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산삼과 엘리트 레드몬 =========================================================================
49. 산삼과 엘리트 레드몬
1991년 11월 12일
“이렇게 큰 게 저수지야? 이건 호수잖아. 오빠가 저수지라 그래서 낚시터 수준으로 생각했잖아.”
“나도 지도에 저수지로 나와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야.”
“지도 만든 놈이 저수지 개념도 모르는 거 아니야? 저수지는 연못보다 큰 못을 뜻하는 거잖아. 어떻게 나보다 더 모를 수가 있어.”
“그러게 말이다. 머리가 돌인가 보다.”
“크크크~ 석두!”
“원래는 저수지가 맞아. 화산재로 인해 북한강으로 흘러가는 물길이 막히면서 이렇게 커진 것뿐이야.”
소연의 설명에 나와 은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머쓱함을 대신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고 아는 척 입을 놀리다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임남 저수지는 북한강으로 흘러가는 물길이 막히며(사실은 임남댐 건설로 막힘) 지석리, 신성리, 기성리, 두목리 등 최소 14개 지역이 물속에 잠기며 커다란 호수로 변했다.
폭은 0.5~4km에 불과하지만, 남북으론 길이가 20km가 넘는 기다란 저수지(?)로 북한강으로 따라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로 흘러갔다.
회양 기지에 들어온 이후 일주일에 2~3번은 밤마다 숲을 돌아다녔다. 먹거리와 약초를 구하고 조용히 수련하기엔 사람이 없는 숲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임남 저수지 부근은 예전 농토로 사용하던 곳으로 지금은 숲이 되어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다른 곳보단 지형이 평평해 수련하기엔 아주 적당했다.
“저수지 부근에 레드보어가 많아?”
“18마리 잡았으니까 많다고 봐야지.”
“멧돼지는 어디나 많은 거 아니었어?”
“물을 먹기 위해 자주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산보단 발견하기 쉬웠어.”
회양에 오고 처음으로 소연과 은비를 데리고 밤 사냥을 나왔다. 그동안 따라 나온다는 걸 위험하다며 극구 말리다 열심히 노력한 공을 인정해 오늘에서야 데리고 나오게 됐다.
서울에서 시작한 훈련도 벌써 1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아직 기감력을 운용할 수 없어 성과를 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땀 흘린 노력이 헛되지 않아 체력과 정신력은 크게 성장한 상태였다.
정밀 포스 측정기가 없어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달리는 속도와 움직임, 스킬 발사 속도, 발사 횟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적어도 20%는 향상한 게 분명했다.
“근데 레드보어 사냥은 언제 하는 거야?”
“훈련 끝났고 해야지.”
“훈련하러 나온 거였어?”
“훈련도 하고, 사냥도 하고, 약초도 캐고, 먹을 것도 구해야지. 이걸 바로 일석사조라고 하는 거야. 얼마나 좋아?”
“이씨~”
집에서 할 수 있는 훈련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실력이 향상된 만큼 보다 넓은 훈련장이 필요했다. 또한, 내년 초 공대 결성을 위해 지금부터 부지런히 손발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손발을 맞춘다는 건 서로 약속된 행동을 상황에 맞게 무리 없이 실행한다는 뜻으로 끊임없는 반복훈련만이 살길이었다.
훈련 성과를 잠시 확인한 후 몇 가지 전투 대형을 연습했다. 하지만 인원이 달랑 세 명이라 이렇다 할 진형을 만들 수가 없었다.
적어도 소연과 은비를 보호할 피지컬리스트 한 명은 필요했다. 정찰과 공격, 수비 세 가지를 동시에 하기엔 몸이 하나밖에 없었다.
“방어형 피지컬리스트 중에 아는 사람 있어?”
“공대원 빼곤 몰라.”
“학교엔?”
“학교 다닐 때 사람들하고 안 친했어. 나 왕따였나 봐. 기억나는 사람이 없어.”
“은비 너도 없어? 넌 친구 많다며.”
