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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51화 (51/505)

00051  산삼과 엘리트 레드몬  =========================================================================

51.

레드독 이후에도 고릴라·침팬지·원숭이와 같은 영장류와 돌고래·범고래처럼 지능이 높은 바다 동물을 길들이기 위한 연구가 끊임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자아가 강해서인지 레드독보다 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며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일부 연구소에선 사냥팀이 구해온 레드몬 새끼에 각종 약물을 투약해 야성을 제압한 후 전략적인 무기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 방법 역시 저항력이 높은 레드몬의 특성으로 인해 약물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며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레드몬을 길들여 능력자에 버금가는 무기로 만들겠다는 시도는 천문학적인 돈과 수많은 인명피해만 양산한 채 아직도 뚜렷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꿈을 버리지 못한 수많은 국가와 기업이 이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레드몬을 마음대로 부릴 수만 있다면 초강대국이 될 수도 있었고,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도 있었다.

쥐새끼든 고양이든, 토끼든, 개든 무엇이 됐든 레드몬만 사육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었다.

사체를 한 번에 모두 가져갈 수 없어 가죽을 벗기고 고기와 귀한 쓸개, 눈알은 비닐에 따로 담았다.

무거운 본스틸은 훔쳐갈 동물이 없어 동굴 속에 잠시 옮겨놓고 내일 다시 와 가져가기로 했다.

오소리 쓸개는 웅담과 같은  타우로 우르소데소시 코릭 애시드을 함유하고 있어 예로부터 귀한 약재로 사용했고, 눈알은 시력저하와 충혈 치료에 쓰였다.

불포화 지방산이 듬뿍 함유된 오소리는 현대인의 질병 예방과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맛도 참새고기와 비슷해 가장 맛있는 고기로 손꼽혔다.

고기와 뼈를 모두 분리한 다음 독 가시가 잔뜩 달린 꼬리를 수습했다. 아름드리나무를 금세 죽일 정도면 독성이 엄청나다 할 수 있었다.

잘만 사용하면 레드몬으로부터 소연과 은비의 몸을 지키는 용도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부주의로 가시에 찔리면 생명이 위독할 수 있어 먼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레드벳저 처리가 끝나자 냇물에 손을 깨끗이 씻고 영기를 뿜는 산삼에게 다가갔다. 삼은 혼자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삼이라고 해서 여럿이 모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영기를 뿜어내는 삼도 가족삼으로 총 아홉 뿌리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중 영기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천종산삼은 6구로 뇌두와 잔뿌리 상태, 삼의 크기로 보아 수령이 적어도 300년은 될 것 같았다.

레드문의 영향으로 성장이 촉진된 만큼 실제 수령은 이보다 낮겠지만, 효능은 훨씬 높아 300년이 아니라 500년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나머지 일곱 뿌리는 6구가 두 뿌리, 5구가 세 뿌리, 4구가 세 뿌리였다. 가장 나이가 어린 4구도 상태가 매우 실해 100~150년은 족히 돼 보였다.

“먹지 않고 왜 지키고 있었을까? 이 정도만 해도 성장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산삼이 무르익길 기다렸다고 봐야지.”

“네가 강릉에서 먹은 기이한 산삼같이?”

“정확한 건 죽은 레드벳저만 알겠지.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지. 그렇지 않았다면 감시만 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럼 우리도 기다려야 했던 게 아닐까? 레드벳저가 기다렸다면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럴 시간 없고, 그럴 장소도 아니잖아. 더구나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 수도 없고.”

“그래도 좀 아쉽다. 강릉에서 먹은 산삼과 같은 거로 한 뿌리 더 먹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또 먹으라고.”

“응!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됐잖아.”

“흐~ 아직 고추 크기가 마음에 안 들어? 더 키워야 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지금도 감당이 안 되는데.”

“근데 왜 그걸 또 먹이려고 해. 먹으면 또 커지잖아. 정력도 훨씬 세질 거고. 감당할 수 있겠어?”

