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회양 =========================================================================
37.
포스 협회가 항공기로 조사한 회양 인근의 레드몬은 30여 종으로 강릉보다 10여 종이 많았다.
20여 종은 강릉과 같았고, 나머지 10여 종은 레드폭스(여우)와 레드링스(스라소니), 레드울프(늑대) 같은 포식자였다.
또한, 레드바이퍼인 까치살무사와 쇠살무사, 레드스네이크인 능사와 황구렁이, 먹구렁이 같은 파충류 레드몬도 있었다.
“일제의 해수구제사업으로 호랑이를 비롯해 표범, 곰, 늑대, 여우, 삽살개, 강치 등이 모두 사라졌었는데, 30년간 숲이 방치되며 생태계가 다시 살아났나봐.”
“늑대와 여우만 있는 게 아니라 호랑이하고 곰도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생각만 해도 무섭다. 으~”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산간오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호랑이, 곰, 표범, 늑대, 여우 등을 멸종시킨 일로 한반도의 생태계를 고의적으로 파괴한 일제의 만행 중 하나였다.
실제 사업 목적은 한민족의 기상과 상징인 호랑이와 늑대를 소탕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값비싼 모피까지 얻자는 간악한 속셈이었다.
일제의 자료에 따르면 호랑이 97마리, 표범 625마리, 반달곰 1,100마리, 늑대 1,350마리를 사냥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었다.
“뭐? 우리나라를 도와줘? 해로운 동물을 잡아줘? 입만 열면 거짓부렁인 놈들. 입에서 썩은 구린내가 나.”
“일본에 없는 동물들이 우리나라에 있으니 배가 아팠겠지. 그래서 씨를 말렸을 거야.”
“나쁜 놈들! 화산과 지진, 해일에 완전히 침몰했어야 하는데 너무 짧게 끝났어. 젠장!”
“그러게 말이다. 불바다가 돼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어야 하는데. 하아~”
마음씨 착한 소연과 은비는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깊었지만, 유독 일본에 대해선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난 그런 소연과 은비의 행동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가족이 일제에 총부리에 처참하게 죽었는데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면 그게 이상한 것이었다.
사람이 성자가 아닌 다음에야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눈에 보이면 당장 찢어 죽이고 싶은데 사랑하라니...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언니! 레드바이퍼와 레드스네이크까지 있어. 난 뱀 싫은데 큰일이네.”
“징그럽긴 하지만 능사와 구렁이는 독이 없어 그래도 위험이 덜해. 하지만 까치살무사와 쇠살무사는 맹독성이라 물리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어.”
“무슨 대책을 세우고 사냥에 나서야 하는 거 아니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잖아.”
“십년 넘게 해독제를 개발한다는 소문은 무성한데,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나봐. 독성이 워낙 강해 해독제 개발이 쉽지 않은 거야.“
“그럼 어떻게 해? 물리는 죽는 거잖아.”
“뱀은 내가 잡아줄 테니까 수다 그만 떨고 수련이나 열심히 해.”
“맹독인데 오빤 괜찮아?“
“독초부터 독사까지 가리지 않고 다 먹었어. 하지만 보다시피 아무 이상 없잖아. 그리고 저항력이 높아 웬만한 독이나 이상 상태 공격엔 끄떡없어.”
“잘났어. 정말!“
김갑수는 노일수에게 말한 대로 보조사냥꾼 따가리 100명을 추가 모집했다. 월급은 한 달 20만 원으로 경비대가 받는 월급보다 세 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모집 공고가 난 3일 후 북문 앞 공터엔 경비대를 뺀 화양 주민 3,000명이 모두 모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강제로 동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들로 거금 20만 원에 노인부터 아이까지 회양 주민이 총집합했다.
그러나 인원만 많이 모였다뿐이지 젊은 청년은 모두 경비대에서 일하고 있어 쓸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일단 여자와 노약자, 아이들을 모두 추려내자 중장년층 남자들로 300여 명이 남았다.
