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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72화 (7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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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부서진 부두와 창고 사이로 커다란 나무들과 잡목들이 우거져 있었고, 오랜 기간 쌓여 바위처럼 딱딱해진 화산재가 쓰레기 더미처럼 흩어져 있었다.

나선항 부두는 총 세 개로 맨 아래에 있는 500m 길이의 부두가 가장 컸고, 그 위로 300m 길이의 부두가 두 개 더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인 부산항과 비교하면 동네 포구 수준에 불과했지만, 30년째 정체된 걸 생각하면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었다.

레드마우스를 모두 정리하면 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부두를 크게 확장하며 최신식 컨테이너 전용부두를 만들 계획이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미항을 만들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돈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곳이 우리의 터전임을 생각하면 투자를 아낄 이유가 없었다.

부두를 둘러본 후 목적지인 후창동으로 이동했다. 예전 논밭으로 사용하던 후창동은 민가가 많지 않아 레드마우스는 200여 마리밖에 없었다.

“여기도 농경지로 사용하면 괜찮겠네.”

“선봉군 북쪽에 있는 백학리하고 서쪽의 관곡동, 동쪽의 용상동이 근방에선 가장 평평한 지역으로 예전부터 농지로 많이 사용하던 땅이야. 대초도, 소초도, 후창동, 멸리동 이렇게 일곱 곳만 농경지로 활용하면 20~30만 명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을 거야.”

“가장 추운 함경북도 끝이라 농지로 사용할 땅이 거의 없을지도 몰라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다.”

“남쪽에 비교하면 작고 열악해도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8배로 늘어난 만큼 이곳만 개발해도 굶어 죽을 염려는 없을 거야. 문제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그걸 다 뽑아내야 농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문제지.”

“그 큰 나무를 다 뽑으려면 보통 일이 아니네.”

“따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

“초대형 건설 중장비를 동원하게?”

“혼자서 다 할 순 없으니까 그것도 도입해야지.”

“다른 방법이 있는 거야?”

“흡기를 사용해 나무를 제거할 생각이야. 위는 자라 원목으로 사용하고, 아래는 생명력을 뽑아내 거름으로 사용하면 될 것 같아.”

“좋은 방법이다. 근데 힘들지 않겠어?”

“훈련 삼아 할 때까진 해봐야지.”

이번엔 살기를 넣지 않고 큰 고함으로 쥐새끼들을 유인했다.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고함 서너 번에 221마리가 모여들었다.

작전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은비의 에너지 파동으로 전방을 막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놈들은 소연과 조은영이 잡아내기로 했다.

“소연아! 좌측 두 마리! 은영씨! 우측에 세 마리! 은비야! 바로 앞에 작은 거로! 빨리빨리!”

난 소연과 은비 뒤에 서서 다가오는 놈들을 알려주며 위험할 때만 총알을 날려 놈들을 제거했다.

고군분투(孤軍奮鬪)했지만, 둘 다 포스양이 적어 소연의 경우 24마리를 잡고 지쳐 쓰러졌고, 조은영은 이보다 조금 나은 28마리를 잡고 헉헉대며 바닥을 기었다.

가장 많은 127마리를 잡은 은비까지 아영이 품에 쓰러지며 나머지 42마리는 내 차지가 됐다.

레드마우스를 상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이빨과 꼬리였다. 쥐는 치근(齒根)이 없어 상하 앞니가 평생 자라났다.

마치 끌 모양처럼 살짝 흰 형태로 매우 날카롭고 길이도 길어 물리면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꼬리는 변이와 함께 끝이 쇠꼬챙이처럼 단단하게 변해 철판도 뚫을 만큼 강했고, 길이도 길어 채찍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근접전에서 이빨만 신경 쓰다간 꼬리에 다리를 감겨 넘어지거나 복부나 팔다리가 뚫려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레드마우스 고기도 수출한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하네. 국내에선 혐오식품이라 수요가 없지만, 쥐를 식품으로 삼는 나라도 여럿 있잖아. 수요가 있는 만큼 버리긴 아까우니 싼값에라도 파는 것 같더라.”

“원산 주민들도 잡아먹었는데, 그보다 더 좋은 레드마우스를 먹는 게 이상할 것도 없죠.”

“아영이도 쥐 고기 먹어봤어?”

