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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60화 (60/505)

00060  청진  =========================================================================

60.

“임시 등록증입니다. 사냥팀 등록도 한 달 이상 소요됩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임시 등록증도 정식 등록증과 효력이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포스협회 출장소를 빠져나오는 내내 돈을 강탈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잠능자와 능력자를 배양하고 레드몬 사냥을 활성화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면서 바가지를 씌우고 있었다.

잠능자와 능력자 수를 늘리려면 검사를 무료로 진행해 많은 사람에게 기회에 줘야 했고, 레드몬 사냥팀도 등록비를 없애야 조금이라도 수를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말만 그럴 뿐 이놈들은 언제나 입으로만 활성화를 외치며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 수 있나 그 궁리만 했다.

“우리 할아버지 맞아?”

“그럼 내가 네 할머니냐?”

“너무 젊어져서 그렇잖아. 한 20년은 젊어진 것 같은데?”

“으하하하~ 20년이 뭐냐? 30년은 젊어졌다.”

“젊어지니까 좋아?”

“너도 내 나이 돼봐라.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삭신이 쑤시고 머리가 띵했는데, 이젠 가뿐하다 못해 날아갈 것 같다. 거기다 검은 머리카락까지 나고 있어. 지금 100m 달리기를 하면 한국 신기록도 갈아치울 수 있는 기분이야.”

“회춘했으니 새장가 가면 되겠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20살쯤 먹은 젊은 아가씨 데려다가 애도 놓고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야겠다.”

“미친 거 아니야! 정신 차려!”

“으하하하~”

60대로 보이던 할아버지는 산삼을 드신 후 피부가 팽팽해지고 검버섯도 사라져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하얀 머리카락 속에 드문드문 검은 머리카락이 보이는 게 정말 회춘했다는 말이 사실로 느껴졌다.

“손주사위 덕분에 내가 새 삶을 사는 기분이야. 고맙네!”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건강만 한 줄 아나? 다시 남자가 된 기분일세. 아침마다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어. 하하하~”

할아버지는 기분이 정말 좋은지 평소 하지 않던 야한 농담까지 했다. 목소리도 어찌나 큰지 귀가 먹먹할 만큼 쩌렁쩌렁 울렸다.

그만큼 몸이 건강하단 증거로 오랜만에 손녀를 보자 즐거움이 배가 된 것 같았다. 유일한 삶의 목표인 은비를 1년 4개월만 봤으니 없던 힘도 솟아날 판이었다.

“오시는 길은 힘드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랜만에 바다 구경도 하고 좋았네. 복잡한 서울에만 갇혀있다가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마음마저 상쾌했네.”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돼 은비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걱정은 무슨? 빠져 죽기를 바랐겠지. 크크크~”

할아버지를 태운 화물선은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은 오후 5시가 돼서야 청진항에 도착했다.

마음 급한 은비가 천지 사방을 뛰어다니며 요란을 떨었지만, 연착하는 일이 자주 있는지 항구 관계자는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평소 마음에 안 든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몸이 불편하다는 소리만 들어도 밤잠을 못 이뤘고, 시간이 지체되자 사고라도 났을까 마음을 쓰며 애를 태웠다.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더 주고 싶어 난리를 치면서 정작 은비 앞에선 엉뚱한 말만 늘여놓았다.

서로를 걱정하는 방법이 참~ 유별난 할아버지와 손녀지만, 피붙이 한 명 없는 내겐 부럽기만 한 사이였다.

함흥식 냉면과 수육을 저녁으로 먹으며 지난 1년 4개월 동안 일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함께 소주를 마셨다.

은비는 할아버지를 노친네라 구박하면서도 옆에 착 달라붙어 종달새처럼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끄집어냈다.

“엘리트 레드몬을 잡아?”

“그렇다니까. 방어막에 독침까지 쏘아내는 놈을 오빠가 순식간에 때려잡았어. 이따가 방에 가면 레드스톤 보여줄게. 중급하곤 차원이 달라. 빨~갛게 빛나는 게 엄청나게 예뻐!”

“눈이 호강하겠네?”

“고마운 줄 알아. 오빠 아니면 그런 귀한 걸 어디서 보겠어?”

“그렇게 말이다. 하하하~”

은비의 얘기를 안주 삼아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할아버지 숙소는 우리 숙소 바로 아래로 나오기 전 주무실 수 있게 미리 자리를 보아놓고 나왔다.

나눌 이야기가 산처럼 많았지만, 연로하신 나이에 먼 길을 오신만큼 일찍 쉬시는 게 좋았다.

산삼으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해도 나이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건강은 좋을 때 챙겨야지 좋아졌다고 마구 사용하면 더 나빠질 수 있었다.

“말만 한 게 왜 늙은이하고 같이 자려고 해? 어서 가서 네 서방 옆에 꼭 붙어서 자. 어서 가!”

“아이! 오늘은 할아버지랑 같이 잘 거야. 나 같은 미녀하고 같이 자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야.”

“미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세상에서 가장 못난이가 무슨 미녀야? 추녀 아니었어?”

“이씨~ 정말 이럴래? 오랜만에 같이 자자는데 뭔 불만이 이렇게 많아?”

