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윤아영 =========================================================================
35.
“아저씨! 우리끼리 갔다 온다고 말했잖아요. 말귀 못 알아들어요?
“예쁜 아가씨가 겁이 없네. 그러다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젊은 경비대원이 AK-47 칼라시니코프(Kalashnikov)를 만지작거리며 은비를 은근히 협박했다.
“이 아저씨가 약을 처먹었나? 정신을 못 차리네.”
“죽고 싶어?”
“아저씨! 아저씨 보기엔 우리가 평범한 사람들로 보여? 뭔가 달라 보이지 않아?”
은비의 말에 경비대원들이 뭔가 찜찜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런 말은 평범한 여성이 할 말이 아니었다.
젊은 경비대원은 소연과 은비를 일단 자빠뜨리면 끝이라는 생각했다. 자빠뜨리기만 하면 자신의 잘못은 당연히 덮어지고 언제든 천사 같은 여자들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평소에는 할 수도 없는 대담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누구든 욕정에 눈이 멀면 사리 판단력이 떨어졌고, 젊은 경비대원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지? 뼈다귀 몇 개 부러져야 잘못을 뉘우치지? 그렇지?“
은비가 손을 들어 포스를 모으자 손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은비의 손에서 빛이 나자 경비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은비야! 그만해!”
“왜? 그냥 죽여 버리자. 이런 놈은 살려둬 봐야 민폐야. 없는 게 나아.”
“이래도 계속 우릴 희롱하실 건가요? 아니면 정식으로 사과하고 비켜서실 건가요?“
“죄...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놀란 경비대원이 총까지 떨어뜨린 채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경비대도 능력자들이 원산에 들어온 걸 알고 있었다.
경비대 지휘관이 귀에 못이 박히게 능력자의 특징과 인상착의를 말해줬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당하는 게 여자의 미색이었다. 그것 그냥 미색이 아니라 태어난 처음 본 아름다움에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알았으면 그만 물러서 주세요.”
“예! 예! 알... 알겠습니다.”
겁에 질린 경비대가 벌벌 떨며 간신히 뒤로 물러서자 소연과 은비가 아영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내성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일반인이 가진 능력자에 대한 인식은 보통 두 가지로 선망과 두려움이었다.
대중은 능력자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봤고, 능력자를 잘 알고 있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봤다.
정부와 언론이 만든 예쁘게 포장된 이미지에 길든 대중과 달리 군인, 경비대, 보조사냥꾼처럼 같이 일하거나 일했던 사람들은 능력자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 다가서려고 하지도 않았고, 마주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괜한 시비가 붙을 경우 법은 언제나 능력자의 편이었다.
권력자와 재벌가가 아니라면 절대 시비가 붙지 말아야 할 1순위가 능력자였다. 시비가 붙을 경우 운이 좋으면 뼈다귀 몇 개 부러지는 거로 끝났고, 재수가 더럽게 없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소연과 은비가 사라지자 근처에 있는 작은 나무를 집어 들어 이쑤시개보다 더 얇고 빼쪽하게 깎았다.
포스를 불어 던지자 작은 암기가 ‘슉~’ 소리와 함께 연달아 날아갔다. 소연과 은비를 희롱한 놈에겐 다섯 개를 쏘아 보냈고, 옆에서 음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놈들에겐 두 개씩을 선사했다.
입을 나불대던 놈은 양 무릎과 양 팔꿈치, 고환에 암기가 박혀 들었고, 구경하던 놈들은 양쪽 무릎에 하나씩 파고들었다.
“으악~”
고통에 찬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10m 방벽을 사뿐히 뛰어넘어 일행을 따라갔다. 난 다른 건 용서해도 내 여자를 탐하는 놈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살인자든 폭력배든 내 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여자인 소연과 은비를 건드리는 건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입을 나불대던 놈은 평생 남자 구실도 못한 채 고관절이 모두 망가져 바닥을 길 테고, 나머지 놈들도 다시는 일어서서 걷지 못할 것이다.
이쑤시개가 놈들의 관절을 관통하며 산산 조각낸 것도 문제지만, 강력한 포스가 뼛속 깊숙이 침투해 평생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피지컬리스트는 하급부터 무기나 손발에 포스를 담을 수 있었다. 포스를 담은 상태에서 상대를 가격하면 파괴력과 함께 포스가 살과 뼈에 침투했다.
이걸 침투경(浸透勁)이라 하는데 무술로 치면 외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내장을 파괴해 목숨을 끊는 발경 타법의 최종단계를 말했다.
포스를 담아 공격하는 것이 무예에서 말하는 발경, 침투경과 100% 같진 않았다. 하지만 포스를 발출하는 과정과 상대의 몸에 포스가 남는 원리는 다를 것이 없었다.
출입문을 나서 1시간가량 걸어 도착한 북촌은 아영의 말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코를 썩히는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부터 길바닥을 가득 메운 오물까지 북촌은 돼지우리보다 더 더러웠다.
은비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코와 입을 막고 욕지기를 간신히 참고 있었다. 2년간 사냥 팀에 몸담은 소연도 속이 울렁거리는데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은비가 이만큼 참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북촌 판자촌은 조성된 지 몇 년 안됐지만, 얇은 싸구려 합판에 페인트칠도 없어 군데군데 썩어들어가며 비까지 새고 있었다.
화장실도 대부분 공동으로 사용해 지저분하기 이를 때가 없었고, 쓰레기장도 없어 오물은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북촌만이 아닌 남촌도 비슷했고, 북한지역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언니! 괜찮으세요.”