“그것도 잡기가 힘들어서 몇 번 못 먹었어요. 원산에선 쥐 고기도 귀하거든요.”

“우리 아영이 고생이 많았네.”

“지금은 이렇게 오빠 덕분에 능력자도 되고 팔자 피었죠. 헤헤헤~”

아프리카에선 쪄서 말린 쥐를 먹었고, 라오스와 태국 시골에선 말려 먹거나 구워 먹거나 여러 가지로 조리법에 따라 다양하게 먹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겨울잠을 자는 동면 쥐를 겨울철의 별미로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맛이 비둘기 고기와 흡사해 중국에선 쥐 요리를 비둘기라 속여 파는 경우도 있고, 갓 태어난 쥐를 산 채로 그냥 씹어 먹는 요리도 있었다.

지친 소연과 은비, 조은영을 아영과 이서인에게 맡겨 먼저 대초도로 돌려보내고 화물선에 사체까지 안전하게 실어 보낸 후 나선시 주변을 돌며 어떤 레드몬이 살고 있는지 살펴봤다.

쥐새끼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쥐를 주식으로 삼는 레드무스텔라와 레드마틴, 레드캣츠가 주변에 많이 있었고, 레드폭스와 레드스네이크, 레드바이퍼도 몇 마리 기감에 걸렸다.

일제의 만행으로 남쪽에서 자취를 감췄던 레드폭스는 만주에서 넘어온 부부였는지 암수 한 쌍으로 수놈은 몸길이 2.3m에 꼬리길이 1.0m, 무게 51kg이었고, 암놈은 몸길이 2.0m, 꼬리 0.9m, 무게 45kg이었다.

둘 다 중급 레드몬으로 떠도는 소문과 달리 설치류를 주로 잡아먹는 녀석들로 큰 위험 되진 않았다.

진짜 위험한 놈들은 레드바이퍼인 까치살무사와 쇠살무사로 독성이 매우 강해 공대원들이 물릴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다행히 크기가 작은 하급 레드몬이고 거리도 가장 먼 곳에 있어 급할 것이 없단 생각에 며칠 후에 잡기로 했다.

가장 걱정했던 레드타이커와 레드울프는 기감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찰지역이 나선시 주변이라 언제 어디서 놈들이 나타날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정찰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 개암나무 열매와 비타민 C가 풍부한 해당화 열매를 따고 레드와피티 수놈 두 마리도 잡아왔다.

무게가 650kg으로 좌이동 북쪽 산 너머에 많은 수의 레드와피티와 붉은 사슴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곳은 소나무 군락(群落)으로 주변 일대가 전부 붉은 소나무밖에 없었다. 나무줄기가 붉어 소나무를 ‘적송(赤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말로 적송은 소나무의 일본 이름이었다.

소나무는 벌레가 생기거나 썩는 일이 거의 없고, 단단해 휘거나 갈라지지도 않아 궁궐과 사찰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됐다.

특히, 궁궐을 짓는 목재는 소나무 외에는 쓰지 않았고, 강원도와 경북 울진, 봉화에서 나는 춘양목은 결이 고와 최고급 목재로 이용됐다.

솔잎은 통증과 피를 멎게 하고, 송홧가루는 기운을 돋우고 피를 멎게 했다. 송진은 염증을 빨리 곪게 하고 고름을 빨아내는 효과가 있어 고약과 반창고를 만드는데 사용했다.

또한, 소나무 군락에는 송이버섯과 복령도 구할 수 있다. 복령은 소나무를 벌채한 뒤 3∼10년이 지난 뒤 뿌리에서 기생하여 성장하는 균핵으로 익수영진고를 만드는 중요한 약재였다.

송이(松耳)는 소나무와 공생하며 소나무의 낙엽이 쌓인 곳에서 주로 자라는 버섯으로 향과 맛, 육질이 좋아 식용 버섯 가운데 으뜸으로 꼽았다.

위와 장 기능을 돕고 기운의 순환을 촉진해 손발이 저리고 힘이 없거나 허리와 무릎이 시릴 때 먹으면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쉽게도 음력 8월, 양력 9월 9일경인 백로(白露)가 수확하기에 적당한 시기로 한참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었다.

백로가 되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한 시기로 이때부터 수확해 10월 말까지 가장 맛있는 송이버섯을 즐길 수 있었다.

