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40화 (40/505)

00040  파티  =========================================================================

40.

포도주 8병을 비우고도 성이 차지 않는지 은비가 방에서 스카치 위스키 두 병과 맥주 한 상자를 꺼내왔다.

물어보지 않아도 할아버지 몰래 가져온 술이 분명했다. 은비가 가져온 술은 시바스 리갈 골드 시그너쳐 18년산(Chivas Regal Gold Signature 18 Year Old)으로 초콜릿과 오렌지 향이 나는 술이었다.

“오~ 향기도 좋고, 달콤하기까지 하네.

“은영 언니! 이거 더 맛있게 먹는 법 알려드릴까요?”

“어떻게 먹으면 되는데?”

“디캔팅을 하면 돼요. 병을 따서 3분에 1 정도 비우고 뚜껑을 닫은 채 2~3주 내버려두면 부드러워져서 훨씬 맛있어요.”

“한번 뚜껑 따면 다 먹는 거지 남겨두고 그런 게 어디 있어?”

“하긴 그러네요. 없어서 못 먹는데 남겨둘 게 어디 있겠어요. 하하하~”

양주까지 들어가자 건배를 외치는 소리와 잔을 부딪치는 청아한 소리가 점점 잦아졌다.

저녁 6시에 시작한 술자리가 10시가 넘었는데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꾸벅꾸벅 조는 아영과 아이들을 방으로 옮겨놓고 혼자 불 옆에 앉아 남은 레드와피티 고기를 구워 먹었다.

11시가 넘어가자 혀가 꼬부라진 소리가 들리더니 새벽 1시가 되자 넷 다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 탁자에 머리를 처박거나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술에 취하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고, 그러다가 웃고, 울고 종내에는 쓰러져 잠이 든다.

왈가닥인 은비와 조은영은 당연히 그랬고, 평소 조신한 소연과 이서인도 강약만 다를 뿐 술 먹고 노는 모습은 다를 게 없었다.

능력자가 일반인보다 체력이 뛰어나도 술엔 장사가 없었다. 계속 마시다 보면 취할 수밖에 없는 게 술이었다.

포도주 16병에 양주 6병, 맥주 48병을 짬뽕으로 섞어 마셨으니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세상에 술 취한 여자가 예쁘고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건 당신도 그녀와 같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머리를 산발한 채 잠든 소연과 은비를 방에 눕히고 옷을 벗긴 후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이불까지 잘 덮어준 다음 다시 테라스로 나왔다.

술 취한 모습이 아름답진 않지만, 그래도 내 여자였다. 좋은 것만 사랑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추하고 더러운 것도 사랑해야 진정한 사랑이었다. 물론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면 영원히 사랑할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이서인과 조은영을 집까지 일일이 업어다 주었다. 난 음흉하게 몽실몽실한 가슴을 등으로 느끼며 양손으론 엉덩이를 마구 주물렀다.

“아응~”

“으음~”

애간장을 녹이는 신음과 부드러운 엉덩이의 촉감을 고깃값으로 톡톡히 받아낸 후 집으로 돌아와 잔뜩 어지럽혀 놓은 술자리를 정리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기감력이 발달하며 밤눈도 밝아져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도 작은 불빛만 있으면 사물을 확인할 수 있어 밤에 숲에 들어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일은 없었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아도 기감을 통해 주변을 대낮같이 볼 수 있어 낮과 밤이 큰 차이가 없었다.

밖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숲엔 상황버섯과 말굽버섯, 운지버섯, 겨우살이를 비롯해 돼지감자, 돈나물, 쑥부쟁이, 곰보배추, 산죽잎, 냉이 등을 가득했다.

오늘은 익수영진고를 만들 약초를 캘 생각으로 숲에 들어왔다. 뿌리식물은 겨울과 초봄에 채취해도 약효에 문제가 없어 지황과 백봉령을 먼저 캤다.

천문동은 남쪽 해안지대에서 주로 자라 이곳에서 구할 수 없었고, 열매인 구기자는 집에서 키우는 사람이 많아 백밀과 함께 할아버지에게 부탁해 보내달라고 했다.

