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7 부상(負傷) =========================================================================
57.
전투를 조금이라도 쉽게 이끌어가려면 쥐새끼들의 대가리인 포베로미스와 제리를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꼭꼭 숨은 건지 아니면 숫자가 많아서 그런 건지 한 놈도 기감에 걸려들지 않아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마을을 나선 레드마우스 무리는 동서남북 네 군데에서 신선 공대를 동시에 공격하기 위해 곧바로 무리를 넷으로 나누어 흩어졌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길을 따라 올라오는 쥐새끼들부터 공격했다. 글라디우스를 뽑아들고 300마리가 넘는 레드마우스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적을 발견하자 흉성이 폭발한 레드마우스들이 귀에 거슬리는 ‘찍~찍~’ 소리를 내며 포악하게 달려들었다.
뾰족한 꼬리와 날카로운 이빨이 사방에서 찔러왔고, 때론 주먹만 한 돌멩이와 나무토막까지 얼굴과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반쯤 눈을 감은 채 기감으로 놈들을 느끼며 칼을 휘둘렀다. 기감은 눈보다 빨랐고, 눈보다 더욱 많은 물체를 잡아냈다.
승무도의 요결에 따라 군더더기를 모두 뺀 빠르고 간결한 칼춤은 레드마우스와 목과 가슴을 파고들어 한방에 숨통을 끊어놓았다.
앞에서 달려든 쥐새끼의 목을 벤 칼이 원을 그리며 날아가 뒤에서 달려든 쥐새끼의 가슴을 갈랐다.
그리곤 옆에서 달려든 쥐새끼의 가슴을 수직으로 찔러 심장을 도려냈다. 생각을 비우고 오직 손과 발이 가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파란 예기가 더해지자 칼이 지나갈 때마다 잘려나간 쥐새끼들의 머리와 팔다리가 하늘을 날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자 겁을 집어먹은 쥐새끼들이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5분 만에 절반 넘는 동료가 죽자 숫자로도 상대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마을로 줄행랑을 쳤다.
마음 같아선 쫓아가 모두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세 방향으로 흩어진 쥐새끼들이 신선 공대를 치기 전에 막아야 했다.
다행히 마을로 도망친 쥐새끼들을 기다리는지 공격대기선에 정렬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혼란을 주기 위해 신선 공대의 후방인 북쪽에서 대기 중인 놈들을 공격했다. 신선 공대와의 거리가 가까워 이번엔 암기를 사용했다.
“피웅~ 피웅~”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암기가 공격을 준비하던 선두 열을 때렸다. 속사포처럼 날아든 암기에 선두 열이 우수수 무너지자 당황한 쥐새끼들이 나무 뒤로 숨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퍽~ 퍽~”
나무를 관통한 암기에 숨어있던 쥐새끼들이 죽자 영악하게 바위나 움푹 팬 바닥에 몸을 숨겼다.
“펑~ 펑~”
혈기탄(血氣彈)이 숨어있는 놈들의 몸속으로 스며들며 폭발했다. 흡기로 나무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며 혈기탄을 연속으로 날려 보내 몸을 숨긴 쥐새끼들을 잡아냈다.
기감이 미치는 범위 안에선 사방이 꽉 막힌 곳만 아니면 혈기탄을 피할 수 없었다. 혈기탄은 작은 틈만 있으면 어디든 파고들어 상대의 목숨을 빼앗았다.
문제는 혈기탄에 소모되는 생명력이 엄청나게 많아 아름드리나무의 생명력을 모두 뽑아도 혈기탄 다섯 개면 끝이었다.
최하급 레드몬인 레드마우스를 상대로 강력한 혈기탄을 사용하는 건 분명 낭비였다.
하지만 엄청난 빠르기와 기민함,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상대를 제압하는 편리성 그리고 귀신같은 은밀함에 취해 계속해서 나무를 옮겨 다니며 혈기탄을 뽑아내 놈들을 제압해 나갔다.
북쪽 레드마우스 무리가 공격받자 동쪽과 서쪽에 대기하던 무리가 신선 공대를 공격했다.
양쪽 산비탈에서 새까맣게 레드마우스가 쏟아져 내려오자 보조사냥꾼의 K1 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재빨리 나무 위로 돌아와 암기로 놈들을 공격했다. 신선 공대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레드마우스의 눈이 붉은 전구가 켜진 것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처리한 레드마우스보다 움직임과 파괴력, 흉포함까지 배가 된 것으로 보아 버커서 모드를 발동한 게 분명했다.
엄폐물을 넘으려는 놈들을 향해 암기를 던져내며 포베로미스를 찾았다.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 있는지 주변을 샅샅이 훑은 후에야 동쪽 언덕 바위 뒤 숨은 놈을 희미하게 느껴졌다.
신장 1.35m, 꼬리 길이 1.6m, 몸무게 105kg, 특이하게 머리에 20cm 길이의 뿔이 삐죽 솟아나 있었다.
빠르고 은밀하게 날아간 혈기탄이 포베로미스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간단하게 놈을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3m 옆에서 놈의 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사용하는 블링크처럼 포베로미스도 짧은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슬아슬하게 혈기탄을 피해냈다.
혈기탄 세 발이 날아가 한 발이 놈을 공격하고 나머지 두 발은 주위를 빠르게 돌며 놈을 견제했다.
세 발이 달려들자 포베로미스가 전력을 다해 이리저리 몸을 날렸다. 호위대로 보이는 놈의 부하들이 혈기탄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왕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혈기탄은 호위대를 요리조리 피하며 끈질기게 포베로미스를 괴롭혔다. 혈기탄을 피해낼 때마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지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펑~”
가슴을 파고든 혈기탄이 폭발하자 온몸의 혈관이 모두 터져나갔는지 오공에서 피를 쏟아낸 포메로미스가 쓰러졌다.
