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48화 (48/505)

00048  중급 레드몬 레드링스  =========================================================================

48.

아침 5시에 기상해 국민체조로 몸을 풀고 가벼운(?) 뜀박질로 몸 상태를 조절한 후 1시간 동안 집중 명상으로 기감력을 키웠다.

체력 훈련과 근접 전투 훈련은 저녁 8시부터로 기초 체력을 다지는 순환 훈련 방식이 서킷 트레이닝(Circuit Training)을 활용했다.

서킷 트레이닝은 팔, 다리, 복근 등에 지속적인 자극을 가해 근력과 근지구력, 유연성 등을 종합적이고 점진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근접 전투는 이기석 사범에게 배운 승무도를 계속 가르치며 실전과 같은 대련을 통해 대처능력을 키우고 있었다.

서울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땐 맨몸으로 달렸다는 것과 지금은 자기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강철 덩어리를 달고 뛴다는 것이 조금(?) 달라진 점이었다.

소연과 은비가 120kg과 100kg에 절절맬 때 난 1ton이 넘는 쇠사슬을 온몸에 칭칭 감고 전속력으로 서킷 트레이닝에 응했다.

이 훈련방법은 근육과 뼈를 상하게 할 수 있어 일반인들이 이 방식으로 훈련하면 몸이 튼튼해지는 게 아니라 병들어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재생력과 회복력이 일반인보다 몇 배 뛰어난 피지컬리스트들도 힘겨워하는 훈련으로 멘탈리스트인 소연과 은비에게 이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다.

피지컬리스트들도 힘들어하는 훈련을 소연과 은비에게 시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지만, 위험한 레드몬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 훈련은 거뜬히 소화해야 했다.

상대는 피도 눈물도 종족도 다른 레드몬이었다. 레드몬에게 잡힌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훈련시간만큼은 자상하고 애정을 넘치는 남편이 아닌 철저한 교관으로 얼굴을 바꾼 채 소연과 은비를 쓰러질 때까지 몰아붙였다.

이것이 내가 소연과 은비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난 사랑하는 사람에겐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쏟지만, 나머지 사람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측은지심은 가지고 있지만, 그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결코 인간 자체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난 내가 당한 모욕과 수치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갚아주고 싶은 그런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소연과 은비에게 표현하지 않을 뿐 난 사람에 대해 깊은 증오심과 배타심을 가지고 강했다.

자란 환경 때문에 생긴 마음의 상처로 만약 소연과 은비를 만나지 못한 채 계속 혼자 살았다면, 점점 성격이 삐뚤어져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연과 은비가 있어 사랑과 행복을 느끼며 이런 삐뚤어진 마음이 밖으로 잘 표현되지 않고 있을 뿐 마음속엔 여전히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 나라가, 이 세상이 나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나를 억압하고 때리고 괴롭히며 죽음으로 내몰았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결과 이 만큼이나마 올라올 수 있었지, 국가와 사회가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도, 도움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 국가와 국민까지 사랑하기엔 내 가슴은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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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 완전 빨대네. 능력자들을 다 빨아들이고 있어.”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조건이 월등히 좋잖아. 그걸 생각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지.”

“언니! 이러다가 우리나라 능력자들 모두 미국에 이민 가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돈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은데.”

“물질 만능사회에서 과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인데.”

“그렇긴 하지.”

지난달 대한민국 능력자 세 명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현 정부의 인권 탄압에 항거한 망명으로 밝히고 있지만, 사실은 달러의 유혹에 넘어가 미국행을 택한 것이었다.

일반인보다 특급 대우를 받는 능력자가 인권을 탄압받았다고 하면 지나가는 개를 웃을 일이었다.

아무리 나라가 썩고 정치인이 개판이라도 능력자를 함부로 대하진 않았다. 물론 일반인 기준이라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달라 무시 받거나 기분이 나쁠 수는 있어 인권을 유린당했다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었다.

그래도 작은 양심이라도 있다면 좀 더 그럴싸한 이유를 대고 조국을 등지는 게 현명한 처사 같았다.

미국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를 상대로 능력자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첨단 무기의 시대가 아니라 신인류의 시대였다. 신인류를 많이 확보하고, 많이 양성하는 나라가 21세기의 강대국이었다.

하급 능력자 한 명의 전투력은 최신형 전차보다 앞섰고, 중급 능력자의 가치는 최신형 전투기와 이지스 전함보다 더 높았다.

이렇듯 개개인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이들이 모일 경우 그 파괴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하급 능력자로 구성된 1개 공대(15명 기준)의 전투력은 기계화 보병 사단의 힘보다 강했고, 중급 능력자로 공대를 구성할 경우 작은 약소국은 가볍게 찜 쪄 먹을 만큼 두려웠다.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지는 능력자의 힘은 레드몬을 상대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유사시 히트맨, 첩보원, 타격대 등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었다.

능력자는 기름을 먹지도 않고, 웬만해선 수리할 필요도 없어 유지비도 거의 안 들고, 지형적 영향도 받지 않아 지구촌 어디든 날아가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전천후 병기였다.

