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59화 (59/505)

00059  청진  =========================================================================

59.

“이서인씨와 조은영씨는 우리와 함께할 것 같아?”

“서인이 언니는 확실해. 은영이 언니는 반반이고.”

신선 공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날 공대원들의 쾌유 빌고 애석함을 달래기 위해 같이 술을 한잔하며 소연이 이서인과 조은영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같이 일할 것을 제안했다.

둘 다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원산을 떠나 강릉으로 돌아갔다.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소연은 이서인의 표정과 말 속에서 같이하고 싶다는 확신을 느꼈고, 조은영은 신중한 입장이라 반반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서인은 문정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대유 그룹 셋째 아들이란 막강한 배경으로 인해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소연의 제안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은비가 대유 그룹과 적대적인 미래 정밀 손녀라는 점과 함경북도 북부 지역이 미래 레드몬의 사유지와 같아 문정수라 해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또한, 자신과 유일하게 친한 소연, 은비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 것도 크게 작용했다.

결정적으로 가족을 대동할 수 있다는 소연의 말에 이서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서인은 밑으로 5살 어린 남동생 이원호와 7살 어린 여동생 이서연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세상에 남은 유일한 피붙이로 현재 이원호는 강릉 대학을 다녔고, 이서연은 고등학생으로 둘 다 강릉에 머물고 있었다.

이서인은 자신이 달아날 경우 화가 난 문정후가 동생들을 해코지할 수도 있어 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진시로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치면 학교가 문제긴 하지만, 몰래 제3국으로 유학을 보낼 수도 있어 다른 대안을 찾을 수도 있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서인이 언니는 늦어도 5월 20일까진 청진으로 올 거야.”

“잘됐네. 당장 방어형 피지컬리스트가 필요하지만, 침묵 스킬도 사냥에 도움이 많이 되니까 그게 어디야.”

“더는 공대원을 충원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어떻게?”

“음... 레드몬을 길들여서 방어형 피지컬리스트 대용으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정찰용으로 사용하든지 해야지.”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잖아.”

“그거야 일반인이 길들였으니까 그렇지.”

“지금도 사육사들이 사자와 호랑이, 코끼리, 뱀 등을 길들이고 있잖아.”

“그건 나약하고 멍청한 동물 기준이지,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강자인 레드몬 기준은 아니잖아. 최강의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를 간식이나 다름없는 인간이 길들이려 했다가 실패했다고 봐야지. 간식이나 다름없는 나약한 먹이에 길들여지는 맹수는 없잖아.”

“힘으로 레드몬을 길들이겠다는 거야?”

“그렇지. 개들은 서열을 중요시하니까 그걸 이용해보려고. 완벽한 힘의 차이를 보여주면 가능하지 않겠어.”

개는 주인을 절대적인 서열로 인식하면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동물이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개는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보디가드로 통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가 인간을 자신보다 상위 서열로 봤을 때의 이야기였다.

강아지 때부터 키워 마냥 귀엽다고 지적해야 할 때 혼내지 않고, 충실하게 먹이 셔틀만 하면, 자신의 주인을 자신보다 하위 서열로 인식하기도 했다.

이럴 경우 정말 큰일을 겪을 수도 있는데, 개는 놀라울 정도로 서열관계가 확실해 한번 하위서열로 인식하면 거슬리는 짓을 할 때마다 응징을 당하게 된다.

특히 인간의 행위가 '서열 다툼을 위한 도전'으로 비치면 사나운 맹수로 돌변해 인간을 죽일 수도 있었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안 될 수도 있잖아.”

“성공할 때까지 계속 시도하면 되지.”

“넌 그렇다 치고 녀석들이 우릴 하위서열로 인식하면 어쩌려고 그래?”

“새끼 때부터 같이 교육 해야지. 그리고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길 거야.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니까.”

“알았어.”

레드독을 복종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내가 사용할 방법이 다른 만큼 성공할 가능성도 있지만, 레드몬의 특성을 고려하면 실패할 확률도 높았다.

방어형 피지컬리스트를 구할 수 없어 대안으로 생각한 방법으로 설령 실패한다 해도 노력한 만큼 레드몬의 습성을 파악할 수 있어 헛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으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간 결실을 맺게 될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내일 오전엔 청진 포스협회 출장소에 가야 해. 잊지 마!”

“거긴 왜?”

“피지컬리스트로 등록해야지.”

“벌써? 천천히 해도 되는 거 아니야?”

“공대 결성하려면 포스협회에 등록해야 해. 일반인으로 활동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일이 아주 복잡해져.”

“알았어.”

청진 포스협회 출장소엔 감별기만 한 대만 갖춘 상태였다. 감별기는 능력자의 유무만 알려주는 기계로 내 정체가 들통 날 염려가 없었다.

