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 회양 =========================================================================
36. 회양
“오빠도 산동네에 살았다고 했지?”
“응!”
“북촌하고 비슷하겠네?”
“거기보단 훨씬 낫지. 전기와 수도가 들어왔으니까.”
“그래? 화장실은?”
“집집마다 따로 화장실 있는 집도 있는데, 우리 집은 지하라 공동화장실을 썼어.”
“냄새 심했겠다.”
“흐흐흐~”
“산에서 혼자 살 때는 전기도 없었겠네?”
“그땐 능력자라 어두운 줄 몰랐어.”
“물은?”
“마당에 우물이 있어 물 걱정은 안 했어.”
“다행이다.”
품에 안긴 은비가 이것저것 물어왔다. 낮에 본 북촌의 모습이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많이 놀랐어?”
“응! 그런 곳이 있을 준 상상도 못 했어.”
“열악하긴 해도 사람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아. 거기서 거기야.”
“하아~ 북촌을 가보지 않았다면 오빠 말에 속아 넘어갔을 거야. 하지만 이제 눈으로 본 게 있어 속지 않아.”
“미안해할 거 없어. 넌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어. 앞으로 살면서 불쌍한 사람을 많이 도우면 돼.”
“난... 오빠가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못 했어. 단순히 나만큼 힘들었겠구나 생각했을 뿐이야.”
“맞아. 나도 너 만큼 힘들었어. 더 힘든 거 없었어.”
“그렇지 않아. 오빤 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힘들게 살았어. 난 그것도 모르고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짜증만 냈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아.”
“.......”
“언니는 잘 참고 들어간 길을 난 들어가지도 못했어. 냄새를 참지 못해 애들 보는 앞에서 토악질까지 했어. 흑~”
“괜찮아! 괜찮아!”
은비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오늘 자신의 행동과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에 괴로워하는 은비의 모습이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모습보다 사랑스러웠다.
과거의 공덕에 따라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에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윤회설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나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은 과거에 못된 짓을 많이 했다는 뜻이었다.
정말 과거의 공덕으로 부잣집에 태어났다면 그 사람을 축복해줘야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부잣집에 태어난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태어나는 것은 자기 뜻과 무관한 것이라 부잣집에 태어났다고 욕할 필요도 없었다.
은비는 지금 그걸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일이었다. 돈이 많다고 유세를 떨지도 않았고, 돈으로 사람을 업신여기지도 않았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을 돌보고 불우한 학생을 위해 장학회를 운영하는 등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사람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그 돈을 물려받은 후손이 조상의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다시 돈을 이용해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은비야! 지금처럼만 하면 돼. 사람을 아끼고 도와주려 노력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 그건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야. 할아버지와 돌아가신 부모님은 세상 그 누구보다 양심적으로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하셨어. 네가 알고 있잖아. 그렇지?”
“응!”
“그럼 된 거야.”
“지금처럼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럼.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 없어. 지금이면 돼.”
“고마워, 오빠! 오빠가 옆에 있어서 정말 행복해!”
“나도! 네가 옆에서 있어서 정말 기뻐!”
소연이 다가와 은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팔을 뻗어 소연의 허리를 안았다.
오늘따라 소연과 은비의 몸에서 더욱 달콤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그 향기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랑이란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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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출정식이 모두 끝나자 신선 공대와 비너스 공대, 제우스 공대는 각자가 맡은 전지 기지로 출발했다.
신선 공대가 맡은 회양 기지는 원산에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50km으로 내려가자 모습을 드러냈다.
지름 1km의 타원형인 회양 기지는 높이 5m의 낮은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북문과 남문으로 2개의 출입문이 있었다.
기지 중앙엔 신선 공대 사무실과 대유 그룹 출장소, 통신시설, 전력시설이 지어져 있었고, 서쪽엔 경비대 막사와 연병장, 동쪽엔 회양 주민 주거지가 몰려 있었다.
그리고 남쪽엔 신선 공대와 보조사냥꾼들이 머물 숙소가 마련돼 있었고, 북쪽엔 창고와 차량기지가 있었다.
“5년간 공대에 남아 있을 경우 원산 내성에 있는 300평 규모의 최고급 주택과 강원 북도 땅 1만 평을 무료로 나눠주시기로 회장님께서 약속하셨네. 또한, 이곳에서 기거할 200평 규모의 전원주택도 모두 자네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겠네.”
“5년이면 너무 긴 거 아닙니까?“
“5년은 금방이네. 그리고 5년 후엔 원산도 남쪽만큼 발전할 게 분명해. 그러니 그때까지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버티세.”
“집엔 언제 가볼 수 있는 겁니까?“
“올해는 힘들지만, 내년부턴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2주일간 휴가를 주겠네. 대신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하게. 내가 책임지고 이곳까지 모셔오겠네.”
“여자를 데려와도 됩니까?”
“물론이지.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원하는 만큼 말하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들이 원하는 만큼 데려다줄 테니까.”
