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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76화 (76/505)

00076  레드독 풍산개  =========================================================================

76.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뭘요 기본이죠. 으하하하하하~”

칭찬도 아닌 고생했단 말에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좋아하는 모습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한숙은 내 사랑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시간만 나면 내 주위를 돌며 눈도장을 찍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난 사악하게 정한숙의 마음을 이용해 KM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끌어내고 있었다.

물론 공짜가 아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있지만, 한 달 걸릴 일을 일주일에 해결하고 일정에도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이는 한 여성의 사랑을 이용한 비겁한 짓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만, 난 그걸 복수라 위안 삼으며 정한숙을 마구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한숙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KM 그룹은 금전적 이득을 남기겠지만, 그건 정한숙이 나서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라 정한숙이 얻는 것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사급으로 하나 붙여놓고 전처럼 자기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정한숙이 직접 나서 내 수발을 드는 건 오직 나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용하는 난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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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젖먹이용 진돗개 열 마리가 헬기를 타고 대초도에 도착했다. 먼저 놀란 녀석들을 안심시키고 밥을 먹인 다음 젖을 물렸다.

밤새 굶주린 새끼들이 젖을 힘차게 빨았다. 젖을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섯 놈 모두 배부르게 먹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먹는 건 해결했네.”

“겨우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거야. 이제부터 시작이지.”

“잘 되면 좋겠다.”

“우리를 위해서나 녀석들을 위해서나 꼭 그렇게 만들 거야. 나만 믿어.”

“응!”

밤새 어미를 찾으며 우는 통에 아영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덕분에 오늘 계획한 부두탈환은 날짜를 하루 미뤄 내일로 연기됐다.

나야 며칠 밤을 꼬박 새워도 끄떡없지만, 소연과 은비, 아영은 집중력이 흐트러져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루 늦는다고 세상이 어그러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라 하루 푹 쉬는 게 바람직했다.

“녀석들을 돌보고 연구할 사람이 필요해.”

“일섭이 오빠 부르면 되겠네.”

“김일섭 연구원은 무기와 방어구 제작 전문가 아니었어?”

“무기와 방어구 제작도 잘하지만, 원래 전공은 레드몬 생태학이야. 그쪽 분야에선 알아주는 전문가야.”

“앞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했는데, 잘됐네. 이 기회에 데려다가 쓰면 되겠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허락할지 모르겠네?”

“회사를 통째로 달라고 해도 줄판에 연구원은 말해서 뭐해?”

“정말?”

“그럼! 내가 누구야? 최씨 집안 유일한 상속자야. 어차피 다 우리 거라고. 말 나온 김에 미래 레드몬 연구소 통째로 이전하고 해야겠어. 찔끔찔끔 옮기는 거 귀찮아.”

“.......”

나무와 철조만을 이용해 개집을 만들었다. 은비는 계속 집안에서 녀석들을 키우고 싶어 했지만, 그럴 경우 녀석들 때문에 잠은 물론 사랑도 마음껏 나눌 수 없어 단호하게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대신 길들여진 후 말귀를 잘 알아들으면 그땐 거실이나 서재, 침실밖에 문지기로 이용하는 건 허락했다.

“서인씨도 강아지 좋아하세요?”

“그럼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여자 중에 강아지 싫어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다들 엄청나게 예뻐해요.”

“그렇군요.”

“지홍씨는 별로세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굳이 말하면 개에게 쏟을 정성이 있으면 사람에게 쏟자는 쪽이죠.”

“맞는 말씀이세요. 동물보다는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 게 먼저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못 받거나 사람을 무서워하면 애완동물에게 정성을 쏟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마음에 위로가 되니까요.”

“서인씨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아름답고 단아하신 서인씨는 남자들의 로망이라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언제나 절 좋게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저뿐만 아니라 남자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지홍씨는 참 따뜻한 남자예요. 다른 남자들은 제 흠을 보고 어떻게 해볼 생각만 하는데, 지홍씨는 절 순수하게 감싸려고만 하잖아요.”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진 않습니다. 저도 그중에 한명 일뿐입니다.”

“그 말이 맞았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남자들 중엔 여자를 성적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특히 저처럼 과거가 있는 여자는 더 쉽다고 생각하죠.”

“.......”

「은근히 찔리네.」

울타리와 집을 짓고 개들을 풀어놓자 이서인이 잠든 아영을 대신해 아정과 아솔, 아림을 데리고 나타났다.

아정과 아솔, 아림은 개를 처음 보는지 무섭고 신기해 다가서지 못하다가 손바닥만 한 어린 새끼를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가 품에 안고 예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운동은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최소 한 달은 조리하고 상태를 본 다음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달리기와 가벼운 체조마저 거르진 마십시오. 몸을 가만두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식구들 챙기기도 쉽지 않으실 텐데 저까지 신경써 주시고 정말 고마워요.”