지황은 보혈제, 강장제, 해열제로 사용하고, 백봉령은 강장효과가 뛰어나 강장제와 이뇨제, 당뇨, 산후풍에 사용했다.

천문동은 항균효과가 뛰어난 약재로 이뇨제와 강장제로 사용했고, 강장제인 구기자는 세포의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민간에서 구기차와 구기주로 애용했다.

익수영진고에 들어가는 약재는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영양을 도와 체력을 증진시키는 약재들로 동의보감에선 27년간 먹으면 360세를 살고, 64년을 장복하면 500세를 산다고 했다.

운 좋게 찾아낸 석청까지 캐낸 후 겁도 없이 덤벼드는 레드래빗 8마리까지 몽땅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석청은 토코페롤과 칼슘, 게르마늄 등이 풍부해 산삼에 버금가는 건강식품으로 천식과 감기 아토피성 피부염, 두통, 변비, 혈액순환 장애 등에 효과가 있었다.

연하고 맛이 좋은 토끼 고기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적고 단백질과 미네랄 함량이 높은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갖추고 있어 장기간 섭취하면 혈관계통의 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

또한, 토끼 간은 기를 보하고 눈을 맑게 해 야맹증이나 각막연화증에 뛰어난 효능을 발휘했다.

“아이고 머리야! 오빠! 살려줘!”

“우욱~ 하아~ 하아~”

잠에서 깬 소연과 은비가 숙취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입에서 술 냄새를 팍팍 풍기는 모습은... 역시 아름답지 않았다.

아무리 안주가 좋아도 술을 들이부으면 간이 버티질 못했다. 그것도 양주, 맥주, 포도주를 짬뽕으로 들이마셨으니 지금쯤 피보다 술이 몸에 더 많을지도 몰랐다.

석청을 연하게 타 한 잔씩 타 먹였다. 그래도 쉽게 속이 가라앉지 않는지 머리를 침대에 박고 엉덩이만 든 채 끙끙거리며 일어나질 못했다.

“내가 다시 술 먹으면 사람이 아니다. 레드몬 새끼다.”

“나도. 나도 사람 아니야. 하아~“

“과연 그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지. 지키는 게 아니라 일주일이나 갈 수 있을까?”

“머리 아파 죽겠는데 놀리는 거야?”

“흐흐흐~”

“웃지 마! 나 토할 것 같단 말이야. 계속 놀리면 이불에 토한다.”

소연과 은비의 속을 달래주기 위해 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레드래빗 한 마리를 통째로 삶고 있었다.

가죽과 머리,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손질한 다음 산삼과 백봉령, 생지황, 상황버섯까지 넣고 5시간을 팔팔 끓였다.

“그만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자.”

“왜?“

“토끼탕 끓여났어. 정확히 말하면 레드래빗탕이지만, 먹으면 속이 풀릴 거야. 애들도 먹어야하니까 내려가서 먹자.”

“떠다 주면 안 돼? 머리가 안 들려.”

“혼날래?“

“우씨~”

소연과 은비를 포대자루처럼 들고 1층 주방으로 내려가자 아영이 가마솥에서 상을 차리고 있었다.

“먹어봐. 속이 풀릴 거야.”

“언제 이런 걸 했어?“

“새벽에.”

“한 잠도 안잔 거야?”

“난 괜찮으니까 어서 먹어. 아영아! 너도 먹어.”

“네! 잘 먹겠습니다.”

숲 이야기가 나오면 아영이 경기를 일으킬지도 몰라 급히 말을 돌리며 소연의 입에 뜨끈한 국물을 넣어 주었다

국물을 한술 받아먹은 소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뜨뜻한 국물과 약초 특유의 알싸함이 울렁거리던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고기까지 연해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 맛에 반한 아이들이 토끼탕을 허겁지겁 퍼먹고 있었다.

“학원 다닌 우리보다 요리를 더 잘하네.”

