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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55화 (5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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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부상(負傷)

“그동안 우리 주변을 돌며 위험한 레드몬이 있으면 지홍이가 잡아줬어. 직접 잡기 뭐한 건 몰래 도움을 줬고.”

“혹시... 레드링스 잡을 때도 우릴 도와준 거냐?”

“응.”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다. 바로 앞에서 화살을 날렸다고 레드링스를 잡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죄송합니다. 놀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홍이는 나와 은비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까지 따라온 거야. 내가 1년은 더 오빠 곁에 있어야 한다고 우겼거든. 오빠를 속일 생각은 없었어.”

“속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엘리트 레드몬을 잡는 실력자가 하찮은 우리 사냥터를 넘봤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해.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

절세가인인 소연과 은비를 한 남자에게 시집보낸다는 게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무리 능력자라 해도 둘을 한꺼번에 보내는 건 과분한 처사였다. 죽도록 서로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마음 한편엔 못마땅한 생각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추가 소연과 은비로 기우는 게 아니라 지홍으로 기울어도 너무 심하게 기울었다.

상급 피지컬리스트에 듀얼 리스트면 시집오겠다는 여자가 서울부터 부산까지 줄을 세워도 넘칠 만큼 많았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억만장자들도 벌떼같이 달려들어 자신의 딸을 받칠 만큼 지홍의 조건은 최고였다.

든든한 백이 생겨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로 소연과 은비가 마음고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오빠! 더 오래 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지금까지 내 곁에 있어준 것만 해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진작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줬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려 널 잡고 있던 내가 미안하다.”

“그렇지 않아. 오빠 옆에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몰라.”

“그랬다면 다행이고. 매제! 오늘 본 건 비밀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직접 말하기 전에는 절대 입을 열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형님!”

국내 최초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듀얼 리스트가 자신의 매제였다. 앞으로 얼마나 커 나갈지 모르는데 입을 함부로 놀려 미움을 살 이유가 없었다.

사람의 힘은 미약하기 이를 때 없지만, 세상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자, 세상의 돈을 쥐고 있는 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을 가진 자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

앞으로 지홍의 후광을 등에 업고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을 입방정으로 찰 이유가 없었다.

“언제 떠날 생각이야?”

“사람 구할 때까진 있을 거야.”

“고맙다.”

그날 이후 김갑수는 소연과 은비가 공대를 떠나기 전 주변 정리를 끝내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도 쉬지 않고 사냥에 나섰다.

안전을 위해 정찰 범위도 30km까지 늘이자 보조사냥꾼들의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4월 한 달간 보조사냥꾼 30명이 죽었고, 다친 사람도 100여 명에 달했다.

모두 회양에서 뽑은 보조사냥꾼들로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자 회양 기기는 탄식과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쉼 없는 사냥으로 공대원들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능력자를 전략 병기라고 칭한다 해도 속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일 뿐이었다.

능력자도 일반인과 같이 상처를 치료하고 피로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김갑수는 그걸 돌볼 겨를이 없었다.

성공한 매제와 여동생의 후광을 입길 원하지만, 감이 익어 입에 떨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만큼 김갑수는 어리석지 않았다.

김갑수는 자수성가형으로 일단 자기가 할 일은 끝내놓고 불로소득을 바라는 유형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짜만을 바란다면 떨어지는 이익도 작았고, 온갖 구설에 오르내리며 결국엔 찬밥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쥐들의 왕인 포베로미스도 있고, 중간 보스인 제리도 세 마리나 있어.”

“말릴 상황이 아니잖아. 얼마 후면 떠날 사람인데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면 오빠도 기분 나쁠 수 있어. 마음엔 안 들지만, 지금은 묵묵히 따라갈 수밖에 없어.”

“그래도 너무 위험해.”

“오빠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무리하진 않겠지.”

김갑수는 그동안 미뤄뒀던 옛 창도 군청 토벌에 나섰다. 창도 군청은 회양 기지에서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창도군 군청소재지로 한때 2만 명이 넘는 주민이 살던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2,000마리가 넘는 레드마우스가 사라진 주민들 대신 마을을 접수해 살아가고 있었다.

레드마우스는 레드몬 중 가장 약체에 속하지만, 쥐들의 왕인 포베로미스와 두목인 제리가 함께하면 하급 레드몬보다 더욱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두목인 제리는 텔레파시로 레드마우스를 조종해 조직적인 전투가 가능하게 했고, 왕인 포베로미스는 버서커 모드를 발동시켜 레드마우스 전체를 미쳐 날뛰게 할 수 있었다.

버서커(Berserker)는 북유럽 전설에서 용맹한 전사를 가리키던 말로, 곰 가죽을 뒤집어쓴 사내란 뜻이었다.

방어를 등한시하고 공격에만 모든 걸 집중하는 광포한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로 버서커 모드가 발동하면 레드마우스의 공격력은 두 배로 증가하고 방어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방어력이 약화한 만큼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트랜스 상태라 상처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속도도 두 배나 빨라 쉬운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규모로 보아 왕인 포베로미스가 있을 확률이 높아 미리 잡아주고 싶지만, 영리한 놈이라 그런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기감에 걸리기만 하면 새로 얻은 혈기를 사용해 한방에 놈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꼭꼭 숨은 상태라 기감에 걸리지 않아 제거할 방법이 없었다.

“방어구 잘 챙겨 입고 절대 앞에 나서지 마. 버서커 버프가 발동하면 사방에서 한꺼번에 달려들 수 있어.”