“욱~ 괜... 괜... 우욱~ 우엑~”
“은비야! 아이들 데리고 좀 물러나 있어. 내가 아영이랑 집에 다녀올게.”
“아니... 나도 같이 우욱~“
“괜찮으니까 아이들 데리고 멀찍이 물러서 있어. 금방 다녀올게. 아영아! 가자!”
“네! 언니!“
소연이 아영을 앞장세워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길은 폭이 1m도 안 됐다.
바닥엔 썩은 쓰레기와 대소변이 가득해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쥐까지 들끓어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올라오는 욕지기를 간신히 참고 도착한 아영의 집은 허리를 굽히고서야 간신히 들어설 수 있는 낮은 판잣집이었다.
두 평 남짓한 방 하나와 작은 부엌이 있는 아영의 집엔 누더기나 다름없는 솜이불 한 채와 잡동사니나 다름없는 냄비, 그릇, 다 부서진 밥상이 전부였다.
방안에 들어선 아영이 아랫목에서 꺼내온 작은 상자에서 수건에 정성스럽게 싼 사진이 한 장을 꺼내왔다.
사진 속엔 젊은 남녀가 양복과 양장을 곱게 차려입고 있었다. 빛바랜 흑백사진이었지만, 아영의 부모님은 인물이 좋았다.
아영도 잘 먹고 자랐다면 부모님을 닮아 인물이 제법 반반할 것 같았다. 사진을 바라보는 아영의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빠와 엄마가 떠난 빈자리가 17살 소녀에겐 너무도 크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하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애쓴 아영의 모습에 소연의 눈에도 눈이 그렁그렁 맺혔다.
“언니! 같이 와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야!“
“이제 가요.”
“그래!”
소연과 아영이 집을 빠져나와 마을 앞 공터에 도착했을 땐 20명도 넘는 사내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사타구니를 쥐고 있었다.
피를 질질 흘리는 것으로 보아 불알이 터진 게 분명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동네 양아치들이 은비에게 수작을 걸며 다가서다 화가 난 은비가 놈들의 사타구니를 걷어찼고, 능력자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불알 두 쪽이 빵~ 터지며 인사불성이 된 것이었다.
“나 임자 있는 몸이야. 어디서 치근대고 지랄이야.”
“은비야! 그만하고 가자.”
“다시는 나쁜 짓 못하게 팔다리도 부러뜨려야 해.”
“애들이 보잖아.”
“이씨~ 운 좋은 줄 알아. 애들만 없었으면 너흰 죽었어.“
“얘들아! 언니 손 붙잡고 가자.”
겁에 질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소연과 은비가 길을 되짚어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은비를 희롱한 놈들의 고관절을 아작내고 바람처럼 달려 호텔에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자 전화벨이 울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내려가 아솔과 아림의 손을 잡고 원산에서 가장 유명한 한정식집을 찾아갔다.
원산에 한정식집이 있다는 게 좀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대유 그룹 문일권 회장이 올 때를 대비해 박도준 시장 준비한 식당으로 놀리기 뭐해 직원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생각보다 맛있네. 아영아! 맛있지?”
“네! 정말 맛있어요.”
“오빠도 많이 먹어. 몰래 따라다니느라 고생했을 텐데 배고프겠다. 그치?”
“어? 어떻게 알았어?”
생각지도 못한 은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멀리 숨어서 따라갔기 때문에 소연과 은비가 날 발견했을 리가 없었다.
“경비대가 벌벌 떠는 걸 보고 알았지. 다섯 놈을 작살을 내놨는데 우릴 바라보는 눈이 어땠을 것 같아?”
“.......”
“경기를 일으키면서 귀신처럼 쳐다보더라.”
“난 악마로 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언니 말이 맞네. 벌벌 떠는 것으로 봐서 우리 악마로 생각한 게 틀림없어.”
“화가 나서 그만...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너희를 건드리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놀랐다면 미안해.”
“내 말이 맞지?”
“맞네! 정확하네. 한 글자도 안 틀리네.”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가 오빠 얼굴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챘어. 그래서 나보러 떠보라고 한 거야. 그뿐인 줄 알아? 오빠가 잘 다녀오라고 할 때부터 따라올 거라고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어.”
“.......”
“오빠는 언니 손바닥 위에서 노는 손오공이야. 언니가 말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와~ 불쌍해서 어쩌나? 울 남편 몰래 바람도 못 피우겠다. 킥킥킥~”
“커험...”
“히~”
소연이 이빨을 드러내고 짓궂게 웃는 모습에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할 것인지 예측한다면 그건 독심술이 아니라 텔레파시이자 예지력이라고 말해야 했다.
“미안해! 장난이 심했지?”
“괜찮아.”
“북촌에 다녀오는 내내 마음이 든든했어. 이 먼 곳까지 따라와 주고 항상 날 보호주고,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내 여자를 보호하는 건 남자의 당연한 일이야.”
“그래도. 난 정말 복 받은 여자야. 너 같이 멋진 남자를 만난다는 건 세상 모든 여자의 꿈일 거야.”
“쑥스럽게 왜 그래?”
“사랑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널 사랑해!”
은비 말이 맞았다. 난 소연의 손바닥 위에 놀아나는 손오공이 맞았다. 하지만 부처의 손에 잡혀 괴로워하는 손오공과 달리 난 행복이란 손바닥 위해 놀아나는 행복한 손오공이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