피부와 뼈가 아무리 단단해도 몸속을 파고들어 혈맥을 공격하는 혈기탄에 맞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포베로미스가 죽자 버서커 모드가 사라지며 거칠게 달려들던 레드마우스들의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후유증도 있는지 처음 신선 공대를 공격했던 놈들보다도 속도가 더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숫자가 많고 제리가 남아있어 위협적인 건 여전했다.
더구나 1,000개나 준비한 암기가 모두 떨어져 나뭇가지를 꺾어 놈들을 상대해야 했다.
북쪽에서 쓴맛을 본 레드마우스 무리가 전투에 가담했다. 또한, 마을 입구에서 큰 피해를 본 쥐새끼들까지 몰려오고 있었다.
꽤 많은 놈은 놈들을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절반인 600여 마리가 남아 신선 공대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조사냥꾼들이 악착같이 총을 쏘아대고, 은비와 소연이 에너지 파동과 홀드로 견제하지 않았다면, 이미 신선 공대는 레드마우스의 밥이 됐을 수도 있었다.
「정 안되면 소연과 은비만 데리고 피해야겠는데. 흡기를 계속 사용해서 그런지 몸에 부담이 오네. 젠장!」
“탕탕탕탕탕~”
“카악~”
“으악~”
힘이 빠진 이서인이 쓰러지자 침묵 스킬이 사라지며 총소리와 고통에 울부짖는 비명 그리고 피의 광기에 빠진 레드마우스의 괴성이 전장을 가득 메웠다.
이뿐만 아니라 제리의 텔레파시를 막아주던 침묵 스킬이 사라지며 놈들의 움직임이 훨씬 조직적으로 변했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달려들던 놈들이 십여 마리씩 뭉쳐 총알을 동료의 몸으로 막아내며 엄폐물을 힘으로 부수고 들어왔다.
십여 마리씩 뭉치 레드마우스들이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자 엄폐물로 사용하던 커다란 통나무가 산산이 부서지며 신선 공대는 의지할 곳을 잃고 말았다.
북쪽 바위 뒤! 서쪽 구덩이 아래! 파상적인 공세와 함께 북쪽과 서쪽에 숨어 있던 두 놈이 기감에 걸렸다.
“펑~ 펑~”
빠르게 날아간 혈기탄에 북쪽과 서쪽에 숨어 쥐새끼들을 조종하던 제리가 죽었지만, 놈들의 공세는 멈추질 않았다.
마지막 남은 제리를 잡거나 레드마우스를 모두 죽이기 전까진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보조사냥꾼 대부분이 죽고 조금 전 전투에서 다리를 다친 백영두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죽어 있었다.
공대장인 김갑수는 왼팔과 어깨가 심하게 물려 너덜너덜했고, 부공대장인 은주식은 다리와 복부에 잘린 꼬리가 박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박두일은 가슴을 심하게 다쳐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전두수는 머리와 목을 물려 의식을 잃은 채 이서인 곁에 누워있었다.
방패조인 금일조는 허벅지가 한 움큼 떨어져 나간 상태였고, 김재곤과 김보영도 온몸이 피로 물든 채 방패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소연과 은비, 조은영은 다행히 상처를 입진 않았지만, 포스 소모가 극심해 매우 지친 상태였다.
손으로 나뭇조각을 쉴 새 없이 던지며 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X놈의 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1,200마리 중 300마리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쥐새끼들은 도망갈 생각을 않고 신선 공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더는 숨어서 도울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소연과 은비마저 놈들의 날카로운 이빨에 다칠 수도 있었다.
제리와 쥐새끼들을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글라디우스를 뽑아들고 분노를 가득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으악~”
산을 떨어 울리는 고함에 놀랐는지 신선 공대를 공격하던 레드마우스들이 모두 바닥에 엎드려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X놈의 새끼!」
마지막 남은 제리도 고함에 놀랐는지 남쪽 바위 밑에서 기어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전속력으로 달려가 놈의 꼬리를 잡고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쾅~ 쾅~ 쾅~”
화가 치밀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사정없이 내리쳤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될 때까지 내려친 다음에야 사체를 멀리 집어 던졌다.
제리에게 분풀이를 하는 동안에도 고함에 노출된 레드마우스들은 여전히 겁에 질린 채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에 반해 공대원들은 갑작스러운 고함에 놀란 것을 빼곤 별다른 충격이 없는지 바닥을 기고 있는 레드마우스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투는 내 고함과 함께 끝이 났다.
반나절 만에 보조사냥꾼 130명 중 102명이 죽고, 22명이 중상, 6명이 경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엔 부팀장인 김응수와 오재욱도 포함돼 있었다. 김응수는 신선 공대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첫 번째 만난 사람이었다.
사수나 다름없는 사람으로 잘해준 건 없었지만, 그래도 미운 정이 쌓였는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팀장인 노일수와 운이 억세게 좋은 최두식은 이번에도 경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살아남았다.
최두식은 정말 행운의 사나이였다. 남들보다 수십 배나 많이 위험한 임무를 부여받고도 불사신처럼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조건 행운만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위험을 비켜날 만큼 침착하고 상황대처가 빨라 행운도 따라주는 것이었다.
행운도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 행운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에겐 절대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공대원들의 상태도 심각해 죽은 백영두를 빼고도 은주식과 박두일, 전두식도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상태였다.
죽거나 다친 사람도 문제지만, 쥐새끼 1,500마리가 죽으며 피 냄새가 진동해 언제 레드몬이 달려들지 몰라 살아남은 사람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피 냄새를 맡고 레드몬들이 몰려들면 이들도 목숨을 보장받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죽은 사람들의 유품만 간단히 챙긴 후 중상자들을 업고 기지로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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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