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5 레드독 풍산개 =========================================================================
75.
야행성으로 눈이 작고, 낮에는 돌 틈이나 그늘에서 숨어 지내는 능구렁이는 독은 없지만, 배가 고프면 다른 뱀을 잡아먹을 만큼 성질이 사나웠다.
“깨갱~ 깨갱~”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굴 앞을 막고 있던 어미까지 능구렁이의 꼬리에 산산 조각나며, 이제 새끼들을 지켜줄 풍산개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능구렁이는 죽은 풍산개 어미들보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별미로 먹고 싶은지 혀를 날름거리며 동굴에 머리를 디밀었다.
“쑤웅~ 쑤웅~ 쑤웅~”
“퍽퍽퍽~”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온 파란 암기가 동굴에 머리를 처박은 능구렁이의 몸을 파고들었다.
암기를 연달아 던져내고 연속으로 블링크를 사용해 번개같이 놈의 꼬리로 다가갔다.
“끼익~”
급히 동굴에서 머리를 빼낸 능구렁이가 끔찍한 고통에 고막을 울리는 날카로운 비명을 토해냈다.
놈이 머리를 빼내는 순간 재빨리 꼬리를 자르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확 뿜어지며 놈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레드스네이크(능구렁이)
전투력 : 2875
지능 : 79
스킬 : 알 수 없음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능구렁이의 몸을 내리긋자 몸이 반으로 잘려나가자 내장과 함께 뱃속에 삼킨 풍산개가 쏟아져 내렸다.
풍산개를 모두 제압했다는 방심과 별미에 정신을 홀딱 뺏긴 대가가 죽음으로 돌아왔다.
생명력이 질긴 뱀이라 그런지 포스가 가득 담긴 암기를 세 개나 맞고, 꼬리가 잘려나가고, 몸통이 반으로 끊어졌는데도 능구렁이는 30분 넘게 몸을 꿈틀대며 살기 위해 발악했다.
독이 없고 강력한 힘을 빼면 스킬도 없는 C급 엘리트 레드몬이라 사냥이 어렵진 않았다.
다만 귀를 먹먹하게 하는 비명 속엔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어 저항력이 낮은 소연과 은비, 아영이 다칠 수도 있어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게 했다.
“아이고 귀여워! 정말 예쁘다.”
“언니! 털이 하얘요. 잡털이 하나도 없어요.”
“풍산개 순종인가?”
“어미들 생김새가 모두 같은 거로 봐선 순수 혈통일 가능성도 있겠네. 전문가에 문의해봐야 확실하겠지만 말이야.”
“순종이 아니더라도 어미만 닮으면 돼. 하얀 털이 정말 예쁘잖아.”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이 고향인 풍산개는 몸집이 중대형으로 흰털이 빽빽해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타지 않아 영하 30°에도 밖에서 집을 지키며 잤다.
눈과 코, 발톱만 검은 것이 특징으로 날래고 민첩하며 인내력이 강해 조선 시대 왕가에서 사냥개로 키웠다는 기록도 있었다.
구전 설화에서 풍산개 두세 마리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용맹해 맹수사냥용으로 제격이었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나봐. 너무 어려서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생명력이 질긴 놈들이니까 젖어미만 구해도 쉽게 죽진 않을 거야.”
“한숙 언니한테 젖어미 구해달라고 해야겠네. 풍산개하고 비슷한 진돗개면 젖어미로 괜찮겠지?”
“같은 개면 어떤 개든 상관없지 않나?”
“하기는 고양이 젖 먹고 큰 개도 있는데 상관없을 거야.”
“레드몬이라 일반개보다 먹성이 좋을 거야. 젖어미 구할 때 넉넉하게 구해달라고 해”
“다섯 마리면 충분하겠지?”
“그 정도면 되겠지. 이제 새끼들 안고 멀리 물러나 있어. 죽은 어미들 묻어주고 레드스톤도 빼내야지.”
