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윤아영 =========================================================================
34.
머뭇거리는 아영과 동생들을 데리고 원산 호텔에 들어섰다. 태어나 처음 본 화려한 로비의 모습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호텔 지배인과 직원들이 깜짝 놀라 황급히 다가왔다.
투숙객이 고용한 사람들이라고 말한 다음 방에 전화를 넣어 바꿔주자 지배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지배인의 입장에선 거지나 다름없는 주민들이 호텔에 들어오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옷차림도 문제지만 몸에 이와 벼룩이 득실대고 호텔 이미지도 떨어져 지배인의 입장에선 싫어하는 게 당연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는 내내 아이들은 모든 것이 신기한지 호심이 잔뜩 서린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원산 호텔은 서울에 있는 특급 호텔과 비교하면 고급 모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이 보기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건물로 보였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 이들과 다를 것이 없어 10층짜리 원산 호텔이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만큼이나 높고 웅장하게 느껴졌었다.
“반가워!”
“어서 와!”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생들이 참 예쁘다. 그렇지 언니?”
“정말 귀엽네.”
소연과 은비는 아이들의 모습이 꾀죄죄한데도 아무런 내색도 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벼룩과 이가 잔뜩 있어 이대로 데리고 다니기엔 곤란했다.
“지홍아! 씻기는 동안 룸서비스로 음식 좀 시켜. 간단하게 먹고 옷하고 필요한 것부터 사러 가자.”
“알았어.”
치킨과 샐러드 종류로 음식을 시키고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자 커다란 수건을 몸에 감싼 아영과 동생들이 하나씩 밖으로 나왔다.
들어갈 땐 때 국물이 잘잘 흘러 예쁘다는 말이 인사치레였지만, 깨끗이 씻고 크림까지 바른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예쁘고 귀여웠다.
아영과 동생들이 게을러 씻지 않은 게 아니었다. 수도와 하수도가 없는 집에서 세수조차 버거운데 목욕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날씨라도 따뜻하면 냇가에서 멱이라도 감겠지만, 칼바람이 부는 원산의 3월은 한겨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영의 동생들은 13살, 11살, 10살로 아정, 아솔, 아림이었다. 아영처럼 나이에 비해 키가 모두 작고 심하게 마른 편이었다.
“어서 먹어. 이거 먹고 쇼핑 갔다가 진짜 맛난 건 먹으러 가자.”
“감사합니다. 근데 저에게 무슨 일자리를 주실지...”
“우리랑 같이 살면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하면 돼. 어려운 거 하나도 없어. 힘든 것도 안 시킬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말씀은 고맙지만, 전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어요. 그리고 여기 있는 전자제품은 사용해 본 적도 없고요. 동생들까지 있어 같이 있으면 시끄럽기만 하지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딴 건 천천히 배우면 돼.”
“그래도...“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치킨이나 먹어!”
은비가 인상을 쓰며 언성을 높였다. 은비가 화가 난건 아영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이 이 정도로 끔찍한지 모르고 자란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네 자매를 목욕시키며 은비가 본 자매의 모습은 아프리카 난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갈비뼈가 다 드러난 앙상한 몸에 부스럼이 전신을 덮고 있었다. 부스럼은 영양실조가 원인으로 하루 이틀 못 먹어서 생긴 병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생긴 병으로 아솔과 아림은 각기병 초기 증상까지 앓고 있었다.
각기병(Beriberi)은 비타민 B1이 부족해 생기는 질환으로 다리 힘이 약해지고 저리거나 지각 이상이 생겨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병으로 심할 경우 다리가 휘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 다리가 휘어진 건 아니지만, 이대로 두면 다리뿐만 아니라 눈과 이빨, 관절 등 모든 부위에 이상이 생겨 시름시름 앓다 죽을 수도 있었다.
은비는 여태까지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부모의 억울한 죽음부터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가족사까지 자신만큼 불행한 사람은 언니인 소연을 빼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 순간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창피해 화가 났다.
엄마·아빠가 없었지만, 할아버지와 언니가 곁에 있었고, 타의로 밥을 굶어본 적도 갖고 싶은 것은 못 사본 적도 없었다.
아영은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 몸을 팔고 동생들은 먹고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을 캐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안 되고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었지,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자신이 행복에 겨워 투정을 부리고 있을 때 자신보다 한참 어린아이들은 눈물도 흘리지 않고 가혹한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은비 언니가 너희에게 화가 나서 소리친 거 아니야. 언니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런 거야. 이해해줘!”
“미안해!”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제부터 언니라고 불러. 너도! 너도!. 모두 언니라고 불러. 알았어?”
“네!”
은비의 일방적인 서열정리가 끝나자 소연이 치킨을 뜯어 아정과 아솔, 아림의 입에 넣어주었다.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언니 아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얼른 받아먹었다. 태어나 처음 먹어본 치킨의 황홀한 맛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소연이 치킨과 함께 샐러드를 계속 넣어줬고, 은비도 아영의 손에 치킨을 쥐여주고 있었다.
