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41화 (41/505)

00041  파티  =========================================================================

41.

사냥 체계가 가장 확실하게 잡혔다고 평가받는 미국도 헬퍼라는 이름의 도우미를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도 대한민국의 보조사냥꾼과 같이 능력자를 대신해 사체를 운반하고 몬스터를 찾아내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우리만큼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미국 레드몬 사냥팀은 무인항공기(UAV, Uninhabited Aerial Vehicle)인 드론(drone)과 무인조종비행체인 헬리캠(Helicam)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이 사용하고 있는 무인항공기는 RQ-2 파이오니어(RQ-2 Pioneer)로 이스라엘 IAI사와 미국 AAI사가 합작으로 개발한 무인정찰기로 길이 4m, 날개폭 5.2m, 무게 205kg, 최대고도 4,600m에서 시속 200km로 날며 5시간(운행 거리 185km) 동안 하늘을 날며 레드몬을 찾아냈다.

전자광학 적외선 감지기를 탑재한 RQ-2 파이오니어는 아날로그 비디오 화면을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헬리캠은 프로펠러가 4개인 쿼드콥터로 비행체 아래에 카메라를 장착해 영상을 촬영하고 전송할 수 있었다.

RQ-2 파이오니어는 항로를 설정해 무인으로 움직이거나 위성을 통해 원격조종이 가능했고, 헬리캠은 전파 수신 범위 안에서 모니터를 이용해 직접 조종해야 했다.

미국은 드론과 헬리캠을 이용해 일차적으로 레드몬을 확인한 후 헬퍼를 투입했다. 공중에서 확인하는 것이라 효과는 떨어졌지만, 이런 노력이 성과를 세계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적었다.

“우리도 인명피해를 줄이려면 드론과 헬리캠을 빨리 도입해야 하는데 왜 늑장을 부리는 거야?”

“비용 때문이야. RQ-2 파이오니어의 기체와 운용시스템을 구매하려면 못해도 100억 원은 들어. 최소 2대는 있어야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해 200억 원은 투자해야 해. 여기에 운용비용과 인력, 고장 수리까지 생각하면 비용은 몇 배로 늘어나.”

“그럼 비용이 적게 드는 헬리캠을 사용하면 되잖아.“

“헬리캠은 주행거리와 체공시간이 짧고,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해도 5~10분밖에 사용할 수 없어. 바람의 영향과 탑재할 카메라의 무게제약도 심해. 높은 고도와 저온의 날씨에는 배터리가 얼어버려 추락하는 일도 잦아.”

“그래도 사람 목숨을 생각하면 도입해야지.“

“RQ-2 파이오니어를 운용하는 공대는 국내에 한 곳도 없고, 헬리캠도 오성과 기영 등 몇 명 대형 공대만 운영하고 있어.”

“한 해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벌어들이면서 고작 3~4,000만 원이면 운용할 수 있는 헬리캠도 아깝다는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세상은 사람 생명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정말 너무들 한다.“

소연의 설명에 화가 나는지 은비가 짜증을 냈다. 세상이 원래 그랬다.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졌고, 없는 자는 부랄 두 쪽밖에 없었다.

웃기는 건 넘치도록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부랄 두 쪽밖에 없는 이를 쥐어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계보다 사람을 더 신뢰해서 운용하지 않는 곳도 있겠지.”

“오빠! 기계가 사람보다 효율이 떨어지면 그만큼 많은 수를 동원하면 되잖아. 그런 노력도 없이 사람 목숨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야.”

“살인자야.”

김갑수가 가족들을 위무하는 동안 소연과 은비는 비정한 현실을 성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레드몬 사냥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인명 경시 풍조가 매우 강한 나라였다. 건물 공사만 해도 철근을 빼돌리고 싸구려 시멘트와 소금기가 빠지지도 않은 모레를 사용해 지었고, 난연재와 불연재를 사용해야 하는 곳에 스티로폼을 사용해 피해를 키우기도 했다.