처음 능력을 숨겼던 이유는 보조사냥꾼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정부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6월 1일 이전에 내 능력을 정부가 알아채면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었고, 6월 1일 이후라도 힘을 갖추기 전에 알게 되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 당분간은 힘을 숨길 생각이었다.

다음 날은 아침 김관웅 사장을 앞세워 시청 옆에 붙은 청진 포스협회 출장소를 방문했다.

일주일에 고작 서너 명 찾아오는 사무실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소장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눈을 멀뚱멀뚱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소장님! 미래 레드몬 김관웅입니다.”

“아이고 김 사장님! 이 시간에 어인 일로?”

안면이 있는 김관웅 사장이 먼저 인사하자 그제야 누군지 알아보고 김만득 소장이 반가운 척 손을 내밀었다.

한국 포스협회는 레드몬 사냥팀에 정보를 제공하고 잠능자와 능력자를 선발하는 등 각종 편의를 돕기 위해 거점 도시마다 출장소를 하나씩 개설했다.

하지만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보직으로 직원은 소장과 과장, 직원 이렇게 세 명이 전부였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돈 먹는 식충이들로 가끔 포스협회와 연관된 사람들이 찾아오면 술과 여자를 얻어먹으며 시간을 때우는 게 일이었다.

“능력자 등록 좀 하러 왔습니다.

“여기에서요?”

“예! 출장소에선 등록이 안 됩니까?”

“아닙니다. 됩니다.”

통일 후 8대 거점 도시를 정비하며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잠능자와 능력자 선별검사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19명의 잠능자와 12명의 능력자를 선발하는 쾌거를 얻었지만, 그 이후론 개점 휴업상태로 신문과 TV를 친구삼아 놀고먹는 게 전부였다.

“어느 분이 등록하실 겁니까?”

“접니다.”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서자 김만득 소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본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 분이 아니시죠?”

“네.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에서 하시지 왜 청진까지 오셔서 등록하십니까?”

“얼마 전에 각성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청진 주민을 데려와 능력자 등록을 할 거로 예상했던 소장은 말끔한 청년이 나서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설명을 듣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능력자로 각성하는 경우도 가뭄에 콩 나듯 간혹 있었다.

또한, 능력자로 각성한 걸 모르고 살아오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협회에 등록하는 경우도 있어 크게 의심을 살만한 일은 아니었다.

“감별기 검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처음입니다.”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무료 검사 기간이 지난 관계로 검사비 10만 원을 내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 과장! 금고에서 감별기 꺼내와.”

“네!”

스위치 한번 눌렀다가 떼는데 무려 10만 원을 요구했다. 기계 가격이 대략 500만 원 선으로 검사비가 10만 원이면 50명만 검사해도 본전을 뽑는다는 말이었다.

비싸도 너무 비싸고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었다. 서류에 인적사항을 적고 돈을 내고 감별기에 손을 올렸다.

“띠~ 띠~ 띠~ 띠띵~”

10초가 지나자 화면에 파란색 불빛이 반짝거렸다. 잠능자 또는 능력자가 확실하다는 표시등이었다.

서류를 넘겨받은 소장이 ‘청진P0008’이라고 임시번호를 적은 다음 임시 능력자 등록증을 발급해주었다.

“등록까지는 빨라도 한 달 이상 걸릴 겁니다. 서류를 서울까지 보내야 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정식 등록증이 나오기 전이라도 사냥에 나서는 건 상관없습니다. 임시 확인증도 효력은 똑같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더 정확한 능력치 측정을 원하시면 서울 종로에 있는 본사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능력자분들에 한해 무료로 검사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부와 포스 협회는 능력자들의 자료를 모으기 위해 정밀 포스측정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능력자는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기 싫어해 측정률이 5%에도 미치지 못했다.

뽐내기를 좋아하는 미국과 유럽도 절반이 한참 못 미치는 36% 수준으로 능력이 뛰어날수록 정밀 측정기 사용을 꺼렸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실력을 드러내는 것보단 감추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밝은 곳에 홀딱 벗고 서 있는 것보단 어두운 곳에 숨어 모습을 감추는 게 살아남은 확률이 높았다.

“레드몬 사냥팀 등록도 가능하나요?”

“네! 가능합니다. 서류에 사용할 공대명과 인원을 기재해주시면 됩니다. 가입비는 200만 원입니다.”

돼지 같은 놈이 고작 이름 하나 올리는데 200만 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사는 일이 돈 없이 살 수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레드몬!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공대장님이 오늘 능력자로 등록하신 박지홍씨 맞나요?”

“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능력자로 등록한 내가 공대장을 맡는다고 하자 소장이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고, 공대원도 달랑 여자 두 명이라 레드몬 사냥팀이 아닌 소꿉놀이하는 아이들 장난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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