김갑수는 공대원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주어질 혜택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위험한 북쪽에 온 만큼 그에 상응하는 당근을 제시해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회양의 열악한 시설에 공대원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면 공대가 와해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혜택이 없어 공대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여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효과는 생각보다 좋아 그것만으로도 불만을 크게 잠재울 수 있었다. 남성 능력자의 넘치는 욕구를 해결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이 집을 쓰면 되네. 새로 지은 집중에선 이 집이 가장 크고 아늑해. 창고도 있고 마당도 넓어 셋이 살기엔 불편하지 않을 거야.”
“고마워요, 오빠!“
“감사합니다. 형님!”
“아닐세. 해준 것도 없는데 고맙다니 그런 말 말게. 살다가 불편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게.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김갑수가 안내해준 2층집은 건평 80평에 창고와 마당, 텃밭을 합쳐 300평 규모의 전원주택이었다.
1층과 2층에 주방이 각각 하나씩 있고, 방은 6개, 작은 화장실 3개, 대형 욕실 2개, 1층엔 예쁜 테라스와 2층에 넓은 베란다가 있었다.
또한, 커다란 창고와 밖에서 집 안에 보이지 않도록 3m 높이의 담이 설치돼 있어 완벽하진 않지만, 남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집안 정리와 청소는 2시간 만에 끝이 났다. 3일 전 짐이 옮겨져 원하는 구조로 배치된 상태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문만 다시 배치하면 끝이었다.
“1층 방 3개는 아영이가 알아서 사용해. 혼자 자기 무서우면 둘둘 쓰고 하나는 다용도실이나 옷 방으로 써도 돼.”
“네! 언니!“
짐 정리가 모두 끝나자 소연과 은비는 김갑수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했다. 대유 그룹 관계자와 경비대 책임자가 참석하는 자리로 얼굴을 익히는 게 목적이라 빠질 수가 없었다.
김갑수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을 때 보조사냥꾼들은 전원주택에서 100m 떨어진 연립주택 앞마당에 모여 삼겹살에 막걸리와 소주로 조촐한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3층 연립주택은 20평짜리 12채로 한집당 3~4명의 보조사냥꾼이 기거했고, 팀장인 노일수와 부팀장인 김응수, 오재욱은 각각 독채를 지급받아 생활했다.
“어떻게 된 거냐?”
“알고 봤더니 김갑수 공대장님과 먼 친척이었습니다. 소연하고도 친척이었고요.”
“그걸 여태 몰랐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몰랐었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섭섭한 일 있었다면 이해해라. 나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고, 먹고 살려고 그런 거지 너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알고 있지?”
“네.“
“잘 되면 잊지 말고 한턱 쏴라.”
“알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김응수가 지난 일을 사과했다. 하늘같은 공대장과 친척이라는데 내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내 소속은 여전히 보조사냥꾼이었다. 하지만 하는 일과 기거하는 장소가 달라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김갑수의 이름을 팔아 사촌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갑수가 노일수를 불러 확실하게 경고를 한 만큼 보조사냥꾼 중 나와 소연, 은비 사이를 험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선 공대 안에선 김갑수가 법이자 왕이었다. 김갑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건 죽음을 의미했다.
강릉에서도 함부로 입을 못 놀리는데, 이곳은 김갑수가 무슨 짓을 해도 되는 회양이었다.
김응수가 따라준 막걸리를 한 번에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이들과 어울릴 일이 없었다.
같이 사체 운반할 일도, 밥 짓고 땔감을 구할 일도 없었다. 사실상 오늘이 이들과 마지막 만남이었다.
“서인이 언니 소문과는 전혀 단판이네. 수수하고 엄청나게 착해.”
“말 못 할 아픔이 있어서 그렇지 좋은 사람이야. 잘해줘.“
“알았어. 여자라곤 달랑 4명인데 친하게 지내야지.”
“그래.“
회식자리에서 한바탕 수다를 떨고 온 은비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이서인에 대한 오해가 풀렸는지 칭찬을 늘어놨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상대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소문에 휘둘려 좋다 나쁘다는 선입견을 품고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마음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가면 그 사람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대중에게 착한 이미지로 어필하던 연예인이 사실을 개 싸가지 일수도 있었고, 악녀로 묘사되던 탤런트가 사실은 마음이 천사일 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서인은 찐한 아픔이 있어서 그렇지 정말 착하고 순수한 여자였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애잔함이 가는 여자였다.
“내일 아침부터 다시 수련 시작하니까 늦지 말고 일어나.”
“오늘 도착했는데 하루만 쉬자. 나 정말 피곤해.“
“안 돼! 이런저런 핑계 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첫날부터 게으름 피울 생각하지 마.”
“오빵~ 하루만~ 제발~”
“안된다니까.“
“이씨! 난 몰라. 덮치든지 마음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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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부로 대화형식이 모두 수정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