“우적우적~ 앞으로 오빠가 요리 다 해줘. 우리가 한 건 맛이 없어. 오빠가 한 요리가 훨씬 맛있어.”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주방을 넘기려 하지 마. 나 주방 체질 아니야.”

“아깝다. 넘길 수 있었는데.“

아침을 먹이고 3시간 쯤 다시 재운 후 레드와피티와 레드래빛 심장을 먹기 좋게 잘라 견과류와 꿀을 더해 소연과 은비에게 가져다주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꿀 때문인가? 달고 맛있어.”

“꿀과 견과류 영향도 있지만, 조금 비린 것만 빼면 원래 먹을 만했어.”

“아이들은?“

“토끼 간하고 같이 먹였어. 눈에 좋다고 해서.”

토끼 간은 당분간 아이들을 먹일 생각이었다. 아영이를 포함해 넷 다 눈이 쉽게 충혈 되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아 그대로 두면 근시가 올 수도 있었다.

“토끼 간이면 용왕님 병 고칠 때 쓰는 거 아니야?”

“별주부전 찍냐?”

“히히히~”

속이 풀렸는지 은비가 썰렁한 농담을 해왔다. 실없는 농담을 할 정도면 숙취도 이제 풀렸다는 뜻이었다.

회복력이 일반인보다 몇 배나 뛰어난 능력자가 숙취 현상을 겪을 정도면 술을 마신 게 아니라 들이부었다고 봐야 했다.

“아이들도 계속 먹이는 게 좋겠어. 밥만으론 체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아.”

“익수영진고도 같이 먹일 거야.”

“오빠! 애들 운동도 시켜야지?“

“체력을 회복하면 그때 해야지. 지금은 달릴 기운도 없어서 안 돼!”

아영과 아정, 아솔, 아림 네 자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뿐이었다. 그것 외에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엔 측은지심에 데려왔고, 시간이 지나자 친동생 같은 생각에 애정을 더 쏟고 있는 것뿐이지 구차하게 무얼 바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앞가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할 텐데 걱정이네. 근데 뭘 알아야 도와주지. 가방끈이 길길 하나 머릿속에 지식이 들길 했나. 힘쓰는 것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하아~ 답답하다. 이번 기회에 나도 공부 좀 해야겠네. 최소한 아정이에게 창피는 당하지 말아야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레드담비에게 죽은 회양 출신 보조사냥꾼 5명에게 각각 240만 원의 위로금이 가족에게 전달됐다. 240만 원은 정확히 1년 치 봉급으로 회양 주민들에겐 엄청난 거금이었다.

또한, 죽은 이들의 유품을 모아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 김갑수는 돈과 정(情)의 힘을 이용해 흔들리는 민심을 붙잡았다.

박도준 시장 말대로 하면 회양 주민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을 강제로 동원할 경우 효율과 신뢰가 모두 떨어졌다.

신선 공대가 필요로 하는 보조사냥꾼은 단지 숫자가 아니었다. 공대원들 대신 목숨 바쳐 일할 충성스러운 바보 같은 일꾼이 필요했다.

김갑수는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해 무덤이라는 쇼와 돈이라는 충성의 징표를 회양 주민 모두에게 심어주었다.

“갑수 형님! 사람 심리파악은 정말 잘하는 것 같아.”

“남의 약점을 잘 잡는 거야. 가난이란 약점을.“

“그것도 능력이야.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갑수 오빠가 남이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뿐이 고종사촌 오빠라서 그런지 마음에 불편해.“

김갑수가 나처럼 기감을 통해 레드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보조사냥꾼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기감거리가 1km에 불과해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도 있지만, 자기 대신 목숨을 걸어줄 합법적인 인간 방패막이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김갑수만 탓할 건 아니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이름만 다를 뿐 보조사냥꾼을 모두 운영하고 있었다.

보조사냥꾼을 운영하지 않는 국가와 레드몬 사냥팀이 단 한 곳도 없다고 할 만큼 인간 방패막이는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