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2 흡기(吸氣)와 혈기(血氣) =========================================================================
52. 흡기(吸氣)와 혈기(血氣)
특별히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잘못된 점을 반성한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깨달음에 속했는지 능력치와 기감력이 크게 향상하며 생각지도 못한 스킬까지 얻게 됐다.
이건 깨달음이라기보단 그동안 막혔던 정체가 풀리며 얻게 된 노력의 보상 같았다.
기이한 산삼을 복용한 후 몇 년간 가파르게 성장하던 능력이 지난해부터 둔화하기 시작하더니 올 초엔 단단한 벽에 막힌 듯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있었다.
그 벽이 엘리트 레드몬과의 전투가 시발점이 되어 깊은 참선 끝에 와르륵 무너지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이 열렸다.
기감력이 크게 향상되자 기감거리가 1km에서 1.5km로 늘어났고, 한 번에 기감할 수 있는 대상도 50개에서 100개로 두 배로 늘어났다.
또한, 사물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만 획득하던 기감수준이 대상의 정보를 상세히 알아낼 수 있는 정보획득(情報獲得) 수준으로 향상됐다.
정보획득은 움직임과 상태만 파악하던 수준을 탈피해 마치 정밀 포스 측정기를 눈에 달아 놓은 것처럼 상대의 정확한 능력치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아쉽게도 가장 중요한 상대의 스킬을 알아낼 순 없었지만, 대략적이나마 전투력을 파악할 수 있어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달성한 상태였다.
새로운 스킬은 혈기(血氣)와 흡기(吸氣)로 포스를 손에 집중하면 눈깔사탕만한 붉은색 구슬 혈기가 떠올랐다.
붉은 구슬 혈기는 생명의 원천인 피와 기운의 응집체로 내 생명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혈기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자유자재로 날아다녔고, 속도도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라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생명력이 원천이라 그런지 돌이나 쇠와 같이 생명력이 없는 무생물엔 타격을 주지 못했고, 대신 생명체엔 동화되듯 몸속으로 파고들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최대 열두 발을 연속해서 쏘아낼 수 있었고, 한 번에 조종할 수 있는 개수는 세 발이었다.
혈기는 생명력을 소모하는 스킬로 모자란 기운은 흡기를 통해 보충할 수 있었다.
흡기는 나무나 동물을 직접 터치해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형태로 공기 중에 있는 대자연의 기운을 흡입하진 못했다.
대신 생명력을 흡입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 커다란 나무도 10초면 수분까지 몽땅 빨아 먹을 수 있었다.
「내 능력이 향상된 걸 알면 은비가 뭐라고 할까? 산삼을 몰래 훔쳐 먹고 자기에겐 무뿌리만 줬다고 하겠지? 크크크~ 인상 참 재미있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양보하니까 생각지도 못한 복을 다 봤네. 하하하~ 」
소연과 은비는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숙면을 취하고 있었고, 아영과 아이들도 쥐 죽은 듯이 잠에 빠져있었다.
이들이 섭취한 산삼이 기이한 산삼만큼 약효가 뛰어나다면, 앞으로 4~5일은 더 잘 수도 있었다.
「냄새 죽인다. 아우~ 머리가 다 아프네.」
자는 건 괜찮은데 몸속에 빠져나온 노폐물이 문제였다. 까맣게 누런 노폐물들이 온몸에서 빠져나오며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침대에 비닐을 깔고 옷을 모두 벗긴 채 재워놓길 망정이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면 침대를 버려야 할 만큼 냄새가 지독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활용해 냄새를 바깥으로 품어냈다. 옆집까지 냄새가 날아갈까 걱정도 됐지만, 당장 내가 죽을 판이라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수년간 따뜻한 몸 안에서 썩고 또 썩은 노폐물은 흉기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20년 가까이 악취가 심한 빈민가에서 살아온 나조차도 참기가 힘든 고약한 냄새였다.