더구나 중급 레드몬 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방호복을 하급 피지컬리스가 입고 전투에 임하면 소총과 기관총, 수류탄은 물론 대전차 로켓으로도 쉽게 죽일 수 없어 일반 보병은 이들 앞에선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국제 연합(UN)은 능력자가 전쟁에 참여할 경우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과 주된 임무를 벗어날 경우 레드몬으로부터 인류를 지킬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꾸준히 ‘능력자 전쟁·테러 참여 금지 결의문’ 통과를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계속된 거부로 결의문 채택이 무산되다 올 초 극적으로 결의문이 채택되며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고 안전 보장 이사회(Security Council) 5개국이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이 위반할 경우 제재할 수단이 없어 겉만 번지르르한 결의문으로 남고 말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드러내 놓고 모집하진 않네.”

“약소국 한두 나라야 상관없지만, 전체가 들고일어나면 미국도 곤란해지니까 최대한 은밀히 영입하는 거지.”

“그래서 망명으로 가는 거야?”

“그렇지. 이데올로기와 인권문제로 끌고 가야 미국에 유리하니까. 믿을 수 없지만,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세계 안전을 책임진 경찰국가잖아.”

“조크지?”

“흐흐흐~”

미국은 각국에 파견된 대사관과 영사관의 무관과 상사 주재원을 이용해 능력자들을 영입했다.

영입 조건은 10년간 세금 면제, 500만 불 상당의 주택과 토지, 자동차, 요트 지급, 최상급 방어구와 무기 무료 대여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 등 돈과 섹스를 골고루 사용해 능력자들을 끌어들였다.

1991년 1월 기준 미국은 총 8,612명의 능력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3분의 1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동유럽 등 저개발국가에서 영입한 능력자였다.

이렇듯 많은 능력자를 포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투자를 아끼지 않은 연방 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개방적인 사회 풍조와 다민족국가라는 특수성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은 유럽계와 중동계의 후손들,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태평양 섬의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알래스카 원주민으로 구성됐다.

여전히 백인우월주의 사회지만, 중국이나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인권차별이 극악한 나라와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개인의 능력을 우선하는 사회 풍조로 피부색이 달라도 능력자가 살아가기엔 안성맞춤인 나라였다.

“언니! 우리나라 정부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왜 미국처럼 능력자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거냐고?”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니까 그렇겠지. 국력부터 재력까지 미국 일개 주(州) 만도 못하잖아. 근데 무슨 힘으로 타국 능력자를 영입하겠어? 그리고 우리가 소총 한 자루만 팔아도 난리는 치는데 타국 능력자를 영입해봐 미국이 가만있겠어?”

“그렇다고 미사일까지 쏘겠어?”

“전쟁을 일으키진 않겠지. 대신 전쟁만큼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겠지.”

“무역보복?”

“그렇지.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선 그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조건이 열악해 오려는 능력자도 없고, 단일민족이라 타국 능력자 영입은 국민 정서에도 잘 맞지 않아.”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지. 중국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일본은 따라잡아야 할 거 아니야. 다른 나라엔 다 져도 일본에 지는 건 못 참겠다고.”

“나도 그 마음은 같지만, 우리보다 한참 앞서서 쉽진 않을 것 같다.”

1991년 1월 기준 대한민국 능력자는 총 1,667명으로 2,456명을 보유한 일본보다 무려 789명 적었다.

질적인 차이도 심해 중급 능력자도 일본이 우리보다 5명이나 많은 20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만만한 게 대한민국이네.”

“자리가 워낙 안 좋잖아.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였다면 어깨에 힘 좀 줬을 텐데, 어이없게도 세계 4강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잖아.”

“그럼 우리가 피스 메이커야?”

“우리가 조정자가 될 만한 힘이 있겠어? 강대국에 끼인 힘없는 약소국일 뿐이지.”

“이런 젠장! 해방된 지 46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수준이 이것밖에 안된단 말이야?”

“식민지 지배를 받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거야. 지금 우리가 비교하는 국가들이 한손 안에 드는 나라들이라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지.”

“식민지 지배만 안 당했어도 일본에 밀리진 않았을 거야. 6·25 전쟁도 없었을 거고, 매국노들이 나라를 장악해 농단하지도 못했을 거야.”

“그때 이랬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야. 그건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세상이 자신들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정확히 알고 이해해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야. 생각하면 짜증 나고 마음 아프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해. 그래야 밝은 미래를 열 수 있어.”

“알고는 있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놔.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참질 못하겠어. 어리석어서 그런가봐.”

“사실 나도 그래. 말만 그러는 거야. 히히히~”

“이씨! 언니까지 이러기야?”

“미안~”

소연이 말한 내용 중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우린 나약한 존재라 가끔은 감정에 치우쳐 조상들의 행동을 욕하고 비난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현재를 사는 우리들도 먼 옛날 과오(過誤)를 저지른 조상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현실에 안주하고, 작은 이익에 눈이 멀고, 잘못된 것을 따지지 못한 채 외면하고, 편한 것만 찾고, 나와 가족만 생각하는 모습은 과거를 살았던 조상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지금 우리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미래를 살아가는 후손들도 우릴 욕할 것이다. 남을 욕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잠시뿐이었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우린 습관처럼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현실에 안주했다.

마치 사냥꾼에 쫓겨 달아나던 토끼가 정신없이 달아나다 왜 도망쳤는지 이유를 까맣게 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다 목숨을 잃듯이 우리도 토끼처럼 건망증이라는 망각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았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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