“음... 그건 두렵지만, 네게 도움이 된다면 난 참을 수 있어.”

“뭐라고? 하하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심을 말하는 소연이 너무 예뻐 꼭 끌어안았다. 소연은 일찍 캐 버린 삼이 아까운 게 아니라 나에게 또 다른 기연이 찾아오지 않은 걸 아까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이것만 해도 하늘이 준 기연이었다. 더 많은 걸 바라는 건 화를 부르는 일이었다.

“오빠! 애들 먹여도 되는 거야? 약효가 너무 세서 부작용 있는 거 아니야?”

“아정이, 아솔이, 아림이는 달여서 먹이면 되고, 아영이부턴 생으로 먹으면 돼.”

건강한 사람의 경우 생으로 먹고, 아이들과 환자, 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달여서 먹는 걸 권장했다. 또한, 몸에 흡수가 잘되게 잠들기 직전이나 새벽에 먹는 걸 권하고 있었다.

“뽑자마자 바로 먹는 게 효과가 좋긴 한데, 이틀간 맵고 짠 음식을 피하고 부드러운 죽이나 미음을 통해 속을 편하게 한 다음 먹는 게 좋다고 했어.”

“이 상태로 놔둬도 괜찮아?”

“이끼로 잘 감싸놨으니까 며칠은 괜찮을 거야.”

강릉에서 산삼을 먹었을 땐 기초지식이 부족해 무턱대고 먹었지만, 이번엔 절차를 밟아 제대로 먹일 생각이었다.

귀한 산삼을 구해놓고 먹는 방법이 틀려 약효가 날아간다면, 그만큼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도 없었다.

“가장 큰 건 반씩 나눠서 먹고, 6구 두 뿌리는 하나씩 나눠 먹으면 되겠다. 5구 세 뿌리 중 하나는 아영이 먹이고, 나머지는 두 뿌리는 할아버지와 아버님께 보내드리면 되고, 4구 세 뿌리는 아이들에게 먹이면 되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가장 큰 건 오빠가 먹어야지 왜 우릴 줘?”

“지홍아! 가장 크고 좋은 건 집안의 기둥인 네가 먹어야지. 우린 그다음 것만 먹어도 충분해.”

“지난번에 먹은 게 있어서 난 안 먹어도 돼.”

“약 한번 먹었다고 다시 안 먹어도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지난번 것도 소화를 다 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또 먹으면 과다복용으로 나빠질 수 있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이야.”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알아?”

“기감으로 확인하면 알 수 있어.”

소연과 은비가 의심의 눈으로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은비를 속이는 건 쉽지만, 소연은 말투와 표정으로 내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있어 속이기가 쉽지 않았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속여야 했다. 난 산삼을 캐는 순간부터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 지난번 먹은 산삼의 약효 중 일부가 아직 흡수되지 않은 채  몸 안에 남아있다고 나 자신에게 계속 최면을 걸었다.

워낙 기이한 산삼이라 아직 흡수하지 못한 약효가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먹은 시간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했다.

내가 이런 거짓말로 산삼을 양보하는 건 나보다 그녀들에게 산삼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난 이미 산삼의 덕을 봐 상급 능력자가 된 상태였다. 보약은 계속 먹는다고 끊임없이 몸이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한반도에 있는 산삼과 영지버섯, 하수오, 복령 등 몸에 좋은 약초를 몽땅 캐 먹고 최상급 능력자로 거듭날 수도 있었다.

인간의 몸은 그릇이 작아 일정 이상의 약효는 흡수하지 못해 아깝게 체외로 빠져나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길 바란다면 훈련을 통해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야지 약에 기대선 안 된다.

그렇다고 보약과 보양식이 필요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보약과 보양식은 모자란 영양분을 보충해주는 것으로 고된 훈련의 피로를 풀고 빠른 성장을 위해선 꼭 필요한 조치였다.