“악~ 이게 무슨 냄새야. 우엑~”
“우욱~”
“너희 몸에서 나온 노폐물 냄새! 향기롭지?”
“거짓말하지 마!”
“우욱~”
정확히 24시간 만에 깨어난 소연과 은비가 지독한 냄새에 비명을 질러댔다. 급히 욕실로 데려가 물과 비누로 헹군 다음 따뜻한 욕조에 넣어주었다.
소연과 은비가 씻는 동안 방으로 돌아와 오물이 잔뜩 묻은 이불과 바닥에 깐 비닐을 둘둘 말아 밖으로 가지고 나가 불태웠다.
지난번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이불은 태우는 게 나았다. 냄새가 지독해 10번, 20번 빨아도 면과 솜에 밴 냄새가 빠지질 않았다.
나야 냄새에 민감하지 않아 괜찮지만, 깨끗한 소연과 은비는 괴괴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이불을 덮을 리 만무했다.
“우아~ 아직도 코가 얼얼해. 당분간 코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아. 어쩜 좋아? 지금도 숨을 못 쉬겠어.”
“네 몸에서 나온 건데 어쩌겠어? 참아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난 하루에 최소 두 번 이상 꼬박꼬박 샤워하는 깨끗한 여자란 말이야.”
“겉에 낀 때가 아니라 몸속에 낀 때잖아. 샤워 백날 해도 소용없어.”
“내 몸속에 악취 나는 까맣고 누런 때가 있었다고? 생각만 해도... 우엑~”
“누구나 있는 거야. 괜찮아.”
비위가 약한 은비가 헛구역질을 해댔다.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헛구역질이 멈췄다.
하는 짓이 항상 아이 같지만, 사랑하면 이런 모습도 다 예뻐 보이는 지 내 눈에 귀엽기만 했다.
얼굴부터 몸매까지 예술작품이나 다름없고,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데 어리광과 투정쯤은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줘야 한다.
예쁜 여자를 데리고 살려면 이 정도 희생은 각오해야 하는 법이었다.
“짜증 낼 거 없어. 약효가 얼마나 좋으면 몸속 노폐물이 빠져나오겠어? 안 그래?”
“.......”
“몸속에 있던 더러운 노폐물들이 빠져나왔으니 깨끗해지고 얼마나 좋아! 수술로도 못 빼는 걸 산삼이 해줬잖아.”
“음~ 듣고 보니 그러네. 몸속도 깨끗해진 거니까 좋아해야 하는 거네. 히히히~”
울다가 웃으면 X구멍에 털이 난다고 했는데... 다행히 울진 않았으니 털이 날 염려는 없겠지? 별 이상한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몸 상태는 어때?”
“뭐라고 해야 할까? 상쾌하다고 해야 하나? 날아갈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좋다는 뜻이지?”
“응! 최고야!”
“은비는?”
“나도 좋아. 정말 이런 기분 처음이야. 한 마디로 끝내줘!”
“다행이다.”
욕조의 물을 갈아주고 1층으로 내려가 아이들 상태를 확인했다. 기감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상이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아영과 아이들의 몸에선 소연과 은비보다 훨씬 많은 노폐물이 흘러나와 있었다. 소연과 은비는 각성한 후부턴 몸이 최적화하며 노폐물이 쌓이지 않았지만, 일반인은 나이가 들수록 노폐물 양이 많아졌다.
그나마 아이들이라 이 정도였지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면, 방바닥까지 노폐물이 흘러넘치고 악취가 몇 배는 더했을 것이다.
“애들은 왜 안 깨어나는 거야?”
“약효를 흡수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그럴 거야.”
“이상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응! 괜찮아. 잘 자고 있어.”
다음 날 아침 아영이를 시작으로 아이들도 차례로 깨어났다. 덕지덕지 붙은 노폐물을 씻겨내자 몸에 있던 자잘한 상처가 깨끗이 사라지며, 피부가 백옥같이 변해 미인이 따로 없었다.