“송이버섯이 그렇게 많아요?”

“아직은 없어. 8월이나 돼야 나기 시작할 거야.”

“근데 송이버섯이 있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이곳에 예전부터 송이 산출 지역이라고 들었어. 책에도 나와 있고.”

“와! 그럼 8월부턴 송이버섯 먹을 수 있겠네요.”

“응! 많이 따다 줄게. 많이 먹고 예뻐져.”

“네~”

오후 7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와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해결했다. 산나물과 약초, 열매 등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 심하게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고기가 없인 하루를 버티기 힘든 몸이라 손만 씻고 아영이 차려준 저녁을 허겁지겁 먹어댔다.

특별히 음식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간을 잘 맞추고 가르쳐준 음식도 곧잘 따라해 소연, 은비와 비교하면 아영의 음식 솜씨가 100배는 더 나았다.

저녁은 레드보어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찜통에 적당히 찐 다음 김치와 고추, 마늘, 양파, 파 등을 넣고 고추장과 버무려 프라이팬에 볶아낸 고추장 두루치기를 푸짐하게 차려와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었다.

“잡수실만하세요?”

“응! 아주 훌륭해! 좋아!”

“헤헤헤~ 오빠가 알려준 대로 한 거예요.”

“저기 주무시는 분들은 1년 넘게 알려드려도 김치찌개도 못 끓여. 그에 비하면 넌 일류 요리사야. 시집가도 되겠어.”

“아잉~ 부끄럽게...”

시집가도 된다는 말이 그렇게 좋은지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수줍어하면서도 눈을 빤짝이게 내게 시집오라는 소리로 들은 것 같았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미성년자를 데리고 살만큼 궁하지도 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욕심인지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았다.

아영이 차려준 저녁상을 싹싹 비운 후 곤히 자고 있는 소연과 은비에게 가보았다. 낮에 너무 무리했는지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잠이 보약이라고 피곤할 땐 자는 게 최고라 깨우지 않았다. 졸려 죽겠는데 깨우면 그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오늘 중으로 멸리동까지 정리하고 내일부터 항구를 공략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연과 은비, 조은영이 완전히 뻗어버린 상태라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포스를 대부분 소모한 소연과 은비는 최소 7~8시간은 있어야 소모된 포스를 회복할 수 있었다.

포스 회복은 피지컬리스트와 멘탈리스트 구분 없이 체력 수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멘탈리스트는 정신력을 소모하는 직업이라 피지컬리스트보다 더 오랜 휴식을 필요로 하지만, 체력 수치가 높으면 피로해소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능력자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능력치는 체력 수치였다. 체력이 높아야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스태미나가 높아 쉽게 지치지 않고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고, 몸이 받는 충격도 덜해 피로를 푸는 일도 유리했다.

“오빠! 쉬지 않고 이 밤중에 어디 가세요?”

“농사지으려면 나무를 미리 정리해 놔야지. 나무 쓸 곳도 많고.”

“숲에 나무 베러 가시는 거예요?”

“응!”

“도끼도 없이요?”

“칼 있잖아. 이거면 충분해.”

“네에? 그 짧은 칼로요?”

수련도 하고 농지도 만들고 필요한 원목도 구할 겸 겸사겸사 숲으로 들어갔다. 부두 바로 앞까지 아름드리나무가 자란 상태라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글라디우스를 오른손에 말아 쥐고 포스를 밀어 넣자 파란 예기가 뻗어 나왔다. 풀 파워로 포스를 가동하면 최대 3m까지 예기를 뿜어낼 수 있지만, 포스 소모만 많을 뿐 전투에 도움이 안 돼 평소 1.5~2m 정도로 운용했다.

검 끝에 또 다른 검이 자라듯 파란 예기가 2m나 자라나자 아영이 황홀한 눈으로 예기를 바라봤다.

예기를 처음 본 사람은 강렬한 살기에 겁을 집어먹은 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예기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영은 처음부터 파란 예기가 가진 생명력을 느끼는지 사람들과 다르게 경외의 눈으로 바라봤다.

「성장 속도 그렇고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도 그렇고 정말 남다르네. 이 상태로 가면 2~3년 안에 소연은 무난하게 따라잡고, 어쩌면 20~30년 후엔 나를 앞지를 수도 있겠어. 흐흐~ 」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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