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파티 =========================================================================
42.
은비는 2종 보통 면허증을, 소연은 1종 대형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면허를 딸 수 있어 국민 대다수가 액세서리처럼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흔한 운전면허도 없었다. 태어나 자동차 핸들을 잡아 본적도 없어 면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살면서 불편함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다만 소연과 은비 둘 다 가지고 있는 운전면허를 남자인 내가 없다는 게 한심하고 창피할 뿐이었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나 도로연수까지 다 끝냈어. 다음 주에 차 도착하면 가장 먼저 태워줄게.”
“고고... 고맙다.”
“울 신랑이랑 오프로드를 질주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재미있겠다. 하하하~”
“;;;”
초보운전이 오프로드라니 이 무슨 망발인지... 초보운전 딱지도 못 뗀 은비는 차가 도착하기를 오매불망(寤寐不忘)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날이 다가올수록 심한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죽을 염려는 없지만, 다혈질인 은비의 운전 스타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차도 없고, 차선도 없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거칠고 난폭하게 달리며 광소를 터뜨릴 은비의 모습을 생각하면 입맛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오프로드에 적합하다고 해도 버스 캠핑카는 너무 무리한 것 같아.
“난 좋기만 한데 왜 그래?”
“은비 말이 맞아. 천막생활은 잠도 불편하고 씻을 수도 없잖아. 앞으로 밖에서 생활할 날이 많은데 그 정도는 준비해야지.”
“그래도 네가 힘들게 번 돈인데 아깝잖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야. 그리고 하루 이틀 쓸 것도 아니고 남 줄 것도 아닌데 아까울 게 뭐가 있어?”
SUV(Sport Utility Vehicle)는 산악 지형과 비포장도로에 적합한 차량으로 악천후에서도 운전이 쉬운 게 특징이었다.
우리가 구매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사륜구동(4WD) 디젤 엔진 2.5ℓ Td5 모델이라 오프로드인 태백산맥을 달리기에 적합했다.
또한, 소연과 은비의 고생을 덜어줄 레니게이드(renegade) 버스 캠핑카는 길이만 14m로 별장이나 집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넓은 실내와 침실, 주방까지 모두 갖춘 바퀴 달린 호텔이었다.
침대와 샤워 부스, 소파, 주방, 평면TV, 대형 냉장고, 세탁기, 오븐레인지, 냉온 방장치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30억 원짜리 초호화 캠핑카로 미국에서 도착하려면 아직 한 달은 기다려야 했다.
“캠핑카 타고 사냥 다니면 정말 편하겠다.”
“천막생활하고 비교하면 궁궐이나 다름없지.”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샤워도 하고, 오빠가 만들어준 요리도 먹고, 밤에는 오빠랑 사랑도 마음껏 나눌 수 있고. 히히히~”
“밥은 네가 해라.“
“나 밥 못해.”
“요리학원 다녔는데 밥을 못해? 그게 무슨 소리야?”
“요리만 배웠지 밥하는 건 안 배웠단 말이야.“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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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을 빠져나간 공대 선두엔 조은영과 김보영이 첨병으로 앞서 나가며 주변을 정찰하고 있었다.
민첩형 피지컬리스트는 이동속도가 빠르고, 순발력도 뛰어나 정찰과 수색엔 맡기엔 가장 알맞았다. 그러나 사망률이 공대 내에서 가장 높아 모든 이가 꺼리는 보직이기도 했다.
1967년생인 조은영은 하급 피지컬리스트로 고유스킬은 아직 없지만, 연사력과 명중률, 관통력, 무빙 샷까지 활 실력만 놓고 보면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뛰어난 궁사였다.
활과 화살도 파괴력과 관통력이 뛰어난 본 스틸 합금궁과 강철 화살을 사용해 공격력도 매우 뛰어났다.