“방패 뒤에 꼭 숨어 있을게. 얼굴도 안 내밀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심해!”

“응!”

버프(Buff)는 영국 속어로 근육질 몸매와 강인한 신체를 의미했다.

근대 영미권 도시의 소방대원들이 물을 뿌린 물소 가죽(Buffalo skin) 코트를 입고 화재 진압 현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던 데서 유래한 버프는 팬(fan)을 의미하기 한다.

현재는 능력자와 레드몬의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켜주는 각종 보조 기술을 통칭하는 단어로, 상대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하락시키는 디버프형 멘탈리스트도 희귀하지만 존재했다.

왕과 두목이 함께해서 그런지 군청 입구부터 레드마우스들이 활기를 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레드마우스는 개체수가 많은 대신 고양이, 너구리, 족제비, 담비, 스라소니, 삵, 뱀, 맹금류 등 레드몬으로 변이한 모든 포식자의 먹이라 이처럼 함부로 돌아다니질 못했다.

산림과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유해동물 1순위인 쥐는 음식물을 훔치고 오염시키며, 가스관과 전기 코드를 갉아 먹어 가스중독과 화재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페스트와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을 전파하는 주범으로 1347년부터 1351년 사이의 약 2천만 명에 가까운 유럽인을 죽인 흑사병(Yersinia Pestis)의 원인 제공자였다.

다행히 포식자가 많아 개체수가 무한대로 증가하지 않을 뿐 그대로 둔다면 다음 세상은 레드마우스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도 두 발로 서서 좌우를 경계하는 모습은 생쥐의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거친 포식자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레드마우스가 활개치고 다니는 건 포식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두목인 제리가 있거나 최악의 경우 왕인 포베로미스가 있을 수도 있어요.”

“흐음...”

“마을 크기로 보아 최소 500에서 최대 1,000마리에요. 이 숫자에 제리까지 끼면 우리만으론 마을을 도모할 수 없어요.”

“조금씩 유인해서 잡을 수도 있잖아?”

“제리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제리가 있으면 공격받는 순간 놈들이 알아차리고 벌떼처럼 몰려들 거예요. 그렇게 되면 공대가 전멸할 수도 있어요.”

“.......”

정찰을 하고 온 조은영의 말에 김갑수의 고민이 늘어만 갔다.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로 반경 20km 안에 든 창도 군청을 지금까지 내버려둔 이유가 규모와 제리 때문이었다.

제리는 보통 200~300마리 규모에서 한 마리씩 태어나는 보스 레드몬으로 수백 마리 이상 군서 생활을 하는 최하급, 하급 레드몬에서 가끔 나타났다.

전투력은 하급 레드몬에 겨우 턱걸이한 수준으로 별 볼일 없지만, 부대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레드몬 사냥팀이 가장 싫어하는 레드몬 중 하나였다.

더구나 버서커 모드를 사용하는 포베로미스까지 있다면 레드몬 사냥팀 중 최고로 인정받는 청사자 공대가 와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포베로미스가 있는 한 적어도 3개 공대 50명은 있어야 놈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포베로미스 패터르소니(Phoberomys pattersoni)은 800만 년 전에 신생대에 살았던 쥐의 조상으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설치류였다.

몸길이 3m, 키 1.3m로 오늘날 가장 큰 설치류인 카피바라(Capybara)가 새끼처럼 보이게 만드는 놈으로 현재 가장 강력한 레드마우스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최대한 먼 거리에서 유인해보고 안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 알았어요.”

마지못해 승낙한 조은영이 레드마우스를 유인하기 위해 북쪽 마을 입구로 다가갔다.

싫든 좋든 결정권자는 공대장인 김갑수였다. 김갑수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면 공대를 나가면 그만이지만, 공대에 계속 남아있겠다면 공대장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게 원칙이었다.

50m 떨어진 커다란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밤새 나무를 깎아 만든 암기 1,000개를 던지기 좋게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암기를 사용해 소연과 은비를 도울 생각이었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은밀히 도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포베로미스와 제리가 가세하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레드마우스들이 사방에서 신선 공대를 공격할 게 뻔했다.

최악의 경우 준비한 1,000개의 암기를 다 던져야 하는 상황이라서 정체가 발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굴만 드러나지 않으면 날 의심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 보조사냥꾼으로 일하던 내가 자신들을 도와줄 거로 생각할 공대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을 북쪽에서 진입한 조은영은 적당한 레드마우스 무리를 찾기 위해 마을 외곽을 조심스럽게 정찰했다.

레드마우스는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레드몬으로 변이하며 영악해진 놈들은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최소 4~5마리가 함께 다녔다.

마을 안이라 그런지 10여 마리 이상이 옹기종기 모여 잡아온 짐승과 채집해온 열매, 뿌리 등을 나눠 먹고 있었다.

10여 마리면 신선 공대가 사냥하기 아주 적당한 숫자였다. 그러나 네다섯 무리가 20~30m 간격을 두고 보초를 서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어 한 무리만 따로 유인할 수가 없었다.

산비탈을 타고 서쪽과 동쪽까지 이동해 유인할만한 놈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북쪽 입구와 마찬가지로 요소요소 길목을 틀어막고 마을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있었다.

강릉에서 사냥한 레드마우스완 질적으로 다른 놈들이었다. 레드마우스가 보초를 설 만큼 위계질서가 확실하다면 제리보다 더한 포베로미스가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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