“알았어!”
냄새에 민감할 수도 있어 죽은 어미들은 레드스톤만 빼고 땅에 묻어주었다. 길들이기에 성공한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귀한 새끼까지 얻었는데 가죽까지 탐내기엔 양심에 찔렸다.
700kg에 달하는 능구렁이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가져가기로 했다. 가죽은 공대원들 보호구를 만드는데 사용하고, 뼈는 금속과 섞어 소연과 은비가 쓰는 푸지오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엄청나게 많은 살덩이는 능사주를 담을 생각이었다. 독 두꺼비를 즐겨 먹는 능구렁이를 술로 담그면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엘리트 레드몬이라 일반 능구렁이보다 술을 담으면 효과는 월등할 게 분명했고, 몸에 좋은 약초를 첨가하면 최고의 뱀술이 될 수도 있었다.
정력이 넘쳐흘러 뱀술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남자의 힘이란 게 언제 꺾일지 모르는 것이라 미리미리 준비해서 해될 게 없었다.
“으악~ 이게 뭐야? 배배배 뱀... 뱀 아니야?”
“맞아!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 크크크~”
“배배배뱀이 왜 이렇게 커? 몇 미터나 되는 거야?”
“15m.”
“혹시... 엘리트 레드몬?”
“응! 오빠가 한칼에 잡았어. 어때? 멋있지?”
“대박! 끝내준다.”
“언니! 얘들은 어때? 예쁘지 않아?”
“우와~ 너무 예쁘다. 털이 눈처럼 하야네.”
“하는 짓 좀 봐. 정말 귀엽지?”
“너무너무 귀엽다. 은비야! 나 강아지 정말 좋아하거든. 한 마리만 줘. 나도 키우고 싶어.”
“미안하지 얘들은 안 돼!”
“다섯 마리나 있잖아. 한 마리만 줘!”
자다가 끌려 나와 레드스네이크에 경기를 일으킨 정한숙은 개를 정말 좋아하는지 무서움도 잊고 은비의 품에 안긴 풍산개에 매료돼 눈을 떼지 못했다.
“그냥 강아지가 아니야. 레드독 풍산개 새끼들이야. 그래서 안 돼!”
“레드독? 정말?”
“응! 어미들이 저놈에게 모두 죽고 얘들도 위험했는데, 오빠가 구해줬어.”
“정말 대박은 따로 있었네. 근데 레드독 새끼는 왜 데려왔어? 연구소에 팔게?”
“아니! 오빠가 길들여서 우리 보디가드로 삼는데. 크면 말처럼 타고 다녀야지. 생각만 해도 재밌겠지?”
“가능할까? 성공한 곳이 한 곳도 없는데.”
“우리 오빠잖아.”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홍씨라면 가능할 거야. 암! 그렇고말고.”
“당연하지. 울 오빠에게 실패란 없어. 뭐든 다 할 수 있어.”
은비와 정한숙의 밑도 끝도 없는 신뢰가 고맙긴 했지만, 심한 부담도 됐다. 살기투사를 사용해 풍산개를 길들일 계획이지만, 성공한단 보장은 없었다.
개가 서열을 중시하고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것만 믿고 무작정 달려드는 것으로 확신이나 자신감 따위는 없었다.
그걸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할 수 있다고 무조건 믿는 건지 은비와 정한숙은 이미 성공한 것처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더구나 아는 게 없는 아영이 맞장구를 치는 건 그렇다고 쳐도 우리 중 가장 이성적인 소연까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 심적 부담감이 더욱 커졌다.
「신뢰가 두터운 건 좋은데, 실패하면 데미지가 장난 아니겠는데. 쥐어박든 이빨을 뽑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기필코 길들여야겠어. 실패하면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겠어. 아이고, 머리야! 할 줄 아는 거라곤 힘쓰는 것밖에 없는데, 대체 뭘 믿고 이런 신뢰가 쌓인 거야? 도통 이해가 안 되네.」
“그래서 오빠가 언니에게 젖먹이 개 구해 달라고 부탁하래.”