“없어. 난 남자랑 안 친해.”
“.......”
숫자가 적거나 하급, 중급이면 굳이 소연과 은비를 방어해줄 능력자가 필요 없지만,
생물 중엔 생식, 포식, 방어, 수면 등을 목적으로 한곳에 떼를 지어 사는 군거 생활(群居生活)을 하는 레드몬도 많았다.
한반도 내에 군거 생활을 하는 레드몬 중 강력한 포식자가 없어 적당히 몰아서 잡거나 유인해 잡으면 큰 위험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근접 전투 기량이 조금씩 나아지곤 있지만, 아직 최하급 레드몬과 맞상대할 수준도 못돼 레드몬이 접근하는 순간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은영이 언니만 있어도 괜찮을 텐데.”
“그 얘기는 그만해. 얘기해 봐야 소용도 없는 일이야.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방어형이지 민첩형이 아니야.”
「중급 레드독만 길들일 수 있으면 딱 좋은데... 한 번 시도해 볼까?」
“너무 많이 잡아먹었나? 오늘따라 안 보이네.”
“오빠! 좀 더 내려가 보자. 아래쪽에 있을 수도 있잖아.”
“흐음... 알았어. 대신 뒤에 바짝 붙어와.”
“응! 찰거머리처럼 딱 붙어 갈게. 히~”
이제껏 저수지 상류에서 훈련하고 사냥했지, 하류론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상류만 해도 먹거리가 풍부했고, 훈련장소도 적당해 굳이 아래까지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신선 공대가 저수지까지 진출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위험을 무릎 쓰고 저수지 아래까지 정찰할 이유가 없었다.
북한 지역은 90% 이상이 전입미답(前人未踏)으로 어떤 놈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냥한 상급 레드몬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고, 그것보다 더한 최상급 레드몬이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숲은 우리에게 한없이 많은 혜택을 베풀지만, 반대로 방심하는 순간 목숨을 빼앗아가는 위험한 곳이었다.
조심 또 조심하는 것만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기감을 최대한 넓게 펼쳐 위험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며 천천히 저수지를 우회했다. 저수지엔 어류형을 비롯해 양서류와 파충류형 레드몬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거리를 두고 이동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저수지 속엔 레드몬이 분명 있었다. 수영도 못하는 내가 물속에서 어류형 레드몬을 상대한다는 건 죽여 달라고 생떼를 쓰는 것과 같았다.
물 밖으로 나와 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 역시 있을 수 없는 일로 물과 뭍은 영역이 다른 만큼 소 닭 보듯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 이게 뭐지?”
“왜 그래? 위험한 거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이상한 게 기감에 잡혔어.”
“이상한 거라니? 그게 뭐야?”
“산삼!”
“뭐? 산삼?”
직선거리로 3km 내려가며 레드보어를 찾기 위해 주변을 기감하다 생각지도 못한 산삼을 발견했다.
기감력을 사용하면 살아있는 생명체부터 죽은 사물까지 기감이 미치는 영역 안에선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레드보어를 찾기 위해 강력한 포스를 풍기는 생명체 위주로 기감하고 있어 식물인 산삼이 걸릴 이유가 없었다.
기감력을 오랜 기간 운용하며 노하우가 생기자 예전처럼 기감에 걸리는 모든 물체를 확인하는 무식한 방법을 벗어나 원하는 종류만 잡아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처음 기감력을 터득했을 땐 느껴지는 모든 걸 받아들이며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이젠 요령이 생겨 키워드 검색처럼 포스의 유무, 포스의 양,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 등 원하는 기준으로 주변을 기감할 수 있었다.
기감에 걸려든 산삼은 강릉에서 복용한 기이한 산삼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영기(靈氣)가 충만한지 레드몬처럼 기운을 뻗어내고 있었다.
산삼이 스스로 영기를 뻗어낼 정도면 수령이 적지 않다는 뜻이었다. 약효가 기이한 산삼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소연과 은비를 한 단계 끌어올릴 힘이 되어줄 건 분명했다.