활 실력 외에도 첨병이 지녀야 할 빠른 판단력과 침착성, 전장을 보는 눈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 공대 내에선 김갑수 다음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오늘 조은영과 파트너가 되어 첨병 역할을 맡은 방어형 피지컬리스트 김보영은 소연과 같은 나이로 레드몬 사냥팀에서 활동한 지 올해로 3년째였다.
로마군을 흉내 낸 김보영은 가슴까지 오는 대형 방패와 가죽 갑옷, 가죽 투구, 글라디우스로 중무장한 채 조은영의 뒤를 열심히 쫓고 있었다.
강을 따라 북동쪽으로 1.5km 이동한 조은영은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산비탈을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500m를 전진하자 첫 번째 사냥감인 레드래빗 무리가 멀리 시야에 잡혔다. 조은영은 거추장스러운 김보영을 뒤로 물린 후 나무 위로 올라가 레드래빗의 보금자리인 토끼 굴을 찾았다.
조은영은 토끼 굴의 크기와 숫자를 통해 레드래빗 수를 가늠하려 했다. 최대한 먼 거리에서 망원경을 사용해 놈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내려오자 신선 공대원들이 조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두 무리가 서식하고 있어요. 숫자는 각각 30~40마리 정도에요.”
“어디서 사냥하는 게 좋겠어?”
조은영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갑수가 사냥 장소를 물어왔다. 첨병의 역할은 몬스터의 유무만 확인하는 게 아니었다.
사냥하기 적당한 자리, 절대 가서는 안 될 자리, 퇴각하기 좋은 자리까지 모든 것을 두루 살펴야 했다.
“바로 앞에 좁은 협곡이 있어요. 제가 그쪽으로 유인해올 테니 은비의 에너지 파동으로 입구를 틀어막고 사냥하면 될 것 같아요.”
“알았어. 수고 좀 해줘.”
“네!“
“모두 들었지? 은영이가 자리 잡아주면 일조가 은비 책임지고 보호하고, 일명이는 소연이, 보영이는 서인이 보호해. 너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맡은 공대원을 끝까지 보호해야 돼. 알았어?”
“예!”
“주식이는 나와 함께 앞을 맡고, 두일이와 영두는 좌우에서 난입하는 놈들을 맡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500m 떨어진 나무에 위 걸터앉아 김갑수가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관찰했다. 김갑수의 행동이 대단할 건 없지만, 이게 경험이자 노하우였다.
공대원 모두에게 자신의 임무를 확실하게 부여하고, 공대의 힘을 100%, 120% 끌어내는 것이 공대장이 할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갑수는 100점은 아니라도 70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실력 있는 공대장이었다.
조은영이 레드래빗을 몰이하러 간 사이 소연과 은비, 이서인이 방어형 피지컬리스트의 방패 뒤에 숨어 전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작전은 아주 간단해 조은영이 레드래빗을 몰아오면 은비가 에너지 파동을 삼각형 형태로 깔아 입구를 막는 동시에 놈들을 가두어 섬멸하고, 이서인이 사일런스 스킬을 사용해 소음을 제거해 추가 유입을 막는다.
소연은 은비의 에너지 파동을 피한 레드래빗을 홀드로 잡아주고 김감수와 운주식이 놈들을 때려잡으면 끝이었다.
작전은 간단명료할수록 성공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간단한 작전도 충분한 연습이 없으면 엉망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준비! 발사!”
레드래빗 무리를 끌고 온 조은영이 쏜살같이 통과하자 은비가 준비한 에너지 파동을 쏘아 보냈다.
반경 10m짜리 에너지 파동이 날아가 협곡을 막자 이서인이 곧바로 음파차단 스킬을 사용해 반경 30m를 침묵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조은영의 도발에 화가 난 멍청한 레드래빗 18마리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듯 에너지 파동 안으로 퐁당퐁당 뛰어들었다.
은비가 완벽한 그물을 만들기 위해 에너지 파동 두 개를 추가로 날리자 좁은 협곡엔 하얀빛만이 가득 찼다.