치킨 세 마리를 뚝딱 해치우고도 모자랐는지 아이들이 입맛을 다셨다. 치킨을 먹는 사이 난 근처 옷가게에서 아이들이 입을만한 옷을 사왔다.
새 옷을 입고 머리까지 예쁘게 빗고 나온 아이들의 모습은 완전 딴판이었다. 거친 피부와 홀쭉한 볼 때문에 부잣집 딸내미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처음과 비교하면 공주나 다름없었다.
“어때? 예쁘지?”
“어. 정말 예쁘다.”
“역시 여자는 옷이 날개야. 안 그래?”
“그런 것 같다.”
호텔을 빠져나온 우린 원산 상업 지구에서 아이들에게 맞는 옷과 화장품, 잡화 등 필요한 물건을 잔뜩 샀다.
원산엔 남쪽에서 올라온 기술자, 관리자, 군인 등 5,000명이 넘는 사람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을 위해 가게가 하나둘 생겨났고, 지금은 20여 개의 가게가 상업 지구를 형성해 성업 중이었다.
“집에서 챙겨 올 거 있니?”
“네?”
“내일 아침 일찍 회양으로 출발해야 할 거야. 짐 가지고 집에 갔다가 다시 아침 일찍 나오려면 힘드니까 짐은 호텔방에 가져다 놓고 필요한 물건만 챙겨 오는 게 좋겠다. 잠은 우리랑 같이 자고 내일 출발하면 되니까. 괜찮지?”
소연의 말에 아영이 동생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동생들이 간절한 바람을 담아 언니인 아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그럴게요.”
“가져올 게 있어?”
“다른 건 그냥 두고 가도 괜찮은데 엄마 아빠 사진은 챙겨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저녁 먹기 전에 갔다 오자. 지홍아! 우리 짐 좀 방에 가져다 놓고 쉬고 있어. 다녀와서 전화할게.”
“알았어. 조심해 다녀와.”
북촌 판자촌에 도착하면 소연과 은비는 다시금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난 잘 갔다 오라며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나이가 든 만큼 가난한 자의 삶도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부자의 화려한 삶만 보고 살면 원하지 않아도 사치와 오만이 몸에 배고 남을 업신여기며 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사람인 소연과 은비는 그러지 않길 바랐다. 가난한 자를 가엽게 여기고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랐고, 풍족함에 빠져 가난한 자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기 바랐다.
서둘러 쇼핑백을 방에 올려놓고 소연과 은비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예쁜 소연과 은비가 북촌에 나타나면 100% 더러운 파리가 꼬일 수밖에 없었다.
멘탈리스트라고 해도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어 몹쓸 짓을 당할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내 여자들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불행하게도 내가 살던 동네는 강간 폭행이 수시로 일어났다. 가난한 동네라 그런지 치안이 형편없어 몹쓸 짓이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된 건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은 신고할 경우 여성이 더 큰 피해를 당하고, 강간당한 여자가 손가락질받는 이상한 나라였다.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자란 난 북촌도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기감을 넓게 펼친 채 200m 후방에서 조용히 소연과 은비, 아영 일행을 따라갔다. 북촌에 도착하기도 전인 내성 출입문부터 치근대는 놈이 나타났다.
원산 경비대는 원산을 장악했던 북한군 출신으로 대유 그룹이 원산을 장악하며 이들을 모두 흡수해 경비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주인을 갈아탄 경비대는 대유 그룹과 남쪽 사람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켰다. 하지만 원산 주민들에게 예전 방식 그대로 행패를 부리며 못된 짓을 일삼았다.
지휘관부터 박도준 시장까지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제재하기는커녕 은근히 힘을 실어주며 못된 짓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대유 그룹은 경비대를 이용해 공포를 조성하고 주민들을 통제했다. 대유 그룹에게 원산 주민은 착취와 통제의 대상이지 보호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관점에서 경비대가 주민들에게 행하는 위압과 폭력은 대유 그룹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참된 행동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북촌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무슨 일로 가십니까?”
“아이들 짐 좀 챙기러 갑니다.”
“그곳은 불량배가 판치는 위험한 곳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간다면 이상한 놈들이 행패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몸은 저희가 지킬 수 있습니다.”
“연약한 몸으로 난폭한 놈들을 상대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테니 절 따라오십시오. 안전하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겁니다. 흐흐흐~“
“아닙니다. 저희끼리 다녀와도 됩니다.“
“허허~ 어린 아가씨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네가 보호해준다고 하면 네 하고 따라오면 되는 거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다섯 명 중 가장 어려 보이는 경비원이 소연에게 수작을 걸었다. 그 모습을 나머지 놈들이 뒷짐을 진 채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소연과 은비의 옷을 찢고 더듬듯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경비대는 옷차림으로 사람을 알아보고 차별대우를 했다. 남쪽 사람이면 친절하게 행동했고, 같은 원산주민은 사람취급도 안 했다.
하지만 남쪽에서 올라온 여성이 내성을 걸어서 빠져나간 일이 한 번도 없어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실수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욕망에 눈이 뒤집힌 상태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선녀 같은 자태에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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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