“만드는 김에 조금 더 준비하는 거라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말씀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잖아요. 보양식을 만들려면 하루에 레드몬 한두 마리는 필요하고 약초와 꿀까지 구하려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숲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저 때문에 한 달에 두 번은 숲에 더 들어가셔야 하는데, 미안하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죠.”

“먹거리도 구해야 하고, 수련도 겸해서 하는 거라 생각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하아~ 하는 일 없이 도움만 받는 제 모습이 너무 한심한 것 같아요. 그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제 모습이 정말 뻔뻔해서 원망스럽기만 해요.”

고뇌가 심했는지 얼굴이 그늘져 있었다. 자기 혼자도 부담을 됐을 텐데 동생들까지 더부살이 중이라 마음이 더 무거웠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몸이 회복되면 능력도 빠르게 향상할 겁니다. 그땐 지금처럼 도움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될 겁니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그럼요. 절 믿고 따라오시면 받듯이 그날은 옵니다. 제가 책임지고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지홍씨!!!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흑~”

품에 안겨 엉엉 우는 이서인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머니를 잃고 계속 상처만 받다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내가 고맙고 미더워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기처럼 우는 이서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옷 위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과 상큼한 레몬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역시 기감으로 느끼는 것과 몸이 직접 맞닿은 느낌은 비교가 안 됐다. 특히, 가슴과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오빠! 서인 언니도 오빠에게 시집가는 거예요? 그럼 우리 아영 언니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시집 못 가요?”

“바보야! 소연 언니하고 은비 언니도 같이 사는데, 우리 언니하고 서인이 언니 같이 산다고 이상할 거 없잖아. 오빠는 고추가 커서 문제없어.”

“아~ 그렇구나. 오빠는 고추가 커서 여자가 많아도 되는구나. 그럼 우리도 오빠랑 같이 살아도 되겠네?”

“당연하지.”

“너희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오빠 미안해요! 애들이 철이 없어 그래요. 이해해주세요. 이것들이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어. 빨리 따라와. 너희 집에 가서 혼날 줄 알아.”

“아야야~ 귀는 왜 잡아? 아프단 말이야.”

“우리가 이상한 소리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

귀를 잡혀 끌려가는 동안에도 아림과 아솔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나와 이서인은 당황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 엉거주춤 끌어안고 있었다.

「쪼그만 것들이 되바라져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뭐? 고추가 커서 괜찮다고.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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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긴 아래쪽 부두는 구조물이 남아 있지 않아 놈들을 유인해 사냥하기엔 꽤 괜찮은 위치였다.

삼면이 바다라 앞만 틀어막으면 사냥엔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폭이 90m라 에너지 파동만으론 완벽히 틀어막을 수 없어 오늘은 나도 최대한 힘을 보태야 할 것 같았다.

도심에서 항구까진 대략 3km 거리로 도심과 비교하면 항구 쪽엔 레드마우스가 적은 편이었다.

그래도 커다란 야적장과 창고가 있고 배후에 근로자들이 사용하던 민가가 많아 레드마우스가 적진 않았다.

가장 큰 1부두만 해도 500마리가 넘는 레드마우스가 있었고, 2·3부두까지 합치면 1,200마리가 넘었다.

오늘 목표는 1부두지만, 냄새와 소리에 반응해 놈들이 달려들면 싸움이 커질 수도 있었다.

250m 지점에 탄약통을 내려놓고 천천히 놈들에게 다가갔다. 해풍과 함께 고소한 냄새가 풍기자 부서진 잔해 속에서 쥐새끼들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합!”

짧고 강한 기합에 쥐새끼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신속히 뒤로 물러나 일행과 합류했다.

은비의 손을 떠난 빛이 하얀 기둥으로 바뀌는 순간 200마리가 넘는 쥐새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으악~~~”

강한 살기를 품은 포효가 고막을 울리자 신나게 달려오던 쥐새끼들이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포효는 포스 소모가 많은 단점이 있지만, 최하급 레드몬에겐 효과가 뛰어나 단번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젠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안다는 듯 모두 칼을 빼 들고 뛰어나가 쓰러진 쥐새끼들을 목을 내리쳤다.

팀워크의 핵심은 조직력과 협동심으로 행동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공대원들은 여자라는 핸디캡을 딛고 자기가 맡은 몫을 다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100m 전진!”

첫 번째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두 번째 전투를 위해 앞으로 움직였다. 이번엔 제리가 끼어 있는지 좀 전과는 다르게 무리를 50마리씩 쪼갠 쥐새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내가 좌측 놈들을 도발하는 사이 소연과 조은영이 우측 무리를 홀드와 화살로 견제하며 시간을 끌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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