썩은 생선으로 어묵과 맛살을 만들고, 병든 소와 돼지를 먹거리로 팔고, 중금속이 가득 든 장난감을 아이들의 손에 쥐여주며, 고철만도 못한 배로 사람을 태워 나르다 빠져 죽이는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범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돈 때문이었다. 적은 금액부터 큰 금액까지 돈을 착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범죄에 가담했다.

이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정부도 기업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빠!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말자. 알았지?”

“내가 보조사냥꾼인데 그러면 천벌 받지.“

“헉! 미안!“

필요도 없는 보조사냥꾼을 둘 마음도 없지만, 내가 당한 부당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싶지도 않았다.

난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인간답게 산다는 건 잘 먹고 잘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호사를 누리기 위해 남을 깔아뭉개고, 돈을 벌기 위해 남의 목숨을 빼앗고, 잠깐의 편안함을 위해 남을 모욕 주는 것 또한 인간다운 행동은 아니었다.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이것 또한 인간답게 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자공이 ‘평생 지켜야 할 신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 무엇입니까?’라고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하길 ‘그것은 서(恕)다.’ 나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 그것이 '서'였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를 내 마음 헤아리듯 해야 한다는 말로 나 같은 보통 사람이  지키기엔 너무도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20년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온 난 남이 나을 건들지 않으면 나 또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누가 날 건드리거나 위협하면 20년 동안 쌓이고 쌓인 분노를 그대로 퍼부어줄 생각이었다.

난 내 것을 빼앗기며 반대 뺨을 내어줄 성인이 아니었다. 동전 하나만 빼앗겨도 참지 못하는 밴댕이 소갈딱지였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지 주변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난 익수영진고를 만들었다. 산삼과 복령, 천문동, 구기자, 백밀을 곱게 빻아 가루를 내고 생지황 즙을 부어 섞은 후 석청을 넣어 반죽했다.

잘 반죽된 익수영진고를 옹기 항아리에 옮겨 담은 후 기름먹인 한지로 입구를 봉하고, 3일 밤낮으로 중탕한 후 하루 식혔다가 다시 하루 중탕했다.

그렇게 꼬박 5일에 걸쳐 중탕하고 다시 배합한 후 숙성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만든 익수영진고를 작은 구슬 크기로 만들어 은박지에 하나씩 쌌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알씩 빠짐없이 복용해야 해.”

“오빠! 저희는 괜찮아요. 언니들 드리세요.”

“오빠가 먹으라면 먹어. 조그마한 게 벌써 오빠 말을 거역하고 혼날래?”

“아영아! 우리 다 같이 먹으라고 지홍이가 만들어 준거니까 정성을 생각해서 감사하게 먹자. 알았지?”

“너희 안 먹으면 다 갔다 버린다.”

“그러지 마세요. 먹을게요.”

한 달 동안 수색 범위를 10km까지 넓히며 추가로 23명의 회양 출신 보조사냥꾼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26명이 적은 수는 아니지만, 애초 예상보단 한참 밑도는 피해였다. 김갑수는 최소 200명 이상의 사망자와 그보다 5~6배 많은 부상자를 생각했었다.

10분의 1도 안 되는 피해가 난 이유는 회양 주민이 죽어갈 때마다 소연과 은비가 쏟아내는 한숨이 싫어 내가 손을 쓴 결과였다.

그 덕분에 남쪽으로 20km 떨어진 임남 저수지 근처에서 중급 레드보어 수놈 한 마리와 암놈 두 마리, 새끼 네 마리로 구성된 가족을 몽땅 사냥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새로운 먹거리를 찾던 중이라 쾌재를 부르며 글라디우스로 이마빼기에 구멍을 하나씩 뚫어주고 값비싼 레드스톤과 함께 귀한 쓸개까지 구할 수 있었다.

야저담(野猪膽)이라 불리는 멧돼지 쓸개는 웅담(熊膽)만큼 뛰어난 약재로 열독과 황달을 치료하고, 어혈을 풀어주고 피를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었다.