“은비야! 할아버지는 혼자 자도 괜찮아! 어서 네 낭군 옆에서 자. 할아버지는 그게 더 좋아. 무슨 말인지 알지?”

“... 응!”

“그래! 남편에게 잘하고 투정도 적당히 부리고. 그래야 사랑받는 거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지면 안 돼. 알았지?”

“... 응! 알았어.”

“아이고 내 새끼!”

은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소연이 울먹이는 은비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식과 며느리마저 뺑소니에 잃은 후 하나 남은 손녀가 잘못될까봐 평생 애를 태우던 할아버지였다.

지금도 자기 걱정은 눈곱만큼도 없이 손녀 걱정만 하는 할아버지 모습에 은비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자리 잡으면 할아버지도 모셔오고, 아버님도 모셔오자. 괜찮지?”

“응! 좋아!”

“훌쩍! 나도 대찬성!”

나선시에 모두 함께 살자는 말에 훌쩍이던 은비도 기분이 풀렸는지 눈물을 훔치며 찬성을 외쳤다.

여자들은 친정 가까이에 사는 걸 참 좋아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처가는 불편한 곳이었다.

장모님이 천사 같고 장인어른이 호인이라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시댁부모가 친부모처럼 며느리를 아껴준다는 해도 불편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소연과 은비가 웃을 수만 있다면 불편쯤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마누라가 종일 인상 쓰고 있는 것보단 내가 조금 불편한 게 마음 편했다.

「같은 집만 아니면 되잖아. 난 분명 모셔오자 그랬지 같은 집에서 살자고 한 적은 없어. 홀딱 벗고 돌아다니는데 불편하게 같은 집에 살 순 없잖아. 안 그래?」

1시간가량 기감력을 수련하고 6시쯤 할아버지 방에 내려갔다. 깨끗이 씻고 침대에 앉아 아침 뉴스를 보고 계셨다.

서울에서 강릉을 거쳐 배를 타고 청진까지 오는 길은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먼 길을 오시고도 피곤한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산삼 효과를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아영이라고 했지?”

“네!”

“아주 잘했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곧 세계를 구하는 것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를 네 번이나 구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제 어릴 적 모습을 본 것 같아 작은 도움을 준 것뿐이지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닙니다.”

“자네가 순수한 마음에서 행한 선행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실상은 엄청나게 큰일을 한 것이네. 낯선 사람을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을 자기 집에 데려와 입히고 먹이고 공부까지 시키진 않네. 자네는 작은 선행이라 말하지만, 아이들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푼 것이네. 앞으로도 그 마음 잊지 말고 사람들에게 온정을 보이게.”

“알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처음 나를 본 순간부터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사나운 분노와 증오를 보고 계셨던 게 분명했다.

마음속 가득한 증오와 분노를 소연과 은비 그리고 아영과 아이들이 달래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피해 서울 떠나던 16살 아이의 마음속에 가득 찼던 분노와 증오에 비하면 지금은 절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절반이 가장 원초적인 적의(敵意)라 할아버지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온정을 보일 수 있을 진 미지수였다.

“먼저 나선항 앞에 있는 대초도와 소초도를 정리할 생각입니다. 대초도와 소초도를 정리해 전진 기지로 삼고 나진항과 나선시를 공략할 생각입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한 달 안에 정리할 계획입니다.”

소초도(小草島)는 가로 0.43km, 세로 1km의 작은 섬이었고, 대초도(大草島)·는 소초도 바로 아래 있는 가로 2km, 세로 3km의 제법 큰 섬으로 나진만을 보호하는 천연방파제였다.

수심이 깊어 예전부터 부동항(不凍港)으로 사용된 나진시는 일제가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자 군항 및 무역항으로 개발한 항구도시로 1940년 시로 승격하며 일본인이 대량으로 이주해 신시가지가 형성되기도 했던 아픔이 있는 도시였다.

겨울엔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고원 지대와 비교하면 매우 온화한 편이고, 여름엔 한류의 영향을 받아 서늘했다.

연평균 기온은 7℃로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8℃, 8월 평균 기온이 영상 22℃ 내외로 여름과 겨울의 연교차는 30℃였다.

연 강수량은 800∼900㎜이며, 서리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상순까지 내리고, 안개가 많은 지역으로 연평균 안개 일수가 56일에 달했다.

산지가 많아 논농사보단 밭농사에 적합해 보리, 콩, 조, 피 등의 잡곡을 주로 재배했고, 근해에 좋은 어장이 있어 연어, 청어, 대구, 명태, 해삼, 굴 등의 해산물이 풍부했다.

“무리하지 말게. 급히 서두르면 사고가 날 수 있어.”

“그건 할아버지가 몰라서 그래. 오빠 실력이면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이면 깨끗이 청소할 수 있어. 내가 말했잖아. 레드마우스 1,500마리를 오빠 혼자 다 죽였다고.”

“실력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게.”

“예!”

“화물선은 늦어도 27일까지 청진항에 도착할 거네. 회양에서 사용하던 버스 캠핑카와 자동차, 살림살이도 화물선에 같이 실어 보내겠네. 사체 운반용 차량 두 대와 지게차 두 대도 그때 같이 올려 보낼 생각이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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