“지홍씨가 내게 부탁을 했어?”
“그렇다니까. 강아지를 보자마자 언니에게 젖먹이용 진돗개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랬어.”
“이제야 나의 진가를 알아보셨네. 내가 못 하는 일이 없다는 걸 이제야 인정하셨어. 으하하하~”
“오빠가 평소에 쌀쌀맞게 대해도 언니를 싫어하진 않아. 특히 언니의 완벽한 일 처리 솜씨는 매일 입이 닿도록 칭찬하고 있어.”
“진짜?”
“그럼!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설마 날 못 믿는 거야? 정 못 믿겠으면 언니가 오빠에게 물어봐. 내 말이 진짠지 거짓말인지.”
“아아아 아니야. 믿고말고. 내 든든한 우군인 네 말을 내가 왜 못 믿어? 당연히 믿어야지.”
평소 가장 친밀하게 굴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우군인 은비에게 정한숙은 정성을 다했다.
그렇다고 아부를 떨고 뇌물을 바치는 건 아니었고, 언니 동생으로 살갑게 지내며 도움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소연도 정한숙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은비만큼 적극적이지 않았고, 아영은 다른 여성의 접근을 싫어해 은비만이 정한숙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아군이었다.
“언니! 아기들 많이 배고픈데, 언제 가능해?”
“걱정하지 마. 지금 당장 구해줄게. 김 비서! 목포에 전화해서 진돗개 구해오라고 해. 늦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네! 바로 구해오라고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기를 빼 든 정한숙이 목포에 있는 KM 화학에 전화를 걸었다.
밤 12시에 걸려온 정한숙의 전화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KM 그룹에서 회장보다 더 조심해야 할 사람이 최대주주인 정한숙이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KM 여마두라 불리겠는가? 성격이 더럽고 한 번 찍히면 그걸로 끝이라 나이 많은 임원들도 그녀 앞에선 고양이 앞에 쥐처럼 벌벌 기었다.
그런 정한숙에게 임자가 나타났다는 게 기적적인 일로 회장이자 오빠인 정근욱은 드디어 사고뭉치를 치울 수 있게 됐다고 매일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한숙의 전화 한 통에 깊이 잠이 들었던 KM 화학 사장과 임원들이 불이 났게 회사로 달려갔다.
1초만 늦어도 끝이란 생각에 눈썹이 휘날리게 날아간 사장과 임원들이 당직자에게 전달받은 내용은 너무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입을 잘못 놀리는 순간 그 날이 바로 짐을 싸는 날이란 걸 잘 알고 있는 사장과 임원들은 쏜살같이 진도로 내달렸다.
새벽 1시가 넘어 진도에 도착한 사장과 임원들은 자고 있던 이장과 동네 주민들을 깨워 세 배나 많은 돈을 주고 최근 새끼를 낳은 진돗개 암놈은 모조리 사들였다.
정한숙이 보내라고 말한 숫자보다 정확히 두 배 많은 열 마리를 오밤중에 헬기에 태워 대초도로 올려보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열 마리를 추가로 준비해 만약을 대비하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덕분에 엄마 잃은 강아지 수십 마리가 밤새 울부짖는 통에 진도 주민들은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늦어도 내일 아침까진 도착할 거예요.”
“내일 아침? 그렇게 빨리 옵니까?”
“그럼요. 누가 시킨 일인데요. 더 빨리 못 오는 게 죄송할 따름이죠.”
일을 멋지게 처리한 정한숙이 칭찬받고 싶은 학생처럼 수줍어하며 어서 잘했다는 말을 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일 하나는 마음에 쏙 들게 한단 말이야. 그건 매력적인데... 역시 성격이 별로야. 내 스타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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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