이틀간 소연과 은비의 집요한 요구를 끝끝내 물리치고 산삼을 복용시켰다. 시도 때도 없이 내가 먹을 것을 요구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난 혀를 내둘렀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훈련 중일 때도, 잠시 휴식을 취하며 TV를 볼 때도, 하다못해 사랑을 나눌 때도 소연과 은비는 쉬지 않고 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빠가 안 먹으면 다신 옆에 오지도 마.”

“네가 산삼을 먹으면 난 참 행복할 것 같아. 하나밖에 없는 낭군이 먹고 기운을 차리면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오빠 내가 잘못했어. 앞으론 잘할게. 그러니까 고집부리지 말고 먹자. 응? 제발! 한 번만~”

“오늘은 하기 싫어. 정말 하기 싫다고. 네가 산삼을 먹는다면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만... 먹기 싫다면 내려와 줘. 피곤해!”

“아파! 그만해. 산삼 먹기 전엔 다신 올라오지 마! 나가!”

때론 애교로, 때론 삐짐으로, 때론 섹스를 무기로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난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씨~ 언니하고 내 말을 죽는 순간까지 다 들어준다고 약속해놓고, 살림 차리고 나니까 마음이 싹 변한 거지? 그렇지?”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고집만 부리고 우리말은 듣지도 않잖아.”

“은비 말이 맞아. 약속도 안 지키고 고집도 열라 세고. 아주 못됐어.”

“잘못했어. 한 번만 봐줘! 딱 한 번만! 흐~”

아이들은 약탕기에 달인 후 쓴맛을 없애기 위해 석청을 넣어 달게 만들어 먹였고, 소연과 은비, 아영은 흙을 털어내고 깨끗한 물에 씻은 후 생으로 잎, 잔뿌리, 몸통 순으로 먹였다.

산삼을 먹은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명현현상(瞑眩現象)이 오는지 여섯 명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지구에 평화가 찾아왔다.

명현현상은 산삼을 먹은 후 나타나는 일시적인 호전반응(好轉反應)으로 지금처럼 깊은 잠에 빠지거나, 술에 취한 것처럼 어지럽기도 했다.

명현현상은 사람마다 반응이 달라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한 설사, 몸살, 코피를 쏟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잠이 들자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에 들었다. 엘리트 레드몬 레드벳저와의 전투를 하나씩 되짚어가며 잘못한 점과 잘한 점을 비교했다.

또한, 그동안 수련해오며 느꼈던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그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승무도를 가르쳐준 이기석 사범까지 옮겨갔다.

이기석 사범이 가르쳐준 기를 쌓는 방법과 수련할 때 마음가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봤다.

그리고 승무도의 뿌리인 불교의 참선(參禪)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고대 인도에서 시작된 참선의 선은 범어 드야나(Dhyana)의 음역인 선방(禪邦)의 준말로 ‘조용히 생각함’ ‘생각으로 닦음‘ 이란 뜻이었다.

참선은 잊어버린 자신의 주인을 찾고 바깥으로 달아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이다.

또한, 인간의 참된 주체성과 진리의 참모습을 찾는 것이 목적으로, 화두(話頭)를 통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해 정답을 찾아 나갔다.

선의 의미를 곱씹으며 자신에 대해 생각하자 그동안 강해지기는 일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내 마음이 내는 소리는 정작 듣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를 쌓고 기감력을 늘리기 위해 훈련과 사냥에만 몰입한 나머지 외부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내 마음과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외부와 단절한 채 몸속 세포 하나까지 느끼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으려 노력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것처럼 시간이 짧게 느껴졌지만, 시계는 벌써 낮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저녁 9시에 산삼을 먹이고 명상에 시작한 지 17시간 만에 눈을 떴다. 장장 17시간이나 좌선을 한 것치곤 몸이 이상하리만치 상쾌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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