이와 중에 자신도 할 수 있다며 악다구니를 치는 여자들과 노인들로 공터는 한동안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웠다.
회양은 원산보다 먹고살기가 더 힘이 들었다. 부두도 없고, 공장도 없어 마땅히 일자리라곤 경비대가 전부였다.
오죽하면 공대 사무실과 공대원 주택에 청소와 밥할 아줌마를 뽑자 회양 여성 1,400이 모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었다.
보조사냥꾼 선발 시험은 강릉에서 했던 시험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100m 달리기, 2,000m 오래달리기, 멀리 던지기로 100명을 선발했다.
그렇게 보조사냥꾼에 선발된 남성과 가족들이 얼싸안고 울음을 터트렸고, 떨어진 남자와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레드몬 사냥을 위해 버려진 마을을 새롭게 조성한 회양 전진 기지는 논밭이 충분하지 않아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았다.
식량 대부분을 원산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처지지만, 원산 주민들도 굶고 있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숲과 초원을 태워 화전 농법으로 식량을 충원하고 있지만, 이 역시 사정이 좋지 않아 경비대 식구가 아니면 밥을 굶는 일이 허다했다.
북쪽에서 20만 원이면 남쪽에선 200만 원에 해당하는 큰돈으로 이 돈이면 가족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이용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가족을 위해 포기할 순 없었다.
이들은 모두 가장이었고 가장은 가족을 먹여 살릴 책임이 있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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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왔어? 오빠 없어서 깼잖아.”
“미안! 기지 주변을 잠시 둘러봤어.”
“위험하게 혼자 다니지 마. 다음부턴 우리랑 같이 가.”
“알았어.”
내일부터 시작될 레드몬 수색에 대비해 기지 밖을 정찰하고 돌아온 사이 소연과 은비가 깨어 있었다.
진한 사랑의 여운으로 곯아떨어져 아침까진 정신없이 잘 줄 알았는데, 항상 살을 부대끼고 자던 내가 없자 허전했는지 잠이 깨고 말았다.
“갈 거면 고추는 주고 가야지. 매일 만지작거리던 고추가 없으니까 잠을 잘 수가 없잖아.”
“나도.”
“.......”
사격부터 레드몬 수색, 정찰, 운반 방법 등 야전에서 필요한 교육을 삼 일 만에 끝마친 보조사냥꾼 따까리들이 기지 주변을 수색하기 위해 출동했다.
소총과 무전기, 정글도, 밧줄, 조명탄을 챙긴 수색조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수색조는 5인 1조로 모두 회양에서 뽑은 따까리로 채워졌다.
수색조는 지도를 따라 움직이며 100m 단위로 주변 지형과 동식물을 무전으로 보고했다.
그렇게 5km를 전진한 후 우측으로 크게 우회해 기지로 다시 돌아오는 게 이들의 맡은 임무였다.
“그렇게 많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뭐가 있는데?”
“버리진 마을엔 레드마우스가 많이 모여 있고, 숲엔 레드칩, 레드몰, 레드래빗, 레드라쿤독, 레드디어 따위가 있어. 종류는 강릉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데, 숫자가 좀 많은 게 문제야.”
“뱀은? 뱀은 없어?”
은비가 등에 달라붙으며 뱀이 있는지 물어왔다. 뱀은 꼭 여자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웬만한 남자들도 뱀을 기피하고 무서워했다.
특히 독사는 물릴 경우 부위에 따라 죽을 수도 있어 누구나 기피하는 동물 1위였다.
“반경 10km를 훑었는데 레드몬으로 변이한 뱀은 못 찾았어. 하지만 없다고 단정 지을 순 없어. 땅속 깊숙이 숨어 있으면 찾을 수가 없으니까.”
기감을 통해 반경 1km를 손바닥 들여 보듯 자세히 볼 수 있지만, 땅속은 10m, 물속은 30m가 한계였다. 땅속과 물속은 고체와 액체라 기감거리가 확 줄어들었다.