기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산삼을 캐기 다가갔다. 기감에 걸린 위치가 서쪽으로 1km 지점이라 산삼을 발견한 것 자체가 천운이었다.
20~30m만 우측으로 벗어났어도 산삼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갈 뻔했다. 이래서 보물은 하늘이 내려준다고 하는 것 같았다.
숲을 헤치며 산삼을 향해 500m쯤 다가가자 뭔가 거슬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느낌은 땅속이나 바위 속에 레드몬이 숨어 있는 경우였다.
레드래빛이나 레드몰처럼 땅속에서 생활하는 놈들에서 자주 접하는 느낌으로 기감이 가까스로 도달하는 땅속에 있거나 기다란 굴을 통해 기감이 미미하게 전달되는 경우였다.
문제는 평소보다 거슬리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산삼 근처에서 강한 느낌이 전달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산삼 부근에 레드몬이 있어. 그것도 평범한 놈이 아니라 엘리트 레드몬 같아.]
바닥을 글을 써 위험을 알리고 기감력을 놈에게 집중했다. 기감력을 최대한 좁혀 한곳을 주시하면, 기감 거리도 늘어나고 사물의 형태도 더욱 또렷해졌다.
정신을 집중하자 바위굴에 숨어있는 레드벳저(오소리)의 모습이 보였다. 레드벳저는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로 여덟 마리가 복잡한 굴속에 숨어 있었다.
족제빗과에 속하는 오소리는 몸길이 56~90cm, 꼬리 길이 11~20cm, 몸무게 10~16kg으로 땅딸막한 몸매에 다리가 튼튼하고 큰 발톱이 있어 땅굴 파기에 알맞았다.
몸빛깔은 회색 또는 갈색이며 얼굴에 뚜렷한 검은색과 흰색의 띠가 있었다. 항문 위에 취선의 개구부가 있어 악취가 나는 노란색 액체를 분비했고, 이것을 행동권 내의 돌이나 나무의 밑동 같은 곳에 발라 통로의 표적으로 삼았다.
야행성으로 적이 공격하면 굴을 파고 달아나기도 하지만, 사나움이 붙으면 매우 사나운 싸움꾼으로 변했다.
토끼, 들쥐, 뱀, 개구리, 곤충, 두더지, 지렁이, 식물 뿌리, 도토리, 버섯 등 잡식성으로 가리는 게 없었고, 수명은 12~15년 사이로 유럽, 북아시아, 한국, 일본 등지에 서식했다.
가장 큰 수컷은 몸길이 6.2m, 꼬리 길이 1.8m, 무게 650kg으로 함께 있는 암컷 레드벳저보다 체격이 두 배나 컸다.
크기와 몸에서 풍기는 강력한 포스를 생각하면 최소 B급 엘리트 레드몬이 확실해 보였다.
엘리트 레드몬은 레드스톤 크기와 에너지양을 기준으로 A급, B급, C급으로 나뉘었다.
C급 엘리트 레드몬은 레드스톤 크기 9cm에 에너지양 5,001~10,000몬 사이였고, B급은 10cm에 10,001~30,000몬 사이, A급은 11cm에 30,001~50,000몬 사이였다.
단편적인 데이터를 기준으로 등급을 분류한 것으로 에너지가 전투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는 사실이지만, 100% 일치한다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레드몬도 상성, 체급, 스킬 등 많은 차이가 있어 단순히 에너지 차이로 승패를 결정지을 순 없었다.
레드벳저 가족이 웅크리고 있는 땅굴이 깊진 않지만, 다행히 모두 굴속에 모여 있어 우리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 놈을 잡기로 했다. 굴 입구가 산삼에서 불과 30m 떨어졌고, 입구가 정면을 향하는 것으로 보아 놈도 영기를 뿜어내는 산삼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산삼을 먹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까진 알 수 없지만, 엘리트 레드몬이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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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