피부만 좋아진 게 아니라 키도 5cm나 자라났고, 영양실조로 살짝 기형이던 팔다리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빠! 소연 언니! 은비 언니! 정말 고마워요.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귀한 산삼까지 주시고... 우린 오빠언니들에게 해드린 게 없는데, 염치없이 매일 받기만 하고... 흑~”
“정말 고마워요. 흑흑~
“아앙~”
“우린 한가족이잖아. 울지 마!”
“우린 너희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아. 행복하다고. 아림아! 아솔아! 울지 마~ 너희 계속 울면 언니도 따라 운다.”
“엉엉~
끝내 울음을 터뜨린 아영과 아이들을 소연과 은비가 품에 안고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설움이 아닌 감격과 고마움의 눈물이지만, 벅찬 감정은 다를 게 없는지 쉽게 눈물이 잦아들지 않았다.
솔잎, 엄나무, 제피나무 등 각종 약재를 넣고 이틀간 푹 고은 오소리탕에 인삼과 대추를 넣고 다시 한 번 더 끓여 상에 내놓았다.
“오소리탕은 언제 또 배운 거야?”
“배운 적 없어. 김응수 부팀장에게 물어보고 그대로 따라한 거야.”
“이런 어려운 음식을 한 번 물어보고 그대로 한다고? 그것도 혼자서?”
“어렵지 않아. 깨끗이 손질해서 피 빼고 잘 삶기만 하면 돼. 누구나 할 수 있어.”
“그게 말처럼 쉬워? 언니랑 난 요리학원까지 다녔어도 음식 솜씨가 전혀 늘질 않는단 말이야. 누군 돈 주고 배워도 안 되는데 누군 한 번 물어보고 척척 만들어 낸다는 게 말이나 돼?”
“.......”
“오빠는 타고난 요리사야. 아니 요리의 신이야.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신적인 능력이라고.”
“또 이상한 소리한다. 빨리 먹기나 해.”
“이 집에서 음식 솜씨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 누군 줄 알아?”
“몰라!”
“왜 몰라? 오빠라는 걸 막내인 아림이도 아는데. 오빠 빼고 다 안다고.”
“됐거든!”
“언니랑 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단 말이야. 우리 몸속엔 요리란 키워드가 없어. 요리는 하는 게 아니라 먹는 것으로 입력돼 있다고. 하지만 오빠는 달라. 한 번 물어보는 것만으로 음식을 척척 만들어 내자나. 그것도 별 다섯 개짜리 고난도 요리를 말이야.”
“그만 좀 먹어. 식겠다.”
“난 평생 오빠 요리만 먹고 싶어. 제발 그럴 수 있게 도와줘~”
“볼기짝 맞고 먹을래? 아님 X침 맞고 먹을래?”
“우아~ 국물 맛 끝내준다. 역시 오빠 음식이 최고야! 히히히~”
“.......”
새로운 요리를 해줄 때마다 은비는 입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으며 내게 주방을 맡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솜씨가 없어도 더럽게 없는 소연과 은비, 아정의 손맛이 원인이긴 하지만, 요리에 취미가 없어 주방을 맡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맡고 있었다.
소연과 은비, 아정이 할 줄 아는 요리는 김치찌개와 계란프라이, 라면이 전부라 내가 손을 놓으면 주야장창 세 가지 요리(?)에 밑반찬을 몇 가지만 곁들인 채 밥을 먹어야 했다.
고기를 구을 줄도 몰랐고,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고등어조림, 두부조림, 제육볶음, 계란말이 같은 기본적인 요리조차 할 줄 몰랐다.
하다못해 김과 생선만 구워내도 제법 그럴 듯 할 텐데 그것도 요리라고 다 태워 먹고 숯검정만 상위에 덩그러니 올려놓았다.
냄비 밥도 아니고 전기밥솥의 물조차 제대로 못 맞춰 하루는 생쌀, 하루는 죽을 먹어야 했다.
예쁘니까 다 용서한다고 해도, 밥은 먹고 살아야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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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