“그래도 레드폭스나 레드울프, 레드보어가 없는 게 어디야. 그것만 없어도 다행이지.”
“아함~ 나 졸려! 빨리 와,”
“오늘은 나 때문에 잠 설쳤으니까 늦게까지 자.”
“정말?”
“응!”
“아싸!”
늦잠을 자라는 말에 졸려 눈을 비비던 은비가 좋아죽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침대 위를 방방 뛰었다.
나체로 침대 위를 뛰는 모습이 우습고 귀여워 팔을 벌리자 폴짝 날아 품에 안겨왔다.
예쁜 입술에 입을 맞추어 주고 서둘러 옷을 모두 벗고 침대에 들어가자 소연과 은비가 안겨오며 자연스럽게 고추를 주물럭거렸다.
잠을 잘 땐 이렇게 팔베개를 하고 고추를 만지작거리며 자던지 꽃잎에 고추를 넣고 자던지 둘 중의 하나였다.
기이한 산삼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커진 고추는 발기하지 않아도 절반 정도밖에 줄어들지 않아 삽입한 채 잠들어도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사랑이 끝난 다름에도 고추를 빼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삽입한 채 잠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심하게 뒤척이면 고추가 빠져 침대가 흠뻑 젖기도 했고, 밤새 정액이 말라 다음 날 물에 불리느라 생고생을 하기도 했다.
“30년간 사람 손이 한 번도 타지 않아서 그런지 좋은 약초가 많네. 내일은 약초 좀 캐와야겠어. 우리가 먹을 고기도 준비하고.”
“오빠! 또 혼자 가려고?”
“약초 구별할 줄 알아?”
“아니. 몰라.“
“그럼 고추나 만져.”
“우우~“
소연과 은비의 빠른 성장을 위해 보약과 보양식을 만들어 먹일 생각이었다. 훈련을 통해 체력을 키울 수 있지만,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선 기초체력이 필요했다.
운동선수가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아이들이 열심히 뛰어놀고 공부하기 위해, 아빠와 엄마가 직장에서 쓰러지지 않고 일하기 위해, 하다못해 연인끼리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도 체력은 필수였다.
이렇듯 체력(體力)은 사람이 활동적으로 생활하며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동력이자 능력자가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었다.
또한, 자신이 사용한 스킬을 버텨내는 지지대이며, 저항력·면역성·회복력 등 각종 이상 상태를 유발하는 공격을 막아내고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체력이 높으면 레드몬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음은 물론 자신이 사용하는 스킬의 반작용도 해소할 수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면 사용한 만큼 충격이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그것이 직접적인 타격이든 정신적인 타격이든 반드시 사용한 힘만큼 충격이 돌아왔다.
이는 뉴턴의 운동 법칙(Newton's laws of motion) 중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물체 A가 다른 물체 B에 힘을 가하면, 물체 B는 물체 A에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힘을 동시에 가하는 것에 기인했다.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누군가가 물체를 100의 힘으로 때리면 그 물체 또한 같은 힘으로 그 사람을 때린다는 말이었다.
스킬도 이와 같아 강력한 위력을 가진 스킬일수록 사용자가 받는 충격은 더욱 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조건 체력이 뒷받침돼야 했다.
보약으론 생지황과 산삼, 백복령, 백밀, 천문동, 구기자를 넣어 만든 익수영진고(益壽永眞膏)를 먹어 먹이고, 음식으론 레드몬 심장, 쓸개 등에 자연산 벌꿀을 첨가해 먹일 생각이었다.
동의보감에서 최고의 명약으로 경옥고(瓊玉膏)를 꼽았다. 경옥고는 정(精)을 보충하여 골수를 생성하고 근골을 튼튼하게 하여 병을 예방하는 데 사용하는 처방으로 익수영진고는 경옥고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명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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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부로 대화형식이 모두 수정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