「몰이 사냥용으로 최곤데. 흐흐흐~」
3분 후 에너지 파동이 잦아들자 레드래빗 18마리가 숨을 거둔 채 얌전히 누워있었다.
18마리 모두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로 눈, 코, 입, 귀에서 흘러내린 피만 없다면 잠든 평온한 모습이었다.
첫날 사냥은 대박이었다. 산기슭에 있는 68마리 레드래빗을 모두 잡고 레드스톤도 9개나 건지며, 하루 만에 6억8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은비야! 고생 많았다.”
“공대원 모두가 노력한 결과에요. 제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그런가?”
“당연하죠. 저 혼자였다면 무서워서 서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은비는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마음씨도 정말 착한 것 같아. 누가 데려가는지 정말 부럽다. 하하하~”
“호호호~ 알면서~”
은비의 활약에 김갑수의 입이 찢어지고 있었다. 큰 성과를 거두자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특히 공대장인 김갑수의 입은 찢어지다 못해 터져나갈 듯 벌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6억 원이란 거금을 손에 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일 오늘 같을 순 없겠지만, 은비가 있는 한 강릉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은 거뜬히 벌어들일 수 있었다.
“냉동 창고에서 큰놈으로 돼지 열 마리 꺼내서 여덟 마리는 자네들 먹고 두 마리는 식당에 가져다줘.
“감사합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큰돈이 손에 들어오자 김갑수가 보조사냥꾼들에게도 고기와 술을 나눠줬다.
덕분에 새롭게 보조사냥꾼이 된 회양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배가 터지게 먹고 뼈다귀까지 챙겨가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내일 하루는 쉴 테니까 마음껏 마시고 신나게 놀아. 따까리들도 챙겨 먹이고. 단, 지난번처럼 남의 집 담을 또 다시 넘어가면 그땐 자네부터 죽을 줄 알아. 알았어?”
회양에 온 지 한 달 만에 보조사냥꾼 중 세 놈이 마을 여성 두 명을 집단으로 강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갑수는 여자 편력이 심하지만, 성추행, 성폭행 등 성범죄는 극도로 혐오했다. 이유야 개인적인 일이라 알 수 없지만, 성범죄 처벌은 매우 단호했다.
신뢰를 중요시하는 김갑수는 놈들이 악감정을 가진 채 공대에 남을 경우 공대 전체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생각에 팔다리를 모두 부러뜨린 후 강릉으로 돌려보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노일수 팀장이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숙이며 용서와 함께 충성을 맹세했다. 죽이겠다는 건 엄포에 지나지 않았지만, 듣는 노일수 입장에선 다리가 후들거리는 소리였다.
누가 뭐래도 이곳 회양에선 김갑수가 법이었고, 왕이었다. 김갑수의 비위에 거슬리는 순간 그날이 바로 제삿날이었다.
“마음에 들면 데리고 살든지 아니면 돈을 주고 욕정을 풀라고 해. 공대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이번 사냥 끝나면 애들 데리고 원산 가서 확실하게 놀다 와. 그리고 앞으로 주말은 쉴 테니까 알아서들 놀고.”
“감사합니다.“
능력자들만 여성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보조사냥꾼들도 여성이 필요했다. 둘 다 혈기 왕성한 나이라 여자 없인 열흘도 참기 힘들었다.
공창(公娼)의 필요성에 대해 찬반 의견이 언제나 대립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올 만큼 성욕은 먹고사는 것만큼이나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욕망 중 하나였다.
공권력을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고, 종교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게 사창가였다. 그만큼 성욕은 인간의 순수한 욕망이라 강제로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능력자들은 최소 2~3명씩 쭉쭉 빠진 여자를 자기 집에 데려다 놓고 욕정을 풀고 있어 아쉬울 게 없지만, 술집도 없는 두메산골에 갇힌 보조사냥꾼들은 밤마다 벌떡거리는 고추를 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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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