“씹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냥 꿀꺽 삼켜.”

“꿀 때문인가? 쓸개도 먹을 만하네.“

달콤한 석청을 듬뿍 발라 준 쓸개를 소연과 은비가 꿀꺽 삼켰다. 한 달간 레드몬 심장으로 단련하자 쓰디쓴 쓸개도 곧잘 받아먹었다.

레드보어는 새끼는 뺀 성체는 최하가 중급 레드몬으로 이번에 잡은 수놈은 길이가 6m에 무게가 800kg이나 나갔다.

뼈와 피, 머리를 빼면 무게가 확 줄어들지만, 그래도 고기가 워낙 많아 한 마리만 잡아도 며칠은 먹을 수 있었다.

암놈 또한 길이가 4.5m에 무게가 400kg이었고, 새끼는 2.5m에 150kg이 나가 당분간 고기 걱정은 덜 수 있었다.

식구가 7명에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과 대식가인 내가 있어 하루에 레드디어 한 마리는 있어야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내일부터 사냥 시작이야.”

“반경 20km밖에 확인하지 못했잖아.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내일이 4월 1일이잖아. 위에서 하루도 늦추면 안 된다고 닦달하나봐.”

한 달간 26명을 제물로 기지 주변을 수색했지만, 수색 범위도 좁고 레드몬의 종류와 서식지 파악도 완벽하지 않아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하지만 혼자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사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4월 1일은 대유 그룹 문일권 회장이 정한 최종시한으로 이를 어길 경우 김갑수는 불호령을 감당할 수 없었다.

군대만 상명하복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어딜 가나 상명하복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어 불합리한 일이 합리적인 일처럼 버젓이 자행됐다.

한 달만 시간을 늦춰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안전을 확보할 수 있지만, 돈이란 마물 앞에서 안전 따윈 개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동쪽 레드래빗부터 사냥하기로 했어. 일주일간 사냥하고, 남쪽으로 내려가 레드무스텔라를 사냥할 거야. 주변이 정리되면 동남쪽 10km 밑에 있는 옛 창도 군청을 공략할 예정이고.”

“레드마우스를 정리하려고?”

“응!”

“1,000마리도 넘던데 괜찮겠어?”

“강릉에서처럼 조금씩 유인해서 사냥하면 괜찮을 거야.”

“레드마우스가 가장 약체긴 해도 숫자가 많은 이상 언제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항상 조심해.”

“응! 조심할게.”

“그럼 당분간 기지에서 출퇴근하겠네?”

“주변 정리가 끝날 때까진 그래야지.”

소연이 말한 주변이란 기지를 중심으로 반경 10km를 말했다. 10km면 상당히 먼 거리지만, 100km 이상으로 달리는 레드몬이 모래알처럼 많아 절대 안전한 거리가 아니었다.

또한, 반경 10km 안을 완벽히 정리한다는 것도 회양 기지가 자리 잡은 태백산맥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소연이 말한 정리는 기지와 공대에 위협이 될 만한 선공형 레드몬을 처리한다는 뜻으로 레드몬을 완벽히 퇴치했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가 도착해도 당분간 쓸모가 없겠네.”

“무슨 소리야? 원산으로 쇼핑 갈 때 사용하면 되잖아.”

“원산까지 쇼핑을 가?“

“이곳엔 아무것도 없잖아. 옷이라도 구경하려면 당연히 원산에 가야지.”

“헉... 옷 구경하러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악도로를 50km나 간다고?”

“50km가 문제야? 100km, 200km도 갈 수 있어. 아니 지구 끝까지라도 갈 수 있어. 예쁜 옷이 있다면 어디를 못 가겠어?”

“.......”

은비의 무시무시한 말에 소름이 돋았다. 달랑 옷 구경을 위해 흔들리는 차에서 몇 시간을 버텨내겠다는 건 남자인 내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라면 그 시간에 기감력을 수련하든, 누워 TV를 보든, 책을 보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쓸모없는 옷 구경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