 면접 보는 것 좀 도와줘.”
“응!”
“앞으로 사람 뽑을 때마다 일일이 면접 봐야 하는데 한두 명도 아니고 큰일이다.”
“당장은 그래도 체계가 잡히면 수월히 질 거야. 그리고 규모가 늘어나면 얼추 걸러서 올라올 거고, 우린 그중에 고르기만 하면 돼.”
“말처럼 쉬우면 좋겠다.”
“내가 너무 쉽게 얘기했나?”
“응! 인형 뽑기만큼 쉽게 얘기했어.”
“하하하~ 미안!”
처음 뽑은 30명은 할아버지가 고르고 고른 사람들로 실력이 출중하고 결격사유도 없었지만, 지금부터 들어오는 대원들은 면접과 뒷조사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우리가 직접 확인해야 했다.
면접은 나와 소연이 기감력과 독심술을 사용해 가려낼 생각이었다. 우리 둘이 함께 나서면 여간해선 속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을 속일 만큼 혹독한 교육을 받은 첩보원이 들어올 수 있어 100%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로 미래 레드포스를 꾸민다고 장담할 순 없었다.
그 부분은 강승원 부대장을 사령으로 정보팀을 꾸려 외부 정보는 물론 내부 첩자도 발본색원(拔本塞源)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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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뛰어! 그래가지고 체력이 향상되겠어?”
“하아~ 하아~”
이른 새벽부터 소연과 은비, 아영이 입에서 단내를 풀풀 풍기며 죽으라 달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며칠 수련을 쉬었더니 속도와 지구력이 엉망이 되어 얼마 달리지도 않고 숨을 몰아쉬었다.
“며칠 쉬었다고 이렇게밖에 못해? 사냥한다고 봐줬더니 안 되겠네. 오늘부터 주말도 없어. 알았어?”
“헉~헉~헉~”
대답할 힘도 없는지 셋 다 바닥에 너부러져 거친 숨만 토해냈다. 사실 훈련을 쉬어서 속도가 떨어진 게 아니라 열흘 내내 쉬지 않고 무리하게 사냥해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6월 1일부터 6월 11일까지 풍산개를 얻은 다음 날 하루 쉰 걸 빼면 포스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빡세게 사냥하며 몸이 지친 상태였다.
부두를 삼 일 만에 정리하고 다음 날부턴 소초도 우측에 길게 뻗어 나온 연두봉을 시작으로 북쪽으로 타고 올라가며 나진시 턱밑까지 레드몬을 정리했다.
열흘 동안 쉬지 않고 뛰어다닌 덕분에 나진시를 제외한 항구와 주변 마을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체력이 바닥나 쉽게 지쳐 잘 달리지도 못했다. 그걸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건 한계를 뛰어넘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치고 힘들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이를 이겨내고 나아가야만 다른 세상이 열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학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매일 목숨을 걸고 레드몬과 싸워야 하는 능력자가 한계에 도전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중급, 상급 능력자가 될 수 없고, 발전하지 못하면 결국엔 도태되어 레드몬의 먹이가 되거나 집에서 애나 봐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만 능력이 향상하는 게 아니었다. 레드몬도 점점 강력해지고 숫자가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사람끼리 경쟁이라면 조금 쉴 수도 있고 게으름을 부릴 수도 있지만, 인간을 위협하는 레드몬과 싸워 살아남으려면 한 순간도 방심해선 안 된다.
방심해서 나태해지면 10년, 20년 후엔 인간이 레드몬을 사냥하는 게 아니라 레드몬이 인간을 사냥할 수도 있었다.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고, 그때마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며 새로운 주인이 지구를 지배했다.
레드문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리며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뒤처지면 인류는 다음 지배자의 박물관과 거실을 장식할 화석으로밖엔 남지 않을 것이었다.
멋들어진 화석으로 남길 원하지 않는다면 한 방울의 